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슬기로운 실업자의 생활

3편. 느린 사람도 괜찮아

by Happyman
끊임없는 반성과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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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일을 할 때는, 정신없이 살고 있을 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주변에서 많이 불편해할지라도 그저 내 생각대로 생각했고 판단하며 살았던 것 같다.

상황과 환경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서 지난 삶들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을 하게 되고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들이 참 미웠고 싫었는데 이제는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어느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행동했던 그들이 참 안쓰럽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세 그들을 향한 복수심과 같은 마음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때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들인데 낮아지고 넘어지다 보니 나 또한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아픔이 참 쓰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제법 아픔의 도구로 인하여 내가 깨끗해지는 듯한 기분, 그리고 좀 더 겸손해지는 듯한 기분이 많이 든다.

문 듯 반성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예전과 같이 똑같이 돌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이번 기회를 꼭 놓치지 않으니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 드는 생각들과 다짐들을 글로 자세히 남기게 되었다. 문 뜻 문 뜻 드는 생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기에, 그리고 깊이 마음에 새겨진 것들이기에 문 듯 나온 그러한 상처들을 다시 잡아 새롭게 조정해보려고 한다.

있는 그대로 감정을 글로 남겼다. 그리고 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무엇 때문에 내가 상처를 받았는지 꼼꼼히 작성을 하였다.

적힌 솔직한 감정을 가지고 내가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실업자의 생활 참 고통스러운 하루하루이기도 하지만 가장 두려우면서도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점점 깊어져 가는 나의 감정이었다.

지난 과거들의 상처와 함께 지금의 상황을 재해석을 했을 때는 처절하게 무너지게 되고 이제는 절대 일어설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점점 깊어져 가는 실망과 좌절은 곧 나를 무너트리기도 하지만 결국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죽음을 선택하게 된 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무서웠고 두려웠다. 과거의 모든 일들이 다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살아야만 했었다. 그런데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가 또는 이러한 어려움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는 중에 하나가 바로 지난 과거에 대한 용서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 과거를 억지로라도 끄집어내어 그들과 함께 나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상황이 하나도 변화지 않았다. 아직도 취직을 못해 그저 답답하고 힘든 상황이지만 그들과 나를 용서하기 시작하니 무너졌다고 생각했던 모든 상황 가운데 작은 불빛 하나 발견한 듯 작은 소망, 일어나야겠다는 작은 결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너는 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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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점차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 때였다. 어느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제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정신 차려~!”

“그곳으로 가면 안 돼! 다시 돌아오라고?”

“많이 힘들었구나?”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위로가 참 필요했다. 어설픈 이야기 말고 그저 나를 위로하는 말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우연히 김동호 목사님이 하고 계시는 CMP콘서트가 서울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CMP콘서트는 암환자들과 가족들을 위로하는 콘서트 이이다.

콘서트의 목적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 전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을 자주 듣곤 했는데 아마 이 곳에서도 김동호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실 거라는 단순한 생각 그리고 그 말씀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힘을 업고 싶어 나는 그저 구분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가는 길에 콘서트를 통해 내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싶은 생각이 정말 컸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상황들이 조금이나마 바뀌기를 바랐다.

콘서트장에 들어갔을 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분도 계셨고, 모자를 쓰고 계신 분들도 계셨고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있었다.

사실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김동호 목사님도 암이 걸리셔서 제법 많은 고생을 하신 분이셨다. 그런데 김동호 목사님은 평생 목회를 하셨신 분이셨는데 전과 다르게 암환자들과 가족들을`위로하고 돕는 일에 지금 헌신을 하고 계신다.

콘서트 내내 김동호 목사님이 전하신 하시는 말씀이 마음 깊게 남긴다.

모든 것이 힘드셨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암이 걸렸다고 하면 아마도 죽겠다고,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은 평소와 다르게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당황했다. 그러나 무섭지는 않았다.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게 됐다. 목회자로서 수많은 임종과 장례를 치렀지만 죽음과 나 사이엔 거리가 있었다. 남의 일, 객관적으로 보던 죽음이 나의 일, 주관적으로 코 앞에 다가오니 당황스러웠다”

(김동호 목사님 인터뷰/2020.06.11. 조선일보)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이러한 마음을 주셨단다.

‘너는 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목사라고 암이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 이후로 삶이 크게 변화지 않았지만, 암이 치료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점점 빠져드는 낙심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생각과 다짐 이후에 정기적인 치료를 꾸준히 받으셨고, 등산 등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셨으며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 새)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 무엇보다 CMP 콘서트를 통해 많은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계신다.

