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진심으로 용서하기
진심으로 용서하기
‘용서는 화해와 다르다’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 얀 안설랭 슈창베르제 외 지음/하봉 금 옮김, 2014)
세상의 나와 맞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때론 직장생활에서 나랑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기이다.
때론 맞지 않아도 맞춰주는 것, 자존심 상해도 맞춰주는 것이야말로 직장생활 안에서, 사회생활 안에서 해야 할 행동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행동과 마음 자세야 말로 무섭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직장생활에서는 다른 이들에게 이쁨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나도 이제껏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로 인해 기쁘기도 했지만 때론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평생 고생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간질환을 얻게 되었을 정도였다.
최근에 만난 사람이 유난히 생각이 든다. 오늘도 새벽 내내 꿈속에서 그 사람으로 인하여 괴롭힘을 당하고 힘들어했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는 정도였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그가 찾아와서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당황해하면서도 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사실 그 사람은 잘 무례한 사람이었다. 내 인생 속에서 역대 무례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 이상에 정말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까지 서스름없이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 때문에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는 내내 그가 계속 생각이 났고 용서보다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만 치밀어 오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내가 살기 위해서 굳이 과거의 일들까지 끄집어내면서 생각하고 분노하기는 싫었다.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불쑥불쑥 생각이 나더라도 생각하지 않고 땅에 붙어버렸다.
잠을 들려고 해도 그가 생각이 났고, 어디에 있든 간에 그가 생각이 났다. 그래도 잊으려고 노력했고 나름 내 마음에는..
‘어차피 과거일 뿐이다!’
‘어차피 그 사람은 절대 변화지 않을 것이며, 전혀 자기가 행동했던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전혀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나만 계속 생각하고 있다!’
생각이 날 때마다, 분노가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급히 내 마음을 수습하려고 했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다하였다.
그런데 최근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에 대한 많은 질문과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 어떤 사람이에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자기는 모르지만 어디를 가든 그 사람의 행동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문의로 인하여 애써 묻어버린 그때의 모든 일들이 다시 한번 지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오늘처럼 꿈에 나타나 나를 하루 종일 괴롭혔던 것 같다.
제대로 자지를 못해서 피곤한 것도 있지만 이른 아침이 매우 불쾌하고 기분이 매우 나쁜 것은 무엇일까?
머리에 계속 맴도는 그의 모습에 대해 한동안 분노를 감출 수 없었지만 곰곰이 과거의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도 살려고 그렇게 행동했겠지!”
“그도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어서 그렇겠지!”
“잘 살아보려고 했다가 그렇게 잘못된 거겠지!”
“그도 불쌍하고 연약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지!”
그저 그 사람이 매우 안쓰러웠다. 또한 그 사람을 잘 대해주지 못한 나의 모습 또한 후회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를 용서해 줘야겠다. 진심으로 그를 용서해주어야겠다.
그리고 그가 지금 있는 그곳에서 잘할 수 있도록 큰 축복의 기도를 해줘야겠다.
‘사람의 판단과 심판은 그분이 하실 일!’
나도 연약한 사람이고 부족한 사람인데 어찌 그를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을 한다. 또한 그런 높아진 마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비판하고 미워한다. 그저 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거나 내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각자의 무리에서, 나의 마음에서 나가게 만들어버린다.
높아진 나의 마음에 어떤 것들이 용납이 되고, 용서가 되겠는가?
사실 나도 제법 높았다. 어느 누구도 올라올 수 없을 만큼 높아진 그것들을 나름 큰 자부심 하나로 살아오기도 했다.
먼저 나의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았다. 곧 넘어질 바벨탑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것이라고 자랑할 뿐이었다.
높은 빌딩 위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면 사람들은 매우 작아 보이고, 지나가는 자동차조차 작게 보이기 마련인데, 나 또한 높은 그곳에서 그렇게 사람을 바라봤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이제는 그 높은 곳에서 내려와야 한다. 곧 무너지는 그곳에서 급히 내려와야 한다.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용서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용서하기도 작정했다.
그저 예전처럼 땅에 묻어 버리기만 해서 썩지 않는 쓰레기로 만들지 않기도 했다.
진심을 다해서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의 모든 행동들이 납득이 되지 않지만 그리고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그를 용서하려고 한다.
“용서를 통해 내가 살 수 있습니다!”
문 듯 밀양 영화가 생각이 났다. 아들을 유괴하고 죽여 교도소에 수감한 살인자 앞에 앉아서 신애(전도연)랑 이야기하는 장면이 생각이 났다.
