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희망의 노래 한 소절
희망의 노래 한 소절
모든 것들이 나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저 비치는 햇빛도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비춰주는 듯했고, 항상 그 자리에 있던 민들레꽃도 나를 향해 응원의 손짓을 하는 듯했다. 정말 모든 것이 나를 향해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아직 실직자라는 생각이 들게 될 때마다 정신을 번쩍 들게 되었다.
첫 번째 노래
CCM Jworship “꽃들도”
이곳에 생명샘 솟아나
눈물 골짝 지나갈 때에
머잖아 열매 맺히고
웃음소리 넘쳐나리라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울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아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은혜의 주
그날에 하늘이 열리고
모든 이가 보게 되리라
마침내 꽃들이 피고
영광의 주가 오시리라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울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아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은혜의 주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울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아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예수
평소 슬프게만 들렸던 노래는 때론 나를 위로해 주는 노래가 된 듯했다. 비록 아직까지 실직 생활을 이어가지만 가사 가사를 반복적으로 불러가면서 내 마음에 가득한 어두움을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는 듯했다.
앞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마도 내 주변에는 평소에 보지도, 듣지도 못한 희망의 신호와 메시지가 가득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문 듯 들었다.
드디어 어두움이 그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늘 있었던 희망의 꽃과 희망의 소리를 미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살지 않았나 싶다.
아직까지 실직생활을 이어가지만 해 질 녘 끝자락에서 다시 한번 일어 셔야겠다는 희망을 다시 보게 된다. 늘 좌절과 낙심 속에 살았던 내가 이제는 나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살아야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두 번째 노래
널 처음 사진으로 본 그날 구십 구 년 일월 삽실 일일
그날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나 하나만 기다려준 너를
오늘도 습관 같은 내 전화 따스히 받아주는 너에게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너를
너무 사랑해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 시간에 희미해지는
사랑에 그대가 흔들린대도
그땐 내가 잡을게요 그대처럼
너무 편한 사이가 싫어서 너무 오랜 사랑 힘들어서
아픈 눈물 흘리는 널 돌아선 못된 내 마음도 기다려준 너를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 시간 속에 희미해지는
사랑에 그대가 흔들린대도 그땐 내가 잡을게요 그대처럼
얼마나 힘들었을까 못난 내 눈물도 따스히 감싸준 너를 oh oh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 시간 속에 희미해지는
사랑에 그대가 흔들린대도 내가 잡을게요 아무 걱정마요
내 손을 잡아요 처음 그날처럼 우리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슬기로운 의사생활 OST)/전미도)
흘러나오는 노래가 나를 위로해주는 듯했다. “힘들어서 아픈 눈물 흘리는 널”이라는 가사가 나를 향해 이야기하는 듯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이 울컥했다.
“그대가 흔들린대도 그땐 내가 잡을게요 그대처럼 얼마나 힘들었을까 못난 내 눈물도 따스히 감싸준 너” 아내와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고 감싸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혼자가 아닌 것 같았고 나를 위로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내가 잡을게요 아무 걱정마요” 가족을 위해서라도 조금이나마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슬기로운 의사생활 OST)라는 노래는 연인 간의 노래이다. 벌써 결혼을 하고 아이들까지 있는 나에게는 하나도 적용되고 이해되지 않는 가사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가사가 나의 마음을 울렸다. 어떻게 보면 힘들지만 위로를 받고 싶은 나의 솔직한 마음인 것 같다.
엄마의 목소리
나는 참 무뚝뚝 아들 중에 하나이다. 결혼 전만 해도 부모님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철부지 아들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아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바꿔가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여전히 부모님 앞에서는 부족한 아들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나름 예전과 다른 아들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아들보다 부족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뜬금없이 전화를 드린다. 어머니는 항상 물어보신다. “왜 전화했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응 엄마 보고 싶어서?” (어머니 왈) 참 뜬끔없어.....
