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 없는 인생이 어디있어?

마흔이 되면 일기를 쓰는 이유

by Happyman
마흔이 되면 일기를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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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출신답게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보기와 다르게 시도 좋아했고 소설 등과 같은 책을 보는 것도 참 좋아했다. 화장실에 갈 때는 꼭 책을 들고 갈 정도다.

‘문과 출신’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한 만큼 또 한 가지 좋아했던 것은 글쓰기였다. 학창 시절에는 참가상(?)을 받을 정도의 실력이지만 독후감 대회나 글짓기 대회에 종종 참여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지역에서 실시하는 글짓기 대회 등에 참여해서 우수한 성과도 낸 적도 있다.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른 아침 5시에서 6시에 깨서 이른 출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른 출근을 하게 되면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경우가 참 많았다. 성경을 읽고 수첩에 느낀 점을 적는가 하면, 책을 읽고 감동하는 것들을 수첩에 간단히 적는 경우가 많았었다. 특별히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질 때면 솔직한 내 감정을 수첩에 적어 한층 올라가버린 내 감정을 추스를 때도 있었다.

더더욱 마흔이 되고 나서는 이러한 일기 등과 같은 글을 자주 쓰게 된다. 예전 방학숙제와 같은 일기라기보다는 어느 때부터인가 일기 등을 작성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늦은 나이에 일기를 왜 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일기를 쓰게 된다.

① 기존 나의 삶을 돌이켜볼 수 있으며, 내가 했던 말들과 행동들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②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나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살펴볼 수 있는데, 약점은 수정 보완할 수 있고 강점은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③ 변하지 않고 단단한 세상 속에서 살려면 나를 돌이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④ 내 마음의 솔직한 부분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⑤ 소중한 것들을 손으로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커버리는 아이의 소중한 순간들, 깨닫게 되는 것들, 순간순간 행복한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일기를 쓴다.

⑥ 하루하루를 되돌아보고 평가해보면서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바뀌어갈 수 있다.

⑦ 업무의 특성상 행정서류, 계획서 작성 등이 많아서 지속적인 글쓰기 연습이 필요하다.

⑧ 숙제가 아닌, 삶을 이야기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⑨ 죽기 직전에 그전까지 써온 일기를 읽어보고 몇십 년 동안의 순간순간의 나를 다시 마주할 수 있다. 참 열심히 살았다는 나름 증명서류가 될 수 있다.

⑩ 일종의 노동의 대가를 글로 받는 것이다. 내가 쓴 글, 결과물에 대한 나름 보상 차원이다.

⑪ 좋은 추억거리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참 열심히 살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⑫ 마흔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마지막 인생의 후반기를 잘 지낼지 못 지낼지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 일기를 쓰게 된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전쟁터와 같은 마흔의 길을 글로나마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⑬ 하루를 잘 정리하고 다음날 새롭게 준비할 수 있다.

⑭ 흩어진 내 감정을 잘 정리할 수 있다.

⑮ ‘나’라는 사람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더 살펴볼 수 있다.



발아래 먼지를 털어버려라.
-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시기와 질투로 말도 안 되는 모함을 이리저리 전파하는 이들이 있다.

- 자기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인데, 남이 하는 일은 절대 옳지 않다고 판단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몇 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법 많이 주변에 있다.

-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자기들은 항상 옳으며,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했다고만 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다양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 최근에도 어렵게 따온 사업에 대해 비웃으며 비아냥거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일 가운데 기운이 빠지면서도 화가 난다. 그들도 자기 생각과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더욱 화가 나는 것 같다.

-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한다라는 우리의 속담이 맞는 것 같다. 주변에 왜 이리 배 아파하는 자들이 많은 것인가?

- 자기가 한 것은 잘한 것인데, 남들이 잘되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 또한 나름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했었는데 도리어 오해의 소지를 만들 때가 있다.

- 오해를 넘어서 너무 무례하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참 많다. 좀 더 강한 어조로 말하면 자기가 위대하다고 생각이 드는지,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 자기 생각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든 힘들게 만들거나 어렵게 만드는 이가 있었다. 자기 입으로 맘에 안 들면 나는 결국 사람을 힘들게 한다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자기의 치부는 전혀 보지 못하면서 말이다.

- 이러한 무례한 이들 때문에 제법 많이 힘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조차 참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 지금은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말을 했던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지만 그때 상처 주었던 상황 등이 여전히 내 마음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 이제는 그들을 통해 받았던 상처들이 눈덩어리처럼 커버리고 말았다. 어디다 버리지도 못하고 도리어 살아가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또한 앞을 볼 수 없어 여전히 지금 이 자리에 고립되어 있다.

