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길을 열던 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우리 집에서 자취하던 언니를 통해 처음으로 예수님을 진지하게 소개받았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 두렵기도 했고,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기도라는 것을 해보았다.
“하나님, 정말 살아계신다면 제게 나타나 주세요. 제가 확신할 수 있게요.”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어딘가에서 찬송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한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여긴 왜 왔지요?”
나는 주저하며 대답했다.
“제가 하나님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 확신이 없어서요.”
여자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리고 한 상가 앞에 서서 문을 열었다.
안에는 온몸을 붕대로 감은 사람들, 여기저기 상처로 신음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어둡고 쾌쾌한 냄새, 사람들의 신음소리… 어린 마음에도 무서웠다.
그 여인은 내게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녀와 기도했고,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상가 안에 있던 모든 병자들이 깨끗하게 나은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보며 기뻐했고, 공기마저 반짝이며 달라 보였다.
정말 천국을 본 것만 같았다.
그 여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세요.”
꿈에서 깬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느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6학년의 나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날 이후 나의 신앙적 열정은 뜨겁게 타올랐다.
교회에서 열린 부흥회 시간, 나는 또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전 누구죠? 왜 이 가정에 와야 했나요?”
그 질문과 함께 그동안 눌러 왔던 13년의 설움이 터져 나왔다.
살아남으려고 버텨야 했던 시간들이 너무 힘들고 버거웠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참아왔던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왜 이렇게 하셔야만 했어요… 이유가 있으실 거 아니에요…
이런 곳에 절 보내실 바엔 차라리 절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그러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말들은 사실 하나님보다는 나를 낳은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니 질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 마음 한가운데 어떤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닌데, 아주 강한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네가 이 가정에 온 것은 이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너를 그곳에 선교사로 보냈다.’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면, 그 생각이 나 스스로 짜 맞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당시엔 그 말이 내 삶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그 부르심 앞에서 나는 어떤 시련이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하나님을 더욱 알아갔고, 하나님은 내 삶 전부가 되어 가셨다.
혼자 교회를 다녔지만, 교회는 따뜻했다.
사람들은 내게 진심으로 친절했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집에서는 아빠와 엄마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동생 손을 잡고 교회로 도망쳤다.
교회는 내게 피난처였다.
피난할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갑자기 혈압으로 쓰러지셨다.
나는 아빠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빠 좀 살려주세요. 그러면 뭐든지 할게요. 하나님께 저를 드릴게요…”
돌이켜보면, 그건 일방적인 나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은 내게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시간이 걸렸지만 아빠는 다시 일어나셨다.
조금 다리를 절었지만, 모두가 기적이라고 말했다.
아빠가 병환을 앓고 난 뒤 작은집 식구들, 큰오빠네, 새엄마까지 모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앙이 ‘삶’까지 내려오지는 못했다.
어느 날 새엄마가 말했다.
“야, 하나님은 왜 네 기도만 들어준대?
너는 돈도 주고 학교도 보내주고 다 해주더니만, 왜 내 기도는 안 들어준다냐?
나는 아무리 기도해도 돈도 안주더라.”
그 말이 얼마나 마음에 남는지 모른다.
친엄마와 새엄마의 차이…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 기도는 안 들어주셔도 돼요.
엄마 기도 좀 들어주세요. 전 괜찮아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쓰려왔다.
나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헌신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결국 성직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중학생 때부터 내 꿈은 전도사였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가족 중 누구도 그 꿈을 묻거나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 흔들림 없는 꿈이 나를 고등학교 시절까지 버티게 했다.
상업고등학교 대신 인문고로 간 것도 신학교 때문이었다.
꿈을 발표하는 시간마다 나는 말했다.
“전 전도사가 될 거예요. 힘없고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줄 거예요.”
나는 전도사라는 직업 자체보다
힘없고 외로운 사람 곁에 서고 싶었다.
어쩌면 그건 어릴 적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역할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학 입시는 그야말로 간절한 모험이었다.
