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두려움의 웅덩이 속에 빠진 돼지
두려움의 웅덩이 속에 빠진 돼지
실직자가 되면 두 번째로 밀려오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어느 정도 두려움이 찾아오기는 하지만 두려움이 잠시 자 자지는 것 같았고 내 앞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물밑 듯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 언제 끝날지 모를 실질자의 생활이 더욱 마음을 조여오기 시작하기도 하였다.
코로나 19로 인한 대체적으로 모든 것이 차단이 되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취업이 될 것 같았던 많은 상황들이 줄줄이 취소가 되는 그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틈이 있다면 해결할 의지라도 가질 텐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그저 집 안에서 끙끙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을 만나 내 마음을 위로받고 단단히 쥐어 잡고 싶었지만 코로나 19로 인하여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었고 도리어 만나주지도 않았다.
믿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게 되었고, 그들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는 아내도 코로나 19로 인하여 전혀 강의를 할 수가 없었고 정기적인 수입이 차단되어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특별히 지출하는 것 없이 생필품 구입만 하게 되는데도 지출금액은 항상 높았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가지 않기 때문에 삼시세끼 다 챙겨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러다 보니 전보다 많은 생필품 지출금액이 높아져만 갔다.
아내의 입덧 덕분에 집 안에서 음식도 해 먹지 못해 대부분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제는 아이들도 제법 커서 예전에는 2인분만 시켜야 했던 것이 이제는 3인분 이상 음식을 시켜야만 했다. 3인분 이상이라고 해도 3만 원 이상 매번 돈이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출금액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가 않았다.
상황은 변화되지 않는데, 점차 모든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되니 슬슬 내 마음이 불안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저 내 삶을 포기하는 것이 훨씬 빠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하였고, 왜 나만 이런 억울한 일들이 있는 것일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밤낮으로 나를 괴롭혔다.
그렇다고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실직자 생활 4개월 차가 되어 버렸다.
등산길을 걸으면서 1탄
죽음이라는 거 한 번도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 소외된 분들을 찾아가 돕는 것은 했어도 내가 그렇게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다 실직자가 되고 나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하였다.
집에 있으면 그 답답함과 외로움에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혹여나 나쁜 일이 벌어질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섭고 두려웠다.
도저히 집에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공기를 쌔러 가든, 기분 전환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꼭 살 것 만 같았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오랜만에 신어본 등산화를 찾아 신고, 물 한 병과 함께 가방을 들쳐 메고 무작정 밖을 나갔다.
되도록 사람이 없는 곳을 가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부끄럽게 느껴지는지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가야만 했다.
“O O 산”
집 인근에 있는 산을 무작정 가게 되었다. 평일 이 시간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겠어?라는 생각에 나름 생각도 정리를 할 겸 길을 올랐다.
저 산 밑에 나의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올 생각이었다.
내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 볼 생각이었다. 복잡한 내 마음을 시원한 물과 선선한 바람으로나마 위로받고 싶었다.
오랜만에 등산길은 참 숨이 벅차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저 주저앉고 싶었다.
꼭 지금의 나의 모습처럼 말이다. 앞이 도저히 보이지 않고 가는 길조차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은 내 모습과 같아 보였다.
‘ 인생도 다 그렇지! 편한 길이 어디 있겠어? ’
‘ 힘든 것들을 하나하나씩 넘어갔을 때 드디어 정상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
제법 등산길에는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도 함께 걷고 있었다. 노인부부들도 있었고, 젊은 친구들도 있었고, 주인 쫄랑쫄랑 따라온 강아지들도 있었다.
그들은 나와 달랐다. 아니 달라 보였다.
정상의 기쁨을 꼭 아는 것처럼 큰 기대를 가지고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있어 보였다.
나는 힘들어서 도저히 못 갈 것 같고 포기하고 싶은데, 그들은 아무런 힘이 들지 않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등산길을 걷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힘들지 않을까?’
함께 등산을 온 사람들이 참 인상 깊었다. 그래서 등산은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와야 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서로서로 이야기하며 등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참 행복해 보였고 한시도 웃음이 떠나지 않은 듯했다.