어느 때는 점심이든(회사가 부모님 댁 근처에 있어서), 저녁이든 밥 먹고 싶다고 갑자기 연락을 드려 식사를 하곤 하였다. 솔직히 식사를 했던 것은 다른 이유보다는 식사 핑계로 부모님 얼굴 한번 보는 것뿐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평소 나의 모습과 다르게 수다쟁이가 되곤 한다. 회사에서 일어난 일들.. 개구쟁이 두 아들 이야기... 집에서 일어난 일 들... 아들이 요즘 고민하는 일들.... 등등...
그런데 그랬던 막내아들이 몇 달간 전화조차 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솔직히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힘이 많이 들어서 누구를 찾거나 만나거나 하는 것들이 너무 싫어서 더더욱 남들을 피해 오로지 숨고자 만 하였다. 더더욱 나는 부모님과의 연락도 끊을 정도였다.
너무너무 힘이 들고 죽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 때쯤 그 자리에서 묵묵히 계신 어머니가 문 뜻 생각이 들었다. 너무 힘들어 어머니에게 한동안 연락을 드리지 않았었다. 늘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오랫동안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같아 일부러라도 전화를 드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지금의 상황을 부모님께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조금이나마 염려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서 평소와 다르게 연락도 하지 않았지만 부모님 마음속에 막내아들이 남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뒤지지 않게 살았고 조금이나마 잘 나갔던 지난 아들의 모습을 부모님 마음속에서 지워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일 수도 있다.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게 되고 좀 더 높은 자리에서 일을 하게 된 아들의 모습을 참 기뻐하셨다. 너무 기뻐하신 나머지 나도 모르게 사무실로 축하 꽃을 보내시면서 나를 응원해주셨던 어머니셨다.
갑자기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게 돼서 너무 마음이 아팠었다. 아내에게 조차도 전화를 줄 수 없었다. 아내조차 실망과 걱정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누구한테는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떠한 대답을 원하는 것보다 그저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였다.
전화를 받으신 어머니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울컥했다. 울컥한 것 이상 눈물을 났고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어머니는 울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눈치채셨는지 어머니조차도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면서 함께 울고 계신 어머니의 작은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직장을 읽고 오랫동안 실직자로 살아가는 아들, 막내아들이지만 어느 자식들보다 못나지 않고 평생 마음고생시키지 않았던 아들이었는데 이만 저만 고생하는 막내아들의 목소리가 어머니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해 드린 듯했다.
“항상 너는 잘했던 아이 었는데, 이렇게 힘들 줄 몰랐구나!?”
어머니는 지속되어가는 아들의 실업자 생활이 많이 속상해하시는 듯했다. 늘 평탄하게 어려움 없이 살았던 아들이라고 믿으셨던 어머니셨는데 이렇게 오래 힘들게 살아가는 막내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이 안쓰러워하셨다. 사실 나는 어머니의 기대만큼 그렇게 평탄하게 살지 않았었다.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살고자 발버둥 치기 일수였다. 그저 바라고 바랬지만 잘 안 되는 경우도 제법 많았었고 결국 마지막 열차를 타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어머니도 나와 같이 이런 어려움이 있으셨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너 때문에 버티고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하셨다.
어머니도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버티고 버텼으며 억울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 고비들을 가족 때문이라도 참고 견디셨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들 이렇게 살고 버티면서 살아왔는데..
어머니조차도 버티면서 힘든 고비들을 넘기셨고,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비록 어두운 광야 같은 길이라고 생각이 들지라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클지라도 어머니처럼 그렇게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또한 지금까지 기쁨을 드렸던 아들이었는데, 효도는 못 해 드리언정 실망은 끼쳐드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친누나를 통해 들은 이야기이다. 아들이 생각한 것보다 어머니가 많이 걱정을 하셨단다.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응원해주고 싶었는데 쉽게 전화를 하지 못하셨단다. 그리고 혼자서 끙끙거리실 때가 참 많았고 어머니가 생각할 만큼 힘들지 않았었는데 어머니는 아들의 어려움이 자기의 일처럼 여기셨는지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단다.
