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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반짝 Mar 05. 2023

강아지 대신 식집사라면

느슨하지만 강력한 힐링

애견집사를 꿈꾸는 딸이 제 강아지 인형 비숑이를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비숑이가 엄마한테 안아 달래요! 봐요, 엄마가 좋다고 하잖아요.”

비숑이를 흔들며 혀 짧은 소리로 말했다.

“멍멍! 나 좀 안아주라개.” 초등 4학년이지만 이럴 땐, 영락없는 네 살짜리다. 강아지 대신 딸을 안았다.

“엄마, 우리 강아지 키우면 안 돼요? 네?”

“엄마는 너희 둘 안아주기도 바빠. 알잖아. 한정된 엄마의 사랑과 에너지를 강아지랑 나눠야 한다는 걸. 또 하루종일 혼자 텅 빈 집을 지켜야할 강아지도 불쌍하고......”


 사실, 난 첫째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유난스런 애견집사였다. 강아지를 워낙 좋아해서 강아지로 태교를 했다. 내 손을 거친 강아지만 해도 세 마리, 말티즈 ‘삐삐’와 ‘구름이’, 요크셔테리어 ‘짱아’까지. 그 사랑이 유별나서 대학생 때는 강아지가 토하거나 힘없이 쳐져 있으면 교수님께 학교에 못 가겠다며 울먹거렸다. 그러니 직장만 아니면 아이보다 내가 먼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 길렀을 터였다.      

 강아지의 대안은 반려식물이다. 우리 집 거실 한쪽에는 이십 여종의 화초가 쭉 늘어서있다. 꽤 초록초록하다. 집에 오는 손님마다 한 마디씩 건넸다.

“식물 잘 키우시네요. 마른 잎도 하나 없이. 일 하면서 이걸 어떻게 다 관리하세요?”

“별로 힘들지 않아요. 크게 신경 안 써도 혼자 잘 자라는 얘들이거든요.”

 겸손한 말이 아니다. 사실이다. 애플스킨답서스, 아이비, 보석금전수, 몬스테라, 아라우카리아, 올리브, 각종 다육이 등. 이들은 모두 알아서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잘 큰다. 난 단지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얘들을 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물만 준다. 매일 밥 주고 똥 치우고, 오줌패드 갈아야 하는 강아지에 비해 식물을 얼마나 키우기 쉬운가. 아참, 강아지에게 산책이 필수이듯 식물에게도 환기가 중요하다. 그러니 틈틈이 창문을 열어주고,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시간 예약한 선풍기를 돌린다.      

 드는 수고에 비해 식물은 큰 기쁨을 준다. 미세먼지로 외출이 제한돼 기분 쳐지는 날, 화초 주변에는 청량하고 향긋한 기운이 난다. 연둣빛 새싹이라도 발견하면, 연한 속살이 귀여워 사랑이 절로 솟는다. 유약을 칠하지 않은 붉은 토분에 담긴 초록 식물은 인테리어 효과도 좋다. 그리스 혹은 이탈리아에 온 듯한 감성과 이국적 분위기가 감돈다.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온유는, 주말 아침마다 분무기를 들고 화초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엄마, 보석 금전수에 새순이 돋았어요. 몬스테라 잎에 먼지가 많네, 칙칙! 날아가라. 장미허브에 노란 잎, 제가 뗄께요.”

 온유와 종종 식물 카페에 간다. 아들은 맘에 드는 놈을 발견하면 데려오고 싶다며 한 주 내내 졸랐다. 저보다 약한 생명을 돌보는 것을 즐기고, 만족감과 애정을 느끼는 것이 제법 식물 애호가스럽다.     



 느슨한 식집사이기에 위기도 종종 생겼다. 무엇보다 추운 겨울, 환기가 문제였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적다보니, 잎에 코팅된 것 같은 끈적한 이물질이 생겼다. 병든 잎을 떼고, 욕실에서 물샤워를 시켰다. 그나마 통풍 되는 베란다에 식물을 뒀다. 그래도 인 사라지면, 해충 죽이는 약을 뿌렸다. 몇 번 이런 일을 겪고 나서부터는 응애 방지용 약을 일주일에 한 번 분무한다. 또 가끔 잎이 노랗게 쳐져 있거나 찢어지면 액상용 비료(다이소에서 10개에 천 원, 달걀껍질 등 천연비료는 벌레를 만드니까)를 꽂는다. 화분 속 한정된 흙에는 영양분이 부족하다. 그러니 액체나 고체로 된 영양제를 놔주거나 최소 3년에 한 번쯤은 분갈이가 필수다. 다만 난 꽃피는 화초는 키우지 않는다. 비료를 충분히 주고 관리를 잘 해야 다음 해에도 꽃을 볼 수 있는데, 나처럼 느슨한 식집사에는 꽤 어렵다. 가끔 꽃이 보고 싶으면 예쁜 포트용 화분을 한 해살이 관상용으로 데려다 놓았다. 절화 꽃다발은 매일 물을 갈아야 하지만, 화분의 꽃송이는 겉흙이 마를 때 가끔 물만 주면 계속 피고지고를 반복하니 가성비와 가심비가 그만이었다. 그나저나 다가오는 봄에는 분갈이를 해야겠다. 게으른 집사 때문에 삼 년 씩이나 같은 흙에서도 잘 자란 아이비와 호야를 위해, 딱 이번에만 열심을 내야겠다. 아이들이랑 흙장난도 할 겸, 조만간 아파트 일층 화단으로 출동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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