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슬기로운 방학생활

5편. 부족할 때 배운다

by Happyman
광야를 지나며 2탄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이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광야를 지나며-히즈 윌(Feat 김동욱))


‘광야를 지나며’라는 노래를 계속 듣게 된다. 내 삶이 곧 광야 같다고 생각되었는지 가사 가사가 꼭 나의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그저 나의 삶이 원망스러웠다, 저주받은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나 자신이 초라할 뿐이었다.

계속적으로 노래를 듣게 되니, 미처 들리지 않았던 가사가 내 마음에 와 닿게 되었다.

점점 교만해져만 갔던 나를 광야를 통해 변화시키셨다.

정결하지 못했던 나를 광야를 통해 변화시키셨다.

높아진 나의 자아를 산산이 깨뜨려주셨다.

광야 같은 실업자의 생활로 인하여 나는 철저히 깨져버렸다. 무엇보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교만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고자 했던 일들도 술술 잘 풀리고 여러 곳에서 강의도 하고, 높은 위치에서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교만해져만 갔다.

그래서 남들의 충고도 듣지 않고 자주 무시하였다. 또한 나를 자랑하고자 노력하였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온갖 짜증을 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광야의 길을 걸으니 나 또한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내 힘으로 어느 것도 할 수 없음도 알게 되었고 참 부족하게 살아왔던 나의 삶을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그동안 광야에서 얼마나 소리를 지르며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울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런 응답이 돌아오지 않아 더더욱 힘이 들었는데 왜 그렇게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정말 혼자 서 있다 보니 철저히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이 한꺼번에 많은 것들을 주셨거나, 해결해 주셨다면 나는 아마 나를 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중요한 것은 그냥 지나 간체 예전처럼 그냥 지나갔을 것이며 절대 나의 부족한 부분과 연약한 부분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도리어 더 깊게 숨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홀로 서있는 그곳에서, 너무 힘들다고 느껴지는 그곳에서 나를 더욱 보게 되었고 더 깊게 깨닫게 되었다.

한 번의 생각이 아니었다. 지난 모든 삶을 돌이켜보면서 깊이 반성도 하게 되고, 여러 번 다짐도 했었다. 아마도 한 번이었다면 바로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계속적으로 생각하고 다짐하다 보니 내 마음 깊이 새겨지게 되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도 절대 내 마음 깊이 새겨진 것들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광야가 때론 나에게 정말 필요한 시간인 줄..

처음에는 그저 힘들기만 하고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도리어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깊이 깨닫게 된다.


나를 나 답게 해주는 것

어쩌다 실업자 생활을 한 지 4개월 차이다. 언제 길고 긴 터널을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실업자의 생활이 곧 나의 일상이 되어 제법 이 삶도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에는 죽을 것만 같았다. 광야에서 혼자 있다고만 생각했던 나는 때론 외로우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매우 컸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과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이겨내는데 굉장히 힘들기만 했다.

긍졍적인 삶보다는 어둡고 부정적인 삶이 많았었다. 삶을 살기 위한 열심과 열정보다는 포기할 생각이 가득했다. 우울, 죽음, 화남, 짜증 등 평소 나 답지 않는 모습이 대부분이었고 어색하게 변해버린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은 정말 죽을 맛이다. 끝이 보여야 조금이나마 힘을 낼 텐데, 도저히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끝이 진짜 있는 건지? 그저 답답한 심정뿐이었다.

상황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점차 악화되어가는 듯 한 기분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조금이나마 일어서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그것도 한순 간 뿐이었다. 일어서고 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또 넘어지고.. 얼마나 반복을 했는지 어느새 그것마저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더 이상 어떠한 희망도 느끼지 못했고 꼭 죽음의 길을 가는 듯 한 무서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밤을 얼마나 지새웠는지?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몰아세운 그 사람들이 생각이 나면서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빛에 비친 천장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있었다. 그림자를 보는 순간 소름이 끼칠 만큼 너무 무서웠다.

“너 그래도 안 죽을 거야?”

“너를 그렇게 만든 그 사람들 복수하고 죽여 버려!”

너무 무서운 자리였고 이러다가 뭔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부랴부랴 옷을 챙기고 교회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기도 방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이야기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펑펑 울면서 그저 한마디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

“살려주세요!”


혼자 있는 시간들이 너무 두려웠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시간이 나의 마지막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키고 했다.

이러다가 큰일이 벌어질까 싶어서 아님 오늘 어떻게든 끝을 보고 싶어 집 근처에 있는 산으로 무작정 가게 되었다.

등산 초입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평소 등산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힘들어했던 나는 등산길이 그저 힘들기만 할 뿐이었다.

정상을 바라보며 걷는 등산길은 드라마에서 나오듯 정상을 올라가려면 어려움과 시련이 있듯이 지금의 실업자의 생활이 정상을 가려고 하는 한 과정임을 깨닫는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사실 죽음 때문에 간 것이었지만 죽음보다는 등산하는 그 길이 너무 힘들고 고돼서 도저히 죽음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내 마음의 불편함은 여전했다.

고통스러운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점차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 때였다. 어느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제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정신 차려~!”

“그곳으로 가면 안 돼! 다시 돌아오라고?”

“많이 힘들었구나?”

사람들의 위로가 참 필요했다. 어설픈 이야기 말고 그저 나를 위로하는 말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우연히 김동호 목사님이 하고 계시는 CMP콘서트가 서울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CMP콘서트는 암환자들과 가족들을 위로하는 콘서트다.

