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한 한 남자의 세번째 이야기
마흔의 꼰대생활
전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위가 높은 사람 중의 몇몇의 이 시대의 꼰대였다. 정말 꼰대 짓을 하던지 나는 저런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절대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을 여러 번 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 위치에 서있게 되고, 제법 나이를 먹어갈수록 심상치 않는 그런 꼰대의 냄새가 나한테 나는 듯했다. 그 냄새는 내 것이 아니라며 줄곧 강하게 주장하였지만 예전 배우게 된 꼰대 짓을 어찌 버릴 수 있을까?
내가 이제는 꼰대라고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처음보다 많이 편해졌다. 내가 그런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제법 많이 놀라웠지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순간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확실한 꼰대다. 과거의 경험들에 너무 묶여 살고 있는 확실한 꼰대이다. 보이지 않지만 어느새 내 이마 팍에 새겨진 ‘꼰대’의 마크는 그리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꼰대의 정의]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로 최근에는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어원에 대해서는 영남 사투리인 ‘꼰데기’와 프랑스어 ‘콩테(Comte)’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이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꼰대는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자,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즉,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기성세대 중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에서 파생된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한편, 이 단어는 영국 BBC방송에 의해 해외로도 알려진 바 있다. BBC는 2019년 9월 23일 자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늘의 단어'로 'kkondae(꼰대)'를 소개하며,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김)'이라 풀이했다.
꼰대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주장이 전해지는데, 첫 번째는 번데기의 영남 사투리인 '꼰데기'가 어원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번데기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이라는 의미에서 ‘꼰데기’라고 부르다 ‘꼰대’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는 프랑스어로 백작을 콩테(Comte)라고 하는데, 이를 일본식으로 부르면서 '꼰대'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완용 등 친일파들은 백작, 자작과 같은 작위를 수여받으면서 스스로를 '콩테'라 불렀는데, 이를 비웃는 사람들이 일본식 발음으로 '꼰대'라 불렀다고 한다. 즉, '이완용 꼰대'라고 부른 것에서 꼰대라는 말이 시작됐고, 친일파들이 보여준 매국노와 같은 행태를 '꼰대 짓'이라 했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꼰대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성세대 중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에서 파생된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
그래서 나는 확실히 꼰대인 것은 맞는 듯하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여도 존중하고 함께하는 것이 맞을지언정 내가 그렇게 당한 만큼 지금 이곳에서 지위로 누르고, 기존 경험으로 밀어붙이고, 구체적인 설명 없이 그저 강요하는 것이 나의 모습이었다.
나도 그렇게 당했고, 그렇게 배우다 보니 정말 방법을 모를 때가 정말 많다. 기존에는 그것들이 정말 잘 먹혔다. 속상하고 할 말 있어도 꾹 참고 사는 것이 정석인 양 살아왔는데 할 말 다하고 대는듯한(?) 표정과 말투로 나를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고자 하는 일들이 정말 많고, 직원들이 하는 일들이 참 못마땅할 때가 있다. 기존 해왔던 경력을 무시할 수 없으니 내 기준과 경험으로 보았을 때는 직원들의 모습 자체가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직원을 불러 “나 때는....” 이야기를 했는데 띠동갑 이상 차이나는 직원이 “과장님 라때(?) 이야기하지 마세요!”
‘헐~내가 직원들한테,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다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때는 참 당황스러웠는데 역시나 나는 꼰대였다. 사실 예전에는(또 라때 이야기?) 이것들이 참 먹혔다. 그것들이 그냥 자연스러웠다. 뒤에서 상사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절대 그렇게 할 생각조차 없었다.
내가 지금 일하는 곳도 직원 간의 소통이 필요하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알게 모르게 무단히 노력하지만 본전을 제대로 뽑지 못할 때가 참 많았다. 소통을 하려고 하면 기겁을 하는 직원들 때문에 섣불리 소통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참 많았다. 소통이라고 해서 일단 직원들을 불러 어색한 공간 안에서 일단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넨다. 자기보다 직위가 높은 상사가 말을 하니 당연히 듣는 척, 이해하는 척하는 듯했고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결국 그건 소통이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되어 얼마나 난감했는지 모른다. 사실 소통방식을 잘 모른다. 이론적인 소통방법밖에 이해하다 보니 어설픈 소통을 하게 되고 결국 원치 않는 결과물을 만들어질 때가 많다.
[꼰대 콘테스트]
1.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요즘 세대를 보면 참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2.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요즘 세대는 참 한심하다.
3. 회사에서의 점심시간은 공적인 시간이다. 싫어도 팀원들과 함께 함께 해야 한다.
4. 윗사람의 말에는 무조건 따르는 것이 회사 생활의 지혜이다.
5.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나이나 학번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속이 편하다.
6. 정시 퇴근 제도는 좋은 복지 혜택이다.
