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딱 일 년 살았습니다
교정 한 귀퉁이엔 채도 높은 주홍과 빨간 빛으로 물드는 커다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가을 바람이 제법 쌀쌀하던 날, 점심 시간에 선배 교사와 산책을 나갔다. 며칠 만에 고운 잎새를 후드득 떨어뜨린 단풍나무 앞에 섰다.
“아, 울긋불긋한 단풍 카펫이 깔렸네요. 폭신폭신 향긋해요. 잎이 언제 다 떨어졌지?”
“이 나무, 참 춥겠다. 아름다운 시절은 어쩌면 이렇게 잠깐인걸까? 이 선생, 신혼시절 행복하게 보내. 출산과 동시에 여자의 삶은 이 앙상한 나무처럼 변하니까. 인생 본 라운드는 아이를 낳고부터 시작이야.”
‘아이를 낳으면 본 라운드가 시작된다고? 귀여운 아이가 생기면 더 행복할 것 같은데!’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서른 셋. 첫아이를 출산했고 인생 본 라운드는 시작됐다. 육아는 생존, 그냥 처절한 생존의 시간이었다. 흔히 전쟁에 비유되는데, 정말 걸맞은 표현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울음 폭탄과 밤낮을 가리지 않는 수유시간, 버라이어티 한 사건사고들이 미사일처럼 슝슝 날아다니는 전쟁터였다. 출산 후 하룻밤 사이에 부부는 피난민으로 전락했다. 앙칼진 고음의 울음소리는 산후 우울증으로 예민해진 초보 엄마의 마음을 날카롭게 후벼 팠다. 갑자기 터져버리는 아기 울음을 달래느라 쩔쩔맸다. 온종일 아기를 안고 집안을 종종거렸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것조차 아기와 함께였으니, 샤워는커녕 머리 감을 틈조차 쉽게 나지 않았다.
이쯤 되니 자연스레 나의 정체성에서 ‘여자’는 희미해져갔다. 남편도 연구하랴, 밤에 아이 재우고 한밤중에 연구실로 다시 출근을 해야 했기에 나와 함께 늘 지쳐 있었고, 주말이면 몸살을 앓았다. 햇살의 생기를 잃은 부부는 잎이 우수수 떨어진 휑한 단풍나무였다.
복직 후엔 집안일을 할 시간마저 부족해서, 칼바람을 버티는 겨울나무처럼 하루하루 겨우 살았다. 새벽부터 아이들을 먹이고, 달래고,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시키고 나면 혼이 쏙 빠졌다.그리고 분주히 막 감아 물기 가득한 머리를 대충 털고서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 사거리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지는 순간, 윤기 없는 살갗에 비비크림과 립스틱을 후닥닥 발랐다.
육아로 정신없는 교사에겐 출퇴근길의 자동차 안은 그야말로 고요한 상담실이 된다. 학부모님들의 근심을 헤아리며 엑셀과 브레이크를 관성적으로 밟다 보면, 이내 학교에 도착했었다.
퇴근 후에는 이미 번아웃한 나를 다그치며 엄마 사랑에 고픈 두 아이들을 향해 나를 녹여냈다. 체력은 바닥을 쳤고 집 안 공기는 늘 무겁고 답답했기에 바람이라도 쐬자며, 아기 띠와 유모차를 하이브리드로 장착하고서 동네를 망연자실 걸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칭얼대면 저녁을 먹였고, 김밥 한줄로 저녁을 때운 후, 비루한 몸뚱어리로 지쳐 잠이 들었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다가 중학교에 와보니, 일과 시간 중엔 숨 돌릴 겨를이 없었다. 학생들 출결 관리와 네다섯 시간의 본수업, 끝없는 행정 업무와 결재 보고서들은 해치워도 매일 싸여갔다. 후딱 헤치울 작정으로 이를 앙 다물고 일하고 있노라면, 예상치 못한 긴급 회의와 빵빵 터지는 학급의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들은 혼을 쏙 빼놓고 만다. 만약 학교폭력 사건이라도 터지면 정말 아찔하다. 끝없는 학폭 회의와 힘들어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달래는 건, 온전히 담임교사의 몫이었다.
수업 준비는 퇴근 후의 몫이 되었고, 학생 상담은 점심시간과 청소시간에 잠깐씩, 이러다보면 학생들과 눈 맞출 시간조차 없어서 교사로서 문득문득 허무감에 속이 아렸다.
이렇게 7년을 살았고, 몸과 맘은 만신창이가 됐다. 수시로 우울했고, 나약한 나를 자책했다.
‘남들 다 해내는 육아와 직장일. 너는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두 아이의 엄마인데, 더 강해져야지, 지지리도 못났다. 못났어. 정말.’
자주 가던 안과 옆에는 정신과 병원이 있었다. ‘베일에 싸인 저 하얀 커튼을 열고 들어가 볼까?’ 하지만 낯선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는 선뜻 생기지 않았다. 문 앞을 서성이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친정 엄마가 다급히 나를 찾았다.
“학교 끝났지? 병원은 들렀고? 얼른 오렴. 아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계셔. 빨리 나오라고 아까부터 성화시네.”
퇴근을 재촉하는 목소리에 다시금 정신줄을 붙잡았다.
소크라테스는 너무나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너 자신을 알라.” 예전엔 이 말이, 자신을 성찰 하라는 뜻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고 한계를 지닌 존재’인지를 깨달으라는 깊은 철학적이 담겨 있었다.
일과 육아로 극심한 번아웃을 겪었던 그 시절에 나는 내 정신과 육체의 한계를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간혹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얼마나 허깨비처럼 낯설었던지....... 인간은 일견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여린 존재임을 여실히 느꼈다.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그 말에는 배춧잎이 소금에 절여져 숨이 죽는 것처럼,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여 더욱 밀도있게 깊어져야 함을 힘들게 배웠다. 더불어 인간다운 삶에 있어 ‘휴식과 여유가 주는 힘’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고달픈 이 순간이 어서 흘러가길, 나와 가족들의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여유가 어서 생기길. 훠이훠이 흘러가서 언젠가는 푸른 바다에 당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