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다니는 엄마
이른 아침부터 딸아이는 설레어했다. 오늘 어린이집에 엄마랑 함께 간다며 함박웃음이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은 매달 교사들의 연차 사용 날이 되면 아마들이 돌아가며 일일교사가 된다. 그날 교사의 빈자리를 부모가 채우는 것이다. 어쩌면 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무슨 놀이를 즐겨하는지, 어떤 반찬을 좋아하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일일아마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줘야 할까? 아이들 낮잠시간에는 잘 재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안고 터전에 들어갔는데,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이 관심을 갖고 나에게 다가왔다.
“체리~ 오늘 체리가 일일아마야?”
“나 종이접기 하는 거 같이 해보자~”
“체리~ 나 치카하는 거 도와줘”
여기저기에서 체리를 불러댄다. 내 아이 네 아이 구분 없이 모든 아이들이 내 품으로 들어온다.
친구 엄마가 일일아마로 왔다며 좋아하는 아이들은 오늘따라 더 개구쟁이가 된다. 그네 밀어줘라, 말타기 하자, 가위바위보하자, 종이접기하자 등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분명 아침밥을 먹고 등원했는데 배는 왜 이리 고픈지, 점심시간에 맛단지(조리사 선생님)가 만들어주는 밥은 두 세번 리필해 먹기 다반사다. 아이들 낮잠시간엔 책을 읽어주고 한 명 한 명 재우다가 나도 까무룩 잠이 든다. 오후에는 같이 몸으로 뒹굴며 놀다가 하원할 때가 되면 녹초가 된다.
이런 경험을 매년 기본 3-4번은 하고 있다. 일일아마 외에도 자투리아마(교사회의나 행사가 있을 시 부모가 하원을 도와주는 것), 방모임(아이들의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 매달 교사들과 부모가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 소위모임(시설, 운영, 홍보, 재정, 교육 등 어린이집 운영에 필요한 아마들의 소위모임), 이사회모임(그 해 이사진들의 매달 회의 모임), 주말청소(주말마다 순번을 정해 터전을 쓸고 닦고 하는 청소), 주말행사 등등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문화를 경험한다.
어쩌면 아이에게 좋은 먹거리와 자연에서 뛰노는 시간, 놀 수 있는 자유를 선물해주려고 공동육아어린이집을 선택했는데, 부모인 내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는 셈이다. 부모들은 많은 참여와 고민 속에서 변화를 요구받는다. 아이를 향한 관심과 애정으로 공동육아어린이집을 선택한 부모들은 내 아이를 위해서 왔으나 함께 하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고, 고민들을 나누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안에서 삶을 나눈다. 이처럼 공동육아어린이집이 다른 어린이집과 비교했을 때 가장 다른 부분은 부모들이다. 공동육아 부모들은 조합원이면서 어린이집운영자이고 아이들의 부모라는 다자역할을 한다.
이 모든 역할을 감당하면서 굳이 공동육아어린이집을 택해야 할까? 고민이 들기도 한다. 나도 때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있다. 그만큼 만만치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동육아의 운영 시스템은 바쁜 부모들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어린이집에 시간과 품을 내주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각종 모임과 회의는 하루 육아의 연장선으로 느껴지고, 정신적 신체적 피로감도 상당히 높을 때가 있다. 특히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어린이집에 휴원권고 명령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나는 아이들을 가정보육 하고 있었지만, 재정이사인 내가 맡은 어린이집 업무는 그대로 해야했다. 두 아이를 집에서 돌보면서, 어린이집 운영에 필요한 업무는 업무대로 해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온 국민들이 힘들었던 한 해가 나에게도 이중적인 힘듦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째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귀찮고 어렵고 고민되는 면, 그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삶은 아이들에게도 함께 이루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부모와 교사가, 부모와 부모가, 아이와 교사가, 부모와 아이가 서로가 연결되어 살아감을 일상에서 체득하는 것이다. 어린이집의 각종 모임이나 청소, 운영에 부모가 참여하는 것이 결국 아이를 사랑하기에 마음을 내고 시간을 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부모들에게 교사들에게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아이는 어느 곳을 가든지 당당하다.
그것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어린이집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