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외로움을 이기려고 애쓰지 말기
글을 쓰게 된 이유
나는 글을 쓰는 전문 작가는 아니다. 평생 작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도 없을뿐더러 글을 쓰는 기술도 현격히 부족한 사람이다.
2019년 우연히 글을 쓰는 것을 배우고 나서 강의해주셨던 선생님의 권유로 책을 만들게 되었다. 글을 쓸 때는 글 소재가 되는 것들을 많이 경험하거나 알고 있어야 하는데 사실 그리 알고 있는 것도 남들보다 특별하게 경험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기획이라는 것에 꽤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15억 이상의 공모사업 선정’
사실 내 힘으로 할 수 있던 것은 아니지만 제법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평소 공모사업에 대한 경험들을 정리해놓았던 나는 이러한 경험을 소재로 삼아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책을 출간하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지금도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정기적으로 제법 많이 팔리고 있는 중이며,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의 책 중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나름 인기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던 나도 어쩌다 실직자가 되었다.
실직자가 실제 되어보니 심리 정서적으로 정말 고달팠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정말 죽을 노릇이었다.
하루하루가 정말 지옥 같아서 앞에서도 이야기한 듯 죽고 싶은 생각이 점점 깊어져만 갔다. 그런데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살아야 하는데 마땅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침대에 누워 시간이 축낼 뿐이었다. 어쩌면 그 시간이 매우 무료하고 지겨운지 미칠 노릇이었다.
집에서 혼자 있다 보니 스스로 온갖 생각들이 찾아왔다.
사람들이 점점 싫어질뿐더러, 내 상황들이 점점 악화된 듯 한 기분이 너무 들었다. 점점 살을 붙이면서 폭발 직전이었다.
가끔 한 튀어나온 감정 때문에 제법 많이 화도 내고, 시비만 붙으면 무조건 싸우기 일쑤였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어떤 일이든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어찌 보면 이런 경험들도 나중에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나의 경험들이 모여 누구가에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전에 나온 책처럼 어떤 분야의 전공서적이라면 모를까 나의 이야기, 나의 실직자의 생활을 널리 널리 알리고자 하니 처음 생각과 다르게 걱정도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다. 감정이 느껴지는 대로 연필을 들어 다이어리에 적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쓰면서도 덜 풀린 내 감정을 더 알게 되었고 어느 날은 과거 나의 실수가 생각이 들어 많은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 쓰는데 열심을 다했다.
어떠한 책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으나 책을 만들기 전 꾸준히 했던 글쓰기는 고통스러운 실직자의 생활에 어느 정도는 힘과 용기가 되었다.
심리학적으로는 정확하고 자세히는 모르나 글쓰기는 어느 정도 심리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어디에서 들은 듯하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이 정리되고 내려놓는 느낌이 많이 든다. 나도 잘 알지 못하는 솔직한 내 감정을 알 수 있는 것도 좋은 장점일뿐더러 악화고 부정적인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되거나 내려놓게 되는 것이 글쓰기의 큰 장점인 것 같다.
아직 열심히 글을 쓰고 있어서 어떠한 책이 나올지 모르나 약간의 걱정이 드는 것은 나의 글이 오로지 내가 경험한 것들이 중심으로, 내가 생각한 것들 중심으로 글이 써졌기 때문에 도리어 많이 이들에게 공감이 덜 하지 않는 것이었다.
글을 쓰면서 더더욱 느끼게 되는 것은 나를 포함한 많이 이들이 제법 실직과 같은 어려움에 있다는 사실과 비록 어려움에 있다 하여도 나와는 다르게 일어서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에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게 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해소가 된 듯한 기분이다. 무엇보다 비록 지금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무너지지 않으며 어떻게든 일어서야겠다는 결심들을 매일매일 글을 쓰면서 하게 된다.
다시 서게 되었을 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내가 다시 일어설 날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을 바라보며 꿈꾸며 지금의 이 상황에서 일어서기를 노력하고 있다.
실직의 어려움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수도 없이 밀려오게 된다. 그러면서 과거 나의 행실에 대해 깊이 반성하게 된다. 거의 대부분 삶이 힘들어서 그런지 후회만 그저 할 뿐이었다.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직원들을 이해해줘야지!”
“직원들과 소통하고 협력해서 멋진 일들을 만들어가야지!”
“소통만 이야기하지 말고, 직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지!”
“진심으로 배려해줘야지!”
“나답게 살아야지!”
“사람들을 좀 더 사랑하고 도와주면서 살아야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 살아야지?”
“자랑하지 말며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지!”
“사명을 감당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지!”
“주변 사람을 잘 살피고 더더욱 베풀면서 살아야지!”
"늘 배우는 자세로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야지! “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야지!”
“화내지 말고, 좀 더 여유 있게 웃음을 잃지 말아야지!”
