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나 답지 않는 삶
초심을 잃어 생긴 일들
어릴 적부터 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비록 수능 성적이 형편이 없어서 선생님의 길을 갈 수 없었지만 종종 교회에서나마 선생님으로 일(?) 할 수 있음에 늘 감사했다.
그저 나의 것을 남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매우 좋았고 행복하였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들이 감사했고, 실수 없이 남들 앞에서 당당히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우연히 함께 일하는 기관장의 추천으로 인하여 소소하게 강의를 했었는데 6년 전부터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했던 것 같다.
특별히 강의에 대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강의를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참 행복해서 어렵게 만들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무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미처 잊어버린 선생님의 꿈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얼마나 설레고 기뻤던지 강의를 준비하면서 매우 신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또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당연히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기도 하고, 말하고자 내용들을 요약하여 원고까지 만들기도 했다.
녹음과 녹화를 통해 실제 강의를 하는 마음과 자세로 연습을 하였고 연습하는 과정 속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찾게 되면 가장 옳은 방법으로 수정하고 보완하기도 하였다.
강의를 하게 되면 장시간 서서 있기도 하였다. 허리디스크 수술 경력이 있는 나에게는 강의 시간 내내 너무 힘들었지만 강의 중에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저 강의가 끝나고 집에 갔을 때 갑자기 밀려오는 통증 때문에 한동안 고생도 많이 했었다. 목소리 쉬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런데 강의를 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고 좋았다.
“선생님 강의 정말 좋았습니다!”
“선생님의 열정에 감동을 받았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신없이 보내는 일상 가운데 나도 모르는 모습이 나타난 것 같다. 본 업무를 잊어버린 체 이것에만 집중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초심과 다른 마음으로 업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고 내 머리에는 강의만 생각하였지 내가 만나는 대상자들, 소외된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잊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 조용한 정착한 여석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랑과 교만’이었다. 좀 더 강의를 하려는 욕심 때문인지 어느 곳에든 자랑하기 바빴다. 입으로 자랑을 하지 않아도 풍겨오는 교만한 모습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이 제법 불편해하였다.
나를 비방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지금 잘못 가는 것은 아니냐며 진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사실 나는 그러한 이야기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날카로운 마음의 칼로 그런 사람들을 더더욱 비판하면서 도리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그들에게 실망만 할 뿐이었다.
사람 앞에서는 좋은 사람, 열정이 넘치는 사람,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비치길 원해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행동을 한 것 같다. 비록 평소 나와 다른 모습이라서 불편했지만 이렇게 살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는 나름 이유를 말하면서 나 또한 참 불편하게 살았다.
어쩌다 실직을 하게 되니 너무 앞서간 나의 모습을 이제야 보게 되었다. 나 때문에 멀리 떠난 그들과 처음 가졌던 초심을 잃은 나를 보면서 나는 뒤늦게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감사할 일인데, 내 주변에 참 소중한 사람들이었는데, 늘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살았어야 했는데 그저 지금의 상황을 뒤늦게 보게 되어 후회감이 심하게 밀려왔고 도리어 내가 참 부끄러웠다.
나의 본연의 업무를 다시 찾기로 했다. 지금 당장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취업을 하게 되었을 때 해야 할 들과, 그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확인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관련 자격증 공부도 하고, 관련 업무 지침 등의 내용 등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전공 분야 이외의 다양한 내용 등을 이해하고자 매일매일 독서로 부족함을 채워나갔다.
또한 매일매일 글을 써 가면서 좀 더 세련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성장하고자 했고, 공부했던 많은 내용들을 정리하여서 프로포절 작성법이라는 단행본을 발행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통해 상처 받는 그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사과를 할 수는 없었고 나중에라도 전과 같이 행동하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과 나 또한 그들로 인해 상처 받은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하나씩 용서를 하기로 다짐하였다.
‘그들도 그들 나름 사정과 이유가 있었겠지!’
‘그들도 그와 같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것뿐이었겠지!’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지속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보니 다른 새로운 길이 정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자신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 때문에 길을 잃었다. 길의 중심에 서서 보니 아무것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느 때는 원망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었다.
“왜 나한테 이러한 힘들 길을 허락하셨나요?”
그분은 절대 내 기도를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찾아가 기도를 해도 하나도 상황이 바뀌지가 않았다.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여 가게 되었다가 앞이 가로막혀 원망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분이 그 길을 잃게 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신은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류시화 시인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분은 나와 다르게 다른 길을 계획하고 계셨다. 기도할 때마다 알려주시고 했지만 그리고 많은 메시지로 신호를 보내고 계셨지만 막힌 길 때문에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나를 그저 안타깝게 여기고 계셨다.