같이 걷고, 같이 걸음을 맞춰가며 힘들게만 보이던 길들을 걷고 있었다. 꼭 힘들어함을 정말 잊어버린 듯했다.
혼자만 걷는 나는 외로움을 많이 느꼈지만 그들은 함께여서 그런지 그런 표정들은 아닌 듯했다.
각자가 가져온 음식들도 함께 나누면서,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는 그 길이 참 편안하게 보였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사람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힘든 것 같고, 나만 고생하는 것 같아 더더욱 외로웠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길 끝에 마지막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이 없는데 굳이 가야 하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보면 포기해버리는 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포기해 버릴까?’
숨은 벅차오르고, 내가 무슨 낙을 누리려고 이러한 생고생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에 그저 포기하고 싶었다. 내 삶까지도 말이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
어느 마을의 양치기 소년이 소리쳤다.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라 무기 될 만한 것을 들고 헐레벌떡 소년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늑대는 없었다. 소년이 거짓말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소년은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늑대가 나타났다며 거짓 소란을 피웠고 몇 번이나 헛걸음을 한 마을 사람들은 이제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양 떼 앞에 진짜 늑대가 나타났다. 소년은 다급히 외쳤다.
“늑대가 나타났다! 진짜 늑대가 나타났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꿈쩍하지 않았다. 소년의 거짓말일 게 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늑대는 양들을 모두 잡아먹은 후 사라졌고, 양치기 소년은 그제야 자기의 거짓말을 후회했다.
(동화, 양치기 소년 이야기)
일이 꼬이면 다양한 곳에서 꼬이게 마련인가? 절대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른 것 같다. 정말 왜 나한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10여 년 동안 일했던 그곳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진한 아쉬움과 함께 꼭 내치는 듯 한 기분이 많이 들어 어디든 가야만 했다. 가능하다면 더 좋은 곳으로 가서 통쾌하게 복수도 하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제법 많은 걱정의 소리를 들었다. 더더욱 나를 안타깝게 생각을 하였다. 처음으로 느끼는 큰 물살에 혹여나 크게 넘어질까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경력도 나름 재능도 뛰어나다고 생각했는지 늦지만 어디든 좀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혹여나 걱정되어서 전화를 하셨던 분들에게는 곧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도리어 말씀을 드렸다. 특별히 가족들과 부모님 그리고 형제들까지 걱정하지 말고 조만간 정말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내 생각과 딱 맞았다. 그렇게 흘러갈 줄 알았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 주변 지인으로부터 저를 생각하셨는지 좀 더 나은 자리를 소개해주셨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기존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자리일뿐더러 지금보다 훨씬 더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10여 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일했으나 내 위치에 맞는 월급을 받지를 못했다. 좀 더 받는 월급보다는 내가 하고자 하는 사명을 조금이나마 완성시켜야 한다는 생각과 책임감 때문인지 월급은 그렇게 신경 쓰며 살지 않았다.
‘때가 되었을 때 좀 더 나아지겠지!’
정말 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고 모든 상황들을 살펴보았을 때 확실히 갈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가고자 했던 회사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는 그 회사를 포기하게 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못 갔다. 가고 싶어도 가지를 못했다.
부모님 뿐만 아니라 형제들 그리고 식구들 등등..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갈 수 있다고 못을 박아 났는데, 갑자기 바뀐 이 상황 때문에 제법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사직을 하게 되고 다른 직장을 가게 되었다. 기존 다니던 회사와 다르게 좀 더 높은 위치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곳까지 오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나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곳이었는데, 너무 당황스러운 상황과 어처구니없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직장인 괴롭힘으로 인하여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3개월 만에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고생 끝에 간 직장생활이라 주변에서 많이 기대를 했었는데 3개월 만에 그만두는 바람에 특히 가족분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갈 곳은 있는 거니?”
그렇게 시작한 것이 나의 실업자 생활이었다.
어떻게든 실업자 생활을 벗어나고자 다른 취직 자리를 찾곤 했다. 지금의 경력을 가지고 빠른 시일 내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업자의 생활이 길게 가지 않을 것이고 도리어 짧은 기간 안에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주변 분들에게도 그렇게 말씀드렸다.
“저 갈 수 있는 데 있으니까요 걱정 마세요!”
