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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Apr 11. 2022

반갑다, 열등감

(ft. 알프레드 아들러 개인 심리학)

인간이란 존재가 된다는 건 열등감을 소유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끝없이 노력합니다.  

-알프레드 아들러-



한 아이가 세 살이었을 때 같은 침대를 사용하던 형이 죽었다. 이 아이 역시 건강하지 못했다. 성장하는 과정 내내 사고와 질병에 시달렸는데, 두 번이나 차에 치였고, 폐렴을 앓았고, 뼈가 약해 사지에 통증이 있었으며, 시력도 나빠 고통을 당했다. 유독 병약하고 예민했던 이 아이는 엄마에 의해 응석받이로 자랐지만, 남동생이 태어나고는 그 사랑마저 빼앗겼다.



이 아이는 어떻게 자랐을까.......?


이 아이는 커서 프로이트, 칼 융과 함께 "현대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바로 "알프레드 아들러"다. 자신의 병약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열등했던 경험, 엄마에게 받은 상처, 소외되고 힘들었던 기억들을 재료 삼아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이끌어낸 아들러.


열등감을 재정의함으로써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키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용기와 의지를 불러일으킨 아들러,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모든 사람은 상황과 관계없이 열등감을 경험하며, 열등감은 나약하거나 이상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창조성의 원천이다.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며, 결국 열등감을 극복해나가면서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열등감이 있다.



아들러처럼 "병약한 신체"가 열등감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본인이 느끼기에 못생긴 얼굴, 뚱뚱한 몸, 작은 키와 같은 "외모"

누군가에겐 늘 소외됨을 느껴왔던 "인간관계"가,

누군가에겐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는 "가족"이,

누군가에겐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에 부딪혔던 "학습 능력"이,  

누군가에겐 늘 배고프고 지독히도 가난했기에 "돈"이..



괜찮다. 열등감은 나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자체로 엄청 위로가 되지 않는가..?)

저마다의 삶의 모양 속에 짙게 얼룩진 결핍은 열등감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 대단한 심리학자인 아들러의 엄마도 완벽하지 못했으며, 적절하지 못했다. 아들러 역시 어릴 때부터 많이 아팠으며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프레드 아들러가 되지 않았나.


그러니 내가 내 열등감을 좀 마주하더라도, 아니 그보다 더 내 아이의 열등감을 만나더라도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고통에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반가워해도 된다. 열등감은 나를, 그리고 아이를 반드시 성장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잘 극복해 낸다면 말이다.






열등감은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열등감을 없애기 위해서 집중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열등감은 없어지지 않고 강화될 것이다.

수치스러워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에너지를 쓸 것이며,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쓰는 에너지보다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방어적이고 이기적인 삶의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아들러는 이것을 병적 열등감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등감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하나 열등감 자체는 성장에 대한 동기를 유발하지 않는다. 열등감은 개인의 재능과 용기, 사회적 관심과 연결될 때 극복해 나가며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재능" "용기" "사회적 관심"


누구나 "재능"은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 재능을 기꺼이 찾고, 나누기 위해서는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올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나와 우리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형태의 어떠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며, 공동체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심은 개인의 심리적 건강을 측정하는 척도이다. 아들러는 우리의 행복과 성공은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사회적 관심은 공동체 내에서의 긍정적인 상호작용과 소속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눔과 상호 존중을 통해 사회적 관심을 표현하며, 자신의 삶의 유용한 면을 발달시킨다. 우월성 추구라고도 불리는 이 과정이 사회적 관심과 함께 긍정적으로 발달된다면, 자연스럽게 열등감과 소외감은 감소된다. (물론, 지배적, 획득적, 회피적인 부정적 경향의 우월성 추구도 있다. 이 경우는... 열등감이 더 커진다.. )


아들러는 부모의 양육태도는 사회적 관심의 발달을 촉진할 수도 있는데, 부모는 그 무엇보다도 부모 자녀 관계 속의 지지와 격려를 통해 아이의 사회적 관심을 길러주며, 타인을 배려하는 적응적인 행동을 알려주고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형태가 아닌 "우리"와 "사회"를 위한 이타적인 삶의 태도를 통해 아이는 열등감을 극복하며, 건강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주변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알프레드 아들러






열등감을 마주하는 태도: 반갑다, 열등감  



나 역시 열등감이 있다.

외모, 성격, 기질, 가족 등등..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열등감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

 https://brunch.co.kr/@jesuslovoo7/17


그중에서도 유독 "감정에 민감하고 예민한 나의 기질"은 나를 몹시도 힘들게 했다.

감정 기복이 심했으며, 정서적으로 쉽게 지쳤다. 다른 사람의 이면의 의도가 읽혀서 괴로웠다. 타인의 감정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내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하기보다는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내가 괜히 초라해 보이고, 부러웠다.


다행인 건.. 내가 싫어하던 내 모습, 이런 내 열등감은 상담이라는 좋은 도구를 만나 잘 다듬어졌으며, 지금 내게 상담자로서 깊은 통찰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는 점이다.


내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릴 뿐만 아니라 내담자의 감정과 생각에도 민감할 수 있다. 내담자의 감정과 생각에 섬세하게 조율할 수 있으며, 내담자를 경청하고 존중할 수 있다.


(상담에서만 그럴까, 나는 대체로 관계를 잘 맺는 편이다. 내 수줍음, 예민성, 민감함, 우유부단함은 관계 속 나 스스로를 위축되게 하기도 했지만,  사회적 관심과 연결되어 상대를 배려하며 존중할 수 있는 모습으로 성장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상담을 통해 내담자의 열등감이 드러나 마주하게 될 때면, 속으로 "올레"를 외친다. 자 이제 시작이니까. 성장을 위한 여정이!


    


우리 아이에게도 마찬가지겠지?

아이에게서 어떤 열등감을 발견하든.. 아이가 어떤 열등감을 표현해 내든.. 올레! 하고 반가워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엄마면 좋겠다.


오히려 열등감이 있어, 이 아이는 자기 됨을 개발하고자 부단히도 애를 쓸 것이며, 그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해 나갈 것임을 믿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모든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다스려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 알프레드 아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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