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는 중립이 없다.

by 가치지기

"정의는 침묵 속에서 무너지고, 용기 속에서 살아납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법이 흔들리고, 정의가 흔들리며, 그로 인해 시민들의 마음까지 흔들리고 있습니다.


법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약속이자, 모두가 지켜야 할 질서의 기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법 위에 ‘사정’이 있고, 정의 위에 ‘상황’이 있으며, 원칙 앞에 ‘유예’가 존재하는 듯한 현실 속에서 깊은 불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1일, 유흥식 추기경은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라고 호소하며 헌법재판소에 빠른 결단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종교인의 정치적 입장을 넘어, 혼란스러운 시대 앞에서 법과 양심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절박한 시대적 양심의 외침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라고 말했듯, 억울함과 불의 앞에서 침묵하거나 유예하는 태도는 결국 불의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정의는 결코 선택적일 수 없으며, 시대와 위치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정의는 차가운 이성에 기초하되, 결코 사람의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정의가 원칙과 사실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전제는, 감정과 사정을 배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판단의 출발점은 ‘사람이 아니라 원칙’이어야 하며, 그 원칙은 시간이 흘러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정의는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작동할 때에만, 진정한 사회적 신뢰를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법보다 목소리 큰 사람들의 판단이 앞서는 듯한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늦어질수록 사회의 혼란은 증폭되고, 국민의 신뢰는 점차 무너져 갑니다.


법은 단지 판결을 내리는 기구가 아니라, 그 결정을 통해 사회의 기준을 세우고 공정한 질서를 회복하는 책임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닙니다. 지체는 책임의 유보가 아닙니다.”


오늘날 더욱 우려되는 것은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입니다.


갈등을 피하고자 침묵하거나 판단을 유예하는 것이 결코 공정한 자세는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상 현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무언의 동의이며, 약자들이 겪을 고통을 외면하는 방조에 불과합니다.


정의의 자리는 침묵과 유예가 아니라, 용기 있는 결단에 있습니다.




“정의가 명료하게 선언되어야 사회적 신뢰가 회복됩니다.”


우리 사회가 다시 회복되기 위해서는, 정의가 명료하게 선언되어야 합니다.


그 선언은 단호하되 편파적이지 않아야 하고, 신속하되 성급하지 않아야 하며,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원칙’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신뢰는 명확한 기준에서 시작되며, 그 기준이 바로 '정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히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원칙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입니다.

유흥식 추기경의 호소는 바로 그 본질을 향한 질문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윤리적 요청이기도 합니다.




“정의는 침묵 속에서 무너지고, 용기 속에서 살아납니다.”


이제는 정의가 더는 지체되지 않고, 망설이지 않으며, 사람들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야 할 시간입니다.


"정의에는 중립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이 우리 사회에 다시 살아 있는 믿음으로 자리 잡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공정한 회복’이라는 다음 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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