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내가 다시 일어설 날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을 바라보며 꿈꾸며 지금의 이 상황에서 일어서기를 노력하고 있다.
실직의 어려움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수도 없이 밀려오게 된다. 그러면서 과거 나의 행실에 대해 깊이 반성하게 된다. 거의 대부분 삶이 힘들어서 그런지 후회만 그저 할 뿐이었다.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직원들을 이해해줘야지!”
“직원들과 소통하고 협력해서 멋진 일들을 만들어가야지!”
“소통만 이야기하지 말고, 직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지!”
“진심으로 배려해줘야지!”
“나답게 살아야지!”
“사람들을 좀 더 사랑하고 도와주면서 살아야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 살아야지?”
“자랑하지 말며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지!”
“사명을 감당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지!”
“주변 사람을 잘 살피고 더더욱 베풀면서 살아야지!”
"늘 배우는 자세로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야지! “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야지!”
“화내지 말고, 좀 더 여유 있게 웃음을 잃지 말아야지!”
“경험만 의지하지 말고 늘 공부하고 연구해가면서 늘 최선을 다해야지!”
“바쁘더라도 가족을 위한 시간을 꼭 가져야지!”
“나를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께 자주 연락하면서 효도하며 살아야지!”
“죄짓지 않고 착하게 살아야지!”
“건강도 잘 챙기면서 살아야지!”
“자주 독서하는 사람이 돼야지!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다른 사람보다 일찍 시작해야지!”
매일매일 다짐 속에 산다. 꼭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만약 내가 다시 일어나게 된다면 다짐한 약속들을 꼭 지키겠다고 반복하며 약속한다.
이 모든 약속과 다짐을 지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오늘 문 듯 들었다. 사실 불가능한 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 기회를 통해 다른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만약 예전 같이 나에게 무례한 사람들이 있다면,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예전과 다르게 친절히 이야기하고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변화되지 않는 무적 로봇일 텐데, 그저 뜸 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조금 두렵다. 예전의 나의 악마 같은 나의 옛사람 같은 모습이 나타날까 두렵고 떨린다.
‘어찌하여야 옛사람을 버릴 수 있을까?’
나는 근본적으로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 절대 변화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다짐하는 것은 옛사람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러면서 오늘부터라도 차근차근 연습을 할 것이다.
비록 억울한 상황이라도 잠시 그 자리를 피하는 연습
못 땅 하게 여기는 행동을 하는 아내(?)이고, 불만을 이야기하는 아내일지라도 나의 입장만 이야기하기보다
“그래 내가 실수를 한 것 같다! 미안해 자기야~!”
“자기야 나랑 함께해 주고 응원해줘서 고마워!”
(참 쑥스러운 표현이지만 평소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기)
피곤한 저녁시간일지라도 아들과 함께 체스를 하고, 잠 자기 전 아빠의 목소리로 동화를 읽어 줄 예정이다.
무엇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글에 자주 써가면서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일부러 전화를 걸거나 이야기를 할 기회가 될 때 그렇게 표현을 할 것이다.
외로움을 이기려고 애쓰지 말기
실직자의 삶을 한마디로 설명한다고 하면 “외로움”인 것 같다.
저 멀리 떠나간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만들어 놓고 문 잠가버린 내 마음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나에 대한 비참하고 부끄러운 생각 때문에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지난 화려한 과거가 생각이 나서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실직자=외로움이라는 공식 성립”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만든 공식이었다. 만든 공식에 이런저런 상황들을 대입하여 더 큰 외로움을 만들어간다. 집 안에서 느끼는 그 외로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왜 이리 나만 외로운 걸까?”
사실 이러한 외로움은 타인의 부재에 의한 외로움인지, 존재 자체의 외로움인지, 전혀 다른 외로움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나에게만 일어나는 외로움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 일어날 수 있는 외로움이라는 것이다.(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없어_김효진)
실직생활을 하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밀려오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결국 외로움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것에 집중하다 보니 일상이 정말 바뀌게 되었다.