○ 신애(전도연): 내가 오늘 여기에 찾아온 건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해주러 왔어요. 나도 전에는 몰랐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절대 안 믿었어요. 내 눈에 안 보이니까 안 믿었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몰라요.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거예요. 그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요.
○ 살인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준이 어머니한테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야기를 듣게 되니 참말로 감사합니다. 저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교도소에 들어온 뒤에 하나님을 가슴에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많은 인간에게 찾아오신 거지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이 죄 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 주시고, 그 앞에 엎드려서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제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 신애(전도연):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주셨다고요?
○ 살인자: 예,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하고, 하루하루가 얼마가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한테 회개하고 용서받으니 이래 편합니다. 내 마음이...
“내가 그 인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어요!”
나름 스스로가 착각하며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용서하기로 결심하였다. 진심이 그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밀양 영화에서 나온 신애(전도연)처럼 생각되지 않도록 진심으로 용서하면서 때로는 전과 같이 그에게 했던 행동과 말들이 불쑥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뿐이겠는가? 실직 전의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들 다 말이다.
과거의 사람들을 이젠 진심으로 용서하고 이제 만난 이들에게는 예전같이 무례하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해본다.
“천천히!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럽게....”
나는 행복이지만 남들에게는 불행일 수도 있겠구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SNS 활동이 제법 많아졌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진, 가족을 위해 만든 사진 등등 나를 알리고 나의 행복을 전하는 SNS 활동은 제법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통의 도구였다.
어느 날은 셋째가 생겨 너무 기쁨 나머지 SNS를 통해 기쁜 소식을 전했다. 더더욱 딸이라는 소식과 함께 말이다.
내가 그렇게 글을 올린 것은 비록 내가 실업자이지만 당당히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고 어쩌면 실업자와 별계로 셋째가 생겼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축하받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현재 행복하다는 것을 전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도리어 내가 올린 글을 통해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아이가 생기지가 않는데.. 당신은 벌써 셋째?”
“나도 아이가 있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벌써 셋째?”
우연히 알게 된 그들의 이야기가 순간 화도 나고 도리어 섭섭한 마음이 많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말을 해야겠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SNS가 이루어지다 보니 그들의 모든 감정과 상황을 어떻게 고려할 수 있고 맞춰질 수 있겠는가?
잠시 화도 나도 섭섭하기는 했지만 순간 이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 놓인 그들이 안쓰럽기보다는 나를 한번 더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항상 옳은 것일까?’
그런데 나는 내가 항상 맞으며 옳은 생각 가운데 남들보다 더 옳게 행동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뱉는 나의 이야기가 남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나의 자랑이 도리어 그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사실 많은 이들의 사정을 일일이 맞춰 줄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내 삶은 나의 삶일 뿐이지, 그들의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때론 남들의 이야기보다 나의 이야기에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도 어느 선을 넘지 않는 이상 나의 말과 행동은 항상 조심하고 조심해야 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배려하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떻게 보면 사람이 해야 할 도리일지도 모르겠다.
가족(Family)
가족(家族)은 대체로 혈연, 혼인, 입양, 친분 등으로 관계되어 같이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공동체)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넌 어떻게 그렇게 입고 다니냐? 창피하지도 않아?”
나는 평소 꾸미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었다. 있는 옷이라고 하면 청바지에 티셔츠, 사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이기도 했지만..
그건 내 생활이었고 나의 스타일이었지만 주변에 있는 가족은 비록 불쾌하게 느껴질지라도 나에게 폭언(?)을 자주 하곤 했다. 가족이라서 도움되라고 하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나는 그저 상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니까 그런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거야?”
가족을 이렇게 비유하곤 합니다.
가족 “두부”로 비유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 부서질 수 있으니까요! 언제나 가만가만 다루어야 하는 소중한 것이니까요!
2. 가족 “붕어빵”에 비유됩니다.
-추운 겨울에 절실하게 생각나고 급히 먹으면 탈 나고 중요한 것은(단팥)은 겉이 아닌 속에 있으니까요...
3. 가족 “바카스”로 비유됩니다.
박카스를 마시면 피로가 풀리는 것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보면 하루의 피로를 잊을 수 있으니까요..
(참고: https://cafe.naver.com/cjsam, 행복한 공간 순광맘)
우리의 삶의 대부분을 가정 안에서 지내다 보니 때론 나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외부로부터 큰 공격을 받아도 든든한 방어막(?) 때문에 다행히 살 수 있는 곳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단단한 방어막이 어느새 구멍이 나고 틈이 벌어진다면 나의 삶에 적지 않는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제법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한 구멍과 틈이 생기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해보면 다양한 이유 중에 하나가 사소한 상처의 말인 것 같다.