콘서트의 목적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 전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을 자주 듣곤 했는데 아마 이 곳에서도 김동호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실 거라는 단순한 생각 그리고 그 말씀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힘을 업고 싶어 나는 그저 구분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가는 길에 콘서트를 통해 내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싶은 생각이 정말 컸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상황들이 조금이나마 바뀌기를 바랐다.

콘서트장에 들어갔을 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분도 계셨고, 모자를 쓰고 계신 분들도 계셨고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있었다.

사실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김동호 목사님도 암이 걸리셔서 제법 많은 고생을 하신 분이셨다. 그런데 김동호 목사님은 평생 목회를 하셨신 분이셨는데 전과 다르게 암환자들과 가족들을`위로하고 돕는 일에 지금 헌신을 하고 계신다.

콘서트 내내 김동호 목사님이 전하신 하시는 말씀이 마음 깊게 남긴다.

모든 것이 힘드셨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암이 걸렸다고 하면 아마도 죽겠다고,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은 힘들어하는 것에만 있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셨단다.

“당황했다. 그러나 무섭지는 않았다.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게 됐다. 목회자로서 수많은 임종과 장례를 치렀지만 죽음과 나 사이엔 거리가 있었다. 남의 일, 객관적으로 보던 죽음이 나의 일, 주관적으로 코 앞에 다가오니 당황스러웠다”

(김동호 목사님 인터뷰/2020.06.11. 조선일보)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이러한 마음을 주셨단다.

‘너는 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목사라고 암이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 이후로 삶이 크게 변화지 않았지만, 암이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고 계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계셨지만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점점 빠져드는 낙심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생각과 다짐 이후에 정기적인 치료를 꾸준히 받으셨고, 등산 등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셨으며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 새)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 무엇보다 CMP 콘서트를 통해 많은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계신다.

그날 참여한 분들을 보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다들 암을 몸에 품고 계시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그저 평범하게 보였다. 어두운 그곳에서 오로지 좌절하면서 지내고 계실 것 같다고 생각하였는데 그저 평범한 얼굴 그리고 조금이나마 행복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들과 생각해보았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 오랫동안 힘들게 느끼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만난 그분들도 하나도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암이 하나도 치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희망을 만들고, 어떻게든 깊은 두려움과 어려움에서 나와 살고자 노력하는 그들이 보였고 느껴졌다.

그렇게 보던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너는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너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많은 사람들도 어려움이 있지만 다들 그렇게 산단다!”

위로가 되었다. 어떻든 많은 이들이 나와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겨내려고 노력하며 산다. 오랫동안 실업자의 생활을 해보니 나만 힘든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나만 저주받은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콘서트를 통해 전해지는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위로와 함께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과 다르게 이겨내고자 노력하였다. 어떻게 보면 예전의 나다운 모습으로 다시 바뀌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 상처 받은 내 마음을 다독거려줘야 할 것 같았다. 납득이 되지 않는 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나도 우울한 감정에 깊이 빠져 있기보다는 늘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성취하고 성과를 이루는 것을 즐기고자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 집중하는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게 되고 스스로 도움이 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또한 긍정적인 마음 그리고 열심과 열정을 다해 주어진 사명을 완성시켜 나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퇴사와 어쩌다 실업자의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전부터 해왔던 많은 사명들을 한순간에 잊어버리게 되었다. 순식간에 잊어버린 나는 나 답지 않게 살게 되었다. 나답지 않는 내 모습이 제법 낯설기만 하다.

점점 깊이 낭떠러지에 빠져들기만 했고, 결국 죽음을 선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우울하기만 했고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 이 상황들이 나의 마음을 점차 조여 오고 있었다.

남들도 그렇게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어떻게든 일어서고자 노력하는 그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나도 모르게 상처 받은 내 마음을 위로받는 순간 이제는 우울의 늪에 따져 드는 것이 아니라 이젠 나답게 살아가야겠다는 용기가 들었다.

실업자의 하루 생활이 언제부터 시작되겠는가? 시간이 널널 하다 보니 일어나면 그때부터 실업자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8시든 9시든 일어나면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다. 일어나서 씻지도 않는 경우도 제법 많았고 밥 먹는 것도 귀찮아 밥을 거르는 경우도 제법 많았다. 그저 집안에서 지내면서 누워있는 노숙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그것마저도 일상이 되어갔고, 일어설 마음보다는 더 깊이 그 삶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데 일어서야겠다는 생각과 나다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의 시작을 좀 더 일찍 시작하였다.

“이른 새벽 6시”

당연히 자주 씻고, 정장은 아니지만 깔끔한 옷을 일부러 챙겨 입었다. 또한 배고파서 먹기보다는 무너진 삶을 조금이나마 바꾸기 위해서 일부러 밥을 챙겨 먹었다. 예전에는 별거 아닌 일들이었는데 이러한 사소한 일들조차 참 소중한 일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도 실업자이기 때문에 전과 다른 비용이 적게 들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인근 도서관에서 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10권 정도를 빌려 원 없이 책을 읽었나 갔다. 독서를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알게 된 것들과 나의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도 함께 하게 되었다.

책을 살 돈이 없어서 온라인에서 홍보하는 ‘서평단 모집’ 찾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곳에서 무료로 책을 받게 되었는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나의 의견을 온라인(블로그/인터넷서점/인스타그램 등)상에 올리기도 하였다.

머리가 복잡해서 나의 솔직한 마음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면 심리 정서적으로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서 더더욱 글쓰기에 전념하였다.