불타오르는 복수심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컸나 보다.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컸다.
그런데 마땅히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름 내가 잘 나가는 것이 그들을 향한 마지막 복수라고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래 당신네들의 선택이 잘 못한 거라고!”
아직도 실직생활을 하다 보니 더더욱 복수할 기회조차 점차 멀리 지는 듯했다. 나의 실직생활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비웃고 있을까라는 생각 들어서 그런지 복수를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보다 마음 깊이 새겨놓으며 그들을 향하여 칼을 갈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속 시원한 복수”
지난 일들 모두 과거이고 지나간 일일 텐데 나는 과거의 모든 것들을, 상처 받은 과거의 일들을 굳이 꺼내 날카로운 칼을 들고 도려내고 살을 붙이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하곤 하였다.
많은 실직과 같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아직까지 변화되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고통받는 그들에게
“나도 그러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도 당신의 아픔을 공감하며, 당신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전하고 싶어 몇 달 전부터 실직의 모든 생활을 글로 담고 있었다.
실직의 생활을 글로 담으려다 보니 과거의 상처와 어려움을 나열할 수밖에 없어서 과거의 어려움 일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작성하다 보니 그때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었다. 작성하는 동안 신나고 행복하기보다는 그때 상황이 다시 생각나게 되었고 매우 마음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말이 이어지고, 조금 더 자세하게 작성하다 보니 기존 생각한 것보다 자세히 작성하여 남들이 보았을 때 누가 그런 잘못된 일들을 했는지 여러 부분에서 많은 힌트들을 남기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중에 책이 나왔을 때 독자들이 나를 응원해주고, 그들을 욕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는 잘못이 없고 그들이 오로지 잘못했다고 강조하는 듯한 이야기를 많이 작성한 것 같다.
내 글을 보던 한 분이 조심스럽게 글을 남겨주셨다.
작가님이 쓰신 책을 보고 이리저리 웹을 돌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블로그에 남기신 글을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실 느낌을 보지 말아야 할 개인의 비밀을 봐버린 듯 한 느낌도 들고 공 질감도 많이 느꼈어요 현장에서 수도 없이 목격했고 제 주변 분들도 비슷하게 당했던, 코로나 때문에 취업이 힘든 상황들 모두 이 분야에 있으면 당해야 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현재 관련한 분야에 있고 현장에 떠나 있습니다. 일과 사람들은 좋았지만 조직은 좋지 않았습니다. 댓글을 남기게 된 큰 이유는 지금의 글들이 특정 사람과 기관을 다 알 수 있게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약력을 통해서 말이죠... 이게 혹 나중에 법적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알 수 없게 수정하거나 다르게 바꾸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글을 남겨놓습니다.
한 번도 뵙지 못했던 한 분이 나를 염려하여 조심스럽게 글을 남겨주셨다. 나는 이분의 글을 보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글을 작성하면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내 안에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복수심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이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평소에 썼던 많은 글들을 갑자기 올려놓은 관계로 좀 더 디테일하게 신경을 못 쓴 것도 문제였겠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어떻게 하면 복수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그들을 향한 미움과 분노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였다.
그래서 찌꺼기 같은 분노와 미움을 하나하나씩 버리려고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그들을 미워하고 복수하는 것은 결국 한번 더 상처 받는 일이며, 예상치 못한 큰 어려움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을 향한 상처들을 표현하거나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그들의 판단과 평가는 그분에게 맞기고 나는 그들 때문에 만들어진 미움과 분노의 옷들을 하나하나씩 벗어 가면서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나의 행복을 다시 찾기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나기로 결심하였다.
평화롭게 평온대로 사는 것
나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낮추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고, 누릴 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김나영)
탄탄대로 걸었던 나였고 항상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갔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야 알게 된 것은 깊게 멍든 나의 마음과 지칠 대로 지친 내 마음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착각하며 살아온 것 같다.