그날 참여한 분들을 보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다들 암을 몸에 품고 계시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그저 평범하게 보였다. 어두운 그곳에서 오로지 좌절하면서 지내고 계실 것 같다고 생각하였는데 그저 평범한 얼굴 그리고 조금이나마 행복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들과 생각해보았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 오랫동안 힘들게 느끼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만난 그분들도 하나도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암이 하나도 치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희망을 만들고, 어떻게든 깊은 두려움과 어려움에서 나와 살고자 노력하는 그들이 보였고 느껴졌다.

그렇게 보던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태현아~너도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너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많은 사람들도 어려움이 있지만 다들 그렇게 산단다!”


꿈꾸는 요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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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참 재미있게 보았던 이집트 왕자 2: 요셉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어떻게 보면 나의 상황이 꼭 요셉과 같기도 했지만 요셉이 나중에 멋진 국무총리가 되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바랬었기 때문에 요셉의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요셉은 꿈을 통해 미래를 예견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소년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데다, 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를 질투한 10명의 형들과 어느 날 노예상인들에 동생을 팔아넘기고 만다.

낯선 땅 이집트로 팔려가, 고위 관료인 포티파의 집에서 노예로 살아가게 된 요셉. 성실함과 지혜로움으로 주인의 신뢰를 받게 된 요셉은 모든 가계를 관리하는 큰 임무까지 맡게 되지만, 엉뚱한 모함에 빠져 감옥에 갇히는 처지가 된다. 기약 없는 감옥생활 중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던 요셉은, 파라오가 들려준 신비한 꿈 이야기로 앞으로 닥쳐올 큰 곤란을 예견하여 이집트를 위험으로부터 지키게 된다.

마침내 요셉은 이집트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고, 오랜 흉년에 시달리다 이웃나라 이집트로 식량을 구걸하러 온 형들과도 재회하는 내용이다.

(이집트 왕자 2: 요셉 이야기)

요셉은 꿈을 가지고 있었고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다. 꿈이 있었기에 억울한 상황에 놓여 어려움이 있더라도 해쳐나가는 요셉을 보게 된다. 또한 어두운 감옥 안에서도 그 꿈을 생각하며 이겨낸 모습도 보게 된다.

더더욱 놀란 것은 꿈이 나중에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된다. 며칠 사이에 이루어진 꿈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수 십 년이 흘러 꿈이 이루어졌고,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두려움 속에 살아야만 했던 요셉의 상황이 느껴진다.

바로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니 두려움도 많이 있었을 것이고, 걱정도 들었을 것이고, 삶을 그저 포기하고 싶을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한 요셉의 삶이 곧 나와 같았다. 나도 귀한 사명을 가지고, 원대한 꿈을 품고 지금까지 일을 하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어려움으로 어쩌다 실업자가 되면서부터 요셉처럼 감옥 안에서 사는 듯 한 삶을 살았다.

정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만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하였고 곧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과 희망도 전혀 없었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매우 컸다.

결론만 보면 참 멋져 보이지만 나는 그 꿈을 향해 나가는 요셉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 같은 길 가운데에서도 묵묵히 꿈을 잊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는 요셉의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다.

그러한 요셉의 모습처럼 나도 나의 꿈을 잊지 않고 천천히 걷더라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결과를 잘 알지 못하니 더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 나와 있다. 지금보다는, 과거보다는 어떻게 보면 더 나아진 삶으로 변해 있을 것이고, 좀 더 다듬어진 사람이 되었음을 알기에 나는 오늘 요셉처럼 꿈을 잃지 않고 그 길만 묵묵히 걸어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길을 안다고 그렇게 생각했죠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 길을 따랐죠

하지만 이곳 절망의 창살 안에

주 내 마음의 문을 열 때 진신을 깨닫죠

주님 다 아시죠 나의 길을

내 삶을 다 맡깁니다. 내 길 더 잘 아시니

해답도 모르는 시험문제처럼

주님의 뜻을 찾지만 다 알 수 없었죠

시련의 세월이 내게 준 한 가지

다 이해지 못해도 주 신뢰하는 것

내주는 다 아시죠 나의 길을

내 삶을 다 맡깁니다. 내 길 더 잘 아시니

하늘 나는 새를 바라볼 때 그렇게 나도 날 수 있을 거야

소망의 날개를 펼 수 있도록 나를 이끄소서, 가르치소서

내주는 다 아시죠 나의 길을

내 삶을 다 맡깁니다. 나 비록 알지 못하나

주님 더 잘 아시니

(천관웅, 이집트 왕자 OST, 내 길 더 잘 아시니)