글을 쓰면서 나의 솔직한 감정들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상처 받은 나의 감정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오랫동안 실업자의 생활을 하다 보니 금세 지금의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것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갔을 대 자연스럽게 바뀔 뿐이었지 우리가 정말 원했던 깜짝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상처 받은 마음은 치료받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면 점점 악화될 뿐이었다. 과거에 어떻게 살든 참 낯선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울하기만 하고 힘들어하는 모습 참 낯설다.

정말 원치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법 당황스럽게 힘들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빨리 내 마음을 위로해 줘야 했다. 그 시간을 놓치면, 골드타임을 놓치면 정말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업자의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이와 같은 상처 받은 나의 마음이었다. 아직도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니 모든 상황이 그저 악화되어만 가는 것처럼 보였고, 일어설 힘도 용기도 없었던 것이었다.

긴급한 내 마음을 치유받기 위해서 심리치료까지도 받았다.

나는 평소 자살까지 하고자 하는 매우 위험한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심리치료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더더욱 어쩌다 실업자로 인해 무너진 나의 마음과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 4편. 처음 경험하는 심리상담

오죽하면 받았겠냐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사실 죽을 것만 같아서 심리상담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 같다.

보통 심리 상담을 받으면 고가의 금액을 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힘들고 우울해도 심리 상담을 도리어 꺼리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이번에는 돈이 문제라 나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활 수 없이 심리 상담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저런 상담소를 알아보다가 근로복지공단에서 진행하는 심리상담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통해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을 경험한 이들에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듯했다.

더욱 좋았던 것은 많은 회기의 상담을 진행하지만 자부담, 개인 돈은 절대 들지 않는 것이었다. 돈이 지불되지 않아서 삼담의 질도 그럴 것이 아니냐며 처음에는 다소 고민을 했었지만 생사의 고비에 이럴게 저렇게 따질 부분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3~4일 후에 상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상담받는 장소가 제법 멀어서 전화로 상담을 하게 되었다. 전화로 1시간 정도의 상담이었다.

전화로 받는 심리 상담이었지만 사람을 보며 나의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고 편했다.

지난 많은 일들을 상담사에 이야기를 했다. 나의 솔직한 감정도 이야기를 했다. 화도 납니다. 우울하고 눈물도 제법 많이 흘렸습니다라고 솔직한 감정 그대로 이야기하였다.

역시 알고 있던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리고 항상 잘하고 계셨다.! , 대단한 분이십니다 라고 나의 자존감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더더욱 직장인 괴롭힘으로 정말 괴로워할 때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잘 듣고는 충분히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셨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곤 했다.

사실 일을 그만두고 나를 괴롭혔던 그 사람에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서 억울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많이 힘들었었다. 내가 당한 느낌이 많이 컸으니까...

그런데 충분히 잘하셨다며 도리어 나를 응원해주는 상담사의 모습에 나는 기존 묶고 있었던 분노를 이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 분노가 쌓여있었다면 사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 같다. 어쨌든 어떠한 일은 벌어졌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나의 감정이 그랬다.

이래서 사람들이 돈을 들여가면서 상담을 하는 것이구나 알 수 있었고 괴롭고 힘들 때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상담가를 통한 심리 상담이 훨씬 더 좋다는 사실을 깊게 경험하게 되었다.

실업자가 되고 나니 처음 해 보는 것들이 참 많았다. 내가 심리 상담을 받을 줄 한 번도 상상도 안 했는데 말이다. 심리상담을 통해 한층 더 마음이 편해졌다. 늘 어둡게만 보였던 실업자의 생활이 다소 밝아진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과 감정으로 나는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든 간에 다시 일어서겠다는 용기가 생겼다는 점과 그래도 잊어졌던 나의 평소의 삶을 다소 회복되면서 나답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희망을 보게 되었다.


사람다움으로 사는 것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눈물 날 일이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하니 2집, 행복 ccm 가사 中)

지난 4개월의 고통스러웠던 실업자의 생활

생각하기도 싫은 실업자의 생활이 왜 나한테 일어났는지 늘 궁금했고 때론 억울하였다.

항상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고 힘들고 어려워도 늘 항상 사명을 감당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일들이 나한테 일어났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며 원망도 해보고, 소리를 질러도 보았지만 아무런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우연히 알게 된 CCM ‘행복’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왜 나한테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는 사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지만 사실은 사명을 가장한 나의 욕심을 채우는데 최선을 다했다.

겸손하게 살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은 나를 높이는데 집중하였고 나를 자랑하며 살았다.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아니며 어떻게든 돈만 벌려고 노력했으며 본질적인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좀 더 돈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었다.

나의 것을 남들에게 주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혹여나 남들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살벌하게 살았다.

정석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남들이 가지 않는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 길이 맞다며 우기면서 말이다.

그분은 내가 잘못 가고 있고 어긋나고 있다고 먼저부터 알고 계셨다. 그런데 내가 깨닫고 스스로 돌이키기를 원하셨다.

그저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돌이키기를 기다리셨다. 놀라운 방법으로 나를 돌이킬 수도 있었겠지만 스스로 깨닫고 돌아서기를 바라셨다.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되고 다양한 일들로 어려움이 생길 때 사실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고 그러한 생각들을 전혀 하지를 못했다.

어려움이 생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좀 더 빨리 돌이켜야 했었는데 도리어 원망과 불평만 할 뿐이었다.

그분은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셨던 것 같았다.

예전처럼 교만하고 나를 위해서 살기보다는 정말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셨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눈물 날 일이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삶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고 사는 삶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삶

이러한 삶이야말로 사람다운 삶이 아닐까 한다. 비록 내가 그렇게 살지는 못했지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기를 소망해본다.

