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국가비상사태에도 트럭커는 멈추지 않는다.
스테이홈 명령으로 모두가 집콕하는 이 시기. 트럭커는 달린다. 아니 달려야 한다. 병으로 쓰러진 사람도 심장은 뛰고 혈액은 산소와 영양을 세포에 전달해야 산다. 기간 공급망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쉴 수 없다. 마트에 넘쳐나는 상품들은 돈만 내면 살 수 있는 마법처럼 보인다. 사실은 지금도 쉬지 않는 여러 사람의 노동의 결과물이다.
로키산맥을 넘어 캘리포아니까지 2,300마일 거리 배달을 마치고 곧장 700마일 거리 배달이 이어졌다. LA에서 솔트레이크시티로 간다.
어제 카슨에 도착하니 제우스 송영소 형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제우스는 PC통신 천리안 꼬꼬동호회 시절 대화명이다. 내 대화명은 느낌이다. 지역이나 학연과 무관하게 띠로 모인 친목 동호회라 순수하고 폭넓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내 아내도 여기서 만났다.
제우스 형님은 내가 다음 화물을 실을 월넛으로 가서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카슨의 제너럴밀스는 나로서는 처음이라 낯설다. 가져간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빈 트레일러를 가져가야 하는데 도무지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헤매고 갖은 생쇼를 벌인 후에야 입구를 겨우 찾았다. 프라임 트레일러 중에서 가장 내부 청결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골랐다. 내 기준에서는 와쉬아웃을 해야 하는데 재선 형님의 말은 달랐다.
“이 정도면 완전 땡큐지.”
발송처로 가는 길에 트럭 세차장은 있었다. 실을 화물이 과일 주스인 데다 이미 약속 시각에 늦었다. 제우스 형님을 더 기다리게 할 수도 없다. 곧장 발송처로 향했다. 비가 많이 내렸다.
트로피카나에 도착해 닥에 트레일러를 댔다. 서류를 접수했다. 로드락이 있으면 치우라고 해서 닥 내부에 가서 지게차 기사를 만났다. 마스크를 벗는데 긴 생머리의 아시안 여성이다. 한국계나 중국계 같은데 미모가 상당했다. 여성 야드자키는 몇 번 봤어도 지게차 기사는 처음이다. 실제로는 더 있겠지만 내가 지게차 기사를 직접 만날 일은 드물기 때문이리라. 7번 도어를 열고 보니 트럭이 없었다. 엉? 어디 간 거지? 알고 보니 내가 번호를 착각해 5번 도어에 댔다. 다시 나가 제대로 댔다.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제우스 형님을 만났다. 근처에 한인 상가가 많은데 모두 문을 닫았다. 제우스 형님은 마스크와 손 세정제, 아디다스 후드티 등을 내밀었다.
“조심해서 다녀라.”
미국에서 구하기 힘들다는 그 마스크. 뉴욕 사는 아내도 구하지 못한 마스크를 미국 반대편 태평양 연안에서 얻었다.
제우스 형님은 근처 한식당에 가서 음식을 투고해오겠다고 하셨다. 얼마 후에 오셨는데 식당이 다 문을 닫고 한 곳만 열었다고 했다. 직원 휴식을 위한 야외 천막에서 둘이서 음식을 먹었다. 재선 형님은 몸이 안 좋다고 트럭에 남았다.
제우스 형님은 회사가 폐쇄돼 3주째 집에 계셨다. 9년 전 미국에 와서 혼자 지내시는데 생활이 단조롭다고 했다. 몇 년 후 은퇴하면 한국에 돌아갈 계획이라 하셨다. 우리는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내가 운전해 I-15 도로를 타고 왔던 길로 달렸다. 나는 피곤해 사막 어딘가의 갓길에 트럭을 세웠다. 재선 형님도 상태가 안 좋았다. 피로가 누적된 모양이었다. 자고 가기로 했다. 시간은 충분하다. 팀으로 밤낮없이 달릴 수 있으니 솔로로 뛸 때보다 계산이 덜 복잡하다. 그냥 가면 된다.
새벽 서너 시경 재선 형님이 트럭을 출발시켰다. 나는 계속 잤다. 아침 7시경 눈을 뜨니 라스베이거스를 지나고 있었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거대한 도시가 멈췄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미국 전역이 비슷하다. LA 인근에서도 차량정체를 겪지 않았다. 그 악명 높은 도로에서 말이다. 역설적이지만 트럭커에게는 운전하기 좋은 환경이다. 트럭 교통사고 숫자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프라임 사무실 직원 중에서는 3명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트럭 드라이버 중에서는 감염자가 없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위해 사막의 한적한 트럭스탑에 들렀다. 8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옆에 주차한 밴으로 걸어왔다. 가까이 오더니 할아버지가 마스크를 꺼내썼다. 실내에서도 끼지 않던 마스크를 왜 차에 와서 쓰지? 할아버지가 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할머니가 똑딱이 디카로 촬영했다. 다음엔 서로 바꿔서 촬영했다. 눈치를 보니 사진을 찍어줬으면 하는 것 같아서 내려서 다가갔다. 사진 찍어주겠다고 하니 기뻐했다. 나온 지 십년은 넘은 것 같은 구형 디카다. 스마트폰 화질이 훨씬 좋을 것이다. 두 사람을 보니 폴더폰을 사용할 것 같다.
“어디까지 가세요?”
“저기 안쪽 계곡으로 가요. 그쪽은 어디로 가슈?”
“저는 솔트레이크시티로 갑니다.”
“아, 그래요? 거의 다 왔네.”
“하하하, 그렇죠.”
할머니는 유머 감각까지 갖췄다. 여기서 솔트레이크시티는 400마일(640km)이다. 아니면 그 정도 거리는 우스운 대륙의 기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