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에는 사람을 치유하는 에너지가 들어있다. 동트는 아침마다 함덕 바다로 나갔다. 붉은 해가 환한 얼굴을 드러내면 모래사장을 어루만지던 부드러운 잔물결이 자태를 드러냈다. ‘아,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 했던가!’ 부지런한 파도는 마치 나를 쓰다듬는 듯 잠들어 있던 ‘서러운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몸이 아픈 사람은 원래 눈물이 많은 법이다. 몸과 마음은 완전히 하나이니까.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알코올 의존증이 심했던 아버지는 분노조절을 하지 못하셨고, 밤마다 힘없는 어머니를 괴롭혔다. 온 집안은 고함과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우리 셋은 공포에 질려 매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었다. 아버지가 난동을 멈추고 어서 잠이 들기만을 바랐다. 싸움이 격해지는 날엔 한겨울에도 나가 대문을 지켰다. 혹시 모를 엄마의 가출을 막기 위해서라면 추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에 거나하게 취해 귀가하실 때면, 종종 옆집으로 피신을 갔다. 우릴 불쌍한 듯 바라보던 옆집 아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불안했던 아이는 불안한 어른이 됐다. 스물 네 살 어린 교사는 열심히 일했고, 사랑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세상은 괴물처럼 다가와 날카로운 상처를 입혔다. 강해져야 한다고 매일 주문을 외웠다. 덩치가 산만한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교실. 한 학생이 음흉한 미소를 띤 채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제 이름에서 받침 다 빼고 말해보세요.” 학생 이름은 ‘봉진성’. 그리고 호기심과 놀림 가득한 눈빛이 40개. 황급히 교실을 빠져나갔고, 등 뒤의 교실은 깔깔 웃음바다가 됐다.
사춘기 성난 아이들의 반항과 욕설, 가슴 아픈 자살까지 도무지 감당 못할 사건들이 폭풍처럼 불어닥쳤다. 당시 나는 무력했다. 내 안에도 치유받지 못한 상처가 있었기에 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상처에 식초를 들이붓듯, 소스라치게 놀랐고 아파했다. 더 따뜻하고 지혜로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심리상담 공부를 시작했다. 내 상처들부터 끊어내야 했다.
치유의 제주 바다
고통은 최대한 표현해 비로소 치유가 된다. 눈물의 기도야말로 고통을 치유하는 명약이다. 제주에 오자마자 바다로 나가 마음껏 울었다. 슬픔을 눈물의 언어로 표현했다. 그것들이 마음속에서 충분히 머물다 갈 수 있도록. 그것들이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밖으로 흘러가도록. 여기서 중요한 건, ‘충분히’이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하얗게 질릴 때까지 그 생채기를 토해내야 한다. 슬픔을 수용하는 충분한 시간은 삶의 속도를 늦춘다. 내면에 집중하게 만들어 결국 우리의 성장을 돕는다. ‘충분한 애도’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흰 종이를 폈다. 아픈 기억들을 깨알같이 적어나갔다. 상처를 빼곡하게 적은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은 후, 멀리멀리 떠나보냈다.
⟪뇌의 스위치를 켜라⟫의 저자 캐롤라인 리프는 뇌는 생각을 통해 재구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자주 하는 생각이 무엇이냐에 따라 해당 기억의 뉴런 구조는 활성화되고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나를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부정적 기억들, 이 자기 연민의 감옥을 깨 부숴야했다. 더 이상 상처에 집착하지 않도록 말이다. 일명 ‘기억 성형’에 들어갔다. 행복했던 기억들을 나이대별로 빼곡하게 적었다.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몇 주를 걸쳐 써 내려갔다.
5년 전, 폭설이 내린 아침이었다. 출근 직전에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차에 쌓인 눈 다 치웠다. 브레이크 절대 밟지 말고, 기어를 1로 놓고 천천히 운전해라. 나 간다! 파이팅!”
출근 길, 횡단보도에서 길다란 청소용구를 들고 눈보라를 헤치며 처벅처벅 걸어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부지런한 아버지는 폭설이 내린 새벽마다 반 시간을 걸어 딸집 아파트 주차장으로 오셨다. 꽁꽁 언 손으로 나와 남편 차의 눈을 치워주시고는 또 반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셨다. 생경한 아버지의 사랑에 목이 매여 엉엉 울고 말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상처 덩어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큰 사랑’을 받았었고, 여전히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세 남매를 희생으로 끝까지 지켜내셨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파산을 이겨내고 꿈을 이루셨다. 상처에 가려져 있던 수많은 수호천사들이 떠올랐다. 감사가 가득 차올랐다. 그렇게 상처는 점점 희미해졌고, 나는 날마다 더 행복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새벽의 함덕 바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넉넉함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파도는 맘껏 울라고 묵직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꺼이꺼이 맘껏 울며 아팠던 기억들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이제 울고 있던 내 안의 아이는 눈물을 완전히 멈췄다. 더 이상 서럽거나 슬프지가 않았다. 바다가 끊임없이 어루만진 모래 바닥은 이제 한 치의 흠도 티도 없이 보드랍다. 이 순결한 아기 피부같은 부드러운 속살이 이제 내 마음에도 가득하다. 정말이지 이 바다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