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학생을 가르쳐보니

세대차가 가장 컸다

by Hermit Trucker













아칸소 남산(South Mountain) 고개 전망대 부근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 트럭을 세웠다. 남은 운전 시간은 5분이었다. 아까 닭고기 공장에서 화물을 싣고 나온 후에 내가 좁은 산길로 수백 마일 더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운전 시간은 두 시간도 남지 않았다. 당연히 고속도로로 곧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미리 경로를 확인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 트럭 운전 4년차인데 아직도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하다니. 냄새나는 닭고기 공장에 더 있기도 싫었고, 거기서 10시간 휴식을 위한 주차를 허용할 지도 미지수였다.


아칸소는 중남부에 위치한 주다. 클린턴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 출신이다. 의외로 아칸소는 넓은 산악 지역을 품고 있다. 산세가 마치 한국같다. 그래서 마치 강원도 어디쯤 달리는 느낌이다. 아칸소의 주요 농산물 중에 쌀도 있다. 정서적으로 한국인에게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강원도 오지 같은 이곳은 전화 신호 조차 뜨지 않았다. 갓길 조차 없는 산길을 달리며,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10분 내에 트럭 주차가 가능하고 인터넷도 잘 터지는 공간이 나올 것이다.’ 가끔 사용하는 확언 기술이다. 그리고 고개 정상에 도착하자 트럭 몇 대 세울 공간이 나타났다.


두 주 넘게 혼자 운전 중이다. 네번째 학생이 PSD과정을 마치고 CDL 면허를 따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저께 면허를 땄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 어딘가에서 그를 태울 일이 남았다. 아마도 솔트레이크시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워싱턴주로 가고 있다. 약 50마일을 추가하면 솔트레이크시티 터미널에 들를 수 있다.

작년 8월 Y집사님을 시작으로 트레이너 일을 시작한 이후 두 명의 학생을 더 가르쳤다. 모두 20대 젊은이다. 두 번째 학생은 29살의 흑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의사가 되기 위해 박사후 과정을 밟는 중이었다. 전화 통화를 했을 때 흑인 액센트가 없었고, 집이 메인주였기에 백인일 것이라 생각했다. 며칠 후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굳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는 두 중년 여성을 봤을 때 좀 까탈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뒤이어 뒷좌석에서 덩치는 나만한 흑인 소년이 내리는 게 아닌가? 내가 태워야 할 학생 J였다. 이게 뭐지? 나중에 그녀는 자신의 고향은 테네시고 백인 가정에 입양됐다고 했다. 내가 학생으로 짐작했던 백인 여성은 마흔살의 의붓 언니였다. 다른 한 명은 양모였다. J는 대학 졸업 후 뉴욕 퀸즈 병원에서 일하다, 의사가 되려고 교육과정을 밟았다. 트럭 운전은 학비 마련을 위해서란다.


J는 무척 영리하고 눈치가 빨랐다. 실전 트럭 운전은 처음이지만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하나를 가르치면 몇 개를 알았다. 운전 스타일도 나와 비슷해 마음에 들었다. 체력도 좋아서 장시간 운전도 문제 없었다. 첫날부터 나는 편히 잠잘 수 있었다. 복덩이가 들어왔다 생각했다.


그런데 엿새째 되는 날 J가 사고를 냈다. 캘리포니아 사막 고속도로를 한밤 중에 달리다 갓길에 서 있던 트럭을 받았다. 그 트럭은 고장으로 갓길에 주차한 상태로 견인 트럭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J는 이미 운전 교대시간이 지났지만 나를 깨우지 않고 달리다 사고를 냈다. 우측 사이드 미러가 부서지고 차체 옆면도 찌그러졌다. 경찰을 불러 사고 수습을 하고 나는 찌그러진 트럭을 몰고 솔트레이크시티 터미널로 갔다. 다행히 사이드미러 재고가 있었다. 바디 수리는 나중 일이고 지금은 배달이 급했다.