스치면 바로 폭발하는 시한폭탄을 간직하며 살아왔었는데 그것이 나의 명예이고 자랑거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던 것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열심히 살던 어느 날 아내가 나한테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사회복지사가 아닌 것 같아. 장사하는 사람 같아!”
당시에는 그 말이 참 멋져 보였다. 왜냐하면 장사하는 사람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상품을 팔고 돈도 많이 버는 그런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은 나의 평생 사회복지사로서 일하고자 했던 다짐과 결심들이 점차 잊혀가는 것이었고 근본적인 본질 사회복지사로서의 사명을 잊은 체 엉뚱한 것에 집중하고 열심을 다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평소와 다른 모습에 어색하였는지 아님 안타까워 보였는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우려 섞인 이야기를 아내를 포함하여 많이 이야기하였던 것 같다.
너무 잘하고 있다고 있는데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름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지금에서야 생각하였을 때 나다운 모습이 아닌 나의 부족함과 열등감을 단단히 포장한 체 남들에게 멋진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서 속상해하며 분노를 제법 많이 했고 오로지 정상만 바라보며 멋진 성과만 내보려고 어떻게든 하고자 했던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잠시 쉬어서 생각했어야 했었는데, 아무도 상관하지 않고 있는데 정상이라고 착각한 그곳에서 혼자만 끙끙대며 살아왔던 나의 모습이 참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거리를 두어야 한다. 오로지 정상만 오르려는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 스스로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했을 때 허탈감보다 안정감과 행복이 찾아오는 듯했다.
날카로운 생각이 깨지고, 원망했던 나의 마음이 점차 내려놓아 질 때 이러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제법 행복한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알게 되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만, 인생에서 대단한 무엇인가를 이루어야만 꼭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만은 착각일 뿐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해 높은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순간순간마다 불행하다고 느꼈고 조금이나마 이루어낸 것들마저 깨어지고 부서졌을 때에는 나름 스스로 자책하며 좌절하고 불안해했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두려움 마음속에서 살아왔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서 나는 항상 큰 기대가 있는 아이였다. 때론 학교 다닐 때 학교 성적도 좋고, 상도 많이 받고, 임원 활동도 제법 많이 해서 그런지 부모님에게 있어 형 누나에 비해 사랑을 많이 받았었다. 당시에 나도 이 세상을 바꿀 멋진 사람, 돈 많이 버는 그런 사람이 될 줄 착각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대학교에 갈 때 처음으로 나의 인생의 첫 고비가 왔었다. 아직도 그 억울함이 컸는지 지금도 꿈에서 대학 수능시험을 볼 정도로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답답함이 몰려오는 듯하다.
학교에서 제법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래도 나는 수능시험을 잘 봐서 좋은 학교에 다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첫 번째 수능시험을 치러본 결과 정말 망했었다. 쫄딱 망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더더욱 재수생활을 해서 더 좋은 학교를 꿈꾸었지만 사실 수도권 학교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명문대학교는 아니었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야 했던 4학년 때인 것 같다. 대학교를 다닐 때는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생활하였고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누구와도 비교해 봐도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나는 졸업하고 5월 경에 대학교 동기보다 늦게 취업을 했고 당시에 나름 잘한다고 여겼던 내가 늦게 취업을 하게 되니 제법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었다.
어렵게 취업을 하게 된 나는 정말 밤낮 가리지 않고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했고 나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평가는 항상 좋았었다. 무엇보다 프로그램 기획 분야에 대해 남들보다 뛰어났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획 분야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공유하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쩌다 실업자가 되었다. 갑자기 실업자가 되다 보니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아서 그런지 상상하지 못한 많은 상처를 받으며 처절하게 살고 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나름 고비는 있었고 항상 그 고비를 잘 넘겨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고비와 어려움도 잘 넘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정말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다. 남들이 하지 않는 그 정상을 내가 먼저 밟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남들이 보이지 않았고 나 또한 생각하지 않은 채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이지 않았던 눈꺼풀을 씻어내 보니 이제야 나를 보게 되었고 일상의 모든 것이 감사했다.