처음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이겨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굳이 이겨내고자 했던 마음조차 버리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밀려오는 외로운 마음을 한쪽 곁에 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과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에 집중하며 그 시간을 즐겁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특별히 두 가지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는 독서이고 두 번째는 글 쓰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제법 많은 책들을 읽어왔지만 더더욱 힘든 이 시기에 독서는 나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책에서 나오는 문구 문구가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고 보다 깊이 내 마음에 담아지게 되었다.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감명 깊게 느낀 문구를 다이어리에 옮기고 나의 생각을 글로서 남겼다. 또한 느껴진 것들을 하루에 하나씩 실천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오로지 집에서만 이루어지는 작업인지라 어떻게 보면 더욱 우울한 마음이 밀려오는 듯하여 독서 핑계를 삼아 밖으로 나가는 연습들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거나, 중고서점에 직접 찾아가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책을 보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아파트 앞 공원(?)에서 선선한 바람을 친구 삼아 책을 읽기도 하였다.
좀 더 탁 트인 곳에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등산이었다. 정상까지 가는데 3~4시간 걸리는 거리이지만 무슨 생각으로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렵게 정상에 올라 책을 보고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잊어버린 내 안에 있는 밝은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어서 이제는 살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혼자 있는 외로움의 시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어떻게든 지지리 궁상 같은 삶을 버리고 외로움을 그저 받아들이기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온전히 나를 적극적으로 만나보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가며 좀 더 의미 있는 일들을 만들어갈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폴 부르제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나도 우울한 감정에 깊이 빠져 있기보다는 늘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성취하고 성과를 이루는 것을 즐기고자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 집중하는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게 되고 스스로 도움이 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등산길을 걸으면서 2탄
드라마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등산을 하는 것이 문 듯 생각이 들었다.
또한 깊이 생각해보고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줄 겸, 외로운 길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어 시작된 등산길이었다.
그저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에 등산길을 다소 두려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없어서 더더욱 내 마음과 감정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분께 소리 질러가며 기도를 하고 싶었다.
“나만 왜 이리 힘들까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상상에만 그쳤다. 왜냐면 등산길에, 평일 그 시간에 내가 상상한 것보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소리 지르면서 기도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임이 분명했다.
“미친 XX”
그러면 입으로 기도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도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원래 이런 길이었나 싶을 정도로 등산길이 매우 경사가 있었고 가는 등산길이 너무 힘들어 숨이 턱까지 오르게 되니 기도할 마음이 어느새 싹 사라졌다.
헉헉 거리며 숨이 차오르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나의 나이와 체력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옛날 생각만 했다! 나 이제 그렇게 젊은 사람은 아닌데..’
많은 등산객들은 거침없이 등산길을 걷고 있었다.
3km만 가면 정상이 나오는데, 점점 정상이 멀어지는 듯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미리 챙겨놓은 물과 과일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개만 먹을 생각이었는데 힘들게 올라온 등산길 중간지점에서 먹는 과일이 참 달았다. 하나 두게 먹다 보니 벌써 다 먹고 말았다.
사실은 정상에 올라가서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먹을 생각이었는데 원래의 계획이 완전 실패가 되었다.
1번만 쉬고 계속 걸어야 정상을 갈 수 있을 텐데 10분이 지났나? 나는 1시간 걸은 것만 같아서 조금 가다 쉬고, 조금 가다 쉬는 일들을 반복했다.
입구에서 같이 시작한 어느 청년은 어느새 정상까지 다 찍고 내려오는 길에 보게 되었다.
‘부럽다! 나도 정상을 가고 싶다!’
너무 힘들다 보니 삶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정상을 오르는 이 길도 죽겠는데,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은 지금 상황에서 불필요해 보였다. 그저 빨리 정상을 보거나, 아님 빨리 내려가야만 했다.
결국 정상을 가지 못했다. 이러다가 등산길 어느 쪽에서 낙오되어 뉴스에서 나올 법하게 헬리콥터 타고 병원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힘이 완전히 빠졌다. 당연히 다리 힘도 완전히 빠져서 잘못하다가는 넘어지거나 다리를 삐끗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앞만 보고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내려오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길 같지 않는 길을 걷게 되었고, 갑자기 물 웅덩이를 넘어가야 했다. 길이 아닌데 무성히 올라가진 풀 사이를 해쳐나가며 무작정 내려와야만 했다.
다리는 풀리고, 정신은 없어서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연히 주변은 보지도 못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들도 다 뻥이었구먼!”
등산을 통해 자기를 한번 더 생각하고, 돌아보는 그 장면 완전 현실과 다름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등산길이 힘든데... 무슨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겠어! 등산하면서 낙오 안 되는 것이 다행인 거지!‘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등산길이 힘들지 않았다면 나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직 내가 살아가야 이유가 있어서 그런지, 그분이 나를 살리려고 그렇게 하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살아있다.
