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한 한 남자의 두번째 이야기

다시 시작한 한 남자의 두번째 이야기

by Happyman
사랑하지 않으면 비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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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곧 비판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병든 비판은 매우 위험할 수가 있다. 그중에 가장 위험한 비판은 교만이나 우월감으로 하는 비판이다.

나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한 채 내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보다 낮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비판을 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나 또한 직장을 다니는 사람으로서 갑자기 생긴 권위 때문에 의도치 않게 함께하는 동료 직원들을 비판할 때가 있었다. 회사뿐만 아니라 집에 와서도 정말 무례한 직원을 향하여 비판을 계속 쏟아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비판을 했다고 해서 마음이 그렇게 좋지 만은 않았다. 더욱 비판에 비판이 덧입혀져서 더욱 극한 상황까지 이르는 경우도 정말 많았었다.

비판은 단지 상대방에게만 적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비판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나는 괜찮은 사람, 비판받지 않는 사람으로 벌써부터 생각한 지 나머지, 벌써 높아진 그런 생각 가운데 무작위로 만나는 이들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비판을 하게 되는 듯하다.

비판(批判)

1.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 비판을 받다.

2. 사물을 분석하여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전체 의미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며, 그 존재의 논리적 기초를 밝히는 일.

불의하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당연히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비판을 통해 옳은 길로 갈 수 있다면, 그리고 올바르게 바뀔 수 있다면 어떻게든 비판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악화되고 나빠질 수 있는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 너무 취해 있어서 내가 비판하는 것은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야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손쉽게 판단하는 것은 절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만약 비판할 상황이 있는가? 그리고 비판할 사람이 있는가?

비판해야 하고, 그들에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을 판단할 만한, 비판할 만한 사람인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참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인지라 감히 누구를 판단할 수 없다. 솔직히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면 나 또한 비판할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수차례 이야기할 것이다.

또한 비판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자.

비판을 통해 여러분들이 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감정적으로 상해서 비판을 쏟아내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측은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닌 상대가 좀 더 낳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판을 하는 것인가?

사람은 몇몇의 사람의 비판의 소리로 절대 변하지 않는다. 호된 비판의 말을 들어도 상대방의 무례한 이야기에만 집중할 뿐이지 나의 약점과 부족함에 대하여서는 알지도 깨닫지도 않는다. 억지로 비판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포기하자!

혹여나 비판을 하고 싶다면 도리어 나를 돌아보는 도구나 기회로 생각하였으면 한다. 상대방의 실수와 부족함을 본다면 도리어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그와 같은 실수와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아직도 살아갈 시간들이 많다. 마흔의 시간은 아직도 계속 돌아가고 있다. 이런 소중한 시간에 남들 비판하는 것에 너무 시간을 쏟지 말고 사람을 존중하고 세워줄 수 있는 그런 넉넉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어떨까?


비난의 중심에 서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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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더더욱 날 잘 모르는 사람에게 듣는 비판과 비방은 정말 듣기도 싫을 뿐만 아니라 그를 향한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하루하루 좋은 일들만 있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적지 않게 좋지만은 않다. 쿨하게 그냥 웃어넘길만한 그릇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그들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참 많이 화가 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남들의 비판 소리를 우연하게 듣게 되면 지금 하고자 하는 일조차 포기하고 싶을 정도이다.

마흔의 길을 가게 되니 전보다 높은 자리에 있게 되었다. 예전과는 다른 자리이기 때문에 평소 느끼지 못했던 풍성함을 느끼곤 한다. 인정해주기도 하고, 높여주는 것이 솔직히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만큼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비판과 비방도 만만치가 않다. 어떻게 보면 나를 꼭 경계하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냥 잊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싶은데 꼭 내 귀에 이야기하는 사람이 꼭 있다. 나를 걱정하는 말투지만, 꼭 그렇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좋으련만 나랑 몇 번이나 마주쳤다고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다니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난 짧은 인생을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나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꼭 앞에서든 뒤에서든 비판하는 사람이 꼭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의 반응에 일일이 반응하는 내가 더 문제였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다.