그저 가족끼리는 사소한 이야기라도 괜찮아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들이 참 가족 간의 상처를 주는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나와 함께 사는 가족들을 성격과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보다 정말 모르는 것도 가족인 것 같다.
사실 가족이라고 하니 유심히 관찰할 이유도 없고, 저 사람을 어떻게 할 이유와 명목도 없기 때문에 판단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물 흐르듯 그냥 그렇게 사는 것 같다.
내가 있는 가정과 가족이 만약 회사고 사회생활이었던 그렇게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런데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우리 가족을 잘 알고 있다는 대단한 착각과 함께 아무 말을 해도 괜찮아 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오랫동안 실업자 생활을 하다 보니 주로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가는 것이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너무 들어서 쥐구멍에 숨는 그런 기분과 감정으로 집에 있곤 했다.
그런데 집에만 있다 보니 평소에 안 하던 집안 일도 제법 많이 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설거지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때론 일을 하고 오는 아내를 기다리며 음식도 해놓고 하곤 했다.
열심히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기를 바랐는데, 도리어 맛없다며 입맛이 없다며 제대로 먹지도 않은 체 숟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나는 매우 속상한 기분이 많이 들었다.
‘우쒸(?) 애써 만든 음식인데...’
화가 나지만 애써 만든 음식을 버릴 수 없기에 그 자리에서 평소 먹는 것에 몇 배만큼 우적우적 먹기만 했다. 배불러오는 뱃살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말이다.
땀을 흘린 아이를 씻기기도 하고, 저녁에는 책도 읽어주고..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질 만큼 하루가 참 고되었다.
하루 이틀은 참 괜찮았고 할 만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도 일상이 되어보니 이제는 하기 싫기도 하고 힘들기만 했다. 더더욱 민감하게 가족들에게 반응하기 시작하였다.
먹고 나서 정리하지 않는 아이에게 폭풍 잔소리
썼던 휴지조각을 그냥 바닥에 놓은 아내에게 폭풍 잔소리
자고 일어났는데 이불을 정리하지 않는 아이에게 폭풍 잔소리
밥 먹다가 바닥에 흘린 5살 막내에게 폭풍 잔소리
하는 사람 있고 정리하는 사람 따로 있나 가족들의 그러한 모습들이 괜히 짜증만 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으니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지 하는 생각에 내 삶도 참 슬펐다.
그런 상황 가운에서도 나름 열심히 살고자 하는데 도와주지 않는 가족들에게 그저 실망하고 짜증만 부렸다.
나는 나름대로 짜증만 쌓여 갔던 것 같다.
‘폭발 일부 직전!’
평범한 주일 저녁쯤이었다. 전에 아이들이 뛰고 놀아서 목욕을 해야 했지만 아내가 아이들을 목욕시켜줄 주 알았다. 임신한 지 5개월이 아내가 말이다.
사실 그전에 집을 돌아다니면서 정리도 하고 설거지도 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첫째 아들 목욕은 내가 다 시켜놓은 상태인지라 막내 아이만 목욕을 시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첫째 아이를 목욕시킨 후에 방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막내 아이가 아빠랑 목욕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란다.
‘잠시 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막내 아이를 목욕시키러 가는 길에 아내에게 밥이라도 해줘라고 이야기를 건넸다.
밥하는 거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말이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은 매우 날카로웠다.
“자기는 아이랑 목욕하는 것이 싫어? 자기는 꼭 이런 식으로 나를 시키더라..”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도 격양된 목소리로
“그렇게 할 거면 밥 하지 마!!”(간이 배 밖으로 나온 듯한 발언?)
나도 격양된 목소리로 했기 때문에 아내가 잠시 잠잠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오산이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나도 아내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
갑자기 큰 소리 내며 화를 내는 아내의 모습에 심히 당황했을 뿐만 아니라 아빠랑 엄마랑 싸우는 모습을 처음 본 첫째 아이는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첫째 아이가 너무 불안했는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해서 더 이상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가장의 권위가 방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이니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버렸다. 마음은 집에 안 들어가거나, 아주 늦게 들어가서 아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갈 곳이 없었다. 나오기는 나왔는데 어디 갈 곳도 없이 집 밖 주변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건 가출인 건가?