시간이 제법 흘렀다. 실업자의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 모를 것이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으니까...
주변의 지인 분들도 제법 많이 걱정을 하셨던 것 같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취업이 되지 이 상황에서 많은 곳을 연결해 주시기에 노력해 주셨다.
나 또한 하루빨리 실업자의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취업 전선에 바로 뛰쳐 들어갔다.
그러나 어느새 높아져 버린 취업 전선으로 인하여 직급을 한층 더 낮춰가는 등의 노력을 다했다. 기존 부장의 직급에서 일을 했다면 새롭게 가야 할 그곳에서는 때론 과장으로, 때론 팀장으로 전과 다른 더 낮은 직급으로 취업의 문을 두들겨야만 했다.
가족들에게 특히 걱정을 많이 하셔서, 취업이 곧 될 거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였다. 주변 지인 분들이 직접 전화를 해서 연결해주려고 하는 것은 안 되는 곳을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대를 해봐도 된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지 제법 이력서를 내는 곳곳마다 다 떨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처음엔 가족들에게 정말 자신 있게 합격될 거라고 이야기를 했고 거의 확정적이라고 말했건만 결국 불합격되어 가족들이 제법 많이 실망을 하게 되었다.
나만 힘들어지는 것도 모자라 가족들 모두 나와 함께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걱정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새로운 직장에 원서를 넣고 자신 있는 말투로 합격될 거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 예전과 다르게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저 “그래?”라고만 할 뿐이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제법 많이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다. 한두 번이면 모르겠지만 계속 이런 일들이 일어나다 보니 나는 처절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가족들에게 어쩌다 “양치기 소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합격 정도에 따라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 것이 옳은데 사실 나는 예전과 다른 내 모습에 혹여나 실망을 할까 봐 그리고 남들에게 못난 내 모습을 정말 보기 싫어서였다.
그리고 높아지고 높아진 나의 콧대로 인하여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납득하거나 이해할 수 없었고 이런저런 방법과 말로 나의 허점을 남들에게 절대 비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못난 모습을 절대 보여 주고 싶지 않다! “
광야를 지나며 1탄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이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광야를 지나며-히즈 윌(Feat 김동욱))
광야의 길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실 광야의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고 굳이 광야 같은 어려운 길을 지나가고 싶지 않았다.
“광야의 길이 너에게 축복의 길이 될 거야?”
쓸데없는 소리인 줄만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들이 참 싫었고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잘 가도록 축복하기는커녕 저주를 내리는 그들이 싫었다.
이렇게 생각했던 내가 광야의 길 중심에 서있다. 아무것도 없는 휑한 이 곳에 홀로 남겨진 것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그 많던 사람들도 어디로 간 것이며, 나는 여기에 왜 서있는 것일까?
‘너 거기서 죽어버려’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렇게 화려하게 살았던 자가 이렇게 처절하게 무너졌으니 그냥 죽는 게 훨씬 빠르겠다며 나에게 속사 기는 듯했다.
어두움은 점점 짙어진다. 앞이 보이지 않아 너무 두렵고 무섭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 있다 보니 외로움이 밀려온다.
어디에 가서 쉬고 싶고 기대고 싶은데 그것조차 하나도 없다.
이러다가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도와달라고 밤낮없이 부르짖지만 내 목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라는 생각에 잠시 일어나 보지만 혼자 남겨진 이 곳에서 다시 주저앉는다.
‘외롭다. 힘들다. 슬프다. 두렵다. 고독하다. 춥다.’
‘정말 끝은 있는 걸까? 이 곳에서 벗어날 수는 있는 걸까?’
작은 불빛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보고 찾을 법 한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둡기만 하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옴싹달싹한 나의 모습이 참 초라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분에게 울며 소리를 질러본다.
“왜 나를 이러한 힘든 광야에 서 있게 하시나요?”
내 목소리를 듣고 계시는 걸까? 아무런 음성이 들려오지 않는다.
퇴사의 추억 2탄 ‘내가 퇴사한 이유’
나는 지금까지 3번의 퇴사를 하였다. 자주 퇴사를 하는 것은 나중에라도 좋지 않기에 웬만하면 퇴사를 하지 않고자 노력하였다.