그 길에서 벗어나야만 다른 길, 그분이 만든 다른 길을 갈 수 있는데 나는 막힌 길 중심에서 그저 힘들어했을 뿐이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나의 상황을 충분히 알고 계셨고 다른 길을 벌써부터 계획하고 계셨다. 그분은 하루빨리 보여 주고 싶었었는데 내가 보지 못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것에 그저 답답해하셨을 것 같다.
고통당하는 자녀의 모습을 보면서 내 일처럼 함께 고통스러워하시는 그분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되었다. 나를 돌이키려면 어쩔 수 없이 갈 길을 단단히 막고 되돌리게 만들어야 했던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실직생활을 해보니 제법 많이 과거 나의 생활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한 것들도 있었지만 내 마음 한편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친구들이 생각이 났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친하거나, 지금까지 연락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손으로 몇 명 꼽힐 정도로 정말 몇 명만 자주는 아니지만 연락하며 지낸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보다는 그 친구들이 먼저 연락을 하면서 내 안부를 물어볼 정도였다.
벌써부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락은 결혼 이후에 다 끊어졌고 대학교 친구 몇 명만 연락하며 지낸다. 나이는 동갑이 아니지만 대학교 졸업 동기라는 이유로 가끔 연락하고 지낼 뿐이다.
살기 바빠서 그랬다. 일하기 바빴고 아이 키우느냐 바빠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수많은 친구 중에 몇몇의 친구들이 생각이 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대학교 때 함께 동아리를 활동을 했던 정말 친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름 리더십이 있고 엄마와 같은 따뜻함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친구를 따를 지경이었다.
남자 친구들 만큼 참 좋았던 그 여자 친구(?)는 제법 나와 잘 맞았었다. 통화도 자주 하고, 학교 다니면서 적응 못했던 나를 옆에서 잘 도와주었던 친구였다. 비록 같은 과 친구는 아니었지만 내가 봐도 그 친구는 대단했다.
어느덧 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각자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교회의 전도사 일을 하다가 전혀 다른 길이었던 직장생활을 한참 열심히 하였을 때고 나는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예전처럼 연락을 하지는 못하지만 비슷한 지역에서 일을 한다는 이유로 퇴근길에 그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지라 식당에 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거기서 잘 마무리를 하고 평소와 다르게 직접 계산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때 나도 깜빡 카드를 가져오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 친구가 거액의 음식값을 계산하게 되었다.
“나중에 내가 밥 살게!”
그 이후로 그 친구와 연락이 끊겼다. 연락을 취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 친구는 결국 내 연락을 끝까지 받지 않았고 일하는 곳까지 가서 사과를 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그 친구는 나를 외면해버렸다.
갑자기 단절한 친구의 소식을 듣고 나 또한 화가 났고 섭섭했다.
정말 내가 밥을 사지 않아서 이렇게 단절했으면 지난 오랫동안의 우정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에 도리어 그 친구를 향한 섭섭한 생각이 컸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끔은 그 친구가 생각이 많이 난다. 그만큼 아쉽게 정리가 돼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아직도 생각나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후회스럽다. 당시에는 밥 한번 안 샀다고 단절까지 한 그 친구가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베풀고 살지 않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웠고 후회스러웠다. 기회가 되면 그 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싶지만 도저히 연락할 방법이 없다.
어느 한 친구는 나랑 비슷하게 생겼다. 키도 그렇게 빼빼 마른 것까지도 나와 비슷했다. 아마 그때 당시에 그 친구가 첫째였고 내가 둘째였고 또 다른 친구가 셋째였던 걸로 기억된다.
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던 나는 그 친구와 제법 많이 같이 지냈다. 같이 지내다 보면 싸울 법도 한데도 나랑 부딪힐 일이 없었다. 항상 그 친구는 나를 대단하다고 여겼다. 칭찬도 아끼지 않았고 나를 제법 많이 높여주었던 친구였다.
학교 졸업을 하고 각자의 일을 하고 있어도 예전만큼 보지는 않아도 연락하며 지냈다. 때론 가끔 만나면서 서로 과거를 추억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친구와 해외에 나가 사역을 한다고 하였다. 나와는 다른 길이기도 했지만 해외에 나가기까지 열심히 하는 그 친구의 열정에 놀랍기도 했고 항상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랫동안 해외에 머물다가 학교 다닐 때 세 형제라고 불리던 친구들이 한꺼번에 모이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매우 반가웠다. 여전히 변화지 않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했고 웃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해외에서 사역을 하던 친구가 어려운 부탁을 하였다. 솔직히 후원을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조금이나마 할 수 있을 법 한데 나는 그 친구를 돕지 못했다. 사실 그때 당시 나도 생활하기 어려워서 누구를 후원하고 돕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친구의 부탁이라고 할지라도 조심스럽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그 친구와 전혀 연락을 할 수 없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다른 친구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친구는 전혀 나한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평소 보고 싶었던 친구였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예전과 다른 그 친구의 태도에 제법 많이 놀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해외에서 일하다가 한국에 와서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제법 많이 섭섭했던 것 같다. 어려운 사정을 알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던 친구였는데, 나는 내 자랑에만 끝났고 그의 이야기를 단 칼에 잘라 버리는 실수를 범한 것이었다.