할 수 없이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그리고 커피 한잔 시켜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급히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카페에는 정말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하필 내 앞에는 어느 커플이 앉아 있어서 알콩달콩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진짜 보기 싫더라...
저녁이기에는 제법 시간이 흐른 것 같다. 11시 정도 되어가니까 카페도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카페에서 나오게 되었다.
바로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이건 남자의 자존심 문제였다.
그런데 이 밤에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파트 공터에 있는 의자에 일단 앉았다. 그곳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보이는 곳이었다.
1층, 2층., 3층.... 내가 사는 곳을 세워가면서 우리 집이 불이 켜졌나 보게 되었다. 역시 불이 꺼져있었다.
‘지금 집에 조용히 들어갈까?’
선선한 바람은 좋았는데 왜 이리 몹쓸 모기는 왜 이리 많은 건지?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참 이쁘더라!”
아마 100방은 물린 듯하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물리다 보니 도저히 이곳에 계속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집에 갈까 말까 얼마나 고민했는지 말이다.
집을 보니 안방과 거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그런데 한쪽 방만 불이 켜져 있어 보였다. 아마도 아내가 아직 잠을 안 자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었다. 그놈의 모기 때문이라도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들어가서 불이 켜진, 현재 아내가 있는 방은 보지도 않은 체 매우 쿨한 모습으로 안방에 들어서 잤다. 솔직히 바로 잠이 오지는 않았지만..
다음날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아내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만 했다.
그런데 첫째 아이가 서재에 있던 나한테 오더니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아빠! 엄마랑 화해할 생각 없어? 엄마한테 사과할 생각 없어?”
‘짜식~많이 컸네! 아빠랑 엄마랑 화해시키다니...’
결국 직접 보고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아주 유용한 카카톡을 활용하여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풀렸다.
오랫동안 실업자의 생활을 하다 보니 가족들과 부딪히는 일들이 제법 많았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일들인데 왜 이리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렸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힘든 것은 맞지만 가족들도 함께 힘들어하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족 모두가 힘들어하는 나를 도리어 눈치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집의 가장이 힘들어하고 휘청거리고 있는데 가족들이야 오죽하겠어?’
진심으로 미안했다.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힘든 것은 맞고 현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맞지만 내가 너무 나의 감정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서 같이 힘든데 말이다.
그래서 바로 가족들에게 힘들었다. 아빠랑 엄마랑 싸우며 불안해했던 첫째 아이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더 힘들게 하기 싫어 나한테 별 말하지 않고 속으로 꿍꿍 앓고 있었던 아내에게 그리고 보이지 않게 많은 배려와 도움을 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가족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한 차례 다시 찾아오는 고비
실업자의 생활이 곧 일상이 되어가니 예전만큼 마음이 힘들거나, 두렵거나한 마음이 덜 한 듯했다. 사실 정해진 것은 없고 언제 끝날지 모를 실업자의 생활은 그저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들도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와우~실업자 생활을 적응하다니?’ ‘대단하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적응이라고 생각 들지는 않는다. 그저 어느 정도는 내려놓은 것 같았고 어느 정도는 포기한 것 같았다.
밥을 먹어도, 사람을 만나도, 집 안에서 열심히 글을 쓰더라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부담감은 분명 있었다. 힘이 좀 빠진 듯 한 기분이라고 할까?
평소에 하는 이야기도 기쁨 마음보다는 그냥 그런 마음이 커서 그런지 대부분 무반응 아님 짧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사실 아직도 일을 하지 못하고 하나도 나아지지 않으니 밥 맛이 어떻게 좋겠으며, 남들과의 대화가 좋지만은 하겠는가?
가장 먼저 일을 해야만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일을 아직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나를 더욱더 안절부절 해 놓는 것 같다.
상황이 하나도 변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그렇게 편하지 않고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살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내려놓는 마음으로 평상시와 같이 살고자 했던 것 같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실업자의 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날은 혼자 있는 밤이었던 것 같다. 낮에는 어쨌든 마음을 부여잡고 살고자 노력했다면, 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고자 노력했다면 저녁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내가 낮 동안 뭔 일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낮 동안에 열심히 살고자 했던 내 모습이 그렇게 부끄럽게 보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살아도 결국 실업자인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노력을 해도 변화지 않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생활에서 무슨 노력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들이 물 밑 듯이 밀려왔다.
어느 날 밤에는 그런 생각들이 엄청나게 밀려오면서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데 이러다가 죽을 것만 같았다.