- 그때의 상황에서 전후 상황들은 다 잊혔다. 단지 상처 준 것만 고스란히 남아있다.

- 뽑아내려 하고, 던져버리려고 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몸부림을 쳐봐도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깊이 박힌 상처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되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 어느 날은 나만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일 뿐,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전히 그렇게 무례하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그렇게 당당하게 잘 산다고?’ 미칠 노릇이다.

- 10년이 지난 일들도 갑자기 꺼내놓고 분노하는 내 모습도 보게 된다. 어찌 보면 왜 이리 지질한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그곳에 묶여 있는 지질한 내 모습이 참 부끄럽다.

-내 생각과 의지로 그러한 상처들을 잊히지 않는다. 도리어 감정이 더욱 악화될 뿐이다. 그래서 이럴 때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처들은 나의 발목을 묶을 수가 있다. 더욱 내 마음 깊은 데까지 뿌리 밖은 상처로 인하여 또 다른 관계를 맺어가는 중에서 더 큰 어려움을 만들 수 있다.

-내가 한 행동, 내가 이야기한 것들이 비록 옳았고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이 들어도 중요한 것은 아직도 상처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상처는 뿌리는 내리는 미생물이다. 내 마음속에 미생물을 자라게 그냥 내버려둘 것인가?

-좀 더 나은 삶을 원하는가? 그러면 뿌리내린 미생물을 없애 버려야 한다.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깊이 새겨진 상처들을 지워야 한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내 마음에 깊이 담긴 상처들이 다시 한번 생각나지 않도록 잊으려고 몸부림을 쳐보자.

-그리고 상처가 빠진 그 자리에 나름의 행복과 다른 무엇인가를 채워가는 노력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구멍이 생기면 어떻게든 다른 무엇인가 채워지기 마련이니, 채울 거라면 보다 좋은 것으로 채우는 게 좋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이 있다. 계속 나만 상처를 받았다고만 이야기하지 말고 도리어 내가 남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한다. 비록 실수로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했다면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과감히 용서를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내 중심의 세계를 경계한다. 내 생각 중심으로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는 일들을 절대 조심하자.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은 편할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 ‘저런 사람도 있구나?’

-당연한 진리 속에 찾지 못했던 위대한 방법들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연한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방법들을 생활 가운데 적용해보자. 생각보다 쉽고 생각보다 행복하다.

-결국 내 발아래 먼지를 털어버리자는 이야기이다.



마흔의 생일파티는 창피하다.
어릴 적부터 항상 부모님은 친구를 초대해서 크지는 않지만 생일파티를 열어주셨다. 그러한 생일파티가 아니더라도 매년마다 달력에 아들의 생일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시며, 아들의 생일을 기억해주시고 온 맘 다해 축하해주셨다.

적게나마 생일 축하를 받은 나로서는 나도 모르게 당연히 생일을 축하받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사랑하는 아내가, 친한 친구조차 내 생일을 잊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게 되면 표현을 하지 못해서 너무 섭섭해하는 내 모습을 종종 보았다. 사실 그들의 생일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면서 내 생일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 그런 사람이었다. 작은 정성이라도 표현하지 못한 그들에 대한 섭섭함이 얼마나 심했는지, 몇 일간은 그들과 연락도 말하지도 않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챙겨주시고 축하해 주신 것이 당연히 여겼을 때여서 그런지 남들의 챙김이 없는 생일날은 미칠 노릇이었다.

그랬던 내가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챙겨주지 않는 동료직원들에게 얼마나 섭섭했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은 회사의 대표 생일을 맞이하여 플래카드를 만들고, 케이크를 준비해서 축하해주는 회사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시샘 그리고 부러움이 있었나 보다. 생일이 다가올수록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회사 대표에게 해주었던 모습은 아니지만 조촐하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조그마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상상한 만큼, 기대 이하로 나의 생일을 대하는 직원들에게 얼마나 섭섭한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섭섭함이 정말 컸다.

