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트럭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 사람을 OTR 드라이버라 한다. Over The Road의 줄임말이다.
장거리 OTR 드라이버 최고의 즐거움은 대자연 풍경에서의 드라이빙이다. 물론 좋은 풍경도 자꾸 지나다보면 무덤덤해진다. 그러나 어떤 풍경은 몇 번을 봐도 감탄사를 자아낸다. 이번에 유타에서 애리조나를 갔다가 콜로라도로 오는 경로가 그랬다.
높은 고개를 오르내리느라 연비는 최악이지만 경치만큼은 가히 최고다. 유타에서 애리조나로 이어지는 89번 국도와 애리조나 160번 국도, 유타 191번 국도, I-70 유타와 콜로라도 덴버까지의 구간은 자연 경관에 있어 미국 최고의 드라이빙 코스 중 하나다. 황량한 사막에 펼쳐진 검붉은 돌 봉우리와 절벽들, 깎아 지른 협곡 등 대자연의 위용을 만끽할 수 있다. 160번과 191번 이 두 국도는 별로 탈 일이 없어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작 두세 번을 다녀 봤다. 그러니 볼 때마다 신기하다. 인가도 거의 없고, 드문드문 작은 타운을 지난다. 트럭스탑도 수백 마일 거리에 고작 두 곳이다.
이 엄청난 풍경은 직접 눈으로 봐야 된다. 데쉬캠에 찍힌 영상은 실제 감동의 10%도 전달하지 못 한다. 이 구간을 달려본 미국인은 0.1%라도 될까?
트럭 운전을 하면 미 대륙의 좋은 곳은 전부 다닐 것 같지만 그게 참 뭐라 말하기 애매하다. 대형 트럭의 엄청난 덩치 때문에 주차 문제로 행동 반경이 제한된다. 명승지나 유명 관광지 근처까지는 가는데 막상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애리조나 주 세도나에 가고 싶은데 20톤 이상 트럭은 통행 불가다. 근처 하이웨이 휴게소에 트럭 주차는 가능하지만 정작 세도나까지 갈 교통편이 없다. 사우스 다코다에 있는 마운트 러스모어도 마찬가지다. 굳이 가려면 근처 트럭스탑에 주차하고 현지 여행사를 섭외해 교통편을 요청할 수도 있겠으나 번거롭고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트럭에 오토바이를 매달고 다니는 사람을 봤는데 그런 경우라면 가능하겠다.
그런 면에서 트럭 여행은 여행이기는 하되 반쪽짜리다. 대게의 경우는 절반의 경험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게다가 온전한 여행으로 만들려면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이면 못 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