그분은 이런 삶을 통해 나를 깨닫게 하셨고, 4개월 동안의 광야의 길을 통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를 훈련시키셨다.

‘그만 멈추고 다시 돌이켜!.’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 삶이 곧 화려하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나의 삶이 많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는 예전처럼 살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하루하루 정결하게 살고...

가진 것이 적어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감사하며 살며...

내게 주신 작은 힘자랑하지 않고 남을 위해 나눠주며 살며...

눈물 나는 일이 많지만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며...

억울한 일 많으나 원망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살며...


이제 다시 일어섰습니다.

실업자의 생활 4개월이 나의 삶의 일상이 되어보니 하루하루가 참 빨리 지나가는 듯하다. 지난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지옥 같았다. 우리 아들이 가지고 싶었던 초능력 중에 하나가 바로 “시간을 거스르는 초능력”인데, 만약 그러한 초능력이 있다면 4개월 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힘이 들기만 하였다.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소망해본다. 어떻게든 기회가 된다면 전의 일상처럼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컸다.

정장 입고 어엿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고, 부딪히는 일이 있더라도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계속이 든다. 그런데 그 일들을 하지 못하니 마음이 그저 초초해질 뿐이다.

이곳저곳에 취업 원서를 내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최종 면접까지 오르게 되어 이제 지긋지긋한 이 실업자의 생활이 끝이 날 줄 알았는데 결국 떨어지게 되었다. 처음부터 떨어졌어도 실망이 컸을 텐데 최종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지게 되니 그 실망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더 들었다.

지인분께서 어느 날 연락이 오셨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취업 자리에 대한 공지문이었다. 무조건 가라 말씀하시기보다 깊이 생각해보고 스스로 한번 결정해보라는 이야기였다.

공지문을 보니 어느 센터의 장을 뽑는다는 이야기였다. 일하는 곳도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곳이기도 해서 제법 좋은 점도 있었지만 전과 다른 분야와 직위였다.

어느 센터의 장으로, 총책임자로서 일하게 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들었고 전혀 경험하지 못한 분야였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기도 하였다.

더더욱 전의 직장에 대한 트라우마라고 할까?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다시 일어나게 될까 걱정이 많이 들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나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이, 당황스러운 일들이 또다시 일어나서 일을 다시 그만두면 어쩌지라는 그런 생각이 들게 되니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었다.

예전같이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깊이 대화를 하면서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오로지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에 좀 더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질까 싶어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아내와 대화를 나눴다.

예전과 같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결심을 하였다. 돈을 더 벌고자 하고,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직장을 선택하지 않기로 하였다,

비록 더 높은 자리이고, 월급을 더 준다고 해도 나의 본질적인 부분과 나의 사명에서 벗어나는 부분이라면 과감히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에 일어난 일들이 또다시 일어나면 어쩌지라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더 힘들어지고 정말 무너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 말이다.


그런데 새벽예배를 다녀온 후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 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 길이 그분이 인도하신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

어떻게 보면 어떤 곳이든 힘든 일들 있는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그것들이 무섭다고 포기해 버리면 어쨌든 결국 일을 평생 못한다는 사실..

돈을 더 벌고 나의 입맛에 맞는 직장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일, 사회복지사로서 해야 할 사명이 나의 본질적인 이유라는 사실..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하루하루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4개월 동안 얼마나 많이 취업 원서를 써봤겠는가? 이번의 취업 원서를 작성하는 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취업 원서들이 제법 업그레이드되어 있었고 나 또한 많이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몇 주간 원서를 내고, 면접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비록 될지 안 될지 모르겠으나 예전과 다르게 조급함은 없었다. 안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그러한 걱정조차 없었다. 그저 담담했다.

그간 4개월 동안 나의 마음도 많이 훈련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의 삶이 나의 의지와 생각대로 되지 않는 사실도 충분히 깨달아서 그런지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그저 나에게 이런 기회가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면접은 1시 50분경에 이루어졌다. 면접관들이 2~3명 정도 있겠다 생각하였는데 8명의 면접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동안 많이 면접을 봐서 그런지 떨리는 마음은 없었고 면접관들의 질문 때문에 당황조차 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까지 다 하게 되었다.

어느 면접관분은 나의 대답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셨고 좋은 의견이라 칭찬까지 해주실 정도였다. 내 평생 면접관을 통해 칭찬을 받은 적은 처음이다.

순간 위로받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그동안 고생도 많았다는 위로, 알게 모르게 성장한 나의 모습에 대한 격려와 칭찬인 듯했다.

면접은 약 20분가량 이루어졌고 면접 당일 오후쯤에 합격이라는 통지를 받게 되었다.

합격이라는 통지를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흥분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울컥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합격 통지를 받은 소식을 옆에 있던 아내에게 전했더니 아내의 반응은 나보다 더 했다. 지금까지 숨겨왔던 아내의 마음을 한 순간에 폭발한 듯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서로 얼싸안으며 한동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합격이 되어서 기쁜 것도 기쁜 것이었지만 4개월 동안 고생한 그 일들이 생각도 나고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라고 위로를 받는 것 같아 깊은 감격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실업자의 생활에서 사직서를 내게 되었다.

나는 실업자의 생활에서 퇴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실업자의 생활에서 졸업하게 되었다.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으로 다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당당한 아빠, 남편, 아들로서 다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무너진 그곳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소망하는 것

막상 취업이 되니 기분이 홀가분하면서도 이제 해야 할 책임감에 부담감도 적지 않게 밀려온다.