내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쥐 죽은 듯이 집에서만 틀어 박혀 살았다. 남들과 만나는 것도 연락하는 것도 부담되었지만 주변에 제법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살아있다고 그들에게 작은 신호를 보내줘야 할 듯싶었다.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사실 어떻게 보면 언제부터인가 기존의 외로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나의 작은 노력이 아닐까 싶다.
아직 실직생활은 유지되어있고 특별히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작은 노력들이 필요했다.
밖에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집 안에서, 작은 나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SNS와 소통하기였다. 때론 SNS 놈의 자식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방법은 SNS밖에 없었다.
예전에 절대 SNS를 하지 않겠다며 몇 개의 SNS 앱을 다 삭제해 버렸는데 어느새 다시 살려놓았다.
그리고 나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좀 더 밝은 내 모습을, 열심히 살려고 하는 내 모습 위주로 사진 등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가족을 위해 만든 #음식 스타 그램 중심으로 올리거나, 독서를 통해 알게 된 것들 중심으로 #독서 스타 그램을 올리기도 했다. 때론 자주는 아니지만 몇몇의 사람들의 이야기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공감되기보다는 아직도 나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점과 늘 당신을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내가 SNS에 아들과 함께 놀고 있는 사진을 올렸더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었다. 그런데 어느 지인 분이 이렇게 댓글 달아주셨다.
“이제 일 해야지”
나는 그 댓글을 보자마자 바로 댓글을 지울 수가 없어서 글 전체를 비공개로 해버렸다. 그런데 SNS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바로 내린 댓글을 그 사이에 본 사람이 제법 많다는 것이었다.
바로 카톡으로 연락이 와서 “지금 일 안 해?”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때론 전화도 온 적도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있는 내가 걱정하기도 했고 그러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많이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 일이 있은 후에 많은 이들에게 내가 지금 실업자라는 것을 널리 널리 알리게 되었다. 사실 너무 싫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올린 댓글은 나를 응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예전 회사 사람들이 어쩌다 알게 되어 혹시나 비웃을 까 봐 그것이 걱정되고 싫었던 것이다.
‘잘 나가서 당신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두 번째로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한 일은 가족들과 더 가까이 지내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육아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이었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나쁜 감정과 짜증들을 되도록 잠잠하게 하고 행복한 모습과 기쁜 마음으로 보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을 많이 가졌다.
청소, 빨래, 설거지는 물론 두 아이를 목욕시키는 등의 노력을 다했다. 평소에 잘하지 못하는 청소인지라 뒤돌아서면 다시 쌓인 먼지들이 제법 많았고, 바로바로 빨래하지 않고 말리지 않아서 꿉꿉한 냄새들이 온 집안에서 진동하기도 했다. 설거지는 바로바로 했어야 했으나 그것도 귀찮아서 2일에 한 번씩 하는 경우에는 어느새 쌓아 올려진 무덤 같은 설거지들로 인해 냄새도 많이 났었다.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도 왜 이리 하기 싫은 걸까? 우리 집에는 무덤들이 몇 개 정도 있다.
“설거지 무덤”, “빨래 무덤” “쓰레기 무덤”
이렇게 하기 싫은 것들을 평생 해 오신 우리 어머니들 정말 대단하고 느끼게 된다.
하여튼 집안 살림이 만만치가 않다.
어느 날은 쌓인 쓰레기를 밖에 나가 분리수거를 해야 했다. 다들 버리는 주기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꺼번에 버리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버리는 내가 부끄러운지 아님 실업자인 내가 부끄러운지는 모르겠으나 웬만하면 출근시간이나 저녁시간을 되도록 피하고자 한다. 수많은 쓰레기를 들고 가는 것도 정말 창피하지만, 일하지도 못하는 나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수군거릴까 봐 그것이 걱정되고 싫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오지랖 넓은 아줌마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나를 보고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가 제일 민망하다. 남들이 들어서도 민망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기계에서 들리는 그 음성 때문에 더더욱 부끄럽다.
“이번에 버리신 음식물은 20kg입니다!”
(보통 가정 내에서 한 번에 20kg 정도 버리면 엄청 버리는 것이 아닌가?
세 번째로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한 일은 글 쓰는 것과 작가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아직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또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글을 쓰다 보니까 우연히 #브런치 작가가 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의 솔직한 감정과 상황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글을 쓰게 되면 나의 솔직한 감정을 알 수 있기도 하고, 점차 부정적인 감정들이 다소 해소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억울한 상황들을 기록하면서 화도 나기도 했지만 나의 솔직한 감정을 위로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나의 글을 통해 나와 같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참 감사한 일들은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고 있었고 공감해주고 있었다. 남들에게 희망을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시작한 글들이 도리어 많은 이들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되었다.