“경험만 의지하지 말고 늘 공부하고 연구해가면서 늘 최선을 다해야지!”
“바쁘더라도 가족을 위한 시간을 꼭 가져야지!”
“나를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께 자주 연락하면서 효도하며 살아야지!”
“죄짓지 않고 착하게 살아야지!”
“건강도 잘 챙기면서 살아야지!”
“자주 독서하는 사람이 돼야지!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다른 사람보다 일찍 시작해야지!”
매일매일 다짐 속에 산다. 꼭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만약 내가 다시 일어나게 된다면 다짐한 약속들을 꼭 지키겠다고 반복하며 약속한다.
이 모든 약속과 다짐을 지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오늘 문 듯 들었다. 사실 불가능한 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 기회를 통해 다른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만약 예전 같이 나에게 무례한 사람들이 있다면,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예전과 다르게 친절히 이야기하고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변화되지 않는 무적 로봇일 텐데, 그저 뜸 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조금 두렵다. 예전의 나의 악마 같은 나의 옛사람 같은 모습이 나타날까 두렵고 떨린다.
‘어찌하여야 옛사람을 버릴 수 있을까?’
나는 근본적으로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 절대 변화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다짐하는 것은 옛사람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러면서 오늘부터라도 차근차근 연습을 할 것이다.
비록 억울한 상황이라도 잠시 그 자리를 피하는 연습
못 땅 하게 여기는 행동을 하는 아내(?)이고, 불만을 이야기하는 아내일지라도 나의 입장만 이야기하기보다
“그래 내가 실수를 한 것 같다! 미안해 자기야~!”
“자기야 나랑 함께해 주고 응원해줘서 고마워!”
(참 쑥스러운 표현이지만 평소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기)
피곤한 저녁시간일지라도 아들과 함께 체스를 하고, 잠 자기 전 아빠의 목소리로 동화를 읽어 줄 예정이다.
무엇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글에 자주 써가면서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일부러 전화를 걸거나 이야기를 할 기회가 될 때 그렇게 표현을 할 것이다.
외로움을 이기려고 애쓰지 말기
실직자의 삶을 한마디로 설명한다고 하면 “외로움”인 것 같다.
저 멀리 떠나간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만들어 놓고 문 잠가버린 내 마음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나에 대한 비참하고 부끄러운 생각 때문에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지난 화려한 과거가 생각이 나서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실직자=외로움이라는 공식 성립”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만든 공식이었다. 만든 공식에 이런저런 상황들을 대입하여 더 큰 외로움을 만들어간다. 집 안에서 느끼는 그 외로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왜 이리 나만 외로운 걸까?”
사실 이러한 외로움은 타인의 부재에 의한 외로움인지, 존재 자체의 외로움인지, 전혀 다른 외로움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나에게만 일어나는 외로움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 일어날 수 있는 외로움이라는 것이다.(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없어_김효진)
실직생활을 하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밀려오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결국 외로움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것에 집중하다 보니 일상이 정말 바뀌게 되었다.
처음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이겨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굳이 이겨내고자 했던 마음조차 버리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밀려오는 외로운 마음을 한쪽 곁에 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과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에 집중하며 그 시간을 즐겁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특별히 두 가지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는 독서이고 두 번째는 글 쓰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제법 많은 책들을 읽어왔지만 더더욱 힘든 이 시기에 독서는 나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책에서 나오는 문구 문구가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고 보다 깊이 내 마음에 담아지게 되었다.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감명 깊게 느낀 문구를 다이어리에 옮기고 나의 생각을 글로서 남겼다. 또한 느껴진 것들을 하루에 하나씩 실천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오로지 집에서만 이루어지는 작업인지라 어떻게 보면 더욱 우울한 마음이 밀려오는 듯하여 독서 핑계를 삼아 밖으로 나가는 연습들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거나, 중고서점에 직접 찾아가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책을 보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아파트 앞 공원(?)에서 선선한 바람을 친구 삼아 책을 읽기도 하였다.
좀 더 탁 트인 곳에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등산이었다. 정상까지 가는데 3~4시간 걸리는 거리이지만 무슨 생각으로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렵게 정상에 올라 책을 보고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잊어버린 내 안에 있는 밝은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어서 이제는 살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혼자 있는 외로움의 시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어떻게든 지지리 궁상 같은 삶을 버리고 외로움을 그저 받아들이기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온전히 나를 적극적으로 만나보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가며 좀 더 의미 있는 일들을 만들어갈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폴 부르제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나도 우울한 감정에 깊이 빠져 있기보다는 늘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성취하고 성과를 이루는 것을 즐기고자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 집중하는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게 되고 스스로 도움이 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등산길을 걸으면서②
드라마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등산을 하는 것이 문 듯 생각이 들었다.