지금도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지만 혹여나 부탁을 하게 된다면 정말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정말 그 친구가 보고 싶다.
어려움 가운데 있다 보니 이러한 생각이 많이 든다. 대부분 내 상황이 안 좋아서 그런지 후회한 일들만 계속 생각이 든다.
나는 그랬다. 나를 위해서만 살았었다.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살았다. 그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고 나 때문에 실망을 하였다 해도 나는 나를 위해서만 살았다.
그때 당시 나는 왜 이리 여유가 없었을까?
여유가 없어도 조금이나마 나누며 살 것을...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내 주변에 있는 그들을 보지 못했고 듣지 않으려 했다.
내려놓았을 때 다른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 있었다.
어쩌다 실직자가 되고 나서 나를 괴롭힌 것은 왜 나한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라는 것이었다. 삶을 살면서 아픔도 있고 고비도 있기는 하겠지만 연달아 터지는 어려움 때문에 나는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저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정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난 듯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들을 버린 것 일수도 있겠지만 당장 내게 벌어진 이 상황은 나 홀로 걷고 해결해야만 했다.
남들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참 민망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상대방도 힘들다고만 이야기하는 나의 소리에 도저히 끝가지 들을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
밀려오면서 해결되지 않는 그 외로움은 나를 정말 힘들고 어렵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평소에 인간관계를 잘 만들어 놓지 못해서 마땅히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고통스러운 삶을 조금도 이해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그들의 어설픈 격려와 위로가 도리어 나를 힘들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모슨 상황이 이해가 되지 못했다. 나만 이런 일들이 있는 것은 아니니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라고 마음을 잡고자 노력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만 힘든 것 같았다. 힘들어도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았다.
나는 점점 숨기 시작하였다. 평소 나가는 성격이 아니지만 더욱 집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더욱 줄고, 오로지 서재 안에 있으면서 나름대로의 소설 즉, 나의 고통에 대한 이유를 나름 상상하며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설인지라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 뿐이었다.
내 마음은 분명했다. 왜 이렇게 힘든 것이냐고?
그 답만 알고 있으면 언제쯤 풀릴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이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길 것만 같았다.
새벽이든 아침이든 교회에 가서 그분께 기도를 드렸다. 웬만해서는 그분을 원망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지만 돌아가는 상황에 대하여 이해가 되지 않아서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달라고 부르짖었다.
내가 그렇게 나쁜 일들을 한 걸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는데, 잘하지는 못해서 잘못은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만 갔다. 이해를 하고 묵묵히 해쳐나가려고 해도 상황이 점차 힘들어지게 되니 처음과의 마음과 다르게 포기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똑같은 기도만 드렸던 것 같다. 기도를 한 후에 무엇인가 변화되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변화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 또다시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에게 복이 흘러가지 위해서였다. 그래서 고통의 도구를 통해서라도 너를 다듬어야 했다!”
예배 가운데 담임 목사님의 말씀 가운데 깨닫게 된 말씀이었다.
나는 그렇게 잘못한 사람이 아니고 못난 사람이 아닌데도 그분은 내가 그의 사명을 감당할 무엇인가의 부족함이 있음을 분명 알고 계셨다.
큰 이벤트로 알게 하는 방법이 있었겠지만 인격적인 그분은 나 스스로 알 수 있게 지금까지 기다리고 계신 듯했다.
이제 곧 세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 사실 우리 아들은 아직 어리다. 키가 커가고 나이가 점차 늘어간다고 해도 내 눈에는 부족한 아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 아들들은 자기들이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신감은 높이 평가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사실 아직까지는 부족한 아이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이러한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맞기고 시키겠는가? 시키는 것은 분명 부모가 아닐 것이다.
그분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이런저런 기회들을 많이 주셨는데, 그분의 입장에서는 분명 부족하고 연약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기회로 나를 단단히 고치시기를 마음먹으신 것 같았다.
내가 좀 더 깨닫고 이해해서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분이 원했던 그때에 멋지게 해낼 그분의 자녀를 기대하셨던 것 같다. 해야 할 많은 기회들을 계획하고 계셨지만 아직까지 담아낼 그릇이 되지 않아 이런저런 못난 부분들을 다듬고 계셨던 것이었다.
나는 참 교만했던 사람이었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때론 무례하게 대했던 사람이었다. 욕심이 많은 욕심꾸러기였다.
욕심과 생각을 내려놓았을 때 다른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 있었다.