결혼을 했으면 당연히 아내가 내 생일을 챙겨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아내는 참 많이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남편의 생일을, 작게나마 미역국 하나 챙겨줄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아내의 성격 그대로 남편의 생일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모습에 심히 당황했다. 이것은 섭섭한 것 이상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라는 심각한 생각을 할 정도로, 아내의 무책임한 태도가 너무 싫어지게 되었다. 아내가 남편의 생일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서 몇 개월 뒤에 돌아올 아내 생일을 위해 휴가를 내며 준비하게 되었다. 한 번은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전체적인 생일파티 데코부터 시작하여, 아내가 감동받을만한 고가의 선물 준비 그리고 10첩 이상의 반찬과 육(育)과 해(海)를 어우르는 여러 가지의 기막힌 반찬을 준비하였다. 준비한 상이 모자를 정도였다. 어디서 반찬을 사 오면 티가 나는 것 같아서 직접 재료를 사다가 씻고, 볶고, 삶아가면서 정성이 담긴 생일상을 준비하였다. 사실 아내가 큰 감동을 받을 줄 알았다. 그리고 남편이 준비한 생일상을 보고 돌아오는 남편의 생일상을 이렇게 준비하겠지라는 기도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아내의 반응에 너무 놀라웠다.

“고마워”라고 딱 한마디만 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없는 건가?’

그리고 한창 준비한 밥과 반찬을 먹고 나서는 아내가 하는 말..

“너무 반찬이 많다!” “다 못 먹는데.. 다 버리게 되겠다!”

우리 아내는 이렇다. 휴가까지 내면서 이렇게 축하를 해주었는데 돌아오는 아내의 섭섭한 반응과 태도에 다시 한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아내의 떨떠름한 반응 때문에 한동안 섭섭한 마음이 없어지지 않았다. 더욱 아내가 미워졌고, 이제는 나 또한 아내의 생일을 이렇게까지 챙겨주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었다.

이런 일들이 20대, 30대에 일어났던 사건사고들이었다. 그때는 왜 이리 생일 챙겨주냐 마냐에 대해서 왜 이리 심각하게, 섭섭하게 생각되었는지 모르겠다.

마흔이 되던 날, 첫째 마흔이 되던 해의 첫 번째 생일날에 우리 가족들에게 이렇게 공표를 했다. “이제 내 생일을 챙겨주지 마소!”

솔직히 예전의 나의 모습이 나타날까 봐 걱정도 들기는 했지만 이제는 예전의 모습처럼 살지 말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그냥 조용히 생일이 지나갔으면 했으면 했다.

직원들이 챙겨주지 않아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소하게 챙겨주지 않아도 절대 섭섭해하지 말자!라는 생각에 정말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했다. 그런데 예전 나의 모습을 한 번에 버릴 수 없었던지 마음 한편에는 조금이나마 기대감이 있어서 그런지 기대 반 그리고 포 기반이었다. 정말 이것이 더 힘들었다. 완전히 포기해버리면 좋으련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다행히 생일날을 잘 지나갔다. 어떻게든 내 마음에 섭섭함이 없도록 다른 생각으로 채우려고 노력하였다. 어쨌든 어른답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직장에서도 문제이기는 했다. 내 생일날이나, 그 주에는 참 불편한 출근길이었다.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으면 하는 솔직한 마음이 들면서도 억지로 부담스럽게 직원들이 챙겨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서 더더욱 있는 내 자리가 참 가시방석이었다.

우연히 SNS를 보면서 어느 회사를 다니는 대표가 직원들이 생일을 챙겨주었다고 너무 감사해서 사진을 올린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래도 회사 대표를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부럽기보다는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만 줄곧 들게 되었다. 그 조직의 모든 상황들을 알지 못하지만 준비하는 사람 중의 모두가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자랑스럽게 여긴 그 사진 몇 장이 참 불편하게만 느껴지게 되었다.

문 듯, 한 회사의 중간관리자로서 직원들을 주도하여 회사 대표의 생일을 챙겨준 적이 있었다. 생일만이었겠는가? 스승의 날, 몇 주년 행사 등 이름 붙여가며 회사 대표를 축하해 준 적이 있다. 그것이 사실 중간관리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줄만 알았다. 사실 과거를 다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과거의 그때가 꼭 맞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축하해주며, 맘은 아니지만 겉으로라도 축하해주려고 했었다. 벌써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대표를 축하해주는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내 모습에 한번 더 놀라게 된다.

직원들을 동원하며 축하해드리면, 그냥 밍밍하게 반응하시는 대표의 모습도 있었고 어느 때는 화를 내시며 “나는 이런 축하 싫어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신 적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겪고 보니 내 생일을 챙겨주는 직원들의 감사한 행동들이 참 부담스럽다. 아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솔직히 안 챙겨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솔직히 크다.

