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고 싶었던 한 남자의 다섯번째 이야기
부족할 때 배운다.
나는 한 가지 이상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결핍을 누구에게나 보이고 싶지 않아서 숨기거나 더 거대한 것들로 포장하여 보여주곤 하였다.
어쩌다 실업자가 되어서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바로 나의 부족함에 때문에 생겨난 지금의 현실 즉, 하나도 할 수가 없고 무능력한 나의 비참한 현실 때문에 점차 밀려오는 비참함이었다.
비참함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나의 부족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너무 웃긴 것은 그러한 비참한 나의 부족함에 대한 한탄도 있었지만 더더욱 그것을 숨기고 더 좋은 것들로 포장하려는 나의 모습이었던 것이었다.
광야의 길에 혼자 있다고 느껴질 때 처음에는 참 비참한 생각에 가득하여 오로지 죽고 싶은 생각만 들 뿐이었다. 죽은 나로 인하여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것 같은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나의 부족함 때문에 배우게 된 것들이 참 많았다. 때론 부족함 때문에 독을 만들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찌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의 부족함으로 지난 나의 삶을 다시 살펴볼 수가 있었다. 나로 인하여 상처 받은 그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과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는다 할지라도 예전처럼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고 수천번 다짐을 해볼 수 있었다.
또한 내가 가야 할 길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그 길을 무작정 가려고만 했던 지난 삶을 반성해 가면서 보다 탄탄히 나를 준비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나는 나의 달란트를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남과 비교해보았을 때 현격히 부족한 사람으로만 치부해 왔었지 내가 무슨 달란트(재능)를 가지고 있냐며 비아냥거릴 때가 참 많았었다.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었던 실업자 생활 중 며칠 간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할 수 없었고 생각조차 하지를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남들보다 시간이 많다 보니 나의 부족함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무엇인가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작년에 우연하게 책 한 권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데, 평소 2번째 책을 내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두 번째 책 원고를 작성할 시간도 여유가 없어서 선 듯 책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실업자 생활을 하다 보니 남들보다 시간의 여유가 많았었다. 지나친 여유와 시간 덕분에 2번째의 원고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3번째 책 원고를 완성시 켜나고 있고 더더욱 그렇게 선정되기 어렵다던 브런치 작가가 되어 작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 실업자의 생활을 돌이켜 보았을 때에 그렇게 크게 보였던 나의 부족함이 도리어 나를 더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들이었고, 생소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 부족함만 보고 있었는지? 그리고 부족함 때문에 도리어 독을 만들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이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독을 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최고의 인체 공학으로 만든 나이키 신발을 신은 사람과 짝퉁인 나이스 신발을 신은 사람이 달리면, 나이스를 신은 사람이 이긴다고 한다. 이유는, 비싼 신발을 신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느라고 상표가 보이도록 느리게 뛰는데 짝퉁 신발을 신은 사람은 누가 볼까 봐 부끄러워서 불이 나도록 달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규장, 한재욱, 인문학을 하나님께)
나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나는 그분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나는 그분을 만나면서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의 부족함을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거짓되게 살았다면 그분 앞에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내려놓고 진실되게 살게 되니 도리어 그 부족함들이 오히려 나의 강점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한 가지 이상의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 나처럼 그러한 작은 부족함이라고 할지라도 감추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삶은 부족함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규장, 한재욱, 인문학을 하나님께)
지금 현재 실업 등과 같은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저 자신의 부족함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가?
우리 다 함께 다르게 해석해보자. 좀 더 나의 부족함을 쿨하게 인정하고 자신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렇게 해석하고 좀 더 한 발자국 나아갈 때에 평소 보지 못한 그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부족하다고 한탄하기보다, 나의 현실이 절망스럽다고만 생각하기보다 또 다른 시각과 마인드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분이 부족함을 통해 배우게 하시려고 광야 같은 이 곳으로 나를 인도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광야는 고통스러운 곳이 아니고 도리어 나를 변화시키는 그런 축복의 자리였음을 지금에서야 고백해 본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
나에게는 스토리(Story)가 있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당신에게 당신만의 이야기가 있는가, 지금 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혹은 지금도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혹은 주변 상황을 살피고 환경을 탓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자신을 긍정하고 지금 당장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당신은 보이는 것보다 크다(김정태, 스트로 리가 스펙을 이긴다)
스펙은 영어단어 Specification의 준말이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 등 서류상의 기록 중 업적에 해당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스펙은 취업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대학생들에게 하나의 부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악화되어만 갔던 나의 삶에 대해 힘들기만 하였고 탓하기만 하였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탓했고 이것까지도 이기지 못하는 나를 탓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사람들로부터 받은 비난, 비판 그리고 내버려진 이 상황까지가 어찌 보면 진정한 사명자로 완성되기 위한 경험임을 믿는다.
