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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Sep 23. 2022

엄마를 짜증 나게 하는 것들

아이가 미운 이유

나는 엄마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엄마는 어떤 순간에도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거라는 환상.

엄마는 아무리 힘들어도 사실 별로 힘들지 않은 슈퍼우먼일 거라는 환상.


근데 웬걸..

엄마가 돼보니 똑같다.

애가 울고, 떼쓰고, 밥 안 먹고, 안 자고, 싸우고... 여러 일상에서 엄마도 힘들면 진짜 말도 못 하게 힘들고, 화나고, 짜증 나고, 서럽다.


엄마가 되고 엄청난 통찰을 했는데....

사실 엄마도 엄청 화나고.. 짜증 난다는 사실이다.





근데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아이를 향해 엄청난 짜증이 치솟아 오를 때

그 감정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건 참 쉽지 않다.

상당히 불편하다..


"야.. 엄만데.. 이걸로 짜증이 나..? 이것도 못 견뎌..?"라며 누가 말하는 거 같다.

누가 내 마음을 볼까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아닌 척, 좋은 엄마인척 해봤더니.. 더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상관계 이론을 공부하면서, 어느 학자가 "엄마가 아이를 미워하는 이유"로 논문까지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그중 몇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개인적 생활을 방해하고, 뭔가에 몰두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2) 엄마를 쓰레기나 무보수 하인 내지 노예로 취급한다.

  (3) 엄마의 증오를 용납하지 못한다.

  (4) 의심이 많고, 엄마의 자신감을 무너뜨린다. (출처 : 충분히 좋은 엄마 중)


그 사실에 빵 터졌지만, 한 편으로는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엄마가 짜증 나는 건 당연해~", "심지어 아이가 미워지는 순간이 있는 것도 당연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으니까 연구도 했겠지.

이 학자가 영국에서 태어나 활동했으니, 국적 막론 엄마의 마음은 비슷비슷 한가보다 ㅎㅎ



그때부터 나도 아이에게 말도 못 하게 짜증이 밀려올 때,

머릿속으로 짜증의 목록을 만들어 본다.


-아침잠이 많은 날 굳이 흔들어 대며 깨워서 화가 났다.

-등원 시간이 다가오는데 옷 입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장난치는 아이들에게 화가 났다.

-낮잠을 자야 되는데 자꾸 고성을 지르는 복댕이가 얄미웠다.

-할 것도 많은 저녁시간에 자꾸 "엄마 놀자"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행복이가 귀찮고 성가셨다.


그중에서도 제일 열받았던 건...

자기 전 침대에서 아빠도 있는데 굳이 나를 향해서만 온몸을 던져 내려찍듯 안아대는 복댕이는..

처음엔 내 눈을 머리로 세게 박더니.. 그다음엔 어제 동일하게 터뜨린 내 입술을 박아서 결국엔 피를 봤다.

-내 아들이지만 날 아프게 하고 상처 입히니까 너무 화가 났다.






목록을 만들 땐 어딘가 좀 찝찝한데, 하다 보니 시원하다.

실컷 짜증 목록을 만들어서 털어내고 나니까, 짜증 뒤에 숨어있던 사랑이 퐁 하고 제 자리를 찾는다.


-그래, 좀 피를 보게 했으면 어때, 저렇게 오동통하고 귀엽잖아..

-그래, 좀 성가시고 귀찮으면 어때, 자기 전에 엄마 사랑해를 10번도 넘게 외쳐줬잖아..

-그래, 좀 피곤하면 어때, 엄마 주변에 빙빙 도는 게 좀 사랑스럽지 않나..?


아이러니하게도 짜증과 미움 분노를 인정하니, 귀여움과 사랑, 고마움이 찾아온다.

장난꾸러기 가득한 아이의 익살스러운 눈빛과 표정이 그저 웃기고 사랑스럽다.

오늘은 또 어떤 사고를 칠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참 모순적이고 미묘한 경험들을 애 키우면서 많이 한다.

이 속에서 배워가는 인생의 맛이 나름 재밌다.






-아이를 돌보며 짜증이 치솟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이가 너무 미워질 때, 아이가 미운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겠어요?



엄마가 되는 일이 왜 짜증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을 텐데요.

고통스러운 시기에 그 고통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이는 엄마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억눌린 분노는 그 분노 뒤에 존재하는 사랑을 손상시킵니다.
우리가 욕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순간에 분노를 말로 모아 표현하고 나면,
하던 일을 새롭게 다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엄마들이 자신의 쓰라린 분노에 가 닿을 수 있을 때,
위로받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뭐, 대부분의 엄마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서
저는 엄마가 아이를 미워하는 수많은 이유의 목록을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엄마들,
그러면서도 사랑 이외의 다른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엄마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은 정말로 짜증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너무 어릴 때부터 단호하게 통제하는 것은
엄마들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계속 골칫거리가 되고
엄마들은 그 희생자가 될 기회가 생겼을 때
 계속 기뻐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충분히 좋은 엄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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