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 없는 인생이 어디있어?

무자비한 칼자루

by Happyman
무자비한 칼자루
한 회사의 대표로서 일하면서 안정적인 직장생활보다는 몇 년마다 돌아오는 고비들이 있다. 내 자리가 유지되느냐 안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 시즌이 올때면 유쾌하지만은 않다.

일한지도 1년이 안 되었는데도 재계약 시즌이 돌아왔다. 문제가 발생된 것은 아니지만 들려오는 이야기에는 연장의 매세지는 절대 없다. 까딱하게 되면 일자리도 없어질 것 같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없기에 참 답답하기만 하다.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이 왜 이리 싫은지 모르겠다.

살면서 느껴지는 것은 사람들은 참 섣불리 판단하고 결정을 하는 것 같다. 자기와 뜻이 맞지 않으면 왜이리 과감해지는지? 자기 손에 칼자루가 있다 고치면 감정 그대로 판단하고 어김없이 잘라 버리는 경우가 참 많다.

자기 손에 주어진 칼자루가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면서, 어찌보면 그 칼자루가 자기 손을 벨지도 모르는데 한 장수 허리에 찬 대단한 칼자루라고 생각이드는지 무자비하게 휘두르기만 한다.

무자비하게 휘두른 칼은 자기 손과 함께 여러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 그런데 그런 칼자루를 무서워하고 싶지는 않다. 내 목이 걸린 것일지라도 무섭게 휘둘러도 나는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사람 앞에서 당당히 서고 싶다. 골리앗 앞의 다윗처럼 말이다.

무자비한 칼을 가지고 있는 리더 주변에는 조금이나마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충언은 아니지만 올바른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무자비한 칼이 휘두를 수 있도록 돕는 꼴이란 정말 기가 막히다.

날카로운 칼날에 희생되는 이들도 있을법한데, 날라가 버리는 그들의 몹쓸 짓은 더욱 어렵게 만들곤 한다. 높은 위치에서 있을수록 더 많이 보기 마련일텐데 참 많이 협소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리더들을 참 많이 보게 된다. 높은 위치가 더욱더, 주어진 권위가 더욱더 그를 몹쓸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 참 많이 씁쓸하다.

내 눈을 가리고, 내 마음을 닫아 버리는데도 그들은 알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저 자기가 대단한 리더로 착각하면서 말이다.

사람을 그렇게 내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인가?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정의인가? 싫다고 하여도 사람을 그렇게 내치는 것은 사람으로서 해야할 도리는 아닌 것 같다.

넓은 들판에 있는 많은 풀들도 나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듯한데, 무심결 밟아버리게 되면 살아가고자 해도 금새 죽어버리는 풀들처럼 나 또한 그런 풀들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저 포기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더욱 들게 된다.

인생의 쓴맛이 제법 쓰다. 온갖 단맛을 느끼고자 단 것들을 입에 물지만 위에서 쏳아올린 쓴 맛이 내 입안 가득 채워버린다.

쓴 맛이 싫어서 뱉어버려도 어느새 또 올라오는 인생의 쓴맛은 나를 미치게 만들곤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세상이 싫고 내 자신도 싫다.

과거의 그 어느 날 겪었던 일들이 또다시 일어나는 것 같아 몹시 두렵기만 하다.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고 되바라지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혹여나 그것이 나를 더 힘들게 할까봐 혼자서 나만 듣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혹여나 들을까봐 혼자서 끙끙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부끄럽지만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언젠가 폭발해 버릴 것만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방법도 모르겠고 내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퇴근한 길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어떻게 퇴근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진정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오늘도 하늘을 보며 한숨을 크게 내쉬어본다. 큰 한숨이 흘러 흘러 그들에게 온전히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 세상은 왜이리 힘든 걸까? 하나님이 지으신 이땅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지만 행복보다는 슬픔과 아픔이 가득할 것 같다. 어느새 채워진 마음 때문인지 이 세상 모두가 어둡게만 느껴질 뿐이다.

언제인가 해결되겠지만 해결될 것 같지 않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과 소통을 해봐도 시원한 대답이 없다. 그들은 나와의 입장이 완전 달라서 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에도 사람들을 의지했지만 의지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실망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 권한이 없어졌을 때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초라해져 버린 나를 내던져버린다. 그렇게 친했던 사람들도 어느새 떠나버렸고 도리어 저주를 하며 나를 참 많이 힘들게 한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셨을 때에 제자들이 떠난 것처럼, 닭이 울기전에 3번이나 부인했던 제자처럼 말이다.

마음이 복잡하고 사실 앞이 두렵기는 하지만 내가 할 수 일은 없는 듯하다. 할 수 있어도 또 다른 피해가 있을 것 같아서 또 다른 도전이 두렵기만 하다.