취업이 다시 되었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제부터는 예전과 다르게 살아야 함을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갈 수 있는 생겼다. 그리고 옷장 끝 쪽에 걸어두었던 정장을 다시 찾아 입게 되었다. 실업자 생활을 하면서 늘 언제나 편한 복장만 입고 있다가 다시 정장을 입게 되니 마음이 많이 설렌다.

사실 실업자로 생활을 하였을 때에 정장을 너무 입고 싶었다. 예전에 나의 정장은 곧 스파이더맨의 슈트처럼 나를 더욱 멋지게 살게 하였다. 정장을 통해 내가 좀 더 멋진 사람으로 표현되었고 전문가로서의 모습으로 현장에서 참 열심히 뛰어다녔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쁜 일을 할 수 없었던 실업자의 생활이 너무 힘들기도 하면서, 과거의 화려했던 그때가 너무 그리웠다. 더욱 그리움 이상으로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참 불쌍하게 여겨졌다.

이제는 다시 정장을 찾아 입는다. 첫 출근하기 전 옷장 끝 쪽에 걸어두었던 정장을 다시 꺼내 다리미로 조심히 다렸다. 이제는 이 정장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할 것이며, 화려하지 않지만 다시 그 멋진 일들을 할 수 있기에 조심히 때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정장을 다렸다.

정장을 다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이제 지옥 같은 이 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속 시원함도 있었지만 과거 너무 교만했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았던 나의 모습이 문 듯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일하게 된다면 교만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야지!’

‘나를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도움이 필요한 그들을 돕는 데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지!’

‘나를 높이려고 하는 것보다 주변의 사람들을 높여줘야지’

‘어려운 상황에 대해 원망하기보다 살아있음에, 할 수 있음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야지!’

그동안 나는 왜 이리 착각하며 살았을까? 나를 통해 힘든 이들을 왜 돌보지 못하였을까? 나를 위해서 왜 이리 열심히 살았을까?

새롭게 갈 곳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곳을 통해 이루어질 많은 일들을 기대해본다.

몇몇의 지인 분들의 염려 섞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자기의 모든 경력 인정받지 못하는데 괜찮겠어?”

“센터장인데도 급여가 제법 적을 텐데 괜찮겠어?”

“처음 만나는 장애인 분일 텐데 괜찮겠어?”

“그 분야에 경험이 적는데 괜찮겠어?”

다시 시작하는 마음 때문에 제법 많이 흥분된 상태였는데 몇몇 지인의 염려가 나를 참 어렵게 만들기는 했다. 사실 이 곳에서 다시 일하게 되었을 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작도 안 해보고 염려하거나 걱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지난 4개월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죽을 것만 같이 너무 힘든 시기였다는 것은 정말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연약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점점 교만해지고 있던 내가 잠시 내려놓을 수 있어서, 사람다움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어서 나에게는 그 시간들이 나에게 있어서 참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과거에 나는 많은 이들에게 빚진 것이 많다.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나를 위해 살았던 것이 첫 번째의 빚이고,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것이 나의 두 번째 빚이다. 늘 원망만 하고 사람들을 미워했던 것은 나의 세 번째의 빚이다. 이러한 빚은 갚아야 한다.

때론 그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금 있는 이 곳에서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고 좋은 것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사명자의 모습처럼 소외된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돕는 그런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

예전처럼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어떻게 보면 그분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은 지난 나의 과거의 삶을 버리고 새롭게, 진심 어린 사명자의 모습처럼 살기를 원하셨기에 이 곳으로 인도하셨음을 나는 생각하고 믿는다.

그래서 지인 분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염려스러운 것들이 있을지는 모르나 분명한 것은 그것들이 나를 혼란스럽거나 어렵게 만들지 않는다.

때론 나를 통해서, 이 곳을 통해서 새롭게 만들어질 많은 것들이 기대가 된다.

다이어리에 다짐한 것들을 천천히 적어놓는다. 그리고 하나하나씩 삶에 적용시키기 위해 노력을 한다. 오래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잘 안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살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첫 번째 적용 부분은 과거에 대하여 어떤 부분이라도 원망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그들, 나를 괴롭혔던 그들,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내쫓았던 그들... 나를 밤새 자지 못하도록 무례한 그들마저도 진심으로 용서하면서 내 입으로 절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새벽기도를 하러 갈 때면 그들의 삶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기도를 한다. 진심으로 말이다.

두 번째는 나의 권위만 내세우기보다 새롭게 함께 할 직원들을 조금이나마 섬기려고 한다. 섬김 받기보다는 섬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센터장이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버거워하는 것들이 있다면 조정하고 때론 내가 직접 하여 직원들의 부담감을 잠시나마 줄이려고 한다.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나의 이야기를 줄이고 직원들의 이야기를 경청을 하려고 한다.

세 번째는 매일매일 감사하는 것이다. 어려움과 힘듬이 있으니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제법 많이 늘었다. 이렇게 살아있음에도 감사하고 부족한 나에게 사명자로 명해 주신 것도 감사하다. 못난 자를 다듬어 주시기 위해 복된 광야의 길로 인도하심도 감사하다. 네 번째는 나 다운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남들의 이야기와 남들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흔들리지 않기로 하였다. 그저 나다운 모습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특별한 것보다 남들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감사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 원망과 불평하지 않는 것 등이 나다운 모습이라는 아닐까 한다.

좀 더 화려하지 않아도 되고,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와 이곳을 통해 많은 소외된 분들을 돕고 싶다. 나의 사명을 완성시켜 나가고 싶다.


