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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반짝 Dec 16. 2021

일곱 빛깔의 힐링 ‘무지개 해독주스’

아이들과 제주에서 딱 일 년 살았습니다.

만성염증의 늪에서 나를 건져준 ‘해독주스’를 만난 건,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다. 제주대학교 벚꽃길의 아름드리 고목에선 여린 꽃비가 한없이 나폴 댔다. 생기어린 젊은이들의 미소를 마주하고 나니 기분이 야릇해졌다. 머리에 생기를 주고 싶어서 딸과 함께 미용실을 찾았다.    

 버스정류장에 한 평 남짓한 허름한 미용실이 하나 있었다. 낡은 섀시 문 사이를 슬쩍 들여다보았다니 단정한 커트머리의 미용사가 커다란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이끌리듯 들어갔다. 그녀는 책을 덮고 해사한 미소로 우릴 맞았다. 그을린 얼굴과 흰머리에선 건강한 기품이 흘러 넘쳤다. 그녀는 머리를 말다 말고, 빨간 내 눈을 지그시 보시더니 눈을 빛내며 말했다.

 “주스 함 갈아마셔봐요. 아이들도 같이 먹이고요. 만드는 법도 간단해.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마시고 있어요. 덕분에 나이 육십이 넘도록 잔병치레 없이 이 자리에서 하루 종일 손님들 머리를 만질 수 있었지. 나 건강해 보이지 않나요?”


 요즘 이상스레 ‘해독주스’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맴 돌고 있었던 차였기에 깜짝 놀랐다. 우연이 아님을 직감했다. ‘혹시 해독주스가 내가 그토록 찾던 회복의 열쇠가 아닐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한 달음에 달려가 사과, 바나나, 양배추, 미나리, 당근, 비트를 사왔다. 탱글탱글한 야채들을 흐르는 물에 살살 씻은 후, 폭폭 삶았다(야채는 익혀야 체내 흡수율이 90%로 올라간다). 탱글탱글했던 채소의 얇은 막들이 흐느적거리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영양소 흡수 준비 완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야채 위에 과일과 물어 한데 갈았다. 초고속 믹서기의 굉음이 윙~하고 집안을 울리고 나자, 곱디곱게 스무디가 됐다. 오묘한 다홍빛의 음료를 쭉 들이켰다. 몸의 소리를 잠잠히 들어보니, 생애 첫 해독 주스는 마치 오랫동안 알고지낸 친구처럼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다독였다. 마치 요술을 부리듯 세포 하나하나를 매만지고 있었다.       

 해독주스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 들어갔다. 우리 나라에 가장 처음 대중화된 레시피는 서재걸 박사의 해독주스(토마토, 브로콜리, 양배추, 바나나, 당근, 사과)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건, 보다더 간편한 ABC(사과와 비트 그리고 당근) 주스였다. 꾸준히 마시기만 한다면 어떤 레시피든 좋겠지만, 레시피를 만들고 싶었다. 미용실에서 전수받은 레시피를 기본으로 해서, 대중적인 레시피들을 참고했다. 가설을 세웠고, 다양한 방법의 주스 만들기에 돌입했다.


<첫 번째 연구>

  ·가설: 초록의 미나리 대신 슈퍼푸드 브로콜리를 넣어보면 어떨까?

  ·검증: 주스 맛이 더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일주일이 채 못 돼서 안통이 생겼다.

  ·결론: 미나리는 영양소와 함께 향긋한 향기까지 가세하여 염증을 제거하는 최고의 해독 식          품이다.     

<두 번째 연구>

  ·가설: 아침마다 즐겨먹던 사과 대신 최고의 항산화 식품인 토마토를 넣어보면 어떨까?

 ·검증: 토마토의 걸쭉한 질감과 새콤한 맛은 주스의 풍미를 살렸다. 주스가 시간이 지나도 갈         변하지 않았고, 맛 변화도 없어서 좋았다.

 ·결론: 사과는 온가족이 좋아하는 아침 간식이니 잘라서 먹기로 하고, 슈퍼 푸드인 토마토까         지 섭취하면 일거양득이다.     


<세 번째 연구>

 ·가설: 케일은 대표적인 칼륨 식품으로서 나트륨을 배출하여 혈압을 조절하고, 뇌에 산소를           공급하여 심신을 안정시킨다. 넣으면 주스가 보다 더 완벽해질 것 같다.

 ·검증: 맘에 쏙 드는 건강 주스가 됐다. 게다가 즙용 케일은 가격도 저렴하다.

 ·결론:  짠 음식을 즐겨 먹고,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칼륨까지 듬뿍 마시자.     

 이렇게 우리 집 힐링 주스가 탄생했다. 이름하여 ‘무지개 해독주스’이다. 해독주스 비장한 이름과 달리 빛깔은 얼마나 붉고 고운지, 맛도 좋다. 먹다보면 은은한 단맛이 혀끝에 맴돈다. 이 주스는 일반적인 무지개 색인 ‘빨주노초파남보’ 대신 ‘빨주노초청흰보’의 변주된 일곱 가지의 힐링 빛깔을 갖고 있다. ‘빨주노초청흰보’를 자꾸 외우다 보면, 재료를 구입할 때와 주스를 만들 때 헤매지 않아서 좋다.


 최고의 항산화 식품인 슈퍼 푸드 ‘빨간 토마토’

 눈 건강을 지켜주는 ‘주황 당근’

 달콤한 맛과 풍부한 섬유소는 물론 포만감까지 주는 ‘노랑 바나나’

 영양과 향기로 해독 효과가 만점인 ‘초록 미나리’

 스트레스 물러가라! 칼륨의 보고인 ‘청록 케일’

 위와 장 그리고 혈관에도 좋은 ‘흰 양배추’

 간 속의 독소와 염증을 잡아주는 ‘보라돌이 비트’     


 아이들을 위해 더운 여름에는 달콤한 냉동망고과 냉동블루베리를 섞으면 진짜 스무디가 된다. 또 재료가 다 없더라도 냉장고에 있는 야채와 과일들만 가지고 해독주스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닌 꾸준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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