가정 형편상 대학은 어렵다는 부모님들의 말에
시험만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붙어도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겨우 시험을 치르고, 드디어 발표가 있는 날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집안 분위기가 눈에 밟혀서, 합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전화도 선뜻 걸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교회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은영아, 축하한다. 합격했어.”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집안의 눈치를 생각하니 그 기쁨을 마음껏 드러낼 수 없었다.
부엌에서 통화를 마치고 안방에 전화기를 가져다 놓으려고 들어갔는데,
엄마가 나를 보며 말했다.
“너 합격했지? 어찌 된 게 떨어지라는 건 붙고, 붙으라는 건 떨어지고…
너 분명 안 간다고 했다. 딴생각하지 마라.”
옆집 미애가 떨어졌다고 들었기에, 그 말이 나를 향한 것만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네”라고 답하고 며칠치 짐을 챙겨 기도원으로 도망치듯 올라갔다.
기도원에서 나는 5일 금식을 작정했지만, 배고픔에 3일밖에 못 버텼다.
길이 막혀 있는 것 같은 막막함에,
처절하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밤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는 듯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정말 이 길을 가겠니?”
그 질문은 나를 깊이 흔들었다.
나는 버려짐에 대한 깊은 상처 때문에
하나님에게조차 버려질까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대답했다.
“하나님, 어디든 상관없어요. 편한 길은 원하지 않아요.
그냥 당신이면 충분해요. 써주시기만 하면 돼요…”
지금 돌아보면, 19살의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기보다
나를 쓰는 ‘주인’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든 쓰임 받는 존재이고 싶었다.
그래야 하나님에게만큼은 버림받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알아가기까지는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3일째 되던 날,
기운도 없고 씻지도 않아 초라하기 그지없는 나를 한 집사님이 찾아오셨다.
야간에 신학교를 다니며 공부하시던 집사님이었다.
집사님은 말도 없이 나를 데리고 차에 태웠다.
중간에 처음 보는 목사님 한 분을 만나 세 사람이 함께 광주로 향했다.
저녁 늦게 도착한 곳은 근사한 저택이었다.
차가 멈춰 서고서야 그곳이 내가 시험을 본 신학대학 총장님 댁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 그곳에 와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두 분을 따라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총장님을 뵙고 인사를 드린 뒤, 나는 그저 말없이 앉아있었다.
두 분이 나를 대신해 모든 설명을 해주셨다.
“이 학생이 호남신학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등록금이 없습니다, 총장님.
지금 금식하고 기도하고 있어서… 어떻게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우리가 데리고 왔습니다.”
지금도 생존해 계신 황승룡 총장님이었다.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는 방문이었는데도 총장님은 무척 겸손하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아, 그렇군요. 사정이 딱합니다.
제가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잠시 고민하시던 총장님은 이내 다시 말씀하셨다.
“그럼 등록금 전액 면제는 어렵고…
대부분 신학교에 오는 분들이 이 학생과 비슷한 처지라서요.
그래도 삼분의 일은 준비하셔야 합니다.”
두 분은 마치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드렸고,
나를 데리고 다시 기도원에 데려다주셨다.
나는 그날 밤, 잠시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마치 천사들이 나를 데리고
하늘의 작은 방 하나를 보여준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남은 등록금 50만 원은 여전히 큰 산이었다.
금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또 한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사님을 만나러 갔더니 집사님이 내게 봉투 하나를 건네셨다.
“이름 밝히지 말라 하시더라. 어떤 성도님께서 학교 가는 데 쓰라고….”
그 봉투 안에는 15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돈으로 남은 등록금과 자취방을 마련할 수 있었다.
부모님들도 그쯤 되니
‘학교 가지 마라’고 말릴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미 길은 열리고 있었으니까.
내가 3일 금식을 해서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미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셨던 어떤 길 위에, 나는 겨우 올라탄 것뿐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며 나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은영아… 마음 깊은 곳에 기억해 두렴.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언제나 너를 품어온 손이 있었다는 것.
나는 언제까지나 너의 아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