느린 사람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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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참 정신없이 보낸 것 같다. 하고자 했던 일들도 참 많았고 그 책임감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나는 실업자의 생활이 참 두려웠다. 끝나지 않는 실업자의 생활로 인하여 완전히 뒤처지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옛날 옛적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토끼는 매우 빨랐고, 거북이는 매우 느렸다.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를 느림보라고 놀려대자, 거북이는 자극을 받고 토끼에게 달리기 경주를 제안하였다. 경주를 시작한 토끼는 거북이가 한참 뒤진 것을 보고 안심을 하고 중간에 낮잠을 잔다. 그런데 토끼가 잠을 길게 자자 거북이는 토끼를 지나친다. 잠에서 문득 깬 토끼는 거북이가 자신을 추월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빨리 뛰어가 보지만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였다. "천천히 노력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이야기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 우리는 헛된 삶을 살지 않게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

사회와 직장은 토끼 같은 사람을 원한다. 빨리빨리하고 성과를 내는 그런 사람을 원한다. 거북이는 이솝우화에만 납득이 되는 이야기이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분명 낙오될 것이 뻔한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무리 속에서 이탈이 되면 분명 사자 등과 같은 맹수들의 표적이 되고 밥이 된다. 멈추면 죽으니 무조건 달려야만 한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 무리에서 낙오가 되고, 뒤쳐졌으니 사실 걱정과 두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막상 낙오가 되고 늦게 되니 내가 상상한 만큼 큰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벌어졌다면 그저 쫄고(?) 있던 나의 마음일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어려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자기들도 살기 바쁘니 더더욱 나의 삶에 대해 무관심할 수도 있겠지만 상상하고 있던 일들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나뿐이었지만 그로 인하여 좀 더 나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악화되었던 신체를 발견하여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 건강한 신체로 회복되었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스트레스를 다 내려놓아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앞서가는 토끼의 뒷모습을 보면서, 도리어 빠르게만 달려가는 토끼를 안쓰러워하며 잘 되기를,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아음으로 토끼를 축복하고 지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토끼와 다른 구조를 가진 나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채워져 갔고 나의 분명한 길과 사명들을 새롭게 다시 찾는 기회도 가지게 되었다.

욕심이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진심으로 욕심을 채워가며 살아왔구나라는 깊은 반성과 함께 겸손하지 못하고 자랑하기 바빴던 나를 발견하면서 나보다 남들을 높여주고 사랑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답은 아니다. 빨리 간다고 이긴 것이 분명 아니다. 느리다고 낙오가 된 것도 분명 아니다. 늦는 사람이라고, 느린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늦게 감으로써, 느리게 감으로써 잃는 것보다 채워지고 보여지는 것들이 제법 많다. 만약 지금 자신이 늦었다고 실망하지 말아라. 실망으로 시작하여 절망감과 두려움에까지 깊게 빠질 수 있으니 스스로 마음을 재촉하지 말고 늦게 가더라도 내가 좀 더 다듬어지는 기회라고 생각하였으면 한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느림으로 인하여 더 멋진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



실업자가 전하는 사직서 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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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심 끝에 낸 사직서를 낸 당신의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잠시라도 당당하고자 했던 당신을 응원한다.

분명 이유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는 당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안타까운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내고 퇴사를 했기 때문에 당신의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일부의 마음들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실직자로 생활하면서 과거 사직서를 냈던 나의 당당함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사직서를 내는 과정에서 참 부족했다거나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은 뭘까?

결국 사직서를 내는 순간부터 몰려오는 불편함과 책임이 있어서 그런지 과거의 모든 것들이 후회로 들어오는 것 같다.

그때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다시 온다면 몇 가지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퇴사를 하고 싶거나 사직서를 내고 싶은 직장인이 있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먼저 사직서를 내기 전에 충분한 생각을 해보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아내와 때론 주변 지인분들과 때론 나의 인생의 멘토분들과 논의하기를 바란다.

사직서를 내는 상황에 몰릴 때에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몰릴 위험이 크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보다 그저 나에게 대했던 감정적인 부분들이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퇴사 결정을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 자꾸만 혼자 방에만 있지를 말고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길 바란다.

이야기를 통해 보다 객관적인 시각이 조금이나마 생기게 될 것이다. 꼭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맞고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소 그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서 흩어진 나의 생각도 정리해보고,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지금 놓인 상황을 바라보기 바란다.

그렇게 해도 사직서를 내게 될 수밖에 없다면 당당히 사직서를 내기를 바란다. 정말 신중하게 판단하여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직서는 감정적으로 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직장생활이 뭐 따뜻한 나라는 아니기도 하고 상처 투성이가 가득한 나라일 수도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감정적인 상처를 받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감정적인 이유만으로 퇴사를 결정하고 사직서를 내는 것은 아닌 듯하다.