첫 번째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인정받고 있었고 한 참 열심히 할 때였을 시기였는데 내 고향에서 사회복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첫 번째의 퇴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봐도 처음 직장이었던 그곳도 그렇게 편치 않는 회사였다.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정체되어있던 회사였다. 더더욱 정체된 느낌이 강하여서 그런지 도리어 열심을 다하고자 하는 직원들은 도리어 적응하지 못하였고 부서장들조차도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열의보다는 지금까지 해 온 거 잘 유지만 해오려는 그런 모습이었다.
두 번째는 결국 다른 곳으로 도전하는 차원에서 퇴사를 했지만 결국 희생만 요구하고 적절한 대우를 하지 못하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직원들을 도리어 경계하고 힘들게 하거나, 성장하기보다는 정체된 분위기가 내가 퇴사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세 번째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인정하는 것보다 무시하거나 직 누르는 그러한 조직 문화가 날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인권 존중 조차 없었던 조직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사직서에는 일신 사유로 퇴사를 한다고 적혀있지만 알게 모르게 상처 받은 많은 일들로 인해 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원망했던 회사에서, 전혀 바뀌지 않는 부당한 회사에서 나 또한 그런 사람으로 살았다. 때론 퇴사한 직원들 입장에서는 내가 가해자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퇴사 학교(장수한 외 지음, 알에이치코리아)에서는 회사생활이 힘든 7가지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① 적성: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다.
② 성장: 회사에서 배우는 게 없다.
③ 시간: 야근에 절어 있다.
④ 관계: 사람이 힘들다.
⑤ 공허: 아무리 노력해도 허무하다.
⑥ 안주: 회사 안에서 정체된다.
⑦ 문화: 군대식 문화가 괴롭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정적으로 퇴사를 하는 이유를 만드는 것 같다. 나 또한 다는 아니겠지만 7가지의 이유들이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친 듯하다. 어떻게 보면 미리 알았더라면 이러한 이유들을 잘 통제하고 잘 조절하면 퇴사까지 이루지 않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들기는 하지만 하여튼 퇴사에 대한 분명한 이유는 있는 듯하다.
3번의 퇴사를 갑작스럽게 하게 되면서 나의 솔직한 퇴사의 이유를 한번 정리해보았다.
① 나는 주어진 일을 내 일처럼 최선을 다해왔다. 아침 7시 30분 출근으로 시작하여 자주 야근을 하면서 까지 최선을 다했다. 나의 시간은 최대 줄이고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완성시켜 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에 따라서 많은 성과를 내기도 하였지만 나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이 있었다. 어느 정도의 성과를 만들어내도 주변으로부터의 반응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도리어 나를 더욱 경계하고 질투를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성과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희생하고 고생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할 뿐 나를 도리어 힘들게 하거나 못하게 하는 그러한 반응들로 인해 나는 더더욱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② 내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이지만 자기 사람이 아니면 도리어 경계하며 힘들게 하는 괴롭힘 때문에 나는 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잘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도와주기보다는 혹여나 자기한테 피해가 올까 싶어 심한 경계심이 있었다. 더더욱 상사로부터 인격적으로 무시당하고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직장 내 괴롭힘은 퇴사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삶 전체를 한꺼번에 힘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③ 희생만 요구하고 적절한 인정과 대우가 없어서 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때론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만 치부해버리는 바람에 회사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들 뿐이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 열정을 잘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보다 도리어 이용해 먹는 그러한 상황들이 너무 싫었다.
④ 정체되어가고 성장하지 않는 회사에서 더더욱 일을 할 수 없었다. 기존 해왔던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실행하기를 원하다 보니 스스로 정체된 느낌 이상으로 보다 신나게 일을 할 수 없었다.
회사가 성장하면 개인 또한 성장하기 마련일 텐데 회사가 정체되어가다 보니 스스로도 정체되거나 점차 약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느 때는 도리어 하고자 하는데도 말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전혀 경험이 없던 그는 열심히 하고자 하는 직원을 코칭하기보다는 도리어 할 수 없도록 말리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졌다.
