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슬기로운 실업자의 생활

7편. 사람답게 사는 것

by Happyman
괜찮아, 다 잘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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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나에게 괜찮다고 하는 말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나 또한 불안한 나에게 진심으로 괜찮다고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늘 주변과 비교해 가면서 나를 재촉할 뿐이지 충분히 열심히 다했던 나에게는 괜찮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늘 비교해 가면서 그렇게 저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여러 번 신호를 주었는데도 나는 착각해 살면서 내 마음과 몸을 힘들게만 할 뿐이었다.

사이토 히토리는(괜찮아, 다 잘되고 있으니까 저자) 하늘을 향해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면 괜찮지 않은 일이 따라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선은 자신이 괜찮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 내 상황에 대해 괜찮다고 이야기할 자신이 없다.

사실 아무것도 변화지 않고 힘들기만 한데 괜찮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서이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이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었다.

참 괜찮게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실업자가 되어보니 괜찮다는 생각보다는 지난 일들을 후회하면서 점점 나를 힘들게 만들 뿐이었다.

나 또한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

그래도 크게 넘어지지 않고 참 괜찮게 살아왔다는 사실

오늘은 그렇게 살아온 나를 격려하고자 한다.

"넌 충분히 잘 살고 있어"

"지금 힘들어도 괜찮아 너는 곧 다시 일어날 수 있어"

부정한 것은 부정한 곳으로 흘러가지만 긍정적인 것은 행복한 곳으로 흘러감을 믿는다. 또한 이것이 시작되어 나중에 크게 될 것임도 믿는다.


실패를 의미 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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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전하게 무너졌고 나의 인생은 어떻게 보면 처절한 실패라고 생각하였다. 잘 될 줄 알았고 잘 가고 있었던 나는 실직이라는 아픔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나서는 어떤 것도 자신이 없었고 못난 나만 탓할 뿐이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나라도 스피드 스케이팅 강국으로 된 것이 바로 이 선수부터 시작이 되지 않았나 싶다. 바로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선수다.

우리나라는 쇼트트랙에 강했기 때문에 나는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딸 줄 몰랐는데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건 이상화 선수를 보면서 제법 많이 놀랐다.

사실 스피드 스케이팅의 강국이었던 네덜란드 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을뿐더러 그녀도 예전 선수들과 같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했었는데 정말 보란 듯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이상화 선수가 그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었다.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스스로 한계를 시험해 본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어요.”

그녀 역시 도전에 실패했을 때 느껴야 할 중압감을 재미있게 한계를 극복한다기보다는 스스로 한계를 시험해 본다는 마음으로 도전했다고 이상화 선수의 말에 나는 많은 도전을 받게 된다.

나의 지금의 삶도, 처절하게 무너진 나의 실업자의 생활도 어떻게 보면 나를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실업자의 생활이 어찌 보면 기존 나의 삶이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텅 비었던 나의 삶을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 나의 한계를 깊이 알게 되었다.

또한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좀 더 노력을 하여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너진 나의 삶을 전의 나의 모습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보거나, 산책 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기존 분야에 대한 여러 책들을 읽게 되고,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송인섭 교수가 쓴 ‘청춘 강의’ 책에서 이렇게 쓰여 있다.

실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또 다른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아’라는 게 있는데 의미 있는 실패가 이러한 자아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 역시 많이 맞다 보면 맷집이 좋아져 어지간한 펀치에는 잘 쓰러지지 않는 자아를 갖게 해 줄 수 있다.

실패의 충격 없이 쭉 잘 나가는 사람보다 훨씬 덜 불안하며 웬만한 시련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기에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더 큰 성공의 위치에 나아갈 수도 있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화려하게 때론 평탄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평탄하게 산 것이 아녔으며 단지 어려움이 없었을 뿐이었다. 속 빈 강정처럼 나는 연약하고 참 많이 부족했던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경험한 어려움으로 제법 많이 힘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이것이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켰고, 이젠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맷집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켜놓았음을 믿는다.

그래서 이번이 처음이 아닌 계속적으로 불어오는 어려움과 시련이 오더라도, 웬만한 어려움과 시련에도 거뜬히 이겨내고 나중에 더 큰 성공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으며 그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려고 한다.