막상 나의 억울함을 이야기를 하면, 도리어 간장종지 같은 사람 같다며 비웃는 그들의 모습에 참 당황하기도 하였다. 말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 마음이 심히 답답하고 억울하였고, 막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겨 이야기를 건네면 이해하기보다는 더욱 나를 비꼬와 보는 경향이 많이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들 뿐이었다.

이런 상황들에 물밀듯 밀려오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게 되었을 때 본연의 일들을 하기보다는 불필요한 것들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발전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 하고자 하는 업무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하고자 하는 업무를 통해 복수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거나, 쓸데없는 감정 따위에 깊이 빠져 있게 되었다.

사실 이런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 때는 도저히 마음이 잡히지 않는 게 현실이고 사실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며 나를 비판하는데 그냥 있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러한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 때 당황스럽고 심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되도록 비판의 중심에 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더더욱 어느 누구라도 비판의 중심에 서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비판의 중심의 서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하는 것이지만 도리어 내가 남을 비판의 중심에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가족들도 나와 다른데 남들은 나와 맞겠는가? 조금이나마 다를지라도 뭉개버리고 당연히 비판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한번 더 반성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아직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런 비판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면 나중에 꼭 부메랑처럼 복수의 칼날이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섣불리 그들을 비판했다고 하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나중에 나를 비판하는 칼날로 다시 돌아온다.

비판을 받거나 비판을 하는 것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남들을 나보다 낮게 여기는 그런 성향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비판의 자리에 서 있게 되었을 때는 남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라는 생각과 함께 평소 배려 깊은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면서, 평소 비판의 자리에 서지 않도록 내가 남들보다 앞서고자 노력하는 그런 모습을 되도록 항상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앞서가기보다 남들이 나를 앞세워 줄 수 있게 하며, 되도록 나보다 상대방을 높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는 욕심을 처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었는지 몇몇의 사람들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급격히 흥분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나를 칭찬해주고 높여주는 사람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몇몇의 사람들 이야기에 너무 쉽게 반응을 하곤 하였다.

살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랑 맞는 사람, 나랑 정말 맞지 않는 사람,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 늘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 등등등... 그러한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들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몇몇의 사람들 이야기가 곧 맞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지금 하고자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은데 일일이 반응하여 소진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최근 트렌드인 만큼 SNS가 참 활성화되었다. SNS를 보면 그들의 성향, 취미 등을 금방 알 수가 있고 요즘 흘러가는 트렌드를 조금이나마 알 수가 있다. 예전 있었던 이야기이다. 지금도 그러한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SNS를 통해 상사를 욕하고 특정 인물을 욕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SNS를 통해 욕을 얻어먹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고 나 또한 SNS를 통해 직접 대고 특정 인물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읽어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돌려서 작성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작성하고 나서는 그렇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도리어 그 글을 본 사람들의 반응에 한 번 더 놀랄 뿐이었다. 상대방을 비판한 것인데, 도리어 내가 비판을 받게 되는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구설수(口舌數)

남과 시비하거나 남에게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


사람들은 자기가 비판받기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남들을 비판하는 사람조차도 꺼려하고 싫어한다. 나 또한 남들을 향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던지, 비판을 한다면 그 사람이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그를 멀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 사람의 비판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 어떻게 보면 비판의 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되도록 그러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항상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 같고 내가 남을 비판하는 것보다 남을, 상대방을 조금 더 높여주는 그런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그리고 마흔을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자세는 아닐까 싶다.


자랑하고 싶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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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고 나서 남들보다 좀 더 나아가지는 게 사실이다. 예전에 그렇게 지질하게 살았던 예전의 모습이 부끄럽게 생각할 만큼 말이다. 과거에는 그리 자랑할 만한 부분이 없어서 그런지 요즘만큼 남들에게 자랑하지 않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름 나의 삶을, 남들과 좀 더 다른 모습에 대해 어떻게든 자랑 섞인 이야기를 자주 건네었던 것 같다.

