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다가 엄마를 만나러 갔다.
솔직히 그땐 엄마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친엄마라는 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동생을 따라 엄마랑 동생이 사는 집에 갔다.
단칸방에 세간살이라곤 뭐 별거 없는 그런 집이었다.
드디어 엄마를 보았다. 쌍꺼풀 없는 작은 눈에 다 풀린 파마머리. 얼굴엔 기미로 가득하고 피부는 거칠고.. 그냥 내가 시장에서 보았던 생선 장수 아줌마중 한 사람이었다.
장사를 마치고 오시자 마자 나를 맞을 준비를 하셨는지
생선장사 하실 때 차시는 앞치마도 그대로 하고 계셨다.
내가 엄마로 기억했던 서울 엄마는 정말 예뻤다. 탤런트처럼..
그 엄마한테는 아주 좋은 화장품 향기가 났었다.
10년 만에 처음 보는 내 친엄마에게 처음 맡아보는 냄새는 생선 비린내였다. 난 그렇게 향기로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다. 서로 너무 대조되는 향기였다.
사실 어릴 때 그런 의문을 갖긴 했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세, 네 번 만난 게 전부인 엄마지만 서울 엄마랑 나는 너무 닮지 않았다고..
엄마는 예쁜데 나는 왜 안 예쁠까? 오래된 나의 의문이 한 번에 해결되는 날이기도 했다.
서로 너무 어색했다.
나는 어색하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고 엄마는 “아가. 어서 와라..”
그랬다. 엄마가 10년 만에 처음 보는 날 부른 이름은 아가였다.
10년 전 잃어버린 딸을 만난 그날 그 여인은 나를 얼마나 안아보고 싶었을까?
얼마나 만져보고 싶었을까?
저녁을 차려주셨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밥, 콩나물국, 그리고 마른 김에 간장..
10년 만에 만나는 딸에게 처음 차려주는 밥상치곤 너무 소박했다.
그런데 그때 동생이 너무 신나 하며 얘기했다.
“와! 오늘은 김이 있네..”
해맑게 좋아하며 손뼉 치는 동생을 보면서 난 짐작했다.
그리고 어쩜 그때 이미 엄마를 용서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왜 보냈냐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충분하지는 않아도 이해되었으니깐..
적어도 엄마를 처음 만난 그날은 그랬다.
밥을 먹고 나서 엄마는 나에게 얘기했다.
“아가. 미라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도 그 말 신경 쓰지 마라..
그냥 미라랑 닮은 사람이 있다하길래 한번 보고 싶어서 오라고 했다.
집에 가면 네 아빠한테는 여기 온 거 말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아라.. 절대 얘기하면 안 된다."
나도 묻지 않았고 엄마도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이미 엄마손에서 떠난 아이였고 앞으로도 내가 살아갈 곳은 엄마 곁이 아닌 송 씨 집안이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가지고 집으로 오는 그 밤은 유독 어둡고 캄캄했다.
집에 돌아와 잠을 자려고 누워서 한참 생각했다.
그 엄마랑 나랑 어디가 닮았는지.. 그리고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처음 본 엄마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며 내 얼굴을 천천히 쳐다보았다.
눈, 코, 입. 어디가 닮았는지 도무지 잘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친엄마와 딸이 10년 만에 상봉하는 장면이
그리 슬프지도 않았고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 냉기를 통해 정말로 슬픈 만남은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 만남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도 나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니깐..
그런데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니 그때 그래서 더 슬펐다
그때 흘리지 못한 눈물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
엄마도 나도..
그날은 서로 살아있음에..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하는 그런 날이었을 거다.
초등학교 6학년 땐가 나는 엄마를 다시 만났다.
사실 그땐 내 친아빠를 만난 날이기도 했다.
난 양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인지 사실 친아빠에 대한 마음이 별로 없었다. 여전히 내 친아빠라는 분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함? 그 정도였다.
아빠는 바람난 여자분과 정리를 하고 그 분과의 사이에서 생긴 두 딸을 데려와 엄마랑 함께 살고 있었다.
내가 처음 본 아빠는 곱슬머리에 눈이 튀어나오고 마른.. 썩 좋지 않은 첫인상이었다
내 손을 만지시는 아빠가 불편해서 나는 손을 빼버렸다.
친아빠에 대한 내 마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애써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훗날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아빠에게 못다 한 말을 토해냈다.
그날 드디어 엄마는 방에서 나를 안아보셨다.
처음으로 안겨본 엄마품은 내가 상상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따뜻하지도 포근하지도 않았다.
아주 불편하고 어색했다.
많이 긴장되기도 했고 경직되었던 것 같다.
그날의 뒷이야기는 훗날 언니를 통해 들었다.
그렇게 날 두 번째 만나고 처음 날 안아보셨던 그날 밤 엄마는 벽에 당신의 머리를 계속 박으시며
“내가 미친년이지.. 내가 미친년이지..”
그렇게 한참 우셨다고 했다.
그 엄마의 모습이 고스란히 언니에게도 아픔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입양 간 집에서의 삶이 많이 힘들어서였을까?
나를 그곳에 보내고 어찌 되었든 아빠와 엄마, 언니 동생, 그리고 다른 동생 둘까지
함께 살고 있는 식구들이 미웠다.
많이 원망스러웠다.
부잣집 양녀?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는 집에서 불안에 떨며 살아가느라 너무 지쳐 있었다.
왜 나만 버려졌을까? 왜 나만..
그날 친아빠는 처음 만난 딸에게 오천 원을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그 오천 원을 받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한참 동안 쓰지 못한 돈이었다. 그렇게 큰돈이 어디서 생겼는지 들키면 안 되는 불안한 돈이었다.
6학년이었을 것이다. 언니가 생일 선물을 동생 미라를 통해 보내 주었다.
종이학 천마리와 편지였다.
그런 언니에게 나도 편지로 답을 했다.
언니가 내게 보낸 편지와는 다르게 나는 지금의 내 삶에 대해 원망하며 엄마를 원망하는 내용으로 답을 했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두지.. 왜 나를 여기에 보냈느냐’는 말을 했다
종이학 천마리를 어떤 마음으로 접었을지 알기에 그런 언니에게 내가 한 말이
언니에겐 어떤 아픔이었을지 알기에 그때 그 말이 많이 후회된다.
우리 언니는 그 아픈 말을 엄마에게 전하지 않은 채 언니 가슴에 담아두고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가족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양 아빠를 보는데. 마치 바람피우고 온 사람이 이런 기분일까?
왠지 모를 죄책감과 미안함에 여느 때보다 더 양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며 곰살맞게 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