퇴사의 추억 3탄 ‘퇴사를 통해 배운 것들 ’

집보다는 회사에서 주로 생활을 하는 시간들이 많아서 때론 회사가 나를 성장시키고 배우게 만드는 전문학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그동안 나는 회사생활을 통해 몇 가지를 배우고 졸업을 한 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참 어렵고 힘든 것이었지만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 일들로 인해 내가 좀 더 어른이 되었고 성장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첫 번째, 나는 회사 생활에서 다양한 일들을 수행함으로써 나의 달란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는 참 많겠지만, 나름 생각해보았을 때 나의 달란트가 분명 있음을 확신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잘 작성한다.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는 잘 쓰는 것에 대해 제법 많은 곳에서 영향을 주게 되었는데 특별히 공모사업 신청에 있어서 제법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오로지 열심히 작성하는 것에만 집중하였다면, 수시로 작성하고 보완하는 일들을 반복하다 보니 쓰고자 하는 글들이 한층 더 향상된 모습도 보였다. 좀 더 매력적인 공모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다 보니 작성에 대한 무궁무진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달란트를 나눠주는 영광도 누리게 되었다.

또한 처음에는 책 출간하는 것이 제법 힘들었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내는 것은 처음보다 많이 수월하였다. 처음에는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 수천 번 책 내용을 수정하였다면,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보다 수월하게 글을 쓰고 보다 짧게 글을 수정하여 완성도 높은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는, 스스로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기존까지 나를 알리고, 남들에게 특별히 윗 상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다하였다. 그래서 생각보다 덜한 반응이 오면 많은 상처를 받곤 하였다. 나를 못 알아주는 그 사람들에게만 그저 섭섭하였고 그들의 반응에만 신경 쓰다 보니 나를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입맛에 따라 사는 그런 무능력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인정은 원래 차갑기만 하는 것이다. 자기도 자기를 신경 쓸 여력도 없을 텐데 더더욱 남들의 사정을 보고 이해하는 모습이야말로 그들의 삶에서는 정말 불필요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당신의 삶에 대해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당신뿐이다.

남들의 인정과 칭찬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한 것과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낸 것이 중요한 것이지 솔직히 남들의 시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시선과 이런저런 평가가 혹여나 당신의 길을 방해한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나의 인생의 매우 불편한 것들이 아니겠는가?

세 번째는, 회사는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회사생활 속에서 어쩔 때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가도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기분이 잡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좋은 것이 많았냐? 나쁜 것이 많았냐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들이 참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참 불편한 경험들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회사생활이라고 생각해서 그렇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좋은 것들이 많았었다. 나쁜 것들만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심리적 성향 일지는 모르겠으나 나쁜 기억만큼 좋은 경험들도 참 많았다.

최선을 다했던 결과 나와, 많은 주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날 힘들게 했던 사람들보다 나를 좀 더 이해하고 격려해주기 위해 노력했던 직원들도 참 많았다. 잘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해 온 나에게 상을 받는 기회도 많았고, 나를 존중하고 존경해주는 그런 이들도 제법 많았다.

많은 이들이 그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포함하여 왜 이리 긍정적이고 행복한 일들보다 나쁘고 힘들었던 일들만 여전히 지금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퇴사를 하고, 어쩌다 실업자 생활을 하면서 더더욱 그러한 나쁜 감정이 악화되거나 심화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안 좋은 기억을 계속 남겨두고 살아간다면 결국 피해는 나한테 돌아오게 되었다. 그들은 절대 변화지 않았고 언제부터인가 나를 잊고 살았을 텐데 나는 그렇지 못하게 그들을 향한 복수심에 불타 나만 죽어가고 있었다.

안 좋은 추억과 기억은 되도록 빨리 잊는 편이 낫다. 그러나 좋은 추억과 기억은 마음 깊이 새겨둠으로써 시간이 지난 어느 때에도 그때 경험한 좋은 감정과 올바른 태도 등을 잘 적용해야 할 것이다.

혹여나 나쁜 경험이 있었다면 깊은 생각보다는 그때 당시로 돌아가 어떻게 하면 좀 더 보완할 수 있을 것인지만 생각해봤으면 한다. 인생은 정말 돌고 도는 듯하다. 직장생활이야말로 그때 날 힘들게 했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또 만날지 모른다.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예전처럼 똑같이 행동하고 대하겠는가? 그가 변화되지 않는 것 충분히 알지 않는가? 어느 정도는 내려놓는 마음으로 예전과 다른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비슷한 그 사람을 대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뿐만 아니라 당신이 살고 성장한다.

네 번째는 내가 해야 할 본질적인 일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곧 사명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존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의 사명을 보다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나의 삶에 욕심을 부려 사명감을 흐릿하게 만들었고, 늘 부정적인 생각들만 가득하여 분명한 사명을 보지 못했다. 지난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기뻐했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고, 힘들고 어려워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소외된 그들을 돕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불분명했다. 어떻게 보면 말로만 사명 사명이라고 이야기를 했지, 사실 나의 사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힘들고 고난이 와도 버티기보다 힘들기만 바빴고 쉽게 포기를 했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사회복지사 밖에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서, 과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많은 걸림돌 중 특히 사람과의 어려움들에게 대한 부분에 대해 더욱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또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한층 더 향상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힘들게 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을 때에 책을 읽었다면 지금은 사명을 좀 더 완성시켜나가기 위해서 책을 읽고 삶의 현장에서 하나씩 하나씩 적용시켜나가고 있다.