⑤ 모든 것들을 쏟아붓고 있는데 그에 맞는 적절함 채움이 없었다. 그저 희생만 요구를 하다 보니 점차 소진이 발생하였고, 소진 정도가 점차 악화될 뿐이었다. 그러나 버티고 버티려고 노력하였으나 나도 모르게 마음과 신체에 이상이 왔다. 간수치가 높아지고 허리디스크가 발생하여 디스크 수술을 하게 되고, 우울하여 우울 약을 먹게 되고, 잠을 이루지 못해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먹게 될 정도였다. 때로는 헛구역질을 하게 되고, 머리가 너무 아파 일하는 도중 병원에 입원하여 주사를 맞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러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점점 상처가 깊어져만 가는데, 곪아 떠지기 일보 직전인데 그저 나에 희생만 요구할 뿐이었다.
⑥ 나는 더 이상 이용당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미래’에 저당 잡혀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인정’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중’이었다. 그런데 희생만 원했지 적절한 존중은 없었다.
외로움과의 싸움
오랫동안 실업자 생활이 이어갈 수로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어쩌다 실업자가 되어 보니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시작하다 보니 밀려오는 아픔과 어려움은 상상하는 것보다 충격이 더해져만 갔다.
그 길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지난 많은 것들 중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이들이 참 많이 생각이 났다. 나를 그렇게 섭섭하게 했으니, 어찌 착한 가면을 쓰면서 뒤에서는 사람답지 않게 행동했던 그들 때문에 힘들었던 실업자 생활 내내 나의 마음을 옥죄기 시작했다. 정말 끝까지, 좀 더 상황이 날 때까지 말이다.
실업자의 생활이 이어질수록 외로움이 극에 다다르고 있었다. 더더욱 그렇게 도왔던 많은 이들, 특히 선후배들과 친구들조차, 그리고 가족조차도 언제부터인가 연락이 끊겼다.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던 지인들은 평소와 다르게 나에게 또 다른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어느 때는 나의 상황을 정말 모르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모습 때문에 더 깊은 상처를 받았었다. 내 마음속에는 그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잘하고 있어, 나도 그런 일들이 있었었어라고 나를 위로해주기를 바랐던 마음이 있었었는데 그렇게 반응을 해주지 않는 이들 모두 참 섭섭하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다시는 그들과 연락을 하지 않겠노라 수백 번 다짐을 했었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 힘이 없어지고 나한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었을 때에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하지 않는 그들의 야비한 모습에 다시 한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들을 소중하게 여겼고, 그들의 도움에 언제든지 거절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왔었는데 꼬리 잘린 호랑이 마냥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매우 불쾌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내 마음을 힘들게 했던 것은 평소 나를 싫어했던 그들들의 비아냥 소리 때문이었다. ‘샘통이다! 너 그럴 줄 알았어?’
실업자 생활이 좋은 소식은 아녔기에 어느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고 평소 즐겨했던 SNS 활동도 정말 끊어버린 체 집에서만 지내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런데 너무 이상한 것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벌써 예전 직장에 나의 실업자 생활의 소식이 전해졌으며 그 지역의 다른 사람들의 귀에까지 전해졌다는 소식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꼭 좋은 사람이 있었겠는가? 나를 싫어하고 경계한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 그들에게 나의 소식이 얼마나 샘통처럼 느꼈겠는가? 좋은 소식도 신중히 전달되는 법일 텐데, 누구인지 몰라도 나의 소식을 기쁘게 전한 그가 참 원망스러웠다.
하루 종일 그들의 비웃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 있어서 더더욱 실업자의 생활이 힘들게만 느껴졌다. 나름 당당하게 회사에서 나왔었는데 잘되어서 그들에게 보란 듯이 복수를 하고 싶었었는데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 비웃음만 당한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힘들고 마음이 어려워서 그저 숨기만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인들의 응원의 전화를 기다렸었다. 어설픈 위로라도 좋으니 한통이라도 전화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전화를 주지 않았다. 사실 내가 나의 이런 상황을 알리지 않았으니 당연히 위로의 전화를 주지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전화 한 통을 정말 기다렸다. 나의 사정을 알고 전화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인 중에 몇 명이 전화가 올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입으로 나 지금 실업자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상대방은 제법 많이 놀라는 눈치였고 어설프지만 어떻게든 위로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급히 위로를 해주기도 하였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계속 지내다 보니 가족들조차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냥 평소와 같이 말해주기는 했어도 나를 특별히 위로해주거나, 나와 같이 힘들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자기야(아내) 나 실업자 되니까 많이 속상하고 힘들지?”