마음에서 내키지 않는데 위에서 시키는 일이니 억지로 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참 불편하다. 나 또한 억지로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데 도리어 직원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마흔이 넘다 보니, 이제는 내가 챙김을 받는 것이 참 쑥스럽다. 가능하다면 민망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요즘 들어 계속 드는 생각은 높은 위치에 서 있을 때 더욱 챙김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챙김을 받기 위한 조직의 분위기를 만들기보다는 회사의 대표의 생일도 쿨 하게 넘겨버리는 조직의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이 센스 있고 능력 있는 직원이라고 평가하는 시대는 끝난 것 같다. 시대가 바뀐 만큼 꼰대처럼 생활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좀 더 높은 위치에 있을 때, 전과 다르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더욱 나를 위해 살기보다는 많은 이들을 높여주고 좋은 영향력을 전해주는 것이 마흔의 나이다운 행동인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

“이번 주 일요일에 내 생일이라는 거 우리 아내는 알고 있을까?‘

이번 나의 생일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소망해본다.



가오를 지켜가며 삽시다.

그냥 쉽게 쉽게 지나가면 좋으련만 한번 일이 꼬이면, 순식간에 많은 어려움이 발생되는 것이 이 세상인 것 같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이 참 많이 힘들게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퍼트리는 것이 참 속상 하곤했다.

조금 더 높다면 어떻게든 짓눌러 버리고, 자기를 잘 따르는 꼭두각시를 만들어버린다. 전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개인적인 취향이 있는데, 자기와 맞지 않는다며 자기의 무리에서 쫒아 내버리기도 한다.

앞에서는 달콤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뒤에서는 참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험담을 하신다.

잘되고 있는 것을 응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기를 꺾으려고만 한다. 그래서 요즘 들어 참 많이 지친다.

살아가는 것이 참 녹록지 않다. 그냥 내버려두면 좋겠지만 그냥 가만히 나두지 않는다. 나 또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해서 그런지, 상황상 황마다 쿨하게 넘기지 못한다.

삶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진다. 큰 파도가 몰려왔다가 잔잔히 나의 발을 덮기도 한다. 큰 파도를 다행히 피하게 되어 안심을 누릴 때쯤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겪게 되는 사소한 일들이 참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타협할 생각도 있었다. 어찌 보면 내가 사소한 것에 너무 목숨을 거는 것은 아닐까 싶어 그냥 내려놓으려고 할치면 기존까지 지켜온 가오를 잃을까 봐 보다 쉽게 내려놓지도 못한다. 참 바보처럼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들과 타협하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나의 자리를 위협하고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이것들이 나의 생각만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첫 번째,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사소한 것까지 고치려고 하는 민감한 사람은 절대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보이는 것도 못 본척, 들려도 듣지 않는 척, 긴급하지만 좀 더 여유있는 것처럼 살아야한다. 입바른 소리를 하고 나서 나아진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랬다고 관계가 개선된 것도 아니다. 그저 악한 감정만 쌓일 뿐이다. 사람들은 절대 남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기만 할뿐이다.

두 번째, 사람들 절대 믿거나 의지해서는 안된다. 함께 사는 것 그리고 함께 협력하는 것 참 좋지만 사람을 절대 의지하며 산다면 실제 그들을 통해 실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 경험하게 되는 실망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실망받기 전에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하는 것도 지금 나와 우리에게 참 필요한 모습인 것 같다.

세 번째, 내 힘으로 사람을 절대 변화시킬 수 없다. 그들만의 세상을 고치려거나,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시키고자 한다면 실망감도 덩달아 오기 마련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이 어린 사람을 이해시킬 수 없고, 높은 직위에 있는 상사가 보다 낮은 직책을 가진 직원들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같이 지내는 가족조차도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러나 그런 가족들과 오랫동안 같이 살 수 있겠는가? 가족의 한 사람을 설득시키고 변화시키려고 하는 순간 가족 내에서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속편한거 아닌가? 그런데 내 가족은 되면서 남들은 나와 소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사람은 이해하기보다 그 사람 그 자체를 인정하면 끝인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그 사람 자체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남이 나의 선 이상을 밟게 되면 경계하고 싫은 것처럼 나 또한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넘어서면 안 된다. 불분률처럼 말이다.

네 번째, 절대 남들에 대해 절대 험담을 하지 말자. 나는 절대 남들에 대해 험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무심결에 남들의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도 험담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나와 맞는 이들보다 맞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이 내 주변에 있는 것 같다. 답답하고 속상하니 어느 누구에게, 친하면서 누구에게 말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속상한 이야기를 자주 전한다. 이야기하는 것들의 주요 내용은 맘에 들지 않는 부분, 그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와 속상한 감정들을 더 섞어가며 토로해 버린다. 토로해 버리면 뭐하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뿐더러 더 깊게 속상한 마음만 들 뿐이다. 또한 세상은 돌고 돈다. 나의 이야기가 전해질 수도 있지만, 내 감정이 비난받는 그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 일이 해결되기보다는 더 꼬이는 상황이 발생될 뿐이다.