지금은 그러한 작가 활동이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3편의 글을 올리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한 일은 독서였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하여 예전처럼 책을 쉽게 볼 수는 없지만 온라인을 통해 책을 예약 신청하여 직접 도서관에서 책을 받아보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다소 불편한 것은 있었지만 책을 보려고 노력했다. 예전보다는 시간이 많이 허락되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 없이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예전에는 업무와 연관된 책을 보거나,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책을 보았다면 지금은 솔직한 나의 감정을 위로하는 책을 본다거나, 나의 미래와 아이들의 육아와 관련된 책들을 두루 셥렵하여 읽고 있다.
독서라는 것은 기록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독서를 통해 느낀 것과 알게 된 것들을 메모지나 다이어리에 적어서 다시 한번 나의 마음에 정확히 새기고자 노력한다.
우연히 알게 이벤트(?)라고 할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책을 출간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서평 이벤트가 있었다. 사실 이런 이벤트가 있는 것도 몰랐다. 우연히 알게 되어 서평 이벤트를 찾아봤더니 제법 많았다.
많은 이들에게 책을 주고 서평을 작성하는 것보다 일부 몇몇에게도 가능토록 하게 되어 있어서 제법 이벤트에 당첨되는 것이 어렵다.
사실 나는 이런 이벤트에 큰 장점이 있다. 아니, 남들이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 실업자입니다....”
“지금 제가 실업자이어서 마음이 너무 어렵습니다. 이 책을 통해 큰 위로와 힘을 얻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실업자인데 제법 아이들이 상처를 받은 듯합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 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나의 작은 호소가 먹혔는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작가분들에게 책을 많이 받았다. 때론 독서를 하려면 책을 사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도 있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공짜로 책도 받고, 공짜로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게 되었다.
진심으로 용서하기
‘용서는 화해와 다르다’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 얀 안설랭 슈창베르제 외 지음/하봉 금 옮김, 2014)
세상의 나와 맞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때론 직장생활에서 나랑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기이다.
때론 맞지 않아도 맞춰주는 것, 자존심 상해도 맞춰주는 것이야말로 직장생활 안에서, 사회생활 안에서 해야 할 행동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행동과 마음 자세야 말로 무섭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직장생활에서는 다른 이들에게 이쁨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나도 이제껏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로 인해 기쁘기도 했지만 때론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평생 고생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간질환을 얻게 되었을 정도였다.
최근에 만난 사람이 유난히 생각이 든다. 오늘도 새벽 내내 꿈속에서 그 사람으로 인하여 괴롭힘을 당하고 힘들어했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는 정도였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그가 찾아와서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당황해하면서도 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사실 그 사람은 잘 무례한 사람이었다. 내 인생 속에서 역대 무례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 이상에 정말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까지 서스름없이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 때문에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는 내내 그가 계속 생각이 났고 용서보다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만 치밀어 오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내가 살기 위해서 굳이 과거의 일들까지 끄집어내면서 생각하고 분노하기는 싫었다.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불쑥불쑥 생각이 나더라도 생각하지 않고 땅에 붙어버렸다.
잠을 들려고 해도 그가 생각이 났고, 어디에 있든 간에 그가 생각이 났다. 그래도 잊으려고 노력했고 나름 내 마음에는..
‘어차피 과거일 뿐이다!’
‘어차피 그 사람은 절대 변화지 않을 것이며, 전혀 자기가 행동했던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전혀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나만 계속 생각하고 있다!’
생각이 날 때마다, 분노가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급히 내 마음을 수습하려고 했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다하였다.
그런데 최근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에 대한 많은 질문과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 어떤 사람이에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자기는 모르지만 어디를 가든 그 사람의 행동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문의로 인하여 애써 묻어버린 그때의 모든 일들이 다시 한번 지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오늘처럼 꿈에 나타나 나를 하루 종일 괴롭혔던 것 같다.
제대로 자지를 못해서 피곤한 것도 있지만 이른 아침이 매우 불쾌하고 기분이 매우 나쁜 것은 무엇일까?
머리에 계속 맴도는 그의 모습에 대해 한동안 분노를 감출 수 없었지만 곰곰이 과거의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도 살려고 그렇게 행동했겠지!”
“그도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어서 그렇겠지!”
“잘 살아보려고 했다가 그렇게 잘못된 거겠지!”