내가 대학에 갈 줄 몰랐다. 그리고 버젓한 회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일 줄 몰랐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그런 사람이 될 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지질하게 살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살던 사람이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다 보니 얼마나 대단하다고 느꼈겠는가?

나를 포함한 몇몇의 사람들은 자기를 뽐내려고 하는 성향들이 있어 보인다. 그러면서 점점 높아지려고 하고 어떻게든 사람을 짓밟고 가려고 하는 듯하다. 아랫사람은 절대 윗사람을 넘보지 말아야 하고 혹여나 선을 넘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든 쑥쑥 올라오는 싹을 짓밟아 버리고만 한다.


*자랑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이나 물건, 일 따위가 썩 훌륭하거나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임을 드러내어 말함. 또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리.

그렇다고 요즘 시대에 자기를 어필하는 게 무슨 큰 죄이겠는가? 보다 넓게 봐주지 못하는 몇 사람들의 문제이겠지?

요즘 SNS 활동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자랑들을 올려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남들이 올린 글에 좋아요만 누를 뿐이다. 예전 있었던 일이다.

그래도 요즘 대세인 SNS 활동을 정말 열심히 할 때가 있었다. 매일 2건 이상의 글을 올려가며 매일매일 눌러주는 좋아요 숫자에 흥분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활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이 있었다. 결론은 그것이었다. “자기가 잘하는 줄 안다고?” SNS를 통해 올린 글들이 거슬렸나 보다. 분명 개인적인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올린 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말하면서 SNS 활동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것이었다.

그날 아니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내 글에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그분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개인적인 활동인 SNS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없었고 그때 이후로 SNS 활동을 중단하거나, 계정 자체를 없애기도 하였다.

그런 일들이 있는 이후 마흔 방학을 맞이하였을 때에 지난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다. 억울한 마음도 컸지만 조금이나마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나는 SNS 활동을 통해 나의 자랑을 하는 도구로 일삼았다. 자랑에 손뼉 쳐주는 반응에 흥분한 나머지 점차 나의 자랑은 멈출 줄 몰랐다. 나의 자랑은 나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무엇보다 이렇게 잘 나가고 있으니 건들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리어 나의 자랑이 남들에게는 상처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문 듯해보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게 되니 도리어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섣불리 자랑하는 것들은 지금 당장 멈추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내 입으로 자랑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의 연약한 모습을 포장하는 도구일 수도 있다. 내 입으로 자랑하는 것보다 남들이 칭찬해주고 높여주는 것이 가장 멋진 모습인 듯하다.

마흔의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나를 자랑하는 데에만 힘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남들의 이런저런 판단과 평가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나보다 상대방을 높여주는 그런 모습이 참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어린아이가 아니라 정말 이 시대에 필요한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남들의 칭찬은 감사하게 여길뿐, 너무 내 마음 깊은 데까지 간직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을 높여주고, 상대방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칭찬을 해주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마흔이 꼰대가 되는 과정이 아니라 참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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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젊기에 좋은 관계가 무엇인지 확실치 못하는 부분이지만 요즘 들어 그러한 관계가 참 나를 힘들게 하곤 한다. 꼭 그들의 시각과 기준에 맞지 않으면 섣불리 판단해버리고 싫어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 힘들기만 하다. 아직 젊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보면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참 많이 어렵고 힘들어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 관계 때문에 어렵기는 하지만 평생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 중에 난 재인 것 같다.

요즘 세상뿐만 아니라 과거 어느 날부터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야 좀 더 멋진 사회생활 및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진리와 법칙을 귀가 따갑게 듣곤 하였다. 머리로는 충분히 아는 내용이지만 마음과 다르게 도리어 골치 아플 때가 수백 번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정답이 없고 점점 배워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바로 사람과의 관계인 듯하다. 짧은 인생길을 잠시 뒤돌아보면 나는 좋은 관계보다는 오해로 얽혀진 관계가 더 많았었다.