아직 어려서 잘 모르지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내 입술에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듣는 이들과 참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가 있는 것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에게도 어느 정도 지분과 책임이 있다. 남들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지내기보다 나의 모습을 한번 더 살펴보면 어떨까 싶다. 어느 날 그러한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질 때, 사람 때문에 속이 상할 때 나의 모습 때문에 그런 발단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것이 가장 빠른 방법인 것 같다. 나도 부족한 사람인지라 어느 누구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존재임으로 항상 나의 태도 등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내가 바뀌면 남들도 바뀐다.


다섯 번째는 민감한 사람 깐깐한 사람이 되기 말고 좀 더 넉넉한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그런 사람 말고, 말 붙이기 힘든 사람 말고 만만하게 대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참 열심히 살면서, 열정이 매우 높은 마흔에 까딱하면 내 생각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들에게 참 까칠한 사람으로 낙인 찍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그래도 이러한 세상과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좋게 이야기하자면 열정적으로 살았고 나쁘게 말하면 치열하게 그리고 남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바득바득 산 것 같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내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마음은 벌써 너덜너덜하고 요즘들어 괜히 눈물이 자주 난다. 슬픈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것은 벌써부터 지친 내 마음이 울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살고자 노력했는데 남는 것은 없는 것 같고 알게 모르게 받았던 스크레치가 여전히 깊게 남은 듯하다. 요즘 들어 더더욱 예전처럼 그렇게 깐깐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만만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다짐이 생기게 된다. 좀 더 만만한 사람이 되어서 남들과 충분한 소통도 하고, 어쨌든 내 마음에 좀 더 여유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섯 번째는 나를 위해 살기보다는 남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리고 사람을 높여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피할 시대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자랑에 깊이 빠져드는 법이다. 그렇게 자랑을 하게 되면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보다는 때론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자기 자랑에 쉽게 취해버린 사람들을 보면 참 씁쓸한 생각이 드는 만큼 나 또한 그런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직원을 높이고,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을 높여주면 정반대의 반응들이 나오는 듯하다. 사실 그런 평가와 반응이 없더라도 남들을 높여주는 것이 참 보기 좋지 않는가? 나도 그분을 통해 높임을 받았다. 받은 만큼 베푸는 것이 내가 해야 할 도리가 아니겠는가?


일곱 번째는 나를 유혹하는 것에 가까이하지 말자. 세상을 살면서 유혹하는 것들이 참 많다. 각자마다 유혹하는 것들이 다르겠지만 나 또한 그런 유혹에 매일매일 넘어지고 후회하곤 한다. 더 무서운 것은 조금 맛본 유혹이 나중에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힘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점점 자극적인 것, 점점 유혹적인 것 등 이제는 첫 번째로 맛본 이상 더 깊은 것을 원하고, 맛보지 못하면 죽을 노릇이다. 어른이 되면 쉽게 회복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내 마음에 내성이 생겨나는 줄 모른 체 큰 착각 속에서 나이만 먹어가는 것 같다. 어른이 된다고 그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 심한 경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유혹이 나타나면 일단 튀는 게 상책이다. 나를 쫒아오지 못하도록 앞만 보고 달려야만 한다. 발버둥을 치더라도 내 몸 어디에 달라붙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은 나를 야금야금 좀먹기 때문이다. 내 몸이 썩어가고 있는데도 그것들만 바라보면서 더 좋은 것을 원하는 바보가 되지 말고 처음부터 얼씬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고 가족이 살고 내 사람들이 산다.

이 세상 정말 만만치 않다. 어떻게 보면 무서운 세상이라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할 법도 하지만, 나름 나의 페이스를 유지해가면서 좀 더 여유 있게 살아갔으면 한다. 너무 빡빡하게 민감하게 사는 것이 꼭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바보처럼 사는 것이 좋지 만은 않지만 나름 가지고 있는 선, 적정선을 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 이해하고 다 퍼부어 주는 부자 같은 삶도 좋다. 그러나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내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사람마다 조금은 차이가 있겠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어느 정도의 가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소한 것일지는 몰라도 소소한 부정적인 것을 넘는 순간 인생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면서 나름의 적정선을 잘 지켜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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