7. 휴가를 쓰는 것은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8. 1년간 육아휴직을 다녀온 동료 사원이 못마땅하다.
9.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 사원이 거슬린다.
10. 회식 때 후배가 수저를 알아서 세팅하지 않거나, 눈앞의 고기를 굽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난다.
11. ‘내가 왕년에’, ‘내가 너였을 때’와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한다.
12. 편의점이나 매장에서 어려 보이는 직원에게는 반말을 한다.
13. 음식점이나 매장에서 ‘사장 나와’ 외친 적이 있다.
14. ‘어린 녀석이 뭘 알아?’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15. 촛불집회나 기타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학생의 본분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6. ‘나이가 어리면 지혜로워진다’란 말에 동의한다.
17. 낯선 방식으로 일하는 후배에게는 친히 제대로 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18. 자유롭게 이야기를 얘기하라고 해놓고 내가 먼저 답을 제시한다.
19. 내가 한때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20. 회사 생활뿐만 아니라, 연애사와 자녀계획 같은 사생활의 영역도 인생선배로서 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21. 회식이나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22.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에게 화가 난다.
23. 자기 계발을 입사 전에 다 끝내고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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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개: 꼰대 아님
1~8개: 꼰대입니다. 심각하지 않지만 꼰대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9~16개: 조금 심각한 꼰대입니다.
17~23: 중증 꼰대입니다.
(참고: 90년생이 온다 ‘꼰대 테스트’)
개인적으로 몇 개인지 말할 수 없지만 조금 심각한 꼰대로 나타났다. 이렇게 살면서 자기는 꼰대가 아니고 경험이 풍부한 선배로서 대접받기 원했던 나의 모습이 지금에서야 참 부끄럽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그러면 세상이 변한 만큼 내 삶의 태도와 생각들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꼰대로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 문제인 듯하다.
단지 바뀐 세대와 세상을 그저 인정하거나, 내가 꼰대임을 단순히 인정만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세상이 변화고 나와 다른 사람과 정말 다르더라도 이 세상과 그 사람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보인다.
기존 경험했던 것들은 과거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었고 이제는 변한 이것들에 맞게 생각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내 경험이 옳은 것이 분명 아니다. 나이가 먹을 수로 남들보다 더 잘한다는 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너무 좁은 시각에서만 살아가는 꼰대의 모습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각자마다 다른 세상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들의 세상을 인정하고, 나름의 생활방식들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해보자.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최대한 줄이자. 혹여나 내 생각대로 안되고 진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초초해하지 말자. 나름 그들도 그들만의 세상 가운데에서 나름 방식을 간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단 내 세상에서 천천히 들어오는 그들을 기다려줄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 그리고 잘하는 것들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 너무나 내 경험과 기술만 강요하는 그런 일들을 내려놓자. 시대가 바뀌었다. 나는 늙어가지만 또 다른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복잡한 시대에서 살고 있는 꼰대는 이 시대에 맞는 생각을 가지고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꼰대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 중에 하나이다.
발아래 먼지를 털어버려라.
-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시기와 질투로 말도 안 되는 모함을 이리저리 전파하는 이들이 있다.
- 자기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인데, 남이 하는 일은 절대 옳지 않다고 판단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몇 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법 많이 주변에 있다.
-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자기들은 항상 옳으며,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했다고만 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다양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 최근에도 어렵게 따온 사업에 대해 비웃으며 비아냥거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일 가운데 기운이 빠지면서도 화가 난다. 그들도 자기 생각과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더욱 화가 나는 것 같다.
-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한다라는 우리의 속담이 맞는 것 같다. 주변에 왜 이리 배 아파하는 자들이 많은 것인가?
- 자기가 한 것은 잘한 것인데, 남들이 잘되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 또한 나름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했었는데 도리어 오해의 소지를 만들 때가 있다.
- 오해를 넘어서 너무 무례하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참 많다. 좀 더 강한 어조로 말하면 자기가 위대하다고 생각이 드는지,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 자기 생각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든 힘들게 만들거나 어렵게 만드는 이가 있었다. 자기 입으로 맘에 안 들면 나는 결국 사람을 힘들게 한다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자기의 치부는 전혀 보지 못하면서 말이다.
- 이러한 무례한 이들 때문에 제법 많이 힘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조차 참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 지금은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말을 했던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지만 그때 상처 주었던 상황 등이 여전히 내 마음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 이제는 그들을 통해 받았던 상처들이 눈덩어리처럼 커버리고 말았다. 어디다 버리지도 못하고 도리어 살아가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또한 앞을 볼 수 없어 여전히 지금 이 자리에 고립되어 있다.
- 그때의 상황에서 전후 상황들은 다 잊혔다. 단지 상처 준 것만 고스란히 남아있다.
