<은영이와 미라>

닮은 아이를 만난 날

by 송은영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내 고향은 남원이다. 작은 도시이다. 초등학교가 3개 있었다. 그중 나는 남원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학교를 가는 등굣길에 나는 리본이 달린 노란색 반바지를 입은 한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왜냐면 그날 나도 똑같은 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뒷모습을 보았던 나는 그 아이가 궁금해서 걸음을 빨리해 그 아이 앞을 가로질러 가며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바지만 같은 것이 아니라 얼굴이 같았다.

너무 놀라 어찌할지 모르고 그냥 모르는 척 뒤돌아 학교를 재촉해서 갔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그날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놀람인지, 두려움인지, 불길 함인지.. 내 무의식 깊은 곳 어딘가에 꽁꽁 숨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작은 학교여서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내게 와서 어떻게 된 건지 물어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나도 궁금했으니깐.. 그렇지만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몰랐다.

어느 날 아빠에게

“아빠 학교에 나랑 똑같은 애가 있어”라고 말했더니

“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많아..”라고 대답하시고 크게 궁금해하지 않으셨다.

어느 날 교실에 나랑 똑 닮은 그 아이가 나를 찾아와

“언니가 뭔데 나보고 전학 가라 마라 하는 거야? 갈 거면 언니가 전학가”

하며 따지고 드는데 당황스럽고 부끄럽기도 하고..

학교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내 얘길 하는 것 만 같고 너무 힘들어서

친구들에게 지나치는 말로 그 애가 전학을 갔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어느새 전해졌나 보다.

엄청 억울해하며 따지는 그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것이 나와 내 동생 미라의 정식 만남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얼마 안 돼서 동생이 쪽지를 보내왔다.

학교 뒤 담장 밑에서 점심시간에 만나자는 쪽지였다.

그렇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와 너무 똑 닮은 동생과 만났다.

동생은 엄마에게 학교에서 나랑 똑같은 언니를 만났다고 얘길 했고,

엄마는 동생에게 자세하게는 아니지만 우리 둘이 자매였다고 말을 해주었나 보다.

그리고 그 엄마가 날 보고 싶다고 집에 한번 오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4학년 동생은 3학년이었다.

쌍둥이였는데 학년이 다른 이유는 내가 7살 때 옆집 친구가 학교를 가는 것을 보고

너무 부러워 아빠에게 학교 보내달라고 엄청 졸라 데서 1년 일찍 학교를 들어갔기 때문이다.

10살.

내 나이 10살에 알게 된 나의 출생의 비밀은 충격이었을 거다.

그런데 너무 어려서일까?

그냥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그리고 생각했다.

가끔 만화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쌍둥이 자매가 어릴 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내가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여기며

나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럼 좀 받아들여질 만했다.

그리고 어떤 해피앤딩일지는 모르지만 분명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일거라고 여겼다.

그것은 나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난 아빠가 나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너무 잘 알았기에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아빠의 친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럼 아빠가 너무 슬퍼할 것 같았다.

다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토록 그리워하고 기다렸던 엄마.

내가 1살 때 날 버리고 서울로 간 엄마가 내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찌 보면 그리움은 너무 힘든 일이지만 한편으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기도 했다.

언젠가 만날 거라는.. 언젠가 올 거라는. 그 희망으로 버티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희망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나의 이 경험은 희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꼭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이 두려웠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안 할 테니까..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의 앤셜리는 이렇게 얘길 했다.

“나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라고..

진짜 희망이라는 이름 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가 숨어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기대하고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도

다 그런 실망들을 경험하고 주저앉아있을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조금 미련해 보여도 바보 같아 보여도 희망을 다시 가져보자고 얘기하고 싶다.

10년 동안 내가 기억하는 횟수로는 그 서울 엄마를 두세 번을 본 것 같다.

날 아빠에게서 데려가려고 찾아왔지만 아빠는 날 절대 엄마에게 주지 않았다.

아빤 내가 아니어도 이미 큰 오빠와 언니. 그리고 그 밑에 오빠가 있었다.

나와 나이차이가 엄청 많이 나는 오빠와 언니였다.

그땐 어려서 잘 몰랐는데 엄마가 다른 이복형제들이었다.

그럼에도 날 포기할 수 없었던 아빠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친 자식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아빤 끝내 날 아빠 혼자 키우셨다.

이젠 그 서울엄마를 기다릴 이유가 없어졌다. 그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었으니까. 매 순간

그리워할 엄마가 없어졌다. 아니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날 버리고 서울로 간 엄마를 그리워했던 그 10년의 시간이 다른 엄마로 대체가 되진 않았다.

아무리 그 대상이 친엄마였다 해도 말이다. 내 마음엔 아주 커다란 구멍이 생겨 늘 허기졌던 것 같다. 그 무엇으로도 메꾸어지지 않는 이상한 구멍이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