감사를 발견한 순간 아직까지도 내 마음에 있는 기쁨을 느끼게 되었고 어렵고 힘든 이 시기에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뻤다.
어려운 일들이 몰아칠 때는 정신이 없었다. 남들은 그래도 감사해야 합니다 라고 이야기하였을 때에 어설픈 위로라고 치부했었는데 이제야 감사를 하게 되니 평생 느끼지 못한 감정과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할 뿐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날카로워진 내 마음과 생각들이 조금이나마 나아졌고 미래의 것들도 꼭 나쁘게만 보이는 것보다
“언제 가는 나도 일어설 수 있다!”라는 작은 용기도 생기게 되었다.
내 마음이 치유되고, 날카로운 마음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된 몸도 어느 세 치유된 기분이었다. 실제 나는 간수치가 높아서 꾸준히 약을 먹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러한 고생에서 벗어나 굳이 약을 먹지 않았음에도 간수치가 정상범위로 돌아왔다. 또한 간수치와 함께 날카로운 나의 삶도 정상범위로 돌아왔고 평상시보다 더 행복한 마음이 가득 한 채로 다시 살게 되었다.
한 달 생활비가 12만 원 정도인 어느 한 남자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행복이란, 매일 세끼 밥 먹고, 잘 수 있는 침대 하나 필요한 건 그게 다 아닌가요?” 그러면서도 “인생에서 가장 힘든 건 돈 버는 게 아니라 평화롭게 평온한 태도로 사는 것. 내 꿈은 행복한 보통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사후에 전 재산이니 8,100억 원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말한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사는 그는 바로 <영웅본색>의 주인공인 대스타 ‘주윤발“이다.
주윤발은 마음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벌써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비정상으로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이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마음이 참 평안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지옥 같은 삶이었는데 마음의 평화로 인하여 온 세상이 천국 같았다.
후회가 없다는 건 정말 재미없을 것이다.
때론 평탄한 것도 참 위험한 것 같다. 절대 내가 나쁘게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결국 나중에 다 폭발해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차량 운전을 하게 되면 아무런 방해 없이 줄곧 달리기만 하다 보니 잠을 오게 될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고속도로의 운전은 참 재미가 없다. 그런데 고속도로가 아닌 골목길에서 운전을 하게 되면 그만큼 운전의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운전 실력이 한층 더 느는 것처럼 운전이 재미있다.
우리 인생 속에서 후회할 일들, 어려움이 분명 있다. 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적게는 적게, 많게는 많게 그러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으니 곧 후회하기 마련이다. 내가 실직의 어려움이 생기게 될 때 지난 과거와 지금의 나를 후회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후회는 후회만 남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는 곧 돌아올 미래에 그리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없다. 점점 후회의 소용돌이에 빠질 뿐이다.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솔직히 나만 힘든 어려움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만약 우리의 인생 속에 후회와 같은 일들이 만약 없었다면 그렇게 밋밋한 인생이었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었을까?
후회는 참 쓴 것 맞다. 어려움은 삼키지도 못할 만큼 쓴 것 맞다.
그런데 그런 쓴 맛이 나를 좀 더 담백하게 하고 맛있게 한다면 비록 어려움이 많더라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요리를 자주 하게 되는데, 우리 집에 있는 여러 재료 중에 몇 가지 중요한 재료들이 있다. 이 재료는 어느 음식이든 꼭 들어가게 되고, 들어가는 횟수가 다른 재료에 비해 많이 들어간다.
그중에 하나가 마늘이며, 잘라낸 파이다. 또한 재료 중의 아주 기본이 될 수 있는 짭짤한 소금이다.
이와 같은 재료들의 특성이 무엇인가? 이런 재료들을 직접 먹으면, 생으로 먹으면 좀 씁쓸한 맛이 있어서 정말 맛이 없고 뱉어버리기 일쑤이다.
