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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良書)

- '내 안 깊은 곳을 비추는 책'

by 가치지기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


막스 베버의 이 말은 요즘처럼 책이 넘쳐나는 시대에 더욱 진하게 다가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쏟아지고, ‘작가’라는 이름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시대입니다.


출판의 문턱이 낮아진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책의 깊이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표지는 화려하고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막상 내용을 펼치면 몇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게 되는 경험. 아마 많은 분들이 해보셨을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무엇을 읽을 것인가’보다 ‘왜 읽는가’에 대한 질문이 더 중요해집니다.


책을 통해 정보나 지식을 얻는 것도 의미 있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독서의 목적은 책을 통해 ‘나를 읽는 것’입니다.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법정 스님의 이 말씀처럼, 좋은 책은 그 안의 한두 문장이 독자를 멈춰 세우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듭니다.


그 짧은 구절이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지금의 나를 찔러 깨우며, 앞으로의 나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좋은 책은 그래서 거울과도 같습니다.


거울이 얼굴을 비추듯, 양서는 우리의 내면을 비춥니다. 내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말없이 보여줍니다.


이런 책은 단숨에 읽히지 않습니다.

한 페이지, 한 문단, 때로는 한 문장에서 멈춰 서서, 다시 곱씹고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그런 책을 만나면 두 번, 세 번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구절이 나를 다르게 흔들고, 같은 문장이 매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런 경험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 나를 찾아 떠나는 사색의 여정이 됩니다.


반면, 표면적인 재미나 감각적인 문장만을 쫓는 책들, 깊이보다는 속도를 요구하는 책들은 감탄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침묵은 주지 못합니다. 감탄은 읽는 순간 끝나지만, 침묵은 오래 남아 나를 바꾸는 힘이 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삶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을 얼마나 읽었는가 보다,

그 책이 내 안에 무엇을 남겼는가,

어떤 침묵과 사색을 선물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이제 저는 책의 ‘양’보다는, 한 권이라도 깊이 있게 읽고 싶은 책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내면을 건드릴 수 있는 책이라면, 그 책은 분명 인생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책이 너무 많아 손에 닿지 않는 시대.

그래서 오히려, 한 권의 진짜 책을 고르는 눈과 마음이 더욱 소중해지는 요즘입니다.


진짜 양서, 나를 읽게 해주는 책과의 만남이

오늘도 내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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