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광야의 길을 걸었던 한 남자의 첫번째 이야기

홀로 광야의 길을 걸었던 남자의 이야기

by Happyman
두려운 광야의 길을 건너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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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일들이 계속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들이 너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나의 삶 속에서 희망도 빛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삶을 포기하는 것이 훨씬 낫겠구나 라는 생각만 들 정도였다.

이 정도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겨 어쩔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내가 과거에 그리 못된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에서 꼭 혼을 내는 듯 한 기분이었다.

남들의 위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오해만 더욱 쌓일 뿐이었고 더욱 비참해지는 것만 같았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나의 자리를 알아봐 주기 위해서 노력을 해주었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예전처럼 보다 적극적인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도움조차 너무 감사한 일인데 결론적으로 안 되고 실질자로 계속 살다 보니 그들을 향한 많은 미움과 원망도 컸고 섭섭함과 힘들어함도 함께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왜 나만 이런 일들이 줄기차게 나타나는 걸까? 그저 나에게만 탓하게 되었고,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그저 죽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어 혼자 남게 되었을 때는 그 시간이 너무 두려웠다. 나에 대한 좌절감,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감, 세상과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상황 모두가 나를 계속 힘들게만 했다.

그냥 포기해 버릴까라는 생각을 수백 번 수천 번을 한 것 같다. 내 눈 앞에 있는 자식들과 아내가 생각이 나서 생각을 고치고 또 고쳐보지만 벌써 낙심된 내 마음으로 돌이킬 수 없는 그 길로 가는 듯했다.

작은 불빛 하나, 작은 희망이 보인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살지 않았을 텐데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나만 왜 이리 힘드냐며 소리를 질러봐도 들려오는 것은 나의 목소리 뿐이었다. 원망하고 화를 내도 돌아오는 것은 나의 마음에 새겨진 큰 상처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상황을 원망하면서 그저 정말 길이 있을까? 내가 그 길을 갈 수는 있을까?라는 생각만 반복적으로 했었다.


헐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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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밀려오는 것은 두려움보다 원망이었다. 나를 이런 어려움에 빠진 기존 회사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나의 상황을 알면서도 돕지 않고 어디론가 가버린 그 사람들이 너무 미웠다. 나의 마음을 좀 위로해주기를 바랐는데, 그저 나를 떠난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나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과거의 모든 일들을 꺼내놓고 그들 때문에 내가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거라는 생각만 가득하였다. 그런 생각이 가득하다 보니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약을 먹어도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점차 그들을 향한 미움이 점차 커지기만 했다.

원망이 커지니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잠을 이룰 수 없으니 매사 민감한 사람으로 변화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너무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민감하게 말하고 민감하게 행동을 한 것 같다.

평소에 잘 정리를 못한 가족들인데도, 흩어진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야! 빨리 정리 안 해? 정리 안 하면 아빠가 화낸다!”

“자기야! 왜 저렇게 정리를 못하고 쓰레기는 왜 쓰레기통에 넣지 않는 거야?”

“장난감 정리하지 않으면 싹 다 갔다 버린다!”


소리를 지르고, 언성을 높이면 자식들이 100% 운다. 그러면 왜 우냐고 달래는 것보다 더 큰 목소리와 화내는 목소리로 아이들을 또 혼냈다.

같이 아이들을 봐줘야 하는데 ‘나 지금 힘들어!’라는 생각이 컸는지 방 안에 콕 밖에 있으면 좀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아내에게 (투명스럽게) 나 뭐해야 해! 그러면서 거절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내 상황을 알면서 저렇게 부탁하는 아내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집에만 계속 있으면 답답하기만 해서 지인을 만나러 서울을 가야만 했다. 광역버스를 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제법 늦게 버스가 도착했다. 당연히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버스가 서질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다.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가 나를 못 봤나?”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들어서달라고 큰 몸짓을 했고 결국 아저씨가 보았는지 차가 갑자기 서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차를 탑승하는 순간 버스 아저씨 매우 퉁명한 말투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저기 시내 쪽으로 가는 거예요? ”아니요! 잠실 가는데요! “라고 답했더니 아저씨가 하는 말....

“반대편에서 타시라고요!”

듣는 사람 참 민망하게 이야기를 하길래 갑자기 나도 모르게 아저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왜 이리 불친절한 거야?”

아저씨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문을 닫고 떠나는 버스를 향해 큰 소리로 욕을 해가면서 삿대질을 하는 등 나는 분노의 마음으로 2차 공격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큰일이 아니었고 그냥 지나칠 일임이 분명했는데도 내 마음과 상황이 편치 않아서 인지 매우 민감하고 분노에 찬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느 날은 괜찮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어느 날은 만사가 귀찮고 민감한 사람으로, 헐크로 변신하여 주변을 박살 내려하고 있었다.