“그도 불쌍하고 연약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지!”
그저 그 사람이 매우 안쓰러웠다. 또한 그 사람을 잘 대해주지 못한 나의 모습 또한 후회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를 용서해 줘야겠다. 진심으로 그를 용서해주어야겠다.
그리고 그가 지금 있는 그곳에서 잘할 수 있도록 큰 축복의 기도를 해줘야겠다.
‘사람의 판단과 심판은 그분이 하실 일!’
나도 연약한 사람이고 부족한 사람인데 어찌 그를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을 한다. 또한 그런 높아진 마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비판하고 미워한다. 그저 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거나 내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각자의 무리에서, 나의 마음에서 나가게 만들어버린다.
높아진 나의 마음에 어떤 것들이 용납이 되고, 용서가 되겠는가?
사실 나도 제법 높았다. 어느 누구도 올라올 수 없을 만큼 높아진 그것들을 나름 큰 자부심 하나로 살아오기도 했다.
먼저 나의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았다. 곧 넘어질 바벨탑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것이라고 자랑할 뿐이었다.
높은 빌딩 위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면 사람들은 매우 작아 보이고, 지나가는 자동차조차 작게 보이기 마련인데, 나 또한 높은 그곳에서 그렇게 사람을 바라봤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이제는 그 높은 곳에서 내려와야 한다. 곧 무너지는 그곳에서 급히 내려와야 한다.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용서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용서하기도 작정했다.
그저 예전처럼 땅에 묻어 버리기만 해서 썩지 않는 쓰레기로 만들지 않기도 했다.
진심을 다해서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의 모든 행동들이 납득이 되지 않지만 그리고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그를 용서하려고 한다.
“용서를 통해 내가 살 수 있습니다!”
문 듯 밀양 영화가 생각이 났다. 아들을 유괴하고 죽여 교도소에 수감한 살인자 앞에 앉아서 신애(전도연)랑 이야기하는 장면이 생각이 났다.
○ 신애(전도연): 내가 오늘 여기에 찾아온 건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해주러 왔어요. 나도 전에는 몰랐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절대 안 믿었어요. 내 눈에 안 보이니까 안 믿었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몰라요.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거예요. 그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요.
○ 살인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준이 어머니한테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야기를 듣게 되니 참말로 감사합니다. 저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교도소에 들어온 뒤에 하나님을 가슴에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많은 인간에게 찾아오신 거지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이 죄 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 주시고, 그 앞에 엎드려서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제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 신애(전도연):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주셨다고요?
○ 살인자: 예,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하고, 하루하루가 얼마가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한테 회개하고 용서받으니 이래 편합니다. 내 마음이...
“내가 그 인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어요!”
나름 스스로가 착각하며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용서하기로 결심하였다. 진심이 그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밀양 영화에서 나온 신애(전도연)처럼 생각되지 않도록 진심으로 용서하면서 때로는 전과 같이 그에게 했던 행동과 말들이 불쑥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뿐이겠는가? 실직 전의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들 다 말이다.
과거의 사람들을 이젠 진심으로 용서하고 이제 만난 이들에게는 예전같이 무례하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해본다.
“천천히!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럽게....”
나는 행복이지만 남들에게는 불행 일 수도 있겠구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SNS 활동이 제법 많아졌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진, 가족을 위해 만든 사진 등등 나를 알리고 나의 행복을 전하는 SNS 활동은 제법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통의 도구였다.
어느 날은 셋째가 생겨 너무 기쁨 나머지 SNS를 통해 기쁜 소식을 전했다. 더더욱 딸이라는 소식과 함께 말이다.
내가 그렇게 글을 올린 것은 비록 내가 실업자이지만 당당히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고 어쩌면 실업자와 별계로 셋째가 생겼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축하받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현재 행복하다는 것을 전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도리어 내가 올린 글을 통해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아이가 생기지가 않는데.. 당신은 벌써 셋째?”
“나도 아이가 있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벌써 셋째?”
우연히 알게 된 그들의 이야기가 순간 화도 나고 도리어 섭섭한 마음이 많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말을 해야겠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SNS가 이루어지다 보니 그들의 모든 감정과 상황을 어떻게 고려할 수 있고 맞춰질 수 있겠는가?
잠시 화도 나도 섭섭하기는 했지만 순간 이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 놓인 그들이 안쓰럽기보다는 나를 한번 더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항상 옳은 것일까?’