광야를 지나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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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이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광야를 지나며-히즈 윌(Feat 김동욱))

‘광야를 지나며’라는 노래를 계속 듣게 된다. 내 삶이 곧 광야 같다고 생각되었는지 가사 가사가 꼭 나의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그저 나의 삶이 원망스러웠다, 저주받은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나 자신이 초라할 뿐이었다.

계속적으로 노래를 듣게 되니, 미처 들리지 않았던 가사가 내 마음에 와 닿게 되었다.

점점 교만해져만 갔던 나를 광야를 통해 변화시키셨다.

정결하지 못했던 나를 광야를 통해 변화시키셨다.

높아진 나의 자아를 산산이 깨뜨려주셨다.

광야 같은 실업자의 생활로 인하여 나는 철저히 깨져버렸다. 무엇보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교만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고자 했던 일들도 술술 잘 풀리고 여러 곳에서 강의도 하고, 높은 위치에서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교만해져만 갔다.

그래서 남들의 충고도 듣지 않고 자주 무시하였다. 또한 나를 자랑하고자 노력하였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온갖 짜증을 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광야의 길을 걸으니 나 또한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내 힘으로 어느 것도 할 수 없음도 알게 되었고 참 부족하게 살아왔던 나의 삶을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그동안 광야에서 얼마나 소리를 지르며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울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런 응답이 돌아오지 않아 더더욱 힘이 들었는데 왜 그렇게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정말 혼자 서 있다 보니 철저히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이 한꺼번에 많은 것들을 주셨거나, 해결해 주셨다면 나는 아마 나를 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중요한 것은 그냥 지나 간체 예전처럼 그냥 지나갔을 것이며 절대 나의 부족한 부분과 연약한 부분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도리어 더 깊게 숨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홀로 서있는 그곳에서, 너무 힘들다고 느껴지는 그곳에서 나를 더욱 보게 되었고 더 깊게 깨닫게 되었다.

한 번의 생각이 아니었다. 지난 모든 삶을 돌이켜보면서 깊이 반성도 하게 되고, 여러 번 다짐도 했었다. 아마도 한 번이었다면 바로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계속적으로 생각하고 다짐하다 보니 내 마음 깊이 새겨지게 되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도 절대 내 마음 깊이 새겨진 것들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광야가 때론 나에게 정말 필요한 시간인 줄..

처음에는 그저 힘들기만 하고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도리어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깊이 깨닫게 된다.



나를 나 답게 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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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실업자 생활을 한 지 4개월 차이다. 언제 길고 긴 터널을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실업자의 생활이 곧 나의 일상이 되어 제법 이 삶도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에는 죽을 것만 같았다. 광야에서 혼자 있다고만 생각했던 나는 때론 외로우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매우 컸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과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이겨내는데 굉장히 힘들기만 했다.

긍졍적인 삶보다는 어둡고 부정적인 삶이 많았었다. 삶을 살기 위한 열심과 열정보다는 포기할 생각이 가득했다. 우울, 죽음, 화남, 짜증 등 평소 나 답지 않는 모습이 대부분이었고 어색하게 변해버린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은 정말 죽을 맛이다. 끝이 보여야 조금이나마 힘을 낼 텐데, 도저히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끝이 진짜 있는 건지? 그저 답답한 심정뿐이었다.

상황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점차 악화되어가는 듯 한 기분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조금이나마 일어서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그것도 한순 간 뿐이었다. 일어서고 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또 넘어지고.. 얼마나 반복을 했는지 어느새 그것마저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더 이상 어떠한 희망도 느끼지 못했고 꼭 죽음의 길을 가는 듯 한 무서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밤을 얼마나 지새웠는지?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몰아세운 그 사람들이 생각이 나면서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빛에 비친 천장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있었다. 그림자를 보는 순간 소름이 끼칠 만큼 너무 무서웠다.

“너 그래도 안 죽을 거야?”

“너를 그렇게 만든 그 사람들 복수하고 죽여 버려!”

너무 무서운 자리였고 이러다가 뭔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부랴부랴 옷을 챙기고 교회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기도 방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이야기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펑펑 울면서 그저 한마디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

“살려주세요!”


혼자 있는 시간들이 너무 두려웠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시간이 나의 마지막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키고 했다.