자기 눈에 벗어났다면 어떻게든 비난을 퍼붇거나, 쫓아내려고 하고 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달콤한 말들로 그에게 붙어사는 기생충 같은 그런 사람이 참 역겹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는데 내가 혹여나 그런 사람이 아닐까라는 무서운 생각을 해본다.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갈 때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가 기준이 되어야만 할까? 사람들과 살면서 그저 순수하게 계산하지 않으면서 살면 안 될까?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나로서는 사람과의 관계가 참 많이 어렵다. 내가 상대방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혹여나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판단하여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참 어렵고 힘들다.

지금 내가 일하는 일 조차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가 절대 필요하다. 원만한 관계 속에서 그들에게 여쭈면서 함께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수줍어하는 나로서는 그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생각과 상황에 휘둘리는 나 자신이 참 부끄러울 뿐이다.

그런 성격이 아닌 내가 사람들을 찾아가 인사하는 것조차 참 낯설다. 주관적인 생각이 강한 나로서는 남들의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고 그저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 제법 많이 들 때도 있다. 방법을 알아서 억지로 사람을 만나지만 나의 모습이 참 낯설다.

좀 더 나이가 더 들어봐야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지금의 방법이 참 낯설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이 상황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나도 최근 들어 깊이 느끼고 있는 사실이긴 하다. 예전에는 참 많은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좋은 말, 좋은 칭찬을 받기를 바랐었다. 혹여나 나에 대해 비난의 소리를 낸다면 내 마음의 울리는 타격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왜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할까부터 시작해서 점점 사실을 왜곡한 채 장편소설을 많이 만들었다. 밤새 생각해보니 몇 날 며칠을 잠을 자지 못하고 결국 병원에 입원한 적도 많았었다. 참 바보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괜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사실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좋아할 이유는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나는 바보처럼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면서 단 한 사람의 비판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 이후로 잔잔한 비판의 소리에 너무 심각하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잘해주지는 못해도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 같다.

관계의 세계 속에서 정말 여러 쪽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진다. 참 당황스러운 이야기가 대부분이며, 억울한 일들이 많았다.

‘니들이 나를 어떻게 안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막무가내로 이야기를 전하고 전달하는 그들의 어른 같지 않는 모습에 매번 실망하게 된다.

많은 이들의 판단과 말에 너무 휘둘릴 필요는 없다. 사실 그들의 말과 판단이 100% 맞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의 이야기로 나의 인생이 이렇게 저렇게 바뀌어진다면 그것이 더욱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단지 나의 모습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조심히 여겨야 할 것이다. 사람이라 함은 내 시각과 관점으로 푹 빠져 살 수 있기 때문에 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서 흐려질 수밖에 없다. 그저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라면 그들의 판단과 평가를 단지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이기 일쑤이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남들의 평가는 절대 들리지 않는다. 듣기보다는 날카로운 복수의 칼을 만들 뿐이다.

살다 보면, 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리기 마련이다. 더더욱 좀 더 높은 위치에 서 있다면 많은 이들에게 관심거리가 될뿐더러 보다 쉽게 평가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당연한 그러한 자리에 서 있다면 좀 더 너그러워지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남들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며, 혹여나 비판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되도록 남들을 비판하는 것에 자제하는 것이 또한 그런 비판의 자리에 서지 않는 것이다. 더더욱 세상살이를 하면서 나랑 맞는 사람은 절대 없다. 몇십 년 살던 아내조차도 맞춰가며 사는데 나의 생각과 맞는 이들은 소수이거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가면서 요즘 들어 많이 생각 들어지는 것이 몇 가가 있다.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되도록 나와의 ‘적’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또한 고집은 아니지만 남들을 통해 이렇게 저렇게 휘둘리지는 말아야지 라는 것이다. 남들은 나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말들은 때론 내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리게 만들 때가 많았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지켜야 할 선 ‘기준선’을 절대 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사람 관계 속에서 절대 선을 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마다 기준선은 다르겠지만 나름 가지고 있는 기준선을 만들어 그 선만큼은 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원만한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위해서라도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며 나 또한 그런 진리 같은 이야기는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도 사람들만 의지하고 살지 않고 싶다. 너무 깊은 관계를 통해 더 큰 상처 또한 받고 싶지 않다.