그런데 이런 재료들이 다른 것들과 합해지면 환상적으로 변화된다. 깊은 맛이라고 할까? 국물 맛이 끝내준다. 국물이 예상과 다르게 담백해지고 내 입맛에 쏙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재료들은 항상 집에 있으며, 떨어지지 않도록 종종 마트에 가서 구입해 온다.
이와 같이 비록 짭짤하고 쓴 맛을 내는 재료이지만 음식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우리가 경험하는 이 쓴 맛 같은 어려움이 나를 보다 담백하게 만들고 미래의 나의 인생의 맛있게 만들 것이다.
너무 어려움에만 깊이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그리고 용기 있게 다시 일어 서보자
“비록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아 보이지만 쓴 맛 나는 어려움이 나의 인생을 보다 보기 좋게 변화시켜줄 것이다!”
초심을 잃어 생긴 일들
어릴 적부터 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비록 수능 성적이 형편이 없어서 선생님의 길을 갈 수 없었지만 종종 교회에서나마 선생님으로 일(?) 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저 나의 것을 남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매우 좋았고 행복하였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들이 감사했고, 실수 없이 남들 앞에서 당당히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우연히 함께 일하는 회사 대표의 추천으로 인하여 소소하게 강의를 했었는데 6년 전부터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했던 것 같다.
특별히 강의에 대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강의를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참 행복해서 어렵게 만들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무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미처 잊어버린 선생님의 꿈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얼마나 설레고 기뻤던지 강의를 준비하면서 매우 신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또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당연히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기도 하고, 말하고자 내용들을 요약하여 원고까지 만들기도 했다.
녹음과 녹화를 통해 실제 강의를 하는 마음과 자세로 연습을 하였고 연습하는 과정 속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찾게 되면 가장 옳은 방법으로 수정하고 보완하기도 하였다.
강의를 하게 되면 장시간 서서 있기도 하였다. 허리디스크 수술 경력이 있는 나에게는 강의 시간 내내 너무 힘들었지만 강의 중에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저 강의가 끝나고 집에 갔을 때 갑자기 밀려오는 통증 때문에 한동안 고생도 많이 했었다. 목소리 쉬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런데 강의를 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고 좋았다.
“선생님 강의 정말 좋았습니다!”
“선생님의 열정에 감동을 받았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신없이 보내는 일상 가운데 나도 모르는 모습이 나타난 것 같다. 본 업무를 잊어버린 체 이것에만 집중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초심과 다른 마음으로 업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고 내 머리에는 강의만 생각하였지 내가 만나는 대상자들, 소외된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잊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 조용한 정착한 여석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랑과 교만’이었다. 좀 더 강의를 하려는 욕심 때문인지 어느 곳에든 자랑하기 바빴다. 입으로 자랑을 하지 않아도 풍겨오는 교만한 모습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이 제법 불편해하였다.
나를 비방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지금 잘못 가는 것은 아니냐며 진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사실 나는 그러한 이야기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날카로운 마음의 칼로 그런 사람들을 더더욱 비판하면서 도리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그들에게 실망만 할 뿐이었다.
사람 앞에서는 좋은 사람, 열정이 넘치는 사람,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비치길 원해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행동을 한 것 같다. 비록 평소 나와 다른 모습이라서 불편했지만 이렇게 살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는 나름 이유를 말하면서 나 또한 참 불편하게 살았다.
어쩌다 실직을 하게 되니 너무 앞서간 나의 모습을 이제야 보게 되었다. 나 때문에 멀리 떠난 그들과 처음 가졌던 초심을 잃은 나를 보면서 나는 뒤늦게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감사할 일인데, 내 주변에 참 소중한 사람들이었는데, 늘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살았어야 했는데 그저 지금의 상황을 뒤늦게 보게 되어 후회감이 심하게 밀려왔고 도리어 내가 참 부끄러웠다.