다섯 번째는 사람들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늘 회사생활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줄곧 듣는 이야기가 바로 사람의 관계가 제일 힘든 것이며 원만한 사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이야기가 불필요하게 느꼈고,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는 체 그때그때마다 내 감정 그대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제법 사람들과의 마찰이 많았었고, 많은 상처들도 받았었다. 살아가면서 일일이 사람들에 대해 반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좋은 관계를 유지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이 분야에 대해서는 실패자일 수도 있다.

하여튼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참 중요함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서 오로지 직원들을 압박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며 잘못된 일을 하더라도 오로지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그렇지만 모든 관계 속에 ‘존중“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직위가 높을 뿐이지 내가 그 사람들 위가 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최소한 존중을 해야 하고, 마음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최소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섯 번째는 나는 기존에 많은 것을 경험하고 얻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좋은 것 아홉 개보다 나쁜 것 하나가 더 커 보이는 걸까?

사실 나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당당히 결혼도 했고 자식들도 이제 셋이나 된다. 버젓한 집도 있고 차도 2대씩이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왔고, 있는 곳에서 많은 성과를 내면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분수에 맞지 않게 많은 것들을 받았음에도 나를 상처 준 그것들에게만 신경을 쓰고 속상해하였으며 몇몇 사람들의 불인정으로 속상해하거나 섭섭하게 생각하였다.

안정적인 수입과, 인프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사회적인 지위 등 현재 내가 충분히 누리고 있는 것들은 잘 보이지 않고 상사가 야근시키는 것, 불합리한 업무 등의 스트레스가 더 크게 부각되기 마련이다. (장수한 외 지음/퇴사 학교/알에이치코리아)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한 나에게 하나만 주어져도 감사한 일인데 그 모든 것을 누린 것도 감사하다. 욕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잔뜩 낀 내 눈앞에 그것들을 하나씩 벗겨보니 이제야 감사한 일들이 많이 보이고 느껴진다.


부족할 때 배운다.

나는 한 가지 이상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결핍을 누구에게나 보이고 싶지 않아서 숨기거나 더 거대한 것들로 포장하여 보여주곤 하였다.

어쩌다 실업자가 되어서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바로 나의 부족함에 때문에 생겨난 지금의 현실 즉, 하나도 할 수가 없고 무능력한 나의 비참한 현실 때문에 점차 밀려오는 비참함이었다.

비참함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나의 부족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너무 웃긴 것은 그러한 비참한 나의 부족함에 대한 한탄도 있었지만 더더욱 그것을 숨기고 더 좋은 것들로 포장하려는 나의 모습이었던 것이었다.

광야의 길에 혼자 있다고 느껴질 때 처음에는 참 비참한 생각에 가득하여 오로지 죽고 싶은 생각만 들뿐이었다. 죽은 나로 인하여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것 같은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나의 부족함 때문에 배우게 된 것들이 참 많았다. 때론 부족함 때문에 독을 만들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찌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의 부족함으로 지난 나의 삶을 다시 살펴볼 수가 있었다. 나로 인하여 상처 받은 그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과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는다 할지라도 예전처럼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고 수천번 다짐을 해볼 수 있었다.

또한 내가 가야 할 길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그 길을 무작정 가려고만 했던 지난 삶을 반성해 가면서 보다 탄탄히 나를 준비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나는 나의 달란트를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남과 비교해보았을 때 현격히 부족한 사람으로만 치부해 왔었지 내가 무슨 달란트(재능)를 가지고 있냐며 비아냥거릴 때가 참 많았었다.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었던 실업자 생활 중 며칠간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할 수 없었고 생각조차 하지를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남들보다 시간이 많다 보니 나의 부족함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무엇인가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작년에 우연하게 책 한 권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데, 평소 2번째 책을 내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두 번째 책 원고를 작성할 시간도 여유가 없어서 선 듯 책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실업자 생활을 하다 보니 남들보다 시간의 여유가 많았었다. 지나친 여유와 시간 덕분에 2번째의 원고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3번째 책 원고를 완성 시 켜나고 있고 더더욱 그렇게 선정되기 어렵다던 브런치 작가가 되어 작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 실업자의 생활을 돌이켜 보았을 때에 그렇게 크게 보였던 나의 부족함이 도리어 나를 더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들이었고, 생소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 부족함만 보고 있었는지? 그리고 부족함 때문에 도리어 독을 만들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이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독을 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최고의 인체 공학으로 만든 나이키 신발을 신은 사람과 짝퉁인 나이스 신발을 신은 사람이 달리면, 나이스를 신은 사람이 이긴다고 한다. 이유는, 비싼 신발을 신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느라고 상표가 보이도록 느리게 뛰는데 짝퉁 신발을 신은 사람은 누가 볼까 봐 부끄러워서 불이 나도록 달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규장, 한재욱, 인문학을 하나님께)

나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나는 그분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나는 그분을 만나면서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의 부족함을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거짓되게 살았다면 그분 앞에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내려놓고 진실되게 살게 되니 도리어 그 부족함들이 오히려 나의 강점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한 가지 이상의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 나처럼 그러한 작은 부족함이라고 할지라도 감추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삶은 부족함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규장, 한재욱, 인문학을 하나님께)

지금 현재 실업 등과 같은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저 자신의 부족함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가?

