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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반짝 Feb 25. 2023

특별하지만 평범한 하루를 위하여

계속 읽고 쓰는 삶

아이와 제주일년살이

 4년 휴직, 행복했다. 평일 오전, 유치원 등원을 미룬 아이와 햇살 가득한 공원을 걸었다. 이슬 맞은 그네를 타며 아이는 까르륵 웃었다. 엄마의 여유는 사랑으로 치환됐다. 잠 깨우며 아이의 앙증맞은 엉덩이와 다리를 조물조물, 통통한 볼살에 쪼옥, 황홀한 감각 파티였다. 따뜻한 아침 식사로 가족의 위장을 채울 때의 만족감이란....... 안정된 공기가 온 집안에 흘렀다.


 그래도 가장 좋았던 건, ‘한가한 오전’이었다. 아이가 등원하면 세상은 온통 내 차지였다. 그럴 때면 꼭 창가의 다소곳한 화초와 눈이 마주쳤다. 같은 호사를 누리고 있, 초록 동지들에게 신선한  한 모금씩을 선사했다. 차분하게 마른 잎을 떼 주고, 바람도 쏘여주노라면 차가운 공기에 정신이 들었다. 모자를 쓰고 뒷산에 갔다. 새들의 환영가를 듣고, 폭신한 흙을 밟으면,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여유와 자유가 좋아, 발걸음은 어찌나 가볍던지......

한가한 오전의 동지들

 말랑해진 마음으로 책장 앞에 섰다. 읽다 만 책 한 권을 끄집어 펼쳤다. 과거엔 스쳐갔던 문장인데 그 날 따라 예사롭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닌 듯한 영감이 솟구쳤다. 나 좀 꺼내 주라고 아우성치는 놈들을 꼭 붙들며 노트북을 켰다. 어떤 이야기를 물고 늘어질까? 행복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쓰기가 매번 행복한 건 아니다. 오래된 연인이 그렇듯 데이트의 설렘은 지리멸렬해지는 순간이 온다. 좋은지 고통스러운지 헷갈리지만 견뎌야하는. 컨셉을 정하고 기획할 때의 설렘은 결국 기나긴 고독으로 승화된다. 하나의 큰 컨셉을 잘게 쪼갠 후 A4 100페이지 분량을 채우는 것은 분명 고통스럽다. 하지만 한 꼭지 한 꼭지가 완성되면 뿌듯하고 후련하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다. 미숙한 초고지만 뽀송한 아기마냥 사랑스럽다. 글쓰기 자체에 성애적 요소가 있다고 《쓰기의 말들》 은유 작가는 말했다.

 “존재(필자)와 존재(글감)가 내통하고 감응하여 새로운 감각과 세계의 층위를 열어간다. 리비도가 오가며 서로의 속성이 달라지는 진한 애정 행각이다.”

 글과 사랑에 빠지면 나도 세상도 변한다. 만물이 글감으로 보이고, 삶이 온통 글과 연결된다. 전혀 다른 존재의 속성이다.


  워킹맘이 돼서 가장 아쉬운 건 '마음껏 읽고 쓰는 시간'의 증발이었다. 분주함에 묻힐 사색의 여유였다. 기껏 책 한 권 낸 초보 작가지만, 난 이미 ‘쓰기의 맛’을 알아버렸다. 글쓰기와 흠뻑 사랑에 빠졌고, 세상이 온통 글감으로 보였다. 한 번 사랑에 중독된 사람은 그것을 계속 찾기 마련이다. 그러니 분명한 건,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 속성이 달라졌는데 예전처럼 평범한 워킹맘으로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방치한다면 욕구불만에 시달리다 폭발할 것이 분명했다. 오래 고민했다. 평범하면서도 특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짧지만 효과적인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다. 닫힌 방 안에서는 생각조차 닫혀 버린다. 집, 직장이 아닌 열린, 제 3의 장소는 새벽의 카페였다. 카페는 글쓰기 작업에 최적화됐다. 나태해지고 싶은 나를 붙들어 글쓰기 세계로 안내한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존재의 감각을 일깨워 내면의 속살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윽한 커피 향은 어린 나를 깨우던 엄마의 밥 짓는 향기, 흘러나오는 음악은 자의식을 토닥거리며 현실 세계로 끌어 올린다. 작정한 시간, 고독한 장소는 용기를 내라고, 금기와 위반을 깨고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응원하다. 평범한 나를 특별한 존재로 일깨운다. 물찬 카타르시스의 향연, 다시 용감해진다.


아침, 고요한 카페

  오히려 삶이 다이나믹하면 글감도 다양해진다. 수많은 학생과 동료 교사와의 만남, 쏟아지는 연수와 교육, 복잡하고 어렵고 낯선 사건은 작가의 삶에 어쩌면 더 이롭다. 때론 넘어지고, 지쳐서 웅크릴 때도 있겠지만 분명 흥미진진하리라. 계속 읽고 쓰는 삶, 성장하는 이들의 사명은 평범한 이들을 살아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다. 욕망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세상에서 본연의 나, 순수의 나로 사는 것은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돈버는 기계가 아닌 존재 자체로 살게 하는 일이라면, 매일이 아니라도 좋으니, 단 30분이라도 괜찮다. 블루스든 탱고든 내 춤을 추고 볼 일이다. 춤출 수 있는 두 다리 있으니 언제 어디서든 리듬 속에 몸을 맡길 수 탈 있으리라. 그것이 진실로 간절하기만 하다면.

워킹맘의 여유와 행복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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