나의 본연의 업무를 다시 찾기로 했다. 지금 당장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취업을 하게 되었을 때 해야 할 들과, 그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확인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관련 자격증 공부도 하고, 관련 업무 지침 등의 내용 등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전공 분야 이외의 다양한 내용 등을 이해하고자 매일매일 독서로 부족함을 채워나갔다.
또한 매일매일 글을 써 가면서 좀 더 세련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성장하고자 했고, 공부했던 많은 내용들을 정리하여서 프로포절 작성법이라는 단행본을 발행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통해 상처 받는 그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사과를 할 수는 없었고 나중에라도 전과 같이 행동하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과 나 또한 그들로 인해 상처 받은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하나씩 용서를 하기로 다짐하였다.
‘그들도 그들 나름 사정과 이유가 있었겠지!’
‘그들도 그와 같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것뿐이었겠지!’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지속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보니 다른 새로운 길이 정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자신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 때문에 길을 잃었다. 길의 중심에 서서 보니 아무것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느 때는 원망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었다.
“왜 나한테 이러한 힘들 길을 허락하셨나요?”
그분은 절대 내 기도를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찾아가 기도를 해도 하나도 상황이 바뀌지가 않았다.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여 가게 되었다가 앞이 가로막혀 원망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분이 그 길을 잃게 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신은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류시화 시인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분은 나와 다르게 다른 길을 계획하고 계셨다. 기도할 때마다 알려주시고 했지만 그리고 많은 메시지로 신호를 보내고 계셨지만 막힌 길 때문에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나를 그저 안타깝게 여기고 계셨다.
그 길에서 벗어나야만 다른 길, 그분이 만든 다른 길을 갈 수 있는데 나는 막힌 길 중심에서 그저 힘들어했을 뿐이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나의 상황을 충분히 알고 계셨고 다른 길을 벌써부터 계획하고 계셨다. 그분은 하루빨리 보여 주고 싶었었는데 내가 보지 못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것에 그저 답답해하셨을 것 같다.
고통당하는 자녀의 모습을 보면서 내 일처럼 함께 고통스러워하시는 그분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되었다. 나를 돌이키려면 어쩔 수 없이 갈 길을 단단히 막고 되돌리게 만들어야 했던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혼자서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지난 과거의 나의 삶이 계속 생각이 났고, 지난 과거 생활 가운데 실수했던 모든 것들에 지속적으로 생각이 나면서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지난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인가 착각을 하며 지내온 듯하다. 나름 잘해왔다는 착각 말이다. 그러나 소소하게, 때론 주변 사람들에게 원치 않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만 너그럽게 이해할 뿐이었다. 지금에서야 그러한 생각들이 많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내 마음 한편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친구들이 생각이 많이 났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친하거나, 지금까지 연락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손으로 몇 명 꼽힐 정도로 정말 몇 명만 자주는 아니지만 연락하며 지낸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보다는 그 친구들이 먼저 연락을 하면서 내 안부를 물어볼 정도였다.
벌써부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락은 결혼 이후에 다 끊어졌고 대학교 친구 몇 명만 연락하며 지낸다. 나이는 동갑이 아니지만 대학교 졸업 동기라는 이유로 가끔 연락하고 지낼 뿐이다.
살기 바빠서 그랬다. 일하기 바빴고 아이 키우느냐 바빠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수많은 친구 중에 몇몇의 친구들이 생각이 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대학교 때 함께 동아리를 활동을 했던 정말 친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름 리더십이 있고 엄마와 같은 따뜻함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친구를 따를 지경이었다.
남자 친구들 만큼 참 좋았던 그 여자 친구(?)는 제법 나와 잘 맞았었다. 통화도 자주 하고, 학교 다니면서 적응 못했던 나를 옆에서 잘 도와주었던 친구였다. 비록 같은 과 친구는 아니었지만 내가 봐도 그 친구는 대단했다.