이러다가 큰일이 벌어질까 싶어서 아님 오늘 어떻게든 끝을 보고 싶어 집 근처에 있는 산으로 무작정 가게 되었다.

등산 초입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평소 등산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힘들어했던 나는 등산길이 그저 힘들기만 할 뿐이었다.

정상을 바라보며 걷는 등산길은 드라마에서 나오듯 정상을 올라가려면 어려움과 시련이 있듯이 지금의 실업자의 생활이 정상을 가려고 하는 한 과정임을 깨닫는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사실 죽음 때문에 간 것이었지만 죽음보다는 등산하는 그 길이 너무 힘들고 고돼서 도저히 죽음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내 마음의 불편함은 여전했다.

고통스러운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점차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 때였다. 어느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제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정신 차려~!”

“그곳으로 가면 안 돼! 다시 돌아오라고?”

“많이 힘들었구나?”

사람들의 위로가 참 필요했다. 어설픈 이야기 말고 그저 나를 위로하는 말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우연히 김동호 목사님이 하고 계시는 CMP콘서트가 서울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CMP콘서트는 암환자들과 가족들을 위로하는 콘서트다.

콘서트의 목적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 전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을 자주 듣곤 했는데 아마 이 곳에서도 김동호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실 거라는 단순한 생각 그리고 그 말씀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힘을 업고 싶어 나는 그저 구분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가는 길에 콘서트를 통해 내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싶은 생각이 정말 컸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상황들이 조금이나마 바뀌기를 바랐다.

콘서트장에 들어갔을 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분도 계셨고, 모자를 쓰고 계신 분들도 계셨고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있었다.

사실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김동호 목사님도 암이 걸리셔서 제법 많은 고생을 하신 분이셨다. 그런데 김동호 목사님은 평생 목회를 하셨신 분이셨는데 전과 다르게 암환자들과 가족들을`위로하고 돕는 일에 지금 헌신을 하고 계신다.

콘서트 내내 김동호 목사님이 전하신 하시는 말씀이 마음 깊게 남긴다.

모든 것이 힘드셨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암이 걸렸다고 하면 아마도 죽겠다고,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은 힘들어하는 것에만 있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셨단다.

“당황했다. 그러나 무섭지는 않았다.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게 됐다. 목회자로서 수많은 임종과 장례를 치렀지만 죽음과 나 사이엔 거리가 있었다. 남의 일, 객관적으로 보던 죽음이 나의 일, 주관적으로 코 앞에 다가오니 당황스러웠다”

(김동호 목사님 인터뷰/2020.06.11. 조선일보)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이러한 마음을 주셨단다.

‘너는 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목사라고 암이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 이후로 삶이 크게 변화지 않았지만, 암이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고 계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계셨지만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점점 빠져드는 낙심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생각과 다짐 이후에 정기적인 치료를 꾸준히 받으셨고, 등산 등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셨으며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 새)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 무엇보다 CMP 콘서트를 통해 많은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계신다.

그날 참여한 분들을 보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다들 암을 몸에 품고 계시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그저 평범하게 보였다. 어두운 그곳에서 오로지 좌절하면서 지내고 계실 것 같다고 생각하였는데 그저 평범한 얼굴 그리고 조금이나마 행복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들과 생각해보았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 오랫동안 힘들게 느끼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만난 그분들도 하나도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암이 하나도 치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희망을 만들고, 어떻게든 깊은 두려움과 어려움에서 나와 살고자 노력하는 그들이 보였고 느껴졌다.

그렇게 보던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너는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너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많은 사람들도 어려움이 있지만 다들 그렇게 산단다!”

위로가 되었다. 어떻든 많은 이들이 나와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겨내려고 노력하며 산다. 오랫동안 실업자의 생활을 해보니 나만 힘든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나만 저주받은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콘서트를 통해 전해지는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위로와 함께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과 다르게 이겨내고자 노력하였다. 어떻게 보면 예전의 나다운 모습으로 다시 바뀌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 상처 받은 내 마음을 다독거려줘야 할 것 같았다. 납득이 되지 않는 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나도 우울한 감정에 깊이 빠져 있기보다는 늘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성취하고 성과를 이루는 것을 즐기고자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 집중하는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게 되고 스스로 도움이 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또한 긍정적인 마음 그리고 열심과 열정을 다해 주어진 사명을 완성시켜 나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퇴사와 어쩌다 실업자의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전부터 해왔던 많은 사명들을 한순간에 잊어버리게 되었다. 순식간에 잊어버린 나는 나 답지 않게 살게 되었다. 나답지 않는 내 모습이 제법 낯설기만 하다.

