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고통스러웠던 지난 과거 생활

4편. 고통스러운 삶의 끝자락

by Happyman
고통스러운 삶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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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좋더라도 어느 날은 너무 힘들 정도 우울했다. 어느 날은 다시 일어나야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7~8년 된 것 같다. 연세가 많기는 하시지만 매우 장수하시며 살고 계셨는데 갑자기 마당에서 넘어지셔서 고관절 수술을 급히 하게 되셨다. 그런데 고령인지라 고관절 수술 회복 속도가 늦어졌고 이런저런 합병증으로 인하여 요양병원에 입소하게 되셨다.

요양병원에 입소한 지 7~8년이 되어가셨도 틈틈이 부모님을 모시고 외할머니를 뵈러 갔었고 최근 들어 몸이 급격히 좋지 않으셔서 가족 모두가 임종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구질구질한 어느 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임종의 소식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셔서 그러신 지 어머니는 그저 담담히 말씀을 하시는 듯하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장례식장을 갔다. 침울한 분위기도 분위기였지만 모든 식구들 모두 담담히 장례를 치르셨다.

가족 중 장례가 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맞지만 일부러 전하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일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지인분들을 부를 자신이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늘로 보내드리면서 나 또한 깊은 우울감이 밀려왔다.

“왜 나는 이러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걸까?”

나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초라한 내 모습도 모습이지만 이제야 보니 아무도 없는 그 상황이 더 비참하게 느껴졌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것과 나의 실직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과 모든 상황들을 나의 실직과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힘든 마음에 다양한 상황들을 덧입여 상황과 나의 마음을 더 최악으로 몰고 가는 듯하였다.

점차 끝자락까지 나를 깊이 구렁텅이로 몰고 갔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세상 삶이 그런 듯했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이 최고인 것 같고, 나만 제일 힘든 것 같고, 나만 최악의 일을 겯고 있다고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힘들면 희망을 찾고 어떻게든 일어서야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정말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한번 힘들어보고 최악의 상황에 놓여보셔라. 희망을 찾아 나아가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포기해 버리는 것이 더 빠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 거라고..

방법이 없다. 한줄기의 빛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최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옴살달짝 못하는 지경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떠한 위로가 되겠으며,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두려움 웅덩이 속에 빠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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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자가 되면 두 번째로 밀려오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어느 정도 두려움이 찾아오기는 하지만 두려움이 잠시 자 자지는 것 같았고 내 앞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물밑 듯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 언제 끝날지 모를 실질자의 생활이 더욱 마음을 조여오기 시작하기도 하였다.

코로나 19로 인한 대체적으로 모든 것이 차단이 되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취업이 될 것 같았던 많은 상황들이 줄줄이 취소가 되는 그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틈이 있다면 해결할 의지라도 가질 텐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그저 집 안에서 끙끙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을 만나 내 마음을 위로받고 단단히 쥐어 잡고 싶었지만 코로나 19로 인하여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었고 도리어 만나주지도 않았다.

믿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게 되었고, 그들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는 아내도 코로나 19로 인하여 전혀 강의를 할 수가 없었고 정기적인 수입이 차단되어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특별히 지출하는 것 없이 생필품 구입만 하게 되는데도 지출금액은 항상 높았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가지 않기 때문에 삼시세끼 다 챙겨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러다 보니 전보다 많은 생필품 지출금액이 높아져만 갔다.

아내의 입덧 덕분에 집 안에서 음식도 해 먹지 못해 대부분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제는 아이들도 제법 커서 예전에는 2인분만 시켜야 했던 것이 이제는 3인분 이상 음식을 시켜야만 했다. 3인분 이상이라고 해도 3만 원 이상 매번 돈이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출금액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가 않았다.

상황은 변화되지 않는데, 점차 모든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되니 슬슬 내 마음이 불안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저 내 삶을 포기하는 것이 훨씬 빠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하였고, 왜 나만 이런 억울한 일들이 있는 것일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밤낮으로 나를 괴롭혔다.

그렇다고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실직자 생활 4개월 차가 되어 버렸다.


등산길을 걸으면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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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거 한 번도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 소외된 분들을 찾아가 돕는 것은 했어도 내가 그렇게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다 실직자가 되고 나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하였다.

집에 있으면 그 답답함과 외로움에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혹여나 나쁜 일이 벌어질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섭고 두려웠다.

도저히 집에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공기를 쌔러 가든, 기분 전환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꼭 살 것 만 같았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오랜만에 신어본 등산화를 찾아 신고, 물 한 병과 함께 가방을 들쳐 메고 무작정 밖을 나갔다.

되도록 사람이 없는 곳을 가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부끄럽게 느껴지는지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가야만 했다.

“O O 산”

집 인근에 있는 산을 무작정 가게 되었다. 평일 이 시간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겠어?라는 생각에 나름 생각도 정리를 할 겸 길을 올랐다.

저 산 밑에 나의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올 생각이었다.

내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 볼 생각이었다. 복잡한 내 마음을 시원한 물과 선선한 바람으로나마 위로받고 싶었다.

오랜만에 등산길은 참 숨이 벅차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저 주저앉고 싶었다.

꼭 지금의 나의 모습처럼 말이다. 앞이 도저히 보이지 않고 가는 길조차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은 내 모습과 같아 보였다.

‘ 인생도 다 그렇지! 편한 길이 어디 있겠어? ’

‘ 힘든 것들을 하나하나씩 넘어갔을 때 드디어 정상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

제법 등산길에는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도 함께 걷고 있었다. 노인부부들도 있었고, 젊은 친구들도 있었고, 주인 쫄랑쫄랑 따라온 강아지들도 있었다.

그들은 나와 달랐다. 아니 달라 보였다.

정상의 기쁨을 꼭 아는 것처럼 큰 기대를 가지고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있어 보였다.

나는 힘들어서 도저히 못 갈 것 같고 포기하고 싶은데, 그들은 아무런 힘이 들지 않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등산길을 걷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힘들지 않을까?’

함께 등산을 온 사람들이 참 인상 깊었다. 그래서 등산은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와야 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서로서로 이야기하며 등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참 행복해 보였고 한시도 웃음이 떠나지 않은 듯했다.

같이 걷고, 같이 걸음을 맞춰가며 힘들게만 보이던 길들을 걷고 있었다. 꼭 힘들어함을 정말 잊어버린 듯했다.

혼자만 걷는 나는 외로움을 많이 느꼈지만 그들은 함께여서 그런지 그런 표정들은 아닌 듯했다.

각자가 가져온 음식들도 함께 나누면서,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는 그 길이 참 편안하게 보였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사람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힘든 것 같고, 나만 고생하는 것 같아 더더욱 외로웠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길 끝에 마지막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이 없는데 굳이 가야 하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보면 포기해버리는 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포기해 버릴까?’

숨은 벅차오르고, 내가 무슨 낙을 누리려고 이러한 생 고생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에 그저 포기하고 싶었다. 내 삶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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