‘조금이나 건드려봐! 내가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네... 다들 죽 XX’


눈치 챈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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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을 하고 나서 절대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며, 어떠한 불행한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어느 누가 나한테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가 아빠가 일을 하지 않고 실직자라고 알면 매우 불안해하니까 절대 아이한테 이야기하지 말어!”

정말 아이들이 알아서 걱정하고 두려워할까 봐 조심조심 말하고 행동을 하였다. 며칠 간은 휴가로 직장에 가지 않는다고 핑계를 댔다. 그저 아이들은 아빠랑 놀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는지 한동안은 참 좋아했다. 그런데 안 나가는 일수가 많아지다 보니 휴가 핑계되는 것도 어려움이 있었다.

두 번째로 코로나19로 인하여 회사에서 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게 되었다고(재택근무) 핑계를 대기 시작하였다.

참 민망한 것은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지 않으니, 아파트 단지 내에 사는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은데,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자기 아빠와는 다르게 계속 집에 있는 친구의 아빠를 보니 아주 쉽게 눈치를 챘을 것 같았다.

너무 눈치도 보이고 민망하기도 해서 우리 집으로 놀러 온 아이에게 조금만 놀다 가라고 약간은 무섭고 단호하게 이야기한 적도 많은 것 같다.

아내와 아이들과 차를 타고 밖으로 외출하는 중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첫째가.....

“아빠 지금 일하지 않고 있는데, 왜 저번에 다니던 서울 사무실 왜 안 보여줬던 거야?”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 조차 참 놀랐다. 나는 너무 놀라 차를 갑자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물어봤다.

“아빠 일 안 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응 저번에 아빠가 이야기하던데?”

큰일이었다. 첫째 아이가 알아버린 것이었다. 절대 나는 아이에게 내가 지금 일하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계속 집에만 있고 평소와 다르게 출근을 하지 않고 있으니 늦기는 했지만 결국 첫째 아이가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스스로 너무 창피하고 민망하였다. 항상 멋진 아빠라고 보여주고 싶었는데 일 못하고, 일 안 하는 아빠로 혹여나 생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참 많이 창피하였다.

또한 아이가 혹여나 불안해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누가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가 불안해하며 슬퍼하고 깊이 걱정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가 어찌해야 할지 참 막막했다.

너무나 걱정도 들고, 어떻게 보면 어떻게 아이에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아이와 솔직한 대화가 필요했다. 만약 아이가 불안 해 한다고 따뜻하게 안아줄 생각이 컸다.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줄 생각이었다.

일부러 첫째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었다. 차로 10분 정도 거리이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 내가 불편해하고 걱정했던 것들이 실제 느끼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내가 걱정한 만큼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저 섭섭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는 아빠랑 놀고 싶어서 아빠 방에 가면 아빠는 들어오지 말고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해서 정말 속상했어!”이라고 이야기를 제법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10살밖에 안 된 아들이기도 하고, 아직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나이는 아닌 듯했다. 아빠가 일을 하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앞 미래가 두렵다 라고 생각할 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그저 나만 걱정하고 염려했던 것 같았다.

그저 울 첫째 아들은 항상 집에 있는 아빠와 어떻게 신나게 놀지만 생각하는 듯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첫째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처럼 비록 어렵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지금의 일들과 상황들을 더욱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절대 아들 앞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겠다고 굳게 다짐하게 되었다.

특별히 어느 때보다 시간이 많음으로 아들이 원하는 만큼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좀 더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물어봤다.

“아빠랑 어디 가고 싶어?”

아들의 대답은 정말 쿨 했다.

“아빠랑 낚시하러 가고 싶어!”

그런데 아들의 뒷 이야기가 더 웃겼다.

“아빠 낚시를 하고 싶은데, 멀리 가서 낚시를 하고 싶지는 않아 특별히 바다낚시 말이야!”

낚시를 정말 하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저 아빠랑 놀기를 원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제야 알게 된 우리 아들로 때문에 더더욱 조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나 어느 누구에게 민감하게 하지 말아야 했다. 집에 누워서 게임만 하는 아빠가 아니라 무엇인가 능동적으로 하는 바쁜 아빠가 되었어야 했다. 아들이 원하는 아빠의 모습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실직으로 인하여 아들에게 못난 모습은 보여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집에서도 아무런 옷을 입지 않았다. 속옷 차림도 아니고 잠옷 차림도 아니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것 같은 직장인의 모습처럼 옷도 그렇게 입고 있었다.

혹여나 아이가 상처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몸도 마음도 훑어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어느 날에도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아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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