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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Feb 02. 2023

부끄럼 10개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둔 엄마의 일기

(ft. 수줍음 많은 아이 육아)

17년 12월생, 수줍음이 정말 많은 우리 딸.

친구들과 말하는 게 너무 부끄럽다며

어린이집에서 친구들 갖고 노는 장난감이 재밌어 보였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재미없는 장난감을 혼자 꺼내 놀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혼자 노는 게 너무 심심한데, 계속 혼자 놀게 돼서 힘들다고 한다. 

"같이 놀자" 하는 것도, 친구와 대화를 이어나가야 되는 것도 다 알고 있지만 

부끄러워서 하기 힘들다는 딸을 보며, 

오늘도 어린이집에서 그 긴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버텨냈을까 마음이 아렸다.  

몇 년째 이 이야길 듣는 엄마 마음이야 말해 무엇할까.

분명 아이는 1년 전보다 지금, 한 달 전보다 지금 더 많이 자라난 건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에선 내가 예상하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천천히 자라는 아이에게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계속 쳇바퀴를 도는 느낌이고, 이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래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듣고 또 들었다. 

이 또한 너의 모습이니까, 

평가하고 판단하거나, 지나치게 짠해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말자고 의지적으로 생각했다. 

부끄러운 자신이 싫다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행복아, 태어날 때 부끄러움 한 개를 갖고 태어난 친구도 있지만, 부끄러움 열 개를 갖고 태어난 친구도 있다?"라고 했다. 

왜?라고 묻는다. 

"얼굴이 다 다르게 태어났듯이,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야. 그래서 부끄러운 건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야" 

자긴 10개를 타고난 친구란다. 


"그런데 부끄러움 10개를 갖고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것도 있지만, 좋은 것도 있어" 

좋은 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엄마가 찾아볼까? 음.. 행복이는 부끄러움이 10개라서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아?" 

부끄러운 거랑 말 잘 들어주는 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는다. 

"행복이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네 이야기를 계속하기보다는,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잖아"

처음엔 부끄러워서 좋은 게 없다던 아이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진짜 자긴 친구들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잘 도와주고, 잘 나눠줘서 어떤 선생님이 자기 보고 천사라고 했다면서 웃는다.

6살 아이가 배시시 웃으면서 "내가 부끄러운 게 잘못한 건 아니네~"라고 한다. 

"어? 얘 이렇게도 말할 수 있었어?" 생각하며 나도 같이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기가 친구와 이야기하고 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건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내 의견을 물어보면서 3가지를 스스로 정했다. 

1) 친구들이 놀고 있을 때, 같이 놀자고는 하지 못해도 옆에 가서 웃으면서 보고 있는다.

2) 손을 잡거나, 같이 크게 웃는다거나 하는 모습으로 "같이 놀자"라고는 하지 못해도 놀이에 참여해 보려고 한다.

3) 티니핑 피규어를 들고 가서, 손으로 움직이면서 놀이에 참여해 본다. 

한 번 엄마랑 연습하고, 어린이집 가서 해보겠다고 한다.  




그냥 아기 같던 너였는데 신기하고 대견했다.

무언갈 해주려고 하고, 고치려 하기보단

그냥 네 모습을 담아내주고,

담담히 인정하고 공감해 주고,

괜찮은 모습을 또 비춰주고 격려하니 

너는 거기서 성장해 보는구나. 적어도 멈춰있지 않구나.





엄마의 하루도 힘에 부칠 때가 많은데,

친구들 중에서도 더 작고 어린 너의 하루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자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좌절 없는 성장이 어디 있을까. 


네가 커갈수록 마주하는 어려움을 하나하나 대신 해결해 주거나, 지켜주거나, 많은 도움을 주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집이라는 공간이, 엄마라는 존재가

너에게 있어 "나의 어떠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라는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너는 너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냥 너라서 사랑하는 거니까.



하지만 다시 육아는 현실. 

나와 수도 없이 연습을 하고 갔지만, 오늘도 결국 하지 못했다는 아이는 약간 풀이 죽어 왔다. 

나도 마음이 약간 낙심되고 슬펐다.


자, 내 마음부터 지키자. 

한 번에 성공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작년엔 인사도 아예 하지 못했던 아이가 이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가만히 혼자만 놀았던 아이가 이제 같이 놀고 싶어서 노력해 보려고 하고, 

자기 스스로 계획을 짜보고 노력을 해보지 않는가. 


괜찮다며 지금 이 과정을 잘 버텨내 보자고, 내 마음을 먼저 으쌰 으쌰하고 아이의 마음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다가 오늘 영유아 검진을 하러 갔는데, 거기서 예상치 못하게 엄청난 위로를 받고 왔다. 

각종 발달 영역에서 당연히 "사회성" 영역에서 아주 낮은 점수를 받은 우리 딸을 보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어머니 아시죠? 초등학교 전의 사회성은 엄마, 아빠, 아이와의 관계예요. 이 관계가 튼튼하고 신뢰로우면 되는 거예요. 그게 이 시기의 사회성이에요." 

"아이가 놀이터에 가서 친구들을 만났다고 해봅시다. 어떤 친구는 무리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재밌게 놀고 놀 거예요. 그런데 어떤 친구는 엄마 옆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지요. 그럼 쟤가 사회성이 좋고, 얜 사회성이 안 좋은 걸까요? 아니에요. 그냥 타고난 모습이 다른 거예요." 

"그러니 어머니 딸, 정말 잘 크고 있습니다. 그냥 이 검사가 너무 단면만을 보는 거예요. 사회성 좋아요! 얘는 얘 모습대로 잘 커갈 거예요. 그러니 지금처럼 잘 키우세요! 혹시라도 주변에서 뭐라 하면 우리 애 본성대로 잘 키우고 있어요!라고 한방 먹이세요!" 

선생님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머리로 알고 있지만, 누군가가 확신에 차서 이렇게까지 말해주니 안심이 되었다. 

나 역시도 흔들리는 엄마라

위로와 확신이 필요한 내게 선물 같은 말을 전해준 선생님이 참 고마웠다. 

그래 행복아, 

너는 너만의 색과 결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테니,

엄만 그저 옆에서 함께 걷고, 기도하고, 응원해 줄게 

너의 속도대로 너의 때에, 

네가 타고나고 가진 10개의 부끄럼도 잘 조절해 볼 날도 올 거라고 생각해. 

엄마가 너를 보니까 알겠거든, 너는 분명 힘이 있고 할 수 있는 아이야. 

그러니 엄마는 오늘처럼 엄마 마음 잘 지키고 있을게.

사랑하는 내 딸,  언제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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