그런데 나는 내가 항상 맞으며 옳은 생각 가운데 남들보다 더 옳게 행동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뱉는 나의 이야기가 남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나의 자랑이 도리어 그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사실 많은 이들의 사정을 일일이 맞춰 줄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내 삶은 나의 삶일 뿐이지, 그들의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때론 남들의 이야기보다 나의 이야기에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도 어느 선을 넘지 않는 이상 나의 말과 행동은 항상 조심하고 조심해야 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배려하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떻게 보면 사람이 해야 할 도리일지도 모르겠다.
가족(Family)에 대한 나의 생각
가족(家族)은 대체로 혈연, 혼인, 입양, 친분 등으로 관계되어 같이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공동체)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넌 어떻게 그렇게 입고 다니냐? 창피하지도 않아?”
나는 평소 꾸미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었다. 있는 옷이라고 하면 청바지에 티셔츠, 사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이기도 했지만..
그건 내 생활이었고 나의 스타일이었지만 주변에 있는 가족은 비록 불쾌하게 느껴질지라도 나에게 폭언(?)을 자주 하곤 했다. 가족이라서 도움되라고 하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나는 그저 상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니까 그런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거야?”
가족을 이렇게 비유하곤 합니다.
가족 “두부”로 비유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 부서질 수 있으니까요! 언제나 가만가만 다루어야 하는 소중한 것이니까요!
2. 가족 “붕어빵”에 비유됩니다.
-추운 겨울에 절실하게 생각나고 급히 먹으면 탈 나고 중요한 것은(단팥)은 겉이 아닌 속에 있으니까요...
3. 가족 “바카스”로 비유됩니다.
박카스를 마시면 피로가 풀리는 것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보면 하루의 피로를 잊을 수 있으니까요..
(참고: https://cafe.naver.com/cjsam, 행복한 공간 순광맘)
우리의 삶의 대부분을 가정 안에서 지내다 보니 때론 나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외부로부터 큰 공격을 받아도 든든한 방어막(?) 때문에 다행히 살 수 있는 곳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단단한 방어막이 어느새 구멍이 나고 틈이 벌어진다면 나의 삶에 적지 않는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제법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한 구멍과 틈이 생기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해보면 다양한 이유 중에 하나가 사소한 상처의 말인 것 같다.
그저 가족끼리는 사소한 이야기라도 “괜찮아”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들이 참 가족 간의 상처를 주는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나와 함께 사는 가족들을 성격과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보다 정말 모르는 것도 가족인 것 같다.
사실 가족이라고 하니 유심히 관찰할 이유도 없고, 저 사람을 어떻게 할 이유와 명목도 없기 때문에 판단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물 흐르듯 그냥 그렇게 사는 것 같다.
내가 있는 가정과 가족이 만약 회사고 사회생활이었던 그렇게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런데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우리 가족을 잘 알고 있다는 대단한 착각과 함께 아무 말을 해도 괜찮아 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오랫동안 실업자 생활을 하다 보니 주로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가는 것이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너무 들어서 쥐구멍에 숨는 그런 기분과 감정으로 집에 있곤 했다.
그런데 집에만 있다 보니 평소에 안 하던 집안 일도 제법 많이 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설거지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때론 일을 하고 오는 아내를 기다리며 음식도 해놓고 하곤 했다.
열심히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기를 바랐는데, 도리어 맛없다며 입맛이 없다며 제대로 먹지도 않은 체 숟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나는 매우 속상한 기분이 많이 들었다.
‘우쒸(?) 애써 만든 음식인데...’
화가 나지만 애써 만든 음식을 버릴 수 없기에 그 자리에서 평소 먹는 것에 몇 배만큼 우적우적 먹기만 했다. 배불러오는 뱃살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말이다.
땀을 흘린 아이를 씻기기도 하고, 저녁에는 책도 읽어주고..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질 만큼 하루가 참 고되었다.
하루 이틀은 참 괜찮았고 할 만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도 일상이 되어보니 이제는 하기 싫기도 하고 힘들기만 했다. 더더욱 민감하게 가족들에게 반응하기 시작하였다.
먹고 나서 정리하지 않는 아이에게 폭풍 잔소리
썼던 휴지조각을 그냥 바닥에 놓은 아내에게 폭풍 잔소리
자고 일어났는데 이불을 정리하지 않는 아이에게 폭풍 잔소리
밥 먹다가 바닥에 흘린 5살 막내에게 폭풍 잔소리
하는 사람 있고 정리하는 사람 따로 있나 가족들의 그러한 모습들이 괜히 짜증만 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으니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지 하는 생각에 내 삶도 참 슬펐다.