어느덧 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각자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교회의 전도사 일을 하다가 전혀 다른 길이었던 직장생활을 한참 열심히 하였을 때고 나는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예전처럼 연락을 하지는 못하지만 비슷한 지역에서 일을 한다는 이유로 퇴근길에 그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지라 식당에 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거기서 잘 마무리를 하고 평소와 다르게 직접 계산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때 나도 깜빡 카드를 가져오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 친구가 거액의 음식값을 계산하게 되었다.
“나중에 내가 밥 살게!”
그 이후로 그 친구와 연락이 끊겼다. 연락을 취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 친구는 결국 내 연락을 끝까지 받지 않았고 일하는 곳까지 가서 사과를 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그 친구는 나를 외면해버렸다.
갑자기 단절한 친구의 소식을 듣고 나 또한 화가 났고 섭섭했다.
정말 내가 밥을 사지 않아서 이렇게 단절했으면 지난 오랫동안의 우정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에 도리어 그 친구를 향한 섭섭한 생각이 컸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끔은 그 친구가 생각이 많이 난다. 그만큼 아쉽게 정리가 돼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아직도 생각나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후회스럽다. 당시에는 밥 한번 안 샀다고 단절까지 한 그 친구가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베풀고 살지 않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웠고 후회스러웠다. 기회가 되면 그 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싶지만 도저히 연락할 방법이 없다.
어느 한 친구는 나랑 비슷하게 생겼다. 키도 그렇게 빼빼 마른 것까지도 나와 비슷했다. 아마 그때 당시에 그 친구가 첫째였고 내가 둘째였고 또 다른 친구가 셋째였던 걸로 기억된다.
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던 나는 그 친구와 제법 많이 같이 지냈다. 같이 지내다 보면 싸울 법도 한데도 나랑 부딪힐 일이 없었다. 항상 그 친구는 나를 대단하다고 여겼다. 칭찬도 아끼지 않았고 나를 제법 많이 높여주었던 친구였다.
학교 졸업을 하고 각자의 일을 하고 있어도 예전만큼 보지는 않아도 연락하며 지냈다. 때론 가끔 만나면서 서로 과거를 추억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친구와 해외에 나가 사역을 한다고 하였다. 나와는 다른 길이기도 했지만 해외에 나가기까지 열심히 하는 그 친구의 열정에 놀랍기도 했고 항상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랫동안 해외에 머물다가 학교 다닐 때 세 형제라고 불리던 친구들이 한꺼번에 모이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매우 반가웠다. 여전히 변화지 않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했고 웃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해외에서 사역을 하던 친구가 어려운 부탁을 하였다. 솔직히 후원을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조금이나마 할 수 있을 법 한데 나는 그 친구를 돕지 못했다. 사실 그때 당시 나도 생활하기 어려워서 누구를 후원하고 돕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친구의 부탁이라고 할지라도 조심스럽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그 친구와 전혀 연락을 할 수 없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다른 친구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친구는 전혀 나한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평소 보고 싶었던 친구였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예전과 다른 그 친구의 태도에 제법 많이 놀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해외에서 일하다가 한국에 와서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제법 많이 섭섭했던 것 같다. 어려운 사정을 알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던 친구였는데, 나는 내 자랑에만 끝났고 그의 이야기를 단 칼에 잘라 버리는 실수를 범한 것이었다.
지금도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지만 혹여나 부탁을 하게 된다면 정말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정말 그 친구가 보고 싶다.
어려움 가운데 있다 보니 이러한 생각이 많이 든다. 대부분 내 상황이 안 좋아서 그런지 후회한 일들만 계속 생각이 든다.
나는 그랬다. 나를 위해서만 살았었다.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살았다. 그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고 나 때문에 실망을 하였다 해도 나는 나를 위해서만 살았다.
그때 당시 나는 왜 이리 여유가 없었을까?
여유가 없어도 조금이나마 나누며 살 것을...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내 주변에 있는 그들을 보지 못했고 듣지 않으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