주어진 관계는 최대한 잘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 만이 곧 정답인 양 살고 싶지 않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깊게 의지했다가 도리어 상처 받고 힘들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 관계 참 어려운 일이지만 몇 가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첫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자

두 번째, 계산하며 사람을 만나지 말자.

세 번째, 사람을 비판하려고 하지 말고 비판의 대상이 되지 말자.

네 번째, 사람의 관계 속에서 욕심을 부리지 말자.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만들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다섯 번째, 너무도 사람을 의지하지 말며, 나름 가지고 있는 선을 넘는 일이 없도록 한다.


마흔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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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마흔이 되면 어른이 되고 어떠한 유혹과 어려움에도 당당히 이겨낼 줄만 알았다. 그런데 과거 때보다 더 큰 유혹과 어려움이 있었다. 이겨낼 줄만 알았는데 사실 과거보다 더 큰 타격을 받으며 넘어지고 있는 중이다.


함 정

(陷穽/檻穽)


1. 짐승 따위를 잡기 위하여 땅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약한 너스레를 쳐서 위장한 구덩이.

2.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나 남을 해치기 위한 계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① 나이가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나이에 합당한 더 큰 유혹과 어려움이 준비되어 있다. 어쩌다 마흔이 된 나로서는 더 커버린 유혹과 어려움에 심히 당황하며 더 깊이 빠져들고 만다.

② 살기도 바쁜 마흔에, 과거보다 더 바쁘게 사는 마흔을 살다 보니 정말 보지 못하는 함정들이 참 많았다. 술, 관계, 성, 분노, 다툼 등 각자의 요소들은 나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이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까지 내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런 유혹들이 참 달콤하다. 씁쓸하면 그냥 내뱉어 버리면 끝이지만 요것이 참 달콤해서 쉽게 버리지 못하고 매일매일 찾게 만든다.

③ 너무 달콤하고 아름다워 보여서 그것에만 깊이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듯하다. 이건 아니야라며 저 멀리 던져버렸는데 어느새 다시 찾는 바보 같은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달콤한 것들이 도리어 함정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섬뜩했다.

④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려 주변을 돌아보면 언제 이렇게 많아졌는지 함정들이 참 많다. 참 징그러울 정도다. 더더욱 웃긴 것은 정신을 차려도 절대 이런 함정들에서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하는 바보가 있다는 것이다. 바보가 바로 나였다. 무릎 이상으로 깊이 빠졌는데도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나도 모르게 만들어버린 함정 그리고 남들이 만들어 버린 함정들...

⑤ 함정에 빠지는 순간 내 삶 전체가 정말 무너지는 그런 경험을 해보았다. 더더욱 함정에만 빠졌으면 좋겠다고 기다렸다듯이 이때다 싶어 여러 사람들이 나를 향해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다시 나의 삶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정말 묻어 놓으려는 그런 사람을 보게 되었다.

⑥ 나를 돌이켜보면 나 나름대로 연약한 모습이 있었다. 사실 그런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숨긴 적도 참 많았지만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연약한 부분이 있다.

⑦ 나를 함정에 빠트리는 그들을 향해 원망하고 세상을 향해 원망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원망의 소리가 그렇게 불필요하다. 나를 함정에 빠트리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면 그저 나부터 조심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든다. 빠르게 처리하기 원하는 이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런 세상의 탬포에서 벗어나 나에게 맞는 삶의 탬포로 전환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삶의 탬포를 조금이나마 늦춘다면 정신이 팔려 보지 못한 함정들이 보일지도 모른다.

⑧ 삶의 탬포를 늦췄다면 또 해야 할 일이 있다. 나 자신을 한 번 더 돌이켜보자는 것이다. 역동의 20대~30대를 돌이켜보자는 것이다. 분명 몇 가지의 이유 등으로 넘어진 사건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술, 관계, 분노, 다툼 등으로 많은 사건들을 겪었었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결국 나의 연약한 모습 때문에 그런 사건들에 말려든 것이었다.