또 막혀버린 길
앞 길이 보이면 얼마나 좋으련만, 대 낮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앞길이 참 어두워보인다. 그래서 두렵고 걱정이 많이 앞선다. 무엇보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할 뿐이다.

보다 이른 나이에 어느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정말 어쩌다 대표가 되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선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위치에 서다 보니 예전보다 더 많아진 시선들과 판단의 소리가 참 많이 힘들게 하곤 한다.

없었던 일이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이야기를 건내고, 자기들의 모습보다는 나의 모습에 대해 왜 이리 판단하고 평가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를 얏보는건지 자기들의 말에 그저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건지 자기 눈 밖에 난 사람을 어떻게든 쫒아내려는 그들의 만행들이 참 싫다.

세상은 그들과 타협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자기 멋대로 해석하며 때론 그들를 잘 지내보라는 듯한 이야기도 참 많이 건낸다.

할 수 없기에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데,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많이 답답하고 힘든 것이다.

무례한 사람들과 타협하기 싫은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과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타협해야 하는 테이블로 가야하는 것이 참 많이 힘들게 한다.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 길을 가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길을 찾았다. 좋든 않좋든 새롭게 찾게 된 새로운 길을 걸어야만 했다. 진심으로 그 길이 내가 찾은 새로운 길임을 믿으며, 이제는 거꾸로 가지 않고 그 길만 가면 내가 원하고 바라는 그것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첫 걸음을 걸었다. 이 길 또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새롭게 보여진 길이기에 자신있게 한 걸음을 내딛었다.

오랜만에 여유있는 주말을 보내는 시간에 전화 한 통이 울렸다.

내가 또 무엇을 원하는 듯이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나에게 새로운 길을 제안한 지인이었다.

참 안타까워하는 목소리였다. 그러면서 전에 제안한 그것이 잘 안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준비하는 시간이 촉박하여 미리 준비하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갑자기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더 많이 속상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어렵게 찾아낸 길인데 그 길마저도 갈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보니 내 마음이 속상한 마음 이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내 마음이 주저앉게 만들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 한것일까? 아님 왜 나는 계획하는 길마다 가로막히고 힘들기만 하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잘못을 한 것인가? 작년부터 이어져온 나의 고난과 힘듬이 나를 더욱 숨막히게 한다. 아직 이렇게 이른 나이에 몇 번이나 힘듬을 경험하게 되니 눈물만 난다.

내 자신이 참 초라하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초라한 사람, 앞길 몰라 해매는 불쌍한 사람, 이럴꺼면서 정의는 뭐고 불의가 뭐고 떠들었던 참 바보 같았던 사람.

길이 있는 것은 맞을까? 정말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일까? 다른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는 것일까? 뻔히 보이는 불구덩이를 보면서 걸어가야하는 것일까? 그들이 잘못하고 있는데도 그들과 타협하면서 살라고?

방법도 모르겠고 길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마흔의 길이 분명 있는 것은 맞는 것일까?

마흔의 길이 왜이리 호되고 힘들기만 하는 것일까?

어른이 되기 위해서 당연히 걸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왜이리 나만 왜이리 힘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예전처럼 그저 포기하는 것이 옳지 않는가?

그저 잠잠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일까?

오늘따라 왜 나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지, 그리고 계속적으로 발생되고 있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잠겨 오늘도 앙몽같은 길을 걷는다.

하루빨리 길이 보여졌으면 좋겠다.

아니, 분명치 않아도 벌써부터 지쳐버린 나를 누구라도 위로하고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쉬면 되겠지만 벌써부터 맘 상해버린 내 마음은 누가 책임져줄것인가?



리더십

지금까지 수 많은 리더십 관련 책을 보았다. 어설프게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하였고, 리더십이 있는 것 인냥 착각하며 살아왔다.

온라인 SNS를 보면 각자의 리더십을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제일 잘하고 있다고 자랑하듯이 자기의 리더십을 아무렇지 않게 전한다. 생일이든, 무슨 특별한 날에 직원들이 챙겨주는 것들을 보면서 나름 리더로서 잘 하고 있음을 보여주곤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의 뒷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여지는 것보다는 전혀 다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듣는다.

나 또한 이러한 상황에 완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자랑하는 것을 숨기려고 노력을 한다. 남들의 입가운데에서 천천히 전해지면 모를까 내 입술로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나로서는, 그리고 사람과 함께 무엇인가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 때문에 섣불리 리더십을 발휘한다. 정말 몰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것 저것 리더십 관련 책들을 셜렵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았었다.