우리 다 함께 다르게 해석해보자. 좀 더 나의 부족함을 쿨하게 인정하고 자신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렇게 해석하고 좀 더 한 발자국 나아갈 때에 평소 보지 못한 그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부족하다고 한탄하기보다, 나의 현실이 절망스럽다고만 생각하기보다 또 다른 시각과 마인드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분이 부족함을 통해 배우게 하시려고 광야 같은 이 곳으로 나를 인도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광야는 고통스러운 곳이 아니고 도리어 나를 변화시키는 그런 축복의 자리였음을 지금에서야 고백해 본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


슬기로운 경제생활습관

실업자 생활을 하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평소 넉넉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부족하게 산적이 없어서 그런지 실업자의 생활이 그렇게 좋지 많은 않았다.

참 감사하게도 며칠 전에 받게 된 퇴직금이 나에게 있었다. 당장 어려움이 있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3개월 이후의 삶은 정말 힘들어질게 뻔했다.

그래서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을 파악하고 그때까지 잘 살려면 슬기로운 경제생활습관이 필요하였다. 무조건 아끼고 안 쓰는 것이 해결점은 아니었다. 더더욱 코로나 19로 인하여 두 아들의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줘야 했고, 입덧이 심한 아내 때문에 집에서 무엇인가 해 먹기보다는 할 수 없이 밖에서 회식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치게 되었다.

우리 아들들이 이렇게 잘 먹는지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챙겨주면 어느 세 나한테 와서 배고프다고 한다. 그러면 간식거리를 챙겨 아들들한테 주면 어느 세 점심이 다가온다. 점심은 전과 똑같은 음식을 줄 수 없어서 계절에 맞게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으로 준비를 한다. 어쩔 때는 아이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서 하나도 먹지 않고 나 혼자서 그 모든 음식을 다 먹을 때도 있었다.

저녁은 뭐 다른가? 어떻게 하면 자식들 먹이려고 다른 음식을 만들어 세팅을 한다. 결국 맛있지 않은지 잘 먹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1주일에 한번 정도 장을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하루에 세끼를 다 챙겨주고 간식까지 챙겨주니 장보는 횟수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 중심으로 간단히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아이들 몸에 좋은 음식들 위주로 사는 경우가 많아서 장보는 값이 2~3배 더 늘어난 듯하다.

그래서 다른 조치를 취하여야만 했다. 매번 다른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보다 메인 음식 하나를 만들고 기본 반찬들을 만들어 며칠 째 먹기도 하고, 국 같은 음식을 만들어서 며칠간 국에 밥을 말아먹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곰탕을 만들어놓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예전에 음식을 만들 때는 내가 손이 커서 그런지 많이 만들어 놓고 먹었다면 지금은 식구들끼리만 먹을 수 있는 소량의 음식을 만들어서 먹었다. 적게 만드니 남는 음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버리는 음식도 거의 없었다.

때론 부모님들께 반찬을 공수해 오는 경우도 많았었다. 부모님께 직접 대고 말씀드리고 뭐해서 “그때 엄마가 해준 음식 정말 맛있더라!”라고 운을 떼면 눈치 빠르신 어머니는 며칠 뒤에 반찬을 만들어 주시곤 하였다. 주신 반찬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으려고 노력하였고 반찬이 모자를 때쯤에는 반찬이 너무 맛있다며 안부전화를 전하기도 하면서 장기적으로 반찬을 받아먹을 수 있게 하였다.

‘사실, 이 부분에서 부모님께 제일 죄송하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부모님들도 경제적으로 많이 힘드실 텐데 말이다!’

너무도 감사하기도 하고 다행이다라고 하는 부분은 실업자 생활을 한창 하고 있을 때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았을 때였다. 정부와 경기도, 지자체로부터 정부지원금을 받게 되니 조금이나마 숨통이 텄다. 더더욱 지원받은 정부지원금은 생활비(식사)에만 오로지 사용하여 예전보다 높아진 식사 지출 금액을 다소 커버할 수 있었고 2달간은 조금 여유가 생기기도 하였다.

밥 먹는 것에 대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기타 지출되는 부분은 거의 지출하지 않으려고 했다. 정기적으로 나가는 것들 빼고는 말이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돈이 필요하여서 이런저런 모임도 핑계를 대가며 나가지를 않았고, 나를 위해 쓰고자 했던 것들은 다 취소해 버리거나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었다.

사실 아이들은 나의 사정들을 잘 알지 못할 것이라고 알면서도 아이들답게 이것저것 사달라고 보채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장난감도 사주지 못했다. 그래서 너무 미안하기도 했지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실업자 생활에 어떻게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대안과 방법으로 처절하게 때론 슬기롭게 살고자 노력하였다.

예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좀 더 슬기롭게 경제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계부를 작성하게 되었다. 매달 들어오는 수입 내용을 확인하고 정기적인 지출들을 고려하여 넉넉하지는 않지만 슬기롭게 생활을 하고자 노력하였다.

취업을 하기 1달 전부터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수입 내역과 지출 내역을 비교해보았을 때 정말 답이 없었다. 1달 뒤부터는 지금까지 있던 퇴직금도 다 사용하게 되고, 지금보다 더 절약하여 살아야만 했다. 더더욱 먹는 것은 줄이지 말자는 생각이었는데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 경험한 것이라고 그 압박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도 살기는 살더라?

그래도 여유가 있을 때에는 그 상황에 맞게 살았었는데 부족한 지금에서도 상황에 맞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이 참 놀랍기만 하다.

중요한 것이 하나가 있었다. 돈이 없고 쪼들리고 살다 보니 내 마음조차 쪼들리게 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예전같이 않아서 나 자신을 더욱 한탄하거나, 남들의 이야기와 배려 등도 도리어 다르게 해석하여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슬기롭게 생활하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 보이지만 함께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아직도 남아있는 상처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었다. 장기적인 레이스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상처들로 인해 일탈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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