‘불쌍한 놈!’, ‘죽을 놈!’, ‘실업자’, ‘벌레 같은 놈’
끝이 보이는 것 같다. 이젠 조금만 더 가면 낭떠러지다. 가면 안되는데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들과 나를 향한 비난의 소리에 낭떠러지 쪽으로 향하게 된다.
방 불을 켰다. 오랜만에 느끼는 지옥 같은 이곳이 너무 두려웠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밤새 지옥 은 이 곳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 어느새 새벽의 동이 텄다. 방 천장에 비치는 나의 그림자가 나를 노려보고 짓누르는 것 같았다. 심장이 털컥 내려앉았고 어느 곳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이 다시 시작했다.
바로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교회를 향했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혹시나 내가 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교회 지하에 있는 기도방으로 향했다. 역시 아무도 없는 그곳은 으쓱한 기분이 들었지만 밤새 힘들게 했던 두려움보다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면서도 부리나케 기도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절차와 방법이 없었다. 말씀을 읽고 찬양을 하고 하는 나름의 방식에서 벗어나 바로 무릎을 꿇고 부르지 졌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모른다. 그분을 향해 부르지 졌다.
이렇게 해 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기보다 오로지 이렇게 기도를 했다.
“살려주세요”
*지금에서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낭떠러지의 끝자락에 서게 돼서 죽게 되었을 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저 살려달라고만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아직 마지막 끝자락에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러한 고통에서 아직은 버티고 이겨낼 만한 힘이 있다는 사실!
펑펑 눈물을 흘렸다. 바닥은 어느새 눈물로 흥건했다. 옷은 펑펑 울은 눈물 덕분에 제법 많이 져서 있었다.
1시간이 흘렀을까?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어느새 내 마음에 평화 같은 것들이 찾아왔다. 상황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곧 일어설 것 같은 기분? 아님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펑펑 울어서 속이 시원한 느낌이기도 하겠지만 어느새 내 마음에 찾아온 것은 평화의 마음이었다. 당장 취업을 하지 못해도 말이다.
‘내가 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단다!’
‘사랑하는 네가 그렇게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함께해 주마!’
보이지 않지만 어느 곳에서 밀려오는 평안한 마음 등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는 죽는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잘 될 거라는 생각에 있어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찰나에 한 번은 더 큰 고비가 오게 마련이다.
‘이래도 포기하지 않을래?’
‘이래도 원망하지 않을래?’
그래도 나는 내 힘으로 아닌 그분의 은혜로 나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그분을 향해 절대 원망도 하지 않았다.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하는 법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위로하겠다며 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힘내!”라는 말이다.
때로는 위로조차 해주지 못한 그들에게 많이 섭섭한 감정도 있기는 했지만 그저 내 상황도 잘 모르는 듯 한 정답 같은 “힘내”라는 이야기가 날 더 힘들게 만들었다.
‘이미 나는 죽을힘을 다 하고 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지금 몰라서 그러는 줄 알아?’
나와 같이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는 의식적으로 힘내라는 말을 하지 않지만 나 역시도 위로하는 입장에서 “힘내”, 와 “기도할게요”를 빼면 마땅히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가 때론 최선일 때가 있곤 하였다.
그런데 직접 어려운 상황들에 놓여보니 때론 진심 어린 위로를 받고 싶으면서도, 어설픈 위로가 때론 더욱 힘들게 만들 때도 있는 것 같다.
힘내라고 말해서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힘내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힘을 낼 수 있다.
본인이 위로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지 진정한 위로는 아닌 듯했다.
‘책을 읽어드립니다’ 방송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진정한 위로는 힘내라는 말보다는 그 사람 곁에서 지켜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라고 하였다.
지난 몇 개월 동안의 실업자 생활 동안에 진정 나는 사람들의 위로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큰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묵묵히 내 곁에서 지켜주는 것이 나의 큰 위로가 되었다.
나의 상황을 어떻게 안다고 이렇게 저렇다 이야기보다, 내 주변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것 그것이 나의 위로였고 힘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런 것들을 잘 몰랐다. 내 주변에 많은 사람들 특히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그저 위로를 한마디를 거들 뿐이었지만 그들 곁에서 지켜주지 못했다. 내가 힘들어하는 그들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큰 착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나를 지킨 그들처럼, 내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가족처럼 내 주변에 있는 힘든 이들을 보면서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특별히 나는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으로서 소외된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형식적인 만남과 도움이 아니라 그들을 다 이해한다는 큰 착각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 곁에서 지켜주는 일들을 많이 해야겠다고 결심을 다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