그런 상황 가운에서도 나름 열심히 살고자 하는데 도와주지 않는 가족들에게 그저 실망하고 짜증만 부렸다.
나는 나름대로 짜증만 쌓여 갔던 것 같다.
‘폭발 일부 직전!’
평범한 주일 저녁쯤이었다. 전에 아이들이 뛰고 놀아서 목욕을 해야 했지만 아내가 아이들을 목욕시켜줄 주 알았다. 임신한 지 5개월이 아내가 말이다.
사실 그전에 집을 돌아다니면서 정리도 하고 설거지도 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첫째 아들 목욕은 내가 다 시켜놓은 상태인지라 막내 아이만 목욕을 시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첫째 아이를 목욕시킨 후에 방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막내 아이가 아빠랑 목욕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란다.
‘잠시 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막내 아이를 목욕시키러 가는 길에 아내에게 밥이라도 해줘라고 이야기를 건넸다.
밥하는 거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말이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은 매우 날카로웠다.
“자기는 아이랑 목욕하는 것이 싫어? 자기는 꼭 이런 식으로 나를 시키더라..”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도 격양된 목소리로
“그렇게 할 거면 밥 하지 마!!”(간이 배 밖으로 나온 듯한 발언?)
나도 격양된 목소리로 했기 때문에 아내가 잠시 잠잠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오산이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나도 아내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
갑자기 큰 소리 내며 화를 내는 아내의 모습에 심히 당황했을 뿐만 아니라 아빠랑 엄마랑 싸우는 모습을 처음 본 첫째 아이는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첫째 아이가 너무 불안했는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해서 더 이상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가장의 권위가 방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이니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버렸다. 마음은 집에 안 들어가거나, 아주 늦게 들어가서 아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갈 곳이 없었다. 나오기는 나왔는데 어디 갈 곳도 없이 집 밖 주변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건 가출인 건가?
할 수 없이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그리고 커피 한잔 시켜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급히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카페에는 정말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하필 내 앞에는 어느 커플이 앉아 있어서 알콩달콩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진짜 보기 싫더라...
저녁이기에는 제법 시간이 흐른 것 같다. 11시 정도 되어가니까 카페도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카페에서 나오게 되었다.
바로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이건 남자의 자존심 문제였다.
그런데 이 밤에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파트 공터에 있는 의자에 일단 앉았다. 그곳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보이는 곳이었다.
1층, 2층., 3층.... 내가 사는 곳을 세워가면서 우리 집이 불이 켜졌나 보게 되었다. 역시 불이 꺼져있었다.
‘지금 집에 조용히 들어갈까?’
선선한 바람은 좋았는데 왜 이리 몹쓸 모기는 왜 이리 많은 건지?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참 이쁘더라!”
아마 100방은 물린 듯하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물리다 보니 도저히 이곳에 계속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집에 갈까 말까 얼마나 고민했는지 말이다.
집을 보니 안방과 거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그런데 한쪽 방만 불이 켜져 있어 보였다. 아마도 아내가 아직 잠을 안 자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었다. 그놈의 모기 때문이라도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들어가서 불이 켜진, 현재 아내가 있는 방은 보지도 않은 체 매우 쿨한 모습으로 안방에 들어서 잤다. 솔직히 바로 잠이 오지는 않았지만..
다음날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아내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만 했다.
그런데 첫째 아이가 서재에 있던 나한테 오더니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아빠! 엄마랑 화해할 생각 없어? 엄마한테 사과할 생각 없어?”
‘짜식~많이 컸네! 아빠랑 엄마랑 화해시키다니...’
결국 직접 보고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아주 유용한 카카톡을 활용하여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풀렸다.
오랫동안 실업자의 생활을 하다 보니 가족들과 부딪히는 일들이 제법 많았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일들인데 왜 이리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렸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힘든 것은 맞지만 가족들도 함께 힘들어하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족 모두가 힘들어하는 나를 도리어 눈치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집의 가장이 힘들어하고 휘청거리고 있는데 가족들이야 오죽하겠어?’
진심으로 미안했다.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힘든 것은 맞고 현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맞지만 내가 너무 나의 감정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서 같이 힘든데 말이다.