또한 깊이 생각해보고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줄 겸, 외로운 길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어 시작된 등산길이었다.
그저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에 등산길을 다소 두려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없어서 더더욱 내 마음과 감정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분께 소리 질러가며 기도를 하고 싶었다.
“나만 왜 이리 힘들까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상상에만 그쳤다. 왜냐면 등산길에, 평일 그 시간에 내가 상상한 것보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소리 지르면서 기도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임이 분명했다.
“미친 XX”
그러면 입으로 기도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도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원래 이런 길이었나 싶을 정도로 등산길이 매우 경사가 있었고 가는 등산길이 너무 힘들어 숨이 턱까지 오르게 되니 기도할 마음이 어느새 싹 사라졌다.
헉헉 거리며 숨이 차오르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나의 나이와 체력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옛날 생각만 했다! 나 이제 그렇게 젊은 사람은 아닌데..’
많은 등산객들은 거침없이 등산길을 걷고 있었다.
3km만 가면 정상이 나오는데, 점점 정상이 멀어지는 듯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미리 챙겨놓은 물과 과일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개만 먹을 생각이었는데 힘들게 올라온 등산길 중간지점에서 먹는 과일이 참 달았다. 하나 두게 먹다 보니 벌써 다 먹고 말았다.
사실은 정상에 올라가서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먹을 생각이었는데 원래의 계획이 완전 실패가 되었다.
1번만 쉬고 계속 걸어야 정상을 갈 수 있을 텐데 10분이 지났나? 나는 1시간 걸은 것만 같아서 조금 가다 쉬고, 조금 가다 쉬는 일들을 반복했다.
입구에서 같이 시작한 어느 청년은 어느새 정상까지 다 찍고 내려오는 길에 보게 되었다.
‘부럽다! 나도 정상을 가고 싶다!’
너무 힘들다 보니 삶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정상을 오르는 이 길도 죽겠는데,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은 지금 상황에서 불필요해 보였다. 그저 빨리 정상을 보거나, 아님 빨리 내려가야만 했다.
결국 정상을 가지 못했다. 이러다가 등산길 어느 쪽에서 낙오되어 뉴스에서 나올 법하게 헬리콥터 타고 병원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힘이 완전히 빠졌다. 당연히 다리 힘도 완전히 빠져서 잘못하다가는 넘어지거나 다리를 삐끗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앞만 보고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내려오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길 같지 않는 길을 걷게 되었고, 갑자기 물 웅덩이를 넘어가야 했다. 길이 아닌데 무성히 올라가진 풀 사이를 해쳐나가며 무작정 내려와야만 했다.
다리는 풀리고, 정신은 없어서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연히 주변은 보지도 못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들도 다 뻥이었구먼!”
등산을 통해 자기를 한번 더 생각하고, 돌아보는 그 장면 완전 현실과 다름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등산길이 힘든데... 무슨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겠어! 등산하면서 낙오 안 되는 것이 다행인 거지!‘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등산길이 힘들지 않았다면 나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직 내가 살아가야 이유가 있어서 그런지, 그분이 나를 살리려고 그렇게 하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살아있다.
내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쥐 죽은 듯이 집에서만 틀어 박혀 살았다. 남들과 만나는 것도 연락하는 것도 부담되었지만 주변에 제법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살아있다고 그들에게 작은 신호를 보내줘야 할 듯싶었다.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사실 어떻게 보면 언제부터인가 기존의 외로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나의 작은 노력이 아닐까 싶다.
아직 실직생활은 유지되어있고 특별히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작은 노력들이 필요했다.
밖에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집 안에서, 작은 나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SNS와 소통하기였다. 때론 SNS 놈의 자식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방법은 SNS밖에 없었다.
예전에 절대 SNS를 하지 않겠다며 몇 개의 SNS 앱을 다 삭제해 버렸는데 어느새 다시 살려놓았다.
그리고 나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좀 더 밝은 내 모습을, 열심히 살려고 하는 내 모습 위주로 사진 등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가족을 위해 만든 #음식 스타 그램 중심으로 올리거나, 독서를 통해 알게 된 것들 중심으로 #독서 스타 그램을 올리기도 했다. 때론 자주는 아니지만 몇몇의 사람들의 이야기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공감되기보다는 아직도 나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점과 늘 당신을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내가 SNS에 아들과 함께 놀고 있는 사진을 올렸더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었다. 그런데 어느 지인 분이 이렇게 댓글 달아주셨다.
“이제 일 해야지”
나는 그 댓글을 보자마자 바로 댓글을 지울 수가 없어서 글 전체를 비공개로 해버렸다. 그런데 SNS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바로 내린 댓글을 그 사이에 본 사람이 제법 많다는 것이었다.