미움을 내려놓았을 때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좀 더 빨리 깨달을 걸... 힘들 때 뒤늦게 깨닫는 부족한 사람!”
눈치만 보며 나 답지 않게 사는 사람
우리는 남에게 좋은 사람이기 위해
나에게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
-책 <마음아, 넌 누구니> 중에서
지난 일들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평소 나 다운 모습이 아니었고, 남들을 그저 눈치 보며 살아왔던 것 같다. 비록 억울하게 느껴진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슬기로운 사회생활이라고 여긴 것 같다.
일부 사람들의 경험일지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나 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제법 많이 어려웠다. 날카로운 성격 탓에 혹시나 남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서 되도록 나의 성향 등을 감추려고 노력하였다.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겠지만 나도 모르게 불쑥 나와 버리는 성격 탓에 때론 사람들과 어려움이 있었고, 나 때문에 힘들어했던 사람들도 분명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웬만하면 내 성격을, 내 성향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정말 웬만하면 보이지 않고 숨기려고만 했었다. 그런데 타고난 성격을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
성격 검사를 해보면 10번이면 10번 다 세상의 소금형 ISTJ형으로 나타난다. 세상의 소 금형답게 참 꼼꼼하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직장의 상사들은 나를 참 좋아했었다. 일도 잘 해내고, 분석적인 성격인지라 모든 상황을 분석하여 그에 맞는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상사들 입장에서는 참 좋았던 것 같다. 떼론 너무 계획적이고 실행력이 높아서 도를 넘어 지나치게 일을 추진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평가는 매우 좋았다.
그런데 사실 함께하는 동료 직원들은 썩 내켜하지 않았다. 불편해하기만 했다. 너무 앞서가는 모습도 불편해하였지만 자기들도 나름대로 열심을 다 했는데 너무 꼼꼼히 검토하고 분석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참 웃기는 것은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서만 그렇게 살아왔지 집에서는 그러한 성격과 성향으로 살지 않았다. 사실 우리 아내는 나와 완전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기존 나의 성격으로 아내를 대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답답해서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굳이 회사에는 모르겠지만 집에서까지 내 성격 드러내면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던져진 휴지조각이 만약 회사 사무실에서 발견했다면 아마 뭐라고 했을 성격인데... 집에서는 그냥 구시렁구시렁(?) 하면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래서 회사생활의 남편 모습을 남들에게 듣게 되었을 때 제법 많이 놀랐다고 한다.
‘우리 남편은 나한테는 그렇게 하지 않는데...’
나는 직장에서 상사의 말에 그렇게 토(?)를 달지 않는다. 굳이 토(?)를 달았을 때 돌아오는 피해가 더 크기 때문에 이런저런 나의 입장을 설명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바로 슬기로운 직장생활이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반성하는 부분이지만 때론 억울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에도 그렇게 내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고 그저 윗분들(?)의 이야기를 잘 따랐다. 그래서 그런지 윗분들은 참 나를 좋아했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그것을 매우 싫어했다. 때론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었는데 윗분들의 지시사항을 그대로 받아 지시하는 부서장의 모습이 정말 싫어했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직원들이 모르는 그것들이 있었다. 부서장의 입장에서는 어느 일부부만 보고 판단할 수 없었고 직원에 비해 많은 상황들과 이유 등을 알기에 그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한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매번 나의 성향을 드러내며, 이건 아니다고 말하는 것은 참 슬기로운 행동은 아니었기에 나 또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어느 때는 별 말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직원들과 그리고 상사들과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되면 아랫 직원보다는 나보다 위에 계신 분들의 성향을 따라가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너무 싫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행동하는 나의 모습에 제법 많이 당황하기도 하였다.
가장 높은 분의 성향이 이해되지 않고 싫지만 그분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부서장의 모습을 보는 직원들의 마음은 어떨까 싶다.
정상에서 내려와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뒤돌아보니 지난 나의 과거 생활이 참 부끄러웠다. 때로는 나답게 말하고 행동했어야 했는데 너무나도 나답지 못한 체 그저 사람들에게만 맞혀 간 내 모습이 참 부끄럽게 생각된다.
그러면 다시 취업을 해서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문 듯 들었다. 타고난 성격과 성향을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지만 단순히 윗분들의 이야기를 그대로만 수용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선다.
무엇보다 나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마음을 한번 더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먼저 직원들과 충분한 소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무언의 압박감을 조성하지 않고 오로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듣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다.
누구보다 나의 성향과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성격이, 내 성향이 이렇다 라고 말하기 앞서서 나의 성격과 성향에 대한 장단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장점은 더욱 강화시키며 단점은 좀 더 낮춰가면서 변화의 기회를 자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성격과 성향을 이해해 달라고 요청하기보다 나 또한 만나는 이들의 성격과 성향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면서 때론 그들을 맞춰줄 수 있는 부단한 노력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