그래서 바로 가족들에게 힘들었다. 아빠랑 엄마랑 싸우며 불안해했던 첫째 아이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더 힘들게 하기 싫어 나한테 별 말하지 않고 속으로 꿍꿍 앓고 있었던 아내에게 그리고 보이지 않게 많은 배려와 도움을 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가족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한 차례 다시 찾아오는 고비
실업자의 생활이 곧 일상이 되어가니 예전만큼 마음이 힘들거나, 두렵거나한 마음이 덜 한 듯했다. 사실 정해진 것은 없고 언제 끝날지 모를 실업자의 생활은 그저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들도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와우~실업자 생활을 적응하다니?’ ‘대단하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적응이라고 생각 들지는 않는다. 그저 어느 정도는 내려놓은 것 같았고 어느 정도는 포기한 것 같았다.
밥을 먹어도, 사람을 만나도, 집 안에서 열심히 글을 쓰더라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부담감은 분명 있었다. 힘이 좀 빠진 듯 한 기분이라고 할까?
평소에 하는 이야기도 기쁨 마음보다는 그냥 그런 마음이 커서 그런지 대부분 무반응 아님 짧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사실 아직도 일을 하지 못하고 하나도 나아지지 않으니 밥 맛이 어떻게 좋겠으며, 남들과의 대화가 좋지만은 하겠는가?
가장 먼저 일을 해야만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일을 아직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나를 더욱더 안절부절 해 놓는 것 같다.
상황이 하나도 변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그렇게 편하지 않고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살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내려놓는 마음으로 평상시와 같이 살고자 했던 것 같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실업자의 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날은 혼자 있는 밤이었던 것 같다. 낮에는 어쨌든 마음을 부여잡고 살고자 노력했다면, 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고자 노력했다면 저녁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내가 낮 동안 뭔 일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낮 동안에 열심히 살고자 했던 내 모습이 그렇게 부끄럽게 보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살아도 결국 실업자인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노력을 해도 변화지 않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생활에서 무슨 노력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들이 물 밑 듯이 밀려왔다.
어느 날 밤에는 그런 생각들이 엄청나게 밀려오면서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데 이러다가 죽을 것만 같았다.
‘불쌍한 놈!’, ‘죽을 놈!’, ‘실업자’, ‘벌레 같은 놈’
끝이 보이는 것 같다. 이젠 조금만 더 가면 낭떠러지다. 가면 안되는데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들과 나를 향한 비난의 소리에 낭떠러지 쪽으로 향하게 된다.
방 불을 켰다. 오랜만에 느끼는 지옥 같은 이곳이 너무 두려웠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밤새 지옥 은 이 곳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 어느새 새벽의 동이 텄다. 방 천장에 비치는 나의 그림자가 나를 노려보고 짓누르는 것 같았다. 심장이 털컥 내려앉았고 어느 곳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이 다시 시작했다.
바로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교회를 향했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혹시나 내가 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교회 지하에 있는 기도방으로 향했다. 역시 아무도 없는 그곳은 으쓱한 기분이 들었지만 밤새 힘들게 했던 두려움보다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면서도 부리나케 기도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절차와 방법이 없었다. 말씀을 읽고 찬양을 하고 하는 나름의 방식에서 벗어나 바로 무릎을 꿇고 부르지 졌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모른다. 그분을 향해 부르지 졌다.
이렇게 해 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기보다 오로지 이렇게 기도를 했다.
“살려주세요”
*지금에서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낭떠러지의 끝자락에 서게 돼서 죽게 되었을 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저 살려달라고만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아직 마지막 끝자락에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러한 고통에서 아직은 버티고 이겨낼 만한 힘이 있다는 사실!
펑펑 눈물을 흘렸다. 바닥은 어느새 눈물로 흥건했다. 옷은 펑펑 울은 눈물 덕분에 제법 많이 져서 있었다.
1시간이 흘렀을까?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어느새 내 마음에 평화 같은 것들이 찾아왔다. 상황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곧 일어설 것 같은 기분? 아님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펑펑 울어서 속이 시원한 느낌이기도 하겠지만 어느새 내 마음에 찾아온 것은 평화의 마음이었다. 당장 취업을 하지 못해도 말이다.
‘내가 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단다!’
‘사랑하는 네가 그렇게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함께해 주마!’
보이지 않지만 어느 곳에서 밀려오는 평안한 마음 등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는 죽는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잘 될 거라는 생각에 있어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찰나에 한 번은 더 큰 고비가 오게 마련이다.
‘이래도 포기하지 않을래?’
‘이래도 원망하지 않을래?’
그래도 나는 내 힘으로 아닌 그분의 은혜로 나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그분을 향해 절대 원망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