바로 카톡으로 연락이 와서 “지금 일 안 해?”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때론 전화도 온 적도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있는 내가 걱정하기도 했고 그러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많이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 일이 있은 후에 많은 이들에게 내가 지금 실업자라는 것을 널리 널리 알리게 되었다. 사실 너무 싫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올린 댓글은 나를 응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예전 회사 사람들이 어쩌다 알게 되어 혹시나 비웃을 까 봐 그것이 걱정되고 싫었던 것이다.
‘잘 나가서 당신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두 번째로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한 일은 가족들과 더 가까이 지내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육아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이었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나쁜 감정과 짜증들을 되도록 잠잠하게 하고 행복한 모습과 기쁜 마음으로 보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을 많이 가졌다.
청소, 빨래, 설거지는 물론 두 아이를 목욕시키는 등의 노력을 다했다. 평소에 잘하지 못하는 청소인지라 뒤돌아서면 다시 쌓인 먼지들이 제법 많았고, 바로바로 빨래하지 않고 말리지 않아서 꿉꿉한 냄새들이 온 집안에서 진동하기도 했다. 설거지는 바로바로 했어야 했으나 그것도 귀찮아서 2일에 한 번씩 하는 경우에는 어느새 쌓아 올려진 무덤 같은 설거지들로 인해 냄새도 많이 났었다.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도 왜 이리 하기 싫은 걸까? 우리 집에는 무덤들이 몇 개 정도 있다.
“설거지 무덤”, “빨래 무덤” “쓰레기 무덤”
이렇게 하기 싫은 것들을 평생 해 오신 우리 어머니들 정말 대단하고 느끼게 된다.
하여튼 집안 살림이 만만치가 않다.
어느 날은 쌓인 쓰레기를 밖에 나가 분리수거를 해야 했다. 다들 버리는 주기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꺼번에 버리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버리는 내가 부끄러운지 아님 실업자인 내가 부끄러운지는 모르겠으나 웬만하면 출근시간이나 저녁시간을 되도록 피하고자 한다. 수많은 쓰레기를 들고 가는 것도 정말 창피하지만, 일하지도 못하는 나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수군거릴까 봐 그것이 걱정되고 싫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오지랖넓은아줌마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나를 보고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가 제일 민망하다. 남들이 들어서도 민망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기계에서 들리는 그 음성 때문에 더더욱 부끄럽다.
“이번에 버리신 음식물은 20kg입니다!”
(보통 가정 내에서 한 번에 20kg 정도 버리면 엄청 버리는 것이 아닌가?
세 번째로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한 일은 글 쓰는 것과 작가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아직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또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글을 쓰다 보니까 우연히 #브런치 작가가 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의 솔직한 감정과 상황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글을 쓰게 되면 나의 솔직한 감정을 알 수 있기도 하고, 점차 부정적인 감정들이 다소 해소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억울한 상황들을 기록하면서 화도 나기도 했지만 나의 솔직한 감정을 위로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나의 글을 통해 나와 같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참 감사한 일들은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고 있었고 공감해주고 있었다. 남들에게 희망을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시작한 글들이 도리어 많은 이들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되었다.
지금은 그러한 작가 활동이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3편의 글을 올리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한 일은 독서였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하여 예전처럼 책을 쉽게 볼 수는 없지만 온라인을 통해 책을 예약 신청하여 직접 도서관에서 책을 받아보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다소 불편한 것은 있었지만 책을 보려고 노력했다. 예전보다는 시간이 많이 허락되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 없이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예전에는 업무와 연관된 책을 보거나,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책을 보았다면 지금은 솔직한 나의 감정을 위로하는 책을 본다거나, 나의 미래와 아이들의 육아와 관련된 책들을 두루 셥렵하여 읽고 있다.
독서라는 것은 기록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독서를 통해 느낀 것과 알게 된 것들을 메모지나 다이어리에 적어서 다시 한번 나의 마음에 정확히 새기고자 노력한다.
우연히 알게 이벤트(?)라고 할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책을 출간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서평 이벤트가 있었다. 사실 이런 이벤트가 있는 것도 몰랐다. 우연히 알게 되어 서평 이벤트를 찾아봤더니 제법 많았다.
많은 이들에게 책을 주고 서평을 작성하는 것보다 일부 몇몇에게도 가능토록 하게 되어 있어서 제법 이벤트에 당첨되는 것이 어렵다.
사실 나는 이런 이벤트에 큰 장점이 있다. 아니, 남들이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 실업자입니다....”
“지금 제가 실업자이어서 마음이 너무 어렵습니다. 이 책을 통해 큰 위로와 힘을 얻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실업자인데 제법 아이들이 상처를 받은 듯합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 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나의 작은 호소가 먹혔는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작가분들에게 책을 많이 받았다. 때론 독서를 하려면 책을 사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도 있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공짜로 책도 받고, 공짜로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