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을 보고 울었다"
미라와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다.
시골에 살던 동생이 읍내로 전학을 오며,
내가 다니고 있던 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동생은 성이 양 씨, 나는 송 씨였다. 학교에서는 말이 많았다.
나는 귀를 닫고, 마음까지 닫고 살아야 했다.
선생님들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양아빠도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다 보면,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할 때가 있다. 진실이 꼭 중요한 건 아니다.
진실이 서로에게 더 큰 상처가 될 때도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묻어두고 살아야 했다.
전교 조회 시간,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나는 아빠에게, 미라는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한 명은 송은영, 한 명은 양미라. 누가 봐도 쌍둥이였다. 그날 우리는 나란히 이름이 불렸다.
친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몫이었고, 미라의 몫이었다.
우리는 둘 다 노래를 잘했다. 합창부에 함께 뽑혔지만,
나는 동생을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워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말했다.
“파트를 달리해서라도 함께하자.”
그만큼 닮았고, 그만큼 달랐다.
운명처럼 이어진 끈이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모른 척하며 살아야 했다.
말 한마디 섞지 않고, 모르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다.
그 동생이 서른셋이 되었을 때,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섯 살 딸과 세 살 아들을 남기고서.
암투병 중인 동생을 찾아가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던 날,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하나님, 제 인생이 정말 해피엔딩이 맞나요?
왜 점점 세드엔딩이 되어가는 것 같죠?
동생하고 아직 해보지 못한 게 너무 많아요. 살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랬다. 나는 언제나 “주세요” 대신 “안 될까요”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오래된 상처에서 비롯된 하나님을 대하는 나의 잘못된 습관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동생의 친구 정숙이가 말했다.
“언니, 미라가 그랬어요.
학창 시절엔 늘 땅만 보고 다녔다고요.
언니한테 피해 줄까 봐,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오래된 문이 무너졌다.
한 줌의 재가 된 동생 앞에서 내가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녀를 고개 숙인 삶으로 살게 한 건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른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동생과 한 학년 차이가 났던 나는 처음으로 ‘나로서’ 살았다.
하지만 운명은 또 우리를 같은 학교로 불러 세웠다. 동생이 내가 다니던 학교에 배정이 된 것이다.
그래도 서로에 대한 목마름은 결국 우리를 함께 하는 자리로 이끌었다.
쪽지를 주고받고, 사람 없는 골목에서 몰래 만나 근황을 나눴다.
그렇게 첩보영화처럼 이어진 만남 속에서 우리는 같은 꿈을 꾸었다
“우리도 커서 <수와 진>처럼
쌍둥이 가수가 되자.
노래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
짧았지만 매 순간이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조차 늘 목말랐다.
동생은 언니와 단둘이 자취를 했다. 엄마는 안양에서 돈을 벌었고, 아빠는 여전히 가정을 뒤로한 채 자신의 삶을 살았다. 중 2 때 나의 담임이셨던 국어선생님이 동생의 담임이 되었다.
우리의 상황을 잘 아셨던 선생님은 종종 동생의 자취방을 찾아와 돌보시고 동생이 그렇게 가지고 싶어 하던 성경책을 선물로 주셨다도 전해 들었다.
그러나 어느 날, 도둑이 든 사건으로 동생은 엄마가 있는 안양으로 전학을 갔다.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멀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 봄, 언니인 혜진이언니가 학교로 찾아왔다
“엄마가 많이 위독하셔.
미라가 다시 전학 와서
너랑 같은 학교를 다니고 싶대.”
엄마를 본 지 여섯 해. 나는 마음속에서 엄마를 지워두었다. 그게 나를 키워준 양아빠에 대한 의리라 믿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그게 맞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와 함께하고 싶다던 미라의 마음이 너무 늦게 아프게 다가왔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 교실로 돌아온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서러움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건 단지 슬픔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몫’의 무게였다.
그날 과학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은영아, 네 언니가 다녀갔더구나.
미라 전학 문제로.
학교에서 전학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어렵다고 했다.
너 고3이고 미라가 오면 너 힘들 것이 뻔한데 그렇게 얘기했으니 그렇게 알아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나와 세 살 터울인 언니의 고 1 담임이셨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선생님의 나를 향한 조용한 배려가 동생을 아프게 할 걸 알면서도,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그녀는 다른 학교로 갔고,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그녀는 땅을 보고 걸었고,
나는 하늘을 보며 울었다.
우리는 닮은 얼굴로 다른 하늘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