사직서를 내는 순간 모든 것은 끝이 난다. 당신의 삶이 끝이 아니라 비록 감정적인 상처들이 그냥 치료받기는커녕 그냥 딱지만 남을 뿐이다. 당신에게 비록 상처를 준 그들은 당신과 이젠 전혀 상관이 없어지게 된다. 결국 상처 남는 것은 당신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 듣지 않았나?

“어느 회사든 힘들고 어려워요!”

나도 이 말이 제일 듣기 싫지만 사실 직장생활이 그렇다. 치사하고 힘든 곳이 바로 직장인 것이다. 가정과는 다르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몸부림처야 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사직서를 내고, 퇴사를 하게 되고, 결국 실업자가 되면 결국 남는 것은 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가족들도 당신을 위로하지 못할 수 있다.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 들고 어떻게 할지 몰라서 옆에서 전전긍긍할 수도 있다. 주변에는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당신과 맞지 않는 그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더더욱 당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큰 고통이 몰려올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직장생활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실업자의 생활이 더더욱 고통스럽다. 점점 비참한 생각들과 함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싶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퇴사를 결정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분명한 이유와 명목이 있을 때 신중하게 결정하기를 바란다. 당신은 그저 사직서를 내고 퇴사를 했지만 당신 덕분에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생활은 자기의 감정을 받아주는 곳이 아니라. 앞서 말하는 것처럼 각자 살고자 몸부림치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비록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려서 퇴사를 결정하는 것이겠지만 벌써부터 상처 받은 나의 감정을 위로받겠다는 부분을 어느 정도는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사실 당신의 감정에 대해 직장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각자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당신의 감정마저 만져줄 여유가 없다.

두 번째는 결정해 놓고 가기를 바란다. 감정적이든 어떤 이유든 퇴사를 결정했다면 다른 곳을 결정해 놓고 움직이기를 바란다.

퇴사를 하고 실직생활을 하면 얼마나 불편한 상황이 많은지 모른다.

더더욱 경제적인 문제를 처음 경험하게 될 것이다.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고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는 삶 그런 삶이 될 것이다.

경제적인 삶 까지겠는가 일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부끄러움 마음이 밀려옴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우울감이 찾아온다.

다 같이 출근 시간에 방 안에서 누워 있어 봐라? 어떠한 생각이 드는 줄 아는가? 그저 비참한 생각뿐이다. 누워있는 나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게 느껴지는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하는 것이 쉽지 많은 않다. 세상 사람들은 왜 실직되었는가에 관심 있는 것보다 잠시라도 일을 하지 않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 당신의 대한 진실한 모습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무능력한 사람으로 판단할 수 있다.

어떤 이유로 실직을 했는지 생각하기보다 다른 시각으로 당신을 바라보기 때문에 다시 취직하기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나의 입맛에 맞는 직장에 가기보다는 손해를 보더라도 가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현재 일하고 있는 도중에 좀 더 좋은 곳으로 점프를 하는 훨씬 쉽지 실직하고 나서 더 좋은 곳으로 가기에는 쉽지 않고 그저 어려울 뿐이다.

혹여나 퇴사를 결정하고 사직서를 냈다면 그 전의 회사에 대한 모든 감정들과 관계들을 잘 정리하고 오기를 바란다.

내 경험일 수도 있지만 실업자 생활 내내 과거 회사에서 나에게 무례하게 했던 모든 것들이 많이 생각이 나서 나를 더욱 고립되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고 화나게 만들었다.

사직을 하고 퇴사를 하면 대부분 좋게는 나오지 않는 법이다. 하나라도 상처를 받고 나오기 마련인데, 그것이 도리어 실업자 생활 내내 그리고 다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서도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힘들게만 할 뿐이다.

어떤 이유로 퇴사를 했든 간에 그 회사에서 나오기 전까지 모든 감정들과 관계들을 잘 정리하고, 잘 내려놓고 오기를 바란다. 혹여나 그것들이 당신을 평생 힘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없이는 회사가 잘 돌아가는지 보자! “

아쉽고 속상하겠지만 당신이 없어도 결국 회사는 돌아간다. 약간은 어설프게 돌아가도 결국 돌아간다. 그들을 향한 복수도 필요 없다. 퇴사 즉시 다 끝인 난 것이다. 그들은 당신을 벌써부터 잊혀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왜 이전의 것들을 다 끄집어내면서까지 당신만 힘들게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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