사실 계속 이어지는 실업자 생활로 인해 아내가 특히 많이 걱정을 할 줄 알았다. 당연히 남편이 힘들어하니 자연히 아내도 힘들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내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힘들어하는 내색을 내 앞에서 보여주지 않았다. 10년 동안 늘 보여준 모습 그대로 나를 대하곤 하였다.
처음에는 참 속상했다. 남편이 힘들어할까 봐 억지로 솔직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아내가 솔직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더더욱 내 마음이 참 쓰렸다. 솔직히 나도 아내를 위로할 여력도 있지 않아서 그냥 평소처럼 대할 뿐이었고 어떻게 보면 아내보다 내가 더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비추곤 했었다.
그 시간과 기간 동안 내 곁에 아무도 없는 듯했다. 사실 아무도 없기 때문에 점점 나는 나만의 동굴에 더더욱 깊이 들어갈 뿐이었다.
들어가는 그 동굴은 사방이 다 막혀있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모든 것이 차단된 느낌이 많이 들었었다. 무섭고 힘들어 혼자서 피해 있었던 자리였는데 결국 그곳에서 또 다른 세계를 꿈꾸면서, 하루하루마다 또 다른 소설 한 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경험한 것들을 소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실 그들이 그렇게 했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주인공이 되고 그들은 이 세상에 있지 말아야 할 악당으로 만들어 버리는 스펙 타클한 판타지 소설을 지어가고 있었다.
내가 주인공이니 그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면 좋으련만 점점 소설을 써가면서 그들을 향한 복수심이 극에 다다르게 되었다. 조금이나마 속 시원했으면 좋겠지만 정말 완성해나가는 소설 가운데 나는 점점 지쳐갔고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너무 힘들어져만 갔다.
피하고 싶은데 피하지 못하고, 벗어나고 싶은데 점점 밀려오는 어려움과 부담 때문인지 그저 나의 삶을 좀 더 일찍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밝아져만 가는 듯했다. 그래서 무서웠다. 정말 생각대로 내가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나는 온전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마지막 선택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 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 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가 위인들
(삶과 죽음 / 윤동주)
실업자 생활을 오래 한 다 보니 세 번째로 밀려오는 것은 포기였다. 하나의 포기가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계속적으로 어려움이 밀려오고 두려움이 점점 강해짐에 따라서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간단히 나만 없으면 끝날 일인 것 같았고, 하루빨리 모든 것이 다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죽음이라는 생각 절대 해보지 않았던 내가 끝까지 몰리다 보니 나 또한 그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느 날 밤 평상시와 다름없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에 무서운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죽어볼까?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 그런 생각이 가득했던 것 같다. 어두운 밤이기도 하고 극단적인 생각에 몰리다 보니 너무 무섭기도 하였고 소름이 끼치기 시작하였다.
너무 무서운 밤을 도저히 지낼 수가 없어서 거실에서 아이와 자는 아내를 깨우려고 나갔다. 그런데 너무 피곤해하고 깊이 잠이 든 아내와 아이들을 보게 되니 도저히 아내를 깨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로 옷을 챙겨 입고 평소 다니던 교회를 가게 되었다. 시간대가 새벽예배를 할 시간이어서 교회 새벽예배를 드리러 밖에 나오게 되었다.
죽을 것 같다고 두려움 때문인지 새벽예배 시간 내내 집중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펑펑 쏟아지는 눈물과 벅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그저 조용히 입을 가린 채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해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기도를 할 법한데도 아무런 기도도 할 수 없었고 눈물만 펑펑 흘린 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바닥은 눈물로 가득 찼고, 먼 산만 바라볼 뿐이었다.
원망보다는 그저 포기라고 하는 것이 더 맞았다. 이유가 분명히 있어 이러한 고난의 길, 고통스러운 길을 걷는 거겠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상황이 그저 힘들기만 했다.
‘그분만은 나의 사정과 상황을 알고 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