학생이 낸 사고라도 책임은 트레이너가 진다. 보험이 있으니 수리비는 디덕터블만 내면 된다. 문제는 열흘이 넘는 수리 기간 동안 일을 못해도 트럭 페이먼트는 고스란히 청구된다. 심지어 그 기간 중 학생의 급여도 트레이너의 부담이다.


사고로 J의 트레이닝 기간이 늘어났다. 거기다 J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돼 나에게 전염시켰다.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는 J와 트럭에서 며칠을 보내면서도 나는 괜찮았다. 그러나 J를 솔트레이크시티의 호텔에 내려주고 뉴욕 집에 홈타임 온 이후 나는 열흘 넘게 앓아 누었다. 그동안에도 트럭 페이먼트는 빠져나가 나는 마이너스 급여 명세서를 받았다. 기회 비용까지 따지면 천만 원이 넘는 손실이다.


더구나 J는 추수감사절 때 그녀의 의사를 물어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줘 일주일 휴가를 줬다. 그런데 집에 간 것은 자신의 의사가 아니었다고 회사에 거짓말을 해서 급여를 챙겼다. 아마 그녀는 자신이 받는 급여를 회사에서 내게 청구하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나는 플릿매니저에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내게 묻지도 않고 일을 그렇게 처리하다니. 이 녀석 일 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


게다가 사고 이후 J는 의욕을 잃었는지, 처음처럼 열의를 갖고 배우려는 태도가 옅어졌다. 나도 그녀가 더이상 달갑지 않았고 어서 수련이 끝나기를 바랬다. 이렇듯 두번째 학생인 J는 내게 금전적 손해를 남기고 떠나갔다. 찌그러진 차체는 아직도 그대로다. 볼 때마다 속상하다. 수리 일정을 잡기도 어려워 이번 여름 휴가 기간을 이용할까 생각 중이다.


세번 째 학생인 S는 아이티 출신의 27세 흑인 남성이었다. 그는 다른 트레이너와 수련 중 절반 정도를 마치고 내게 다시 배정됐다. 트레이너와 불화로 잘린 것 같았다. 마이애미가 집인 그는 아이티에 아내와 9개월된 딸이 있었다. 가족과 매일 화상통화를 했다. 아직 실제로 딸을 만나지는 못했다고 했다. S는 내 기준으로는 무척 게으르고 일을 배우려는 태도가 전무했다. J처럼 내게 뭔가를 묻거나 후진 교육을 요청하는 일도 없었다. 그는 내가 시키지 않으면 손도 깜짝하지 않았다. 늘 침대에서 자거나 조수석에서 누군가와 통화했다. 나는 일찌감치 기대를 접고 그가 사고만 내지 않기를 바랐다. 그 바람대로 그는 사고는 내지 않고 떠났다. 플릿매니저 얘기로는 약 500마일 가량 그의 수련 거리가 남았다는데도, S는 자신의 계산으로는 수련 거리를 넘겼다며 터미널에서 떠났다. 더이상 늘어지는 수련을 기다릴 수 없고, 가족을 만나기 위해 아이티로 가겠다며 트럭에서 내렸다.


네번 째 학생 예정자는 41살의 한인 M이다. 다른 프라임 한인 드라이버의 소개로 알게됐다. 지난달에 PSD과정 중인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만나기도 했다. Y집사님 이후로 가급적 지인은 교육하지 않으려 했는데 M은 지인은 아니니 문제 없을 것 같다. 타민족 학생과 다니다보니 문화와 식생활이 달라 불편했다. 더구나 두세 번째 학생들은 20대다 보니 민족차이, 세대차이, 성별차 등 메우기 힘든 간극이 존재했다. 세대차가 가장 컸고 성별차는 작은 문제였다.


다섯 번째 학생 예정자도 한인이다. 대학선배이기도 한 C화백께서 내게 교육을 부탁했다. 2년 정도 미국 전역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겠다는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위해 트럭 운전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지인은 교육하지 않는다는 내 방침이지만 예전에 약속한 바도 있어 수락했다. Y집사님 때는 나도 처음이라 경험이 부족했지만 이제는 나도 성장했고 요령도 늘어 괜찮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의 평생의 꿈을 이루는데 기꺼이 도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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