예전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적이 참 많았었다. 말 그대로 내가 좀 더 높은 위치에서 때론 강제적으로 억지로 끌고 가는 경우가 참 많았었다. 나의 이야기가 먹혔는지 제법 많은 이들이 나를 따라주곤 했지만 그것마저도 성과만큼 사람을 제법 많이 잃었다. 사람을 잃은 것 이상으로 나를 따랐던 사람들마저 나를 뒤에서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참 답답하고 어려워할 때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나름 멋진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처럼, 그가 말하는 것이 꼭 옳은 것 마냥 나를 설득하고 내가 잘못되었다고 강력하게 전해주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멋진 리더십이라고 이야기한 사람조차 보여지지 않는 상처가 당황스러운 상황들이 많았었다. 어찌보면 그 사람도 자기가 참 멋진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는 착각을 하고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도 카리스마를 적용하는 리더들을 보곤 한다. 자기가 참 멋진 사람처럼 설명하면서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의 카리스마가 꼭 그렇게 보여지지 않는다. 그저 꼰대라고 보일 뿐이다.

자기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어떻게 자르려는 리더가 참 안쓰럽기만 하다. 그 사람은 그것이 지금까지 통했나보다. 그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다. 그렇게 강하게 하는 것이 잘되는 것처럼 착각될 수 있겠지만 그 만큼 잃은 것도 많다는 것이다. 사람을 잃었다.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도리어 사람을 잃어버리게 한다. 그들은 왜이리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혹시 그렇게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섬뜩한 생각이 들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참 모범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혹여나 그런 사람들을 만났더라면 조금이나마 배우고 나도 그와 같이 따라했을텐데, 참 슬프게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혹시나 있다면 한번 찾아 뵙고 간절한 마음으로 여쭙고 싶다.

사람 때문에 큰 상처 그리고 실수가 있어서 예전과 같이 하지 않겠노라며 굳은 결심으로 나보다 남들을 섬기고, 그들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들을 통제하는 것보다 자율함을 더해 주었다. 직장 내에서 좀 더 웃을 수 있게, 그리고 잘 못해도 잘할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했으나 최근들어 내가 한참 잘못하고 있음을 처절히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내 앞에서는 잘하는 것인냥 행동을 하는데 꼭 그렇지 않는 듯하다. 대표가 자리가 없으면 그들의 파티의 장이 된 듯하다. 규정된 시간도 있는데도 그들은 그것마저 싸그리 무너트리는 모습에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모른다.

대표님 실망이었습니다라고 말한 그의 모습은 자기 또한 나에게 참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사실 나이가 많다고, 경력이 많다고 해도 다 필요없는 듯 하다. 근본적인 그의 모습이 변화지 않는 이상 나이와 경력은 다 필요없는 것 같다.

대표가 되다 보니 직원들에게 말 못할 이야기거리가 참 많다. 어느때는 남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밤새 끙끙되고 있다가 어렵게 아침 출근을 하면 꼭 기다렸다는 듯이 참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꺼내거나, 참 예의없는 행동들로 참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했다. 세상이 바뀌었어요 이 시대 사람들, 젊은 Z세대가 그래요라고 말을 하겠지만 도와 선을 넘어서는 그들의 모습이 참 이해되지 않는다. 세상이 변하고 나이가 어려도 넘어가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을텐데 말이다. 세계화시대, 네트워크시대, 디지털시대라고 하지만 내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그들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리더십 과련 정답은 없는 듯 하다. 누구의 리더십은 어느 사람에게는 적용못하는 부분도 있다. 서로간의 이해도 다르고 적용점도 다르기 때문에 나는 리더십의 환상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리더십보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리더십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은 없는데 말이다.

리더십의 시작은 사람의 존중 가운데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혹여나 그러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들을 이용해 먹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존중,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리더십의 시작인 듯 하다.

존중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리더십을 발휘할 때 존중을 잃어버리면 감정으로 치우쳐지게 마련이다. ’나도 당신을 위해 이런 노력을 하는데...‘ 이런 계산적인 생각...

그런데 두렵고 걱정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방법을 몰라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진심조차 먹히지 않아 도리어 오해가 더 만들어가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섣불리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은 생각이 머뭇거리게 된다.

직원들을 믿었고 동료들을 믿었다. 사실 나의 부족한 역량 때문이겠지만 안보이는 곳에서 그렇게 행동을 한 그들이 참 당황스럽고 실망스럽다.

내가 지금 뭐하는 것인가? 그리고 내가 한참 잘못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지금도 마음이 참 불편하다. 호되게 혼을 내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면 좋겠지만 생각과 다르게 바뀌어질까봐 걱정이 먼저 앞선다.

직원들은 왜 대표가 리더쉽을 발휘하기를 바라면서, 좀 더 멋진 리더쉽을 가진 대표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들 스스로는 왜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표를 원망하면서 자기 스스로에게는 그렇게 자비로운가?