- 뽑아내려 하고, 던져버리려고 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몸부림을 쳐봐도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깊이 박힌 상처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되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 어느 날은 나만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일 뿐,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전히 그렇게 무례하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그렇게 당당하게 잘 산다고?’ 미칠 노릇이다.
- 10년이 지난 일들도 갑자기 꺼내놓고 분노하는 내 모습도 보게 된다. 어찌 보면 왜 이리 지질한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그곳에 묶여 있는 지질한 내 모습이 참 부끄럽다.
-내 생각과 의지로 그러한 상처들을 잊히지 않는다. 도리어 감정이 더욱 악화될 뿐이다. 그래서 이럴 때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처들은 나의 발목을 묶을 수가 있다. 더욱 내 마음 깊은 데까지 뿌리 밖은 상처로 인하여 또 다른 관계를 맺어가는 중에서 더 큰 어려움을 만들 수 있다.
-내가 한 행동, 내가 이야기한 것들이 비록 옳았고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이 들어도 중요한 것은 아직도 상처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상처는 뿌리는 내리는 미생물이다. 내 마음속에 미생물을 자라게 그냥 내버려둘 것인가?
-좀 더 나은 삶을 원하는가? 그러면 뿌리내린 미생물을 없애 버려야 한다.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깊이 새겨진 상처들을 지워야 한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내 마음에 깊이 담긴 상처들이 다시 한번 생각나지 않도록 잊으려고 몸부림을 쳐보자.
-그리고 상처가 빠진 그 자리에 나름의 행복과 다른 무엇인가를 채워가는 노력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구멍이 생기면 어떻게든 다른 무엇인가 채워지기 마련이니, 채울 거라면 보다 좋은 것으로 채우는 게 좋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이 있다. 계속 나만 상처를 받았다고만 이야기하지 말고 도리어 내가 남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한다. 비록 실수로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했다면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과감히 용서를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내 중심의 세계를 경계한다. 내 생각 중심으로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는 일들을 절대 조심하자.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은 편할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 ‘저런 사람도 있구나?’
-당연한 진리 속에 찾지 못했던 위대한 방법들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연한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방법들을 생활 가운데 적용해보자. 생각보다 쉽고 생각보다 행복하다.
-결국 내 발아래 먼지를 털어버리자는 이야기이다.
마흔의 생일파티는 창피하다.
어릴 적부터 항상 부모님은 친구를 초대해서 크지는 않지만 생일파티를 열어주셨다. 그러한 생일파티가 아니더라도 매년마다 달력에 아들의 생일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시며, 아들의 생일을 기억해주시고 온 맘 다해 축하해주셨다.
적게나마 생일 축하를 받은 나로서는 나도 모르게 당연히 생일을 축하받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사랑하는 아내가, 친한 친구조차 내 생일을 잊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게 되면 표현을 하지 못해서 너무 섭섭해하는 내 모습을 종종 보았다. 사실 그들의 생일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면서 내 생일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 그런 사람이었다. 작은 정성이라도 표현하지 못한 그들에 대한 섭섭함이 얼마나 심했는지, 몇 일간은 그들과 연락도 말하지도 않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챙겨주시고 축하해 주신 것이 당연히 여겼을 때여서 그런지 남들의 챙김이 없는 생일날은 미칠 노릇이었다.
그랬던 내가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챙겨주지 않는 동료직원들에게 얼마나 섭섭했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은 회사의 대표 생일을 맞이하여 플래카드를 만들고, 케이크를 준비해서 축하해주는 회사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시샘 그리고 부러움이 있었나 보다. 생일이 다가올수록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회사 대표에게 해주었던 모습은 아니지만 조촐하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조그마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상상한 만큼, 기대 이하로 나의 생일을 대하는 직원들에게 얼마나 섭섭한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섭섭함이 정말 컸다.
결혼을 했으면 당연히 아내가 내 생일을 챙겨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아내는 참 많이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남편의 생일을, 작게나마 미역국 하나 챙겨줄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아내의 성격 그대로 남편의 생일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모습에 심히 당황했다. 이것은 섭섭한 것 이상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라는 심각한 생각을 할 정도로, 아내의 무책임한 태도가 너무 싫어지게 되었다. 아내가 남편의 생일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서 몇 개월 뒤에 돌아올 아내 생일을 위해 휴가를 내며 준비하게 되었다. 한 번은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전체적인 생일파티 데코부터 시작하여, 아내가 감동받을만한 고가의 선물 준비 그리고 10첩 이상의 반찬과 육(育)과 해(海)를 어우르는 여러 가지의 기막힌 반찬을 준비하였다. 준비한 상이 모자를 정도였다. 어디서 반찬을 사 오면 티가 나는 것 같아서 직접 재료를 사다가 씻고, 볶고, 삶아가면서 정성이 담긴 생일상을 준비하였다. 사실 아내가 큰 감동을 받을 줄 알았다. 그리고 남편이 준비한 생일상을 보고 돌아오는 남편의 생일상을 이렇게 준비하겠지라는 기도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아내의 반응에 너무 놀라웠다.