점점 깊이 낭떠러지에 빠져들기만 했고, 결국 죽음을 선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우울하기만 했고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 이 상황들이 나의 마음을 점차 조여 오고 있었다.

남들도 그렇게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어떻게든 일어서고자 노력하는 그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나도 모르게 상처 받은 내 마음을 위로받는 순간 이제는 우울의 늪에 따져 드는 것이 아니라 이젠 나답게 살아가야겠다는 용기가 들었다.

실업자의 하루 생활이 언제부터 시작되겠는가? 시간이 널널 하다 보니 일어나면 그때부터 실업자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8시든 9시든 일어나면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다. 일어나서 씻지도 않는 경우도 제법 많았고 밥 먹는 것도 귀찮아 밥을 거르는 경우도 제법 많았다. 그저 집안에서 지내면서 누워있는 노숙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그것마저도 일상이 되어갔고, 일어설 마음보다는 더 깊이 그 삶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데 일어서야겠다는 생각과 나 다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의 시작을 좀 더 일찍 시작하였다.

“이른 새벽 6시”

당연히 자주 씻고, 정장은 아니지만 깔끔한 옷을 일부러 챙겨 입었다. 또한 배고파서 먹기보다는 무너진 삶을 조금이나마 바꾸기 위해서 일부러 밥을 챙겨 먹었다. 예전에는 별거 아닌 일들이었는데 이러한 사소한 일들조차 참 소중한 일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도 실업자이기 때문에 전과 다른 비용이 적게 들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인근 도서관에서 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10권 정도를 빌려 원 없이 책을 읽었나 갔다. 독서를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알게 된 것들과 나의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도 함께 하게 되었다.

책을 살 돈이 없어서 온라인에서 홍보하는 ‘서평단 모집’ 찾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곳에서 무료로 책을 받게 되었는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나의 의견을 온라인(블로그/인터넷서점/인스타그램 등)상에 올리기도 하였다.

머리가 복잡해서 나의 솔직한 마음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면 심리정서적으로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서 더더욱 글쓰기에 전념하였다.

글을 쓰면서 나의 솔직한 감정들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상처 받은 나의 감정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오랫동안 실업자의 생활을 하다 보니 금세 지금의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것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갔을 대 자연스럽게 바뀔 뿐이었지 우리가 정말 원했던 깜짝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상처 받은 마음은 치료받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면 점점 악화될 뿐이었다. 과거에 어떻게 살든 참 낯선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울하기만 하고 힘들어하는 모습 참 낯설다.

정말 원치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법 당황스럽게 힘들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빨리 내 마음을 위로해 줘야 했다. 그 시간을 놓치면, 골드타임을 놓치면 정말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업자의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이와 같은 상처 받은 나의 마음이었다. 아직도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니 모든 상황이 그저 악화되어만 가는 것처럼 보였고, 일어설 힘도 용기도 없었던 것이었다.

긴급한 내 마음을 치유받기 위해서 심리치료까지도 받았다.

나는 평소 자살까지 하고자 하는 매우 위험한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심리치료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더더욱 어쩌다 실업자로 인해 무너진 나의 마음과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 4편. 처음 경험하는 심리상담

오죽하면 받았겠냐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사실 죽을 것만 같아서 심리상담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 같다.

보통 심리 상담을 받으면 고가의 금액을 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힘들고 우울해도 심리 상담을 도리어 꺼리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이번에는 돈이 문제라 나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활 수 없이 심리 상담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저런 상담소를 알아보다가 근로복지공단에서 진행하는 심리상담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통해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을 경험한 이들에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듯했다.

더욱 좋았던 것은 많은 회기의 상담을 진행하지만 자부담, 개인 돈은 절대 들지 않는 것이었다. 돈이 지불되지 않아서 삼담의 질도 그럴 것이 아니냐며 처음에는 다소 고민을 했었지만 생사의 고비에 이럴게 저렇게 따질 부분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3~4일 후에 상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상담받는 장소가 제법 멀어서 전화로 상담을 하게 되었다. 전화로 1시간 정도의 상담이었다.