하여튼 마음이 참 복잡하다. 전처럼 카리스마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것일까? 어느 누가 나를 찾아와 이렇게 저렇게 해야한다고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쉬는 주말 내내 나의 마음을 그저 복잡하기만 하다.

나는 리더십이 맞지 않는 사람인가보다. 리더십도 없는 바보같은 사람인데 어설프게 대표직을 맞고 있다. 정말 이상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은 있을까? 이렇게 어려운데 책에서는 이상적인 리더십만 이야기를 하고 강조를 하는 것일까?




건강을 지키는 것, 마음을 지키는 것

어릴적 성장통이 있었다. 밤새 악몽을 꾸는 것은 나의 성장통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하루에 몇끼를 먹었는지 모르고, 하루에 계란 한판을 먹고, 사과를 10개 이상 먹고...이상한 것은 그렇게 먹어도 살은 안찌는게 참 신기하기만 했다.

20대는 더 날라올랐다. 그냥 날라다녔다해도 좋을 듯 싶다. 사실 아픈 것도 몰랐고 어딜 다쳤어도 금방 나아지는 듯 했다. 높은 길을 가더라도 헐떡거리는 것 없이 무작정 올라갔다. 농구같은 운동도 참 좋아해서 시간 날때마다 농구도 함께 즐겨했을 정도다.

군대를 다녀온 후로는 등산 같은 것을 질색했다. 남자들이 이해하는 것들이지만 그 새벽 군장 매고 산을 올랐던 트라우마가 제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으니까...

등산을 왜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등산을 하게 되면 몸만 충날 뿐이지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등산복을 사는 것이 세상에 제일 아까운 지불이라고 생각했다. 산꼭대기에서 숨을 쉬는 것이나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아님 집 밖에서 숨 쉬는 것이 똑같기 때문에 등산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30대는 20대보다 더 바쁜 삶을 보냈다. 몸이 충나도 전혀 신경쓰지 않은채 오로지 일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러다보니 내 몸을 신경쓸 여력이 솔직히 되지 않았다.

30대 후반으로 갈 때 갑자기 신호가 왔다. 하나하나씩 아파가기 시작하는데 이러다가 죽는거 아니야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 정도니까...

그런데 그러한 아픔, 몸에 상처들이 생기는 것이 무엇보다 잘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었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그 놈의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지 못하고 계속 쌓아놓을 뿐이었다.

갑자기 허리를 다쳤다.

갑자기 장염, 위염까지 찾아왔다.

갑자기 간수치가 높아지고, 위도 좋지 않다.

술을 잘 먹지도 않는데 간수치가 높고, 위도 좋지 않아 위암의 위험이 있다고 하니...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의 지난 잘못된 습관과 함께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전화가 오셨다.

몇일 간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수액까지 맞았다고 하니 심히 걱정을 많이 하셨나보다.

“아들아~건강 먼저 챙겨! 가장이 아프면 온 가족이 다 아픈거야!”

지난 몇 달간 말 못할 사정이 생겼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도리어 나를 힘들게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해야 할 업무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그리고 이런 저런 직책들과 책임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버거웠나보다.

건강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흔의 길을 걷다보니 당연한 일들을 챙기지 못해 혹독한 어려움이 함께 발생하는 것 같다.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다하고자 하는 욕심까지 다 내려놓아야한다.

완벽하게 하겠다는 생각조차 버리고 천천히 느긋이 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황과 환경이 나를 직 눌러도 숨구멍은 찾아놔야 한다.

하루하루 살면서 숨 막히는 일들이 많겠지만, 그리고 변화되지 않는 막막한 세상이겠지만 나한테는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찌 보면 내가 나의 마음에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 가 싶다.

상대방은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상대방은 그런 의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상대방이 숨기는 무엇인가의 의도가 있다고 확신한다.

상대방은 나를 빼앗으려고 하기 보다 어설픈 방법이 곧 잘하는 행동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상대방을 나의 적으로만 생각한다.

세상은 둥글다. 네모나면 벌써부터 찢어지고 상처투성일 것이다.

둥글둥글하게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 마음조차 조금은 둥글둥글하게 만들면 어떨까 싶다.

나의 마음에 퍼져있는 곰팡이를 찾아보자.

그리고 그들의 소리에 귀기울려 보자. 너무 다긋치지 말고, 좀 더 천천히 여유있게 나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자.

벌써부터 지쳐있는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지지해보자.

남들이 할 수 없지만 나는 나를 위로할 수 있고 지지할 수 있다.

왜 이리 남들에게는 친절하면서 나한테는 왜 이리 거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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