“고마워”라고 딱 한마디만 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없는 건가?’
그리고 한창 준비한 밥과 반찬을 먹고 나서는 아내가 하는 말..
“너무 반찬이 많다!” “다 못 먹는데.. 다 버리게 되겠다!”
우리 아내는 이렇다. 휴가까지 내면서 이렇게 축하를 해주었는데 돌아오는 아내의 섭섭한 반응과 태도에 다시 한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아내의 떨떠름한 반응 때문에 한동안 섭섭한 마음이 없어지지 않았다. 더욱 아내가 미워졌고, 이제는 나 또한 아내의 생일을 이렇게까지 챙겨주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었다.
이런 일들이 20대, 30대에 일어났던 사건사고들이었다. 그때는 왜 이리 생일 챙겨주냐 마냐에 대해서 왜 이리 심각하게, 섭섭하게 생각되었는지 모르겠다.
마흔이 되던 날, 첫째 마흔이 되던 해의 첫 번째 생일날에 우리 가족들에게 이렇게 공표를 했다. “이제 내 생일을 챙겨주지 마소!”
솔직히 예전의 나의 모습이 나타날까 봐 걱정도 들기는 했지만 이제는 예전의 모습처럼 살지 말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그냥 조용히 생일이 지나갔으면 했으면 했다.
직원들이 챙겨주지 않아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소하게 챙겨주지 않아도 절대 섭섭해하지 말자!라는 생각에 정말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했다. 그런데 예전 나의 모습을 한 번에 버릴 수 없었던지 마음 한편에는 조금이나마 기대감이 있어서 그런지 기대 반 그리고 포 기반이었다. 정말 이것이 더 힘들었다. 완전히 포기해버리면 좋으련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다행히 생일날을 잘 지나갔다. 어떻게든 내 마음에 섭섭함이 없도록 다른 생각으로 채우려고 노력하였다. 어쨌든 어른답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직장에서도 문제이기는 했다. 내 생일날이나, 그 주에는 참 불편한 출근길이었다.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으면 하는 솔직한 마음이 들면서도 억지로 부담스럽게 직원들이 챙겨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서 더더욱 있는 내 자리가 참 가시방석이었다.
우연히 SNS를 보면서 어느 회사를 다니는 대표가 직원들이 생일을 챙겨주었다고 너무 감사해서 사진을 올린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래도 회사 대표를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부럽기보다는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만 줄곧 들게 되었다. 그 조직의 모든 상황들을 알지 못하지만 준비하는 사람 중의 모두가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자랑스럽게 여긴 그 사진 몇 장이 참 불편하게만 느껴지게 되었다.
문 듯, 한 회사의 중간관리자로서 직원들을 주도하여 회사 대표의 생일을 챙겨준 적이 있었다. 생일만이었겠는가? 스승의 날, 몇 주년 행사 등 이름 붙여가며 회사 대표를 축하해 준 적이 있다. 그것이 사실 중간관리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줄만 알았다. 사실 과거를 다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과거의 그때가 꼭 맞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축하해주며, 맘은 아니지만 겉으로라도 축하해주려고 했었다. 벌써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대표를 축하해주는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내 모습에 한번 더 놀라게 된다.
직원들을 동원하며 축하해드리면, 그냥 밍밍하게 반응하시는 대표의 모습도 있었고 어느 때는 화를 내시며 “나는 이런 축하 싫어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신 적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겪고 보니 내 생일을 챙겨주는 직원들의 감사한 행동들이 참 부담스럽다. 아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솔직히 안 챙겨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솔직히 크다.
마음에서 내키지 않는데 위에서 시키는 일이니 억지로 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참 불편하다. 나 또한 억지로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데 도리어 직원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마흔이 넘다 보니, 이제는 내가 챙김을 받는 것이 참 쑥스럽다. 가능하다면 민망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요즘 들어 계속 드는 생각은 높은 위치에 서 있을 때 더욱 챙김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챙김을 받기 위한 조직의 분위기를 만들기보다는 회사의 대표의 생일도 쿨 하게 넘겨버리는 조직의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이 센스 있고 능력 있는 직원이라고 평가하는 시대는 끝난 것 같다. 시대가 바뀐 만큼 꼰대처럼 생활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좀 더 높은 위치에 있을 때, 전과 다르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더욱 나를 위해 살기보다는 많은 이들을 높여주고 좋은 영향력을 전해주는 것이 마흔의 나이다운 행동인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
“이번 주 일요일에 내 생일이라는 거 우리 아내는 알고 있을까?‘
이번 나의 생일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