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생일파티는 창피하다.
마흔의 생일파티는 창피하다.
어릴 적부터 항상 부모님은 친구를 초대해서 크지는 않지만 생일파티를 열어주셨다. 그러한 생일파티가 아니더라도 매년마다 달력에 아들의 생일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시며, 아들의 생일을 기억해주시고 온 맘 다해 축하해주셨다.
적게나마 생일 축하를 받은 나로서는 나도 모르게 당연히 생일을 축하받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사랑하는 아내가, 친한 친구조차 내 생일을 잊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게 되면 표현을 하지 못해서 너무 섭섭해하는 내 모습을 종종 보았다. 사실 그들의 생일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면서 내 생일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 그런 사람이었다. 작은 정성이라도 표현하지 못한 그들에 대한 섭섭함이 얼마나 심했는지, 몇 일간은 그들과 연락도 말하지도 않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챙겨주시고 축하해 주신 것이 당연히 여겼을 때여서 그런지 남들의 챙김이 없는 생일날은 미칠 노릇이었다.
그랬던 내가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챙겨주지 않는 동료직원들에게 얼마나 섭섭했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은 회사의 대표 생일을 맞이하여 플래카드를 만들고, 케이크를 준비해서 축하해주는 회사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시샘 그리고 부러움이 있었나 보다. 생일이 다가올수록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회사 대표에게 해주었던 모습은 아니지만 조촐하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조그마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상상한 만큼, 기대 이하로 나의 생일을 대하는 직원들에게 얼마나 섭섭한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섭섭함이 정말 컸다.
결혼을 했으면 당연히 아내가 내 생일을 챙겨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아내는 참 많이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남편의 생일을, 작게나마 미역국 하나 챙겨줄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아내의 성격 그대로 남편의 생일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모습에 심히 당황했다. 이것은 섭섭한 것 이상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라는 심각한 생각을 할 정도로, 아내의 무책임한 태도가 너무 싫어지게 되었다. 아내가 남편의 생일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서 몇 개월 뒤에 돌아올 아내 생일을 위해 휴가를 내며 준비하게 되었다. 한 번은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전체적인 생일파티 데코부터 시작하여, 아내가 감동받을만한 고가의 선물 준비 그리고 10첩 이상의 반찬과 육(育)과 해(海)를 어우르는 여러 가지의 기막힌 반찬을 준비하였다. 준비한 상이 모자를 정도였다. 어디서 반찬을 사 오면 티가 나는 것 같아서 직접 재료를 사다가 씻고, 볶고, 삶아가면서 정성이 담긴 생일상을 준비하였다. 사실 아내가 큰 감동을 받을 줄 알았다. 그리고 남편이 준비한 생일상을 보고 돌아오는 남편의 생일상을 이렇게 준비하겠지라는 기도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아내의 반응에 너무 놀라웠다.
“고마워”라고 딱 한마디만 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없는 건가?’
그리고 한창 준비한 밥과 반찬을 먹고 나서는 아내가 하는 말..
“너무 반찬이 많다!” “다 못 먹는데.. 다 버리게 되겠다!”
우리 아내는 이렇다. 휴가까지 내면서 이렇게 축하를 해주었는데 돌아오는 아내의 섭섭한 반응과 태도에 다시 한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아내의 떨떠름한 반응 때문에 한동안 섭섭한 마음이 없어지지 않았다. 더욱 아내가 미워졌고, 이제는 나 또한 아내의 생일을 이렇게까지 챙겨주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었다.
이런 일들이 20대, 30대에 일어났던 사건사고들이었다. 그때는 왜 이리 생일 챙겨주냐 마냐에 대해서 왜 이리 심각하게, 섭섭하게 생각되었는지 모르겠다.
마흔이 되던 날, 첫째 마흔이 되던 해의 첫 번째 생일날에 우리 가족들에게 이렇게 공표를 했다.
“이제 내 생일을 챙겨주지 마소!”
솔직히 예전의 나의 모습이 나타날까 봐 걱정도 들기는 했지만 이제는 예전의 모습처럼 살지 말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그냥 조용히 생일이 지나갔으면 했으면 했다.
직원들이 챙겨주지 않아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소하게 챙겨주지 않아도 절대 섭섭해하지 말자!라는 생각에 정말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했다. 그런데 예전 나의 모습을 한 번에 버릴 수 없었던지 마음 한편에는 조금이나마 기대감이 있어서 그런지 기대 반 그리고 포 기반이었다. 정말 이것이 더 힘들었다. 완전히 포기해버리면 좋으련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다행히 생일날을 잘 지나갔다. 어떻게든 내 마음에 섭섭함이 없도록 다른 생각으로 채우려고 노력하였다. 어쨌든 어른답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직장에서도 문제이기는 했다. 내 생일날이나, 그 주에는 참 불편한 출근길이었다.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으면 하는 솔직한 마음이 들면서도 억지로 부담스럽게 직원들이 챙겨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서 더더욱 있는 내 자리가 참 가시방석이었다.
우연히 SNS를 보면서 어느 회사를 다니는 대표가 직원들이 생일을 챙겨주었다고 너무 감사해서 사진을 올린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래도 회사 대표를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부럽기보다는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만 줄곧 들게 되었다. 그 조직의 모든 상황들을 알지 못하지만 준비하는 사람 중의 모두가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자랑스럽게 여긴 그 사진 몇 장이 참 불편하게만 느껴지게 되었다.
문 듯, 한 회사의 중간관리자로서 직원들을 주도하여 회사 대표의 생일을 챙겨준 적이 있었다. 생일만이었겠는가? 스승의 날, 몇 주년 행사 등 이름 붙여가며 회사 대표를 축하해 준 적이 있다. 그것이 사실 중간관리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줄만 알았다. 사실 과거를 다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과거의 그때가 꼭 맞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축하해주며, 맘은 아니지만 겉으로라도 축하해주려고 했었다. 벌써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대표를 축하해주는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내 모습에 한번 더 놀라게 된다.
직원들을 동원하며 축하해드리면, 그냥 밍밍하게 반응하시는 대표의 모습도 있었고 어느 때는 화를 내시며 “나는 이런 축하 싫어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신 적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겪고 보니 내 생일을 챙겨주는 직원들의 감사한 행동들이 참 부담스럽다. 아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솔직히 안 챙겨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솔직히 크다.
마음에서 내키지 않는데 위에서 시키는 일이니 억지로 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참 불편하다. 나 또한 억지로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데 도리어 직원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마흔이 넘다 보니, 이제는 내가 챙김을 받는 것이 참 쑥스럽다. 가능하다면 민망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요즘 들어 계속 드는 생각은 높은 위치에 서 있을 때 더욱 챙김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챙김을 받기 위한 조직의 분위기를 만들기보다는 회사의 대표의 생일도 쿨 하게 넘겨버리는 조직의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이 센스 있고 능력 있는 직원이라고 평가하는 시대는 끝난 것 같다. 시대가 바뀐 만큼 꼰대처럼 생활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좀 더 높은 위치에 있을 때, 전과 다르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더욱 나를 위해 살기보다는 많은 이들을 높여주고 좋은 영향력을 전해주는 것이 마흔의 나이다운 행동인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
“이번 주 일요일에 내 생일이라는 거 우리 아내는 알고 있을까?‘
이번 나의 생일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