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소설
공감 소설
공감 소설이라는 집단상담 프로그램이 매우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어느 정도의 공감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된 작업은 처음 작성한 제목부터 참으로 난감했었습니다.
“왕짜증”
함께 작업을 한 선생님이 한 주 동안 겪은 일을 생각하며 만든 첫 제목이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공감할 수 없었고 사실 제목답게 어떻게 글을 작성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쉼터에서 일하고 계시는 동료 선생님은 쉼터 생활 안에서 겪었던 대상자과의 마찰이 주된 주제였고,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 주제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난감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함께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최대한 그때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솔직한 나의 감정을 그대로 서술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별 일 아닌 것 같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야기를 써 내려갈수록 소설 안에 나타난 한 아이의 감정 그리고 상처받는 동료 선생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읽혔습니다.
나름 억울한 마음, 나름 배려하였는데 당황스러운 그 반응 때문에 당연히 화도 나고 당황스러웠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상담자는 그때 상황에 놓여있지 않고 오로지 내담자의 말로써만 판단할 수 있기에 조금은 조심스럽게 다가서고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무조건적 공감은 절대 잘못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써 내려간 그 모든 것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달라는 무언의 메시지인 것 같았습니다. 쉼터에 있는 많은 이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지만 과한 친절과 대응은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 아이의 감정이 서투른 표현으로 나타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그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상담자로서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로지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자기의 이야기 자기중심적 이야기를 참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더더욱 상담자로서는 그런 자기중심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면 때론 충분한 공감 하는데 참으로 어렵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낯설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면 상담의 있어서 작게 마나 실마리가 나올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열심, 그런 관심이 있을 때 예상치 못한 내담자의 열림 “개방성”이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상담에 있어서 상담자 개인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함께 충분한 공감력을 가지고 있어야겠구나라는 생각 즉, 상담자로서의 자질 및 태도가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