⑨ 그런 함정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분명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술을 먹지 않으면 관계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분노와 다툼이 없었다면 억울한 일들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단지 호의만 베푼다면 이용당하는 일들도 발생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호해졌을 때 감당해야 하는 삶의 불편함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⑩ 그런데 나의 삶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여러 함정들 특히 나의 삶을 정말 무너트리는 함정이라면 어떤 이유든 피해야 한다. 다른 어떤 것이 나를 좋게 해 줄지 몰라도 나의 삶 전체를 무너트린다면 그것조차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⑪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도 어느 때보다 굳은 결심 그리고 무단한 열심히 필요하다. 기존까지 살면서 굳어버린 삶의 패턴, 습관, 태도 들을 한 번에, 한꺼번에 깰 수는 없다.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면서 깨트려야 한다. 손쉽게 보았다가, 어설프게 접근했다가 갑자기 나를 덮칠 수 있기 때문이다.

⑫ 때로는 남들에게 부탁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많은 사람 말고 곁에서 항상 응원하는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일단 나를 비웃지 않는 그런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해보는 것이다. “자기야 내가 마흔답게 조금 더 나아진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줄래?”


몸부림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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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젊다고 생각하지만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러한 힘든 삶을 어떻게든 이겨내고자 몸부림을 치곤 했는데 결국 지치는 것은 나 혼자 뿐임을 느끼게 된다.

어려운 일이 발생되면 그것이 나한테만 이루어진다고 생각되면 정말 죽을 만큼 힘들고 아프다. 벗어날 것 같지 않고 내 눈 앞에 높게 새워진 그 벽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포기해 버리는 바보 같은 나를 보게 되었다.

누구라도 말해주면 좋으련만 남들의 표정과 상황들은 나보다 좋아 보였다. 나만 힘든 듯 한 기분이 너무 들어 불쾌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느 누구 선 듯 나에게 도움을 주고자 손길을 내민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그 외로운 길 중심에 서본 사람들만이 아는 ‘쓸쓸함’ ‘외로움’

벗어나고 싶고 예전처럼 다시 돌아가고 싶은데 내 목을 점점 죄어오는 듯한 기분이 더욱 많이 들었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들이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너무 깊이 사로잡혀서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혼자서만 몸부림을 친 것 같다. 이런 몸부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저 포기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아직도 반만년도 살지 않는 내가 이후에도 ‘계속 이렇게 몸부림을 치며 살아야 할 것인가?’ 나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꼭 몸부림만이 나름 살 수 있는 방법일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잘 알지 못하고, 잘하지 못해서 그런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문 듯 이렇게 사는 것조차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다.

몸부림을 치면서 겪게 되는 그 아픔이 나를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이제 서야 들게 된다. 감기 몸살이 나는 것도 다시 살기 위해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바이러스와 경렬 하게 싸우는 듯 갑자기 생긴 어려움도 어쩌면 회복하기 위한 몸살 정도는 아닐까 싶다.

나도 모르게 병들어 있던 내 모습을 아픔을 통해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지식의 저주, 경력의 저주, 사명의 저주에 갇혀 버렸던 것 같다. 새롭게 열심히 하는 것보다 지금 편한 상황에 머물고자 했고 내 이야기가 항상 옳은 냥 남들의 이야기를 겸손히 듣지 않으려고 했다. 특히 하늘에서 준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로만 생각하여 남들을 보다 쉽게 판단하고 낮게 여기며 대하였다.

묶인 저주를 깨뜨리고 새롭게 맛보아야 했다.

새롭게 맛보기 위해 힘든 진통이 있었지만 결국 회복될 수 있어 그것이 바로 은혜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몸부림..

참 씁쓸하고 힘든 여정이지만 이것으로 인한 삶의 은혜가 숨겨져 있음을 이제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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