전화로 받는 심리 상담이었지만 사람을 보며 나의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고 편했다.

지난 많은 일들을 상담사에 이야기를 했다. 나의 솔직한 감정도 이야기를 했다. 화도 납니다. 우울하고 눈물도 제법 많이 흘렸습니다라고 솔직한 감정 그대로 이야기하였다.

역시 알고 있던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리고 항상 잘하고 계셨다.! , 대단한 분이십니다 라고 나의 자존감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더더욱 직장인 괴롭힘으로 정말 괴로워할 때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잘 듣고는 충분히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셨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곤 했다.

사실 일을 그만두고 나를 괴롭혔던 그 사람에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서 억울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많이 힘들었었다. 내가 당한 느낌이 많이 컸으니까...

그런데 충분히 잘하셨다며 도리어 나를 응원해주는 상담사의 모습에 나는 기존 묶고 있었던 분노를 이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 분노가 쌓여있었다면 사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 같다. 어쨌든 어떠한 일은 벌어졌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나의 감정이 그랬다.

이래서 사람들이 돈을 들여가면서 상담을 하는 것이구나 알 수 있었고 괴롭고 힘들 때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상담가를 통한 심리 상담이 훨씬 더 좋다는 사실을 깊게 경험하게 되었다.

실업자가 되고 나니 처음 해 보는 것들이 참 많았다. 내가 심리 상담을 받을 줄 한 번도 상상도 안 했는데 말이다. 심리상담을 통해 한층 더 마음이 편해졌다. 늘 어둡게만 보였던 실업자의 생활이 다소 밝아진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과 감정으로 나는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든 간에 다시 일어서겠다는 용기가 생겼다는 점과 그래도 잊어졌던 나의 평소의 삶을 다소 회복되면서 나답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희망을 보게 되었다.


사람다움으로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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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눈물 날 일이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하니 2집, 행복 ccm 가사 中)

지난 4개월의 고통스러웠던 실업자의 생활

생각하기도 싫은 실업자의 생활이 왜 나한테 일어났는지 늘 궁금했고 때론 억울하였다.

항상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고

힘들고 어려워도 늘 항상 사명을 감당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일들이 나한테 일어났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며 원망도 해보고, 소리를 질러도 보았지만 아무런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우연히 알게 된 CCM ‘행복’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왜 나한테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는 사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지만 사실은 사명을 가장한 나의 욕심을 채우는데 최선을 다했다.

겸손하게 살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은 나를 높이는데 집중하였고 나를 자랑하며 살았다.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아니며 어떻게든 돈만 벌려고 노력했으며 본질적인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좀 더 돈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었다.

나의 것을 남들에게 주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혹여나 남들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살벌하게 살았다.

정석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남들이 가지 않는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 길이 맞다며 우기면서 말이다.

그분은 내가 잘못 가고 있고 어긋나고 있다고 먼저부터 알고 계셨다. 그런데 내가 깨닫고 스스로 돌이키기를 원하셨다.

그저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돌이키기를 기다리셨다. 놀라운 방법으로 나를 돌이킬 수도 있었겠지만 스스로 깨닫고 돌아서기를 바라셨다.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되고 다양한 일들로 어려움이 생길 때 사실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고 그러한 생각들을 전혀 하지를 못했다.

어려움이 생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좀 더 빨리 돌이켜야 했었는데 도리어 원망과 불평만 할 뿐이었다.

그분은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셨던 것 같았다.

예전처럼 교만하고 나를 위해서 살기보다는 정말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셨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눈물 날 일이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삶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고 사는 삶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삶

이러한 삶이야말로 사람다운 삶이 아닐까 한다. 비록 내가 그렇게 살지는 못했지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기를 소망해본다.

그분은 이런 삶을 통해 나를 깨닫게 하셨고, 4개월 동안의 광야의 길을 통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를 훈련시키셨다.

‘그만 멈추고 다시 돌이켜!.’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 삶이 곧 화려하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나의 삶이 많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는 예전처럼 살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하루하루 정결하게 살고...

가진 것이 적어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감사하며 살며...

내게 주신 작은 힘자랑하지 않고 남을 위해 나눠주며 살며...

눈물 나는 일이 많지만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며...

억울한 일 많으나 원망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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