나는 전문가로서, 좀 더 멋진 기능을 선사하기 위하여 스펙을 만들어갔고 지금도 그러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업자와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서 나만의 스토리가 완성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픔을 알아야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알 수 있으며, 고난과 어려움을 경험해봤어야 좀 더 힘든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단단해 짐으로써 나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 모든 고통스러운 삶들이 참 소중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데 필요한 충분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저 잘 나가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삶이었다면 많은 이들에게 공감되지 않을뿐더러 희망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어려움이 없었던 나로서는 힘들게 사는 이들조차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 살아가면서 마음으로는 조롱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다.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면서 겉으로만 공감하고자 노력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전과 같은 고통과 고난을 경험하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그 일들이 나에게 있어서는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고 만들지 못했던 스토리를 만나고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남들은 높은 스펙을 가진 사람을 향하여 환호성을 내지만 속으로는 잘난 척한다면서 비웃겠지만 나는 그들을 감동받을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스토리를 통해 나와 같이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저 지금의 상황을 탓하기만 하는 것보다 지금의 고난과 고통스러운 상황을 잘 정리를 해 볼 생각이다. 또한 작은 실천 등을 통해 더욱 감동적인 스토리를 하나하나씩 만들어볼 생각이다.
만들어진 스토리는 남들을 인해 이끌려 당했다고 말하기보다, 나만의 스토리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길 소망해본다.
그냥 흘려보내는 것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고 끝까지 나를 괴롭혔던 것들은 나를 섭섭하게 했고 힘들게 했던 그들이었다. 잊으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잊혀지기 보다는 점점 힘들어질 뿐이었다.
솔직히 맘 같이 그냥 잊여지지 않았다. 나쁜 생각들을 다른 것으로 무수히 노력을 했어도 새로운 것들이 도리어 튕겨 나가는 모습을 많이 목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섭섭함이 작았다면 점점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 양과 질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무섭게만 변화고 있었다. 겨울철이거나, 환절기에 늘 찾아오는 감기처럼 그냥 지나쳐갈 줄 알았는데 독감 이상의 증상으로 나를 더욱 힘들게만 만들 뿐이었다.
너무 답답하고 마땅히 해결방안이 없어서 바람을 쐬러 집 주변을 걷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제법 작지 않는 강가가 있는데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강가 주변을 돌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운동을 하거나, 아님 나와 같이 생각에 잠기며 걷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나 또한 그들과 다름없이 나의 길을 걸으면서 지난 나의 삶과 도대체 변화지 않는 나의 삶을 탓하면서 오로지 나의 마음의 소리에 응답을 하고 있었다.
답답할때면 걷는 길이기에 내 몸은 걷는 그 길에 자연히 맞쳐가고 있어서 더욱 내 마음에 울리는 그 것에 집중하고 반응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평상시와 다르게 걷는 그 길 주변에 조용히 흘러가는 물길들이 나의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지금의 삶이 너무 힘들어 늘 흘러가는 물길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특별히 보이는 그 물길들이 나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건내는 듯한 기분이 많이 들었다.
사실 많이 힘들고 어려워지다보니 예전 나의 모습과 다르게 참 감성적으로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더더욱 바람결에 흔들리는 꽃잎도 나를 응원하는 듯했고, 짹짹거리며 울부짖는 새들조차 나에게 정신차리고 힘내서 다시 일어나라고 응원하는 듯 했다.
세월이 지나도 항상 그 자리에는 물이 흘렀다. 세월이 지나면 나만 변할 뿐이지만 그들은 세월이 지나가도 그 곳에서 열심히 물이 다른곳으로 흘려보내도록 하고 있는 듯 했다.
만약 그 일들이 잠시 멈춰졌다면 어떠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당연히 멈추면 썩게 마련이며, 원치 않게 이런 저런 것들이 그 주변에 쌓여가게 될 것이다. 또한 코를 찌르는 것들이 그 주변에 쌓이다보니 이제는 그들을 찾아주는 사람보다는 홀로 남게 될 듯 뻔하였다. 그래서 더욱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다른 곳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도 썩지 않게 다른 곳으로 열심히 흘려보내는 것들이 곧 나에게 필요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들도 자신들이 살려고 열심히 흘려보내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흘려보낼 힘조차 없었지만 더더욱 과거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많은 것들에 휩싸여 조금이나마 벗어나지 못했다. 작게라도 흘려보냈다면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을법한데 그렇지도 못했던 그런 못난 사람일 뿐이었다.
자연이 나에게 알려준 것처럼 자신을 위해서라도 흘려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 어차피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피해와 어려움은 오로지 나에게만 있을 뿐이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주변 사람들이 그냥 잊어버리라고 할 때 나는 말도 안되는 말이라고 생각한 적이 참 많았었다. 일단 문제는 해결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말 조차도 나를 위해서, 살기 위해서 하는 진심어린 충고라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깊이 깨닫게 되었다.
많은 아픔과 어려움속에 깊이 빠져있다보니 그저 해결하면 다 풀리고 해결될 줄만 알았다. 그런 생각이 가득해서 인지 몰라도 이제껏 그 답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며 산 것 같다. 점점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체 왜이리 못나게 살았는지 지금에서야 정말 많이 후회스럽다.
그냥 흘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 작은 찌꺼기 하나 남지 않도록 말이다. 정말 하나하나씩 흘려보내려고 노력을 다하였다. 정말 이해되지 않고 억울한 일들이지만 언젠가는 나를 인정해주고 나에게 사과할 날이 있겠지라는 작은 기대감으로 흘려보내고 또 흘려보냈다.
그런데 사실 남은 것까지 다 흘려보내지 못한 것 같다. 처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주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놈이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몸집이 단단히 붙은 것으로 변해 있어서 끝까지 나를 괴롭혔다. 흘려보내는 것에 대해 이런 저런 살들을 붙일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냥 지나쳐버릴 정도의 작은 미물이라도 확실히 보내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