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슬기로운 실업자의 생활

9편. 끝 그리고 시작

by Happyman
나에게는 스토리가 있다.
스토리.jpg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당신에게 당신만의 이야기가 있는가, 지금 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혹은 지금도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혹은 주변 상황을 살피고 환경을 탓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자신을 긍정하고 지금 당장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당신은 보이는 것보다 크다(김정태, 스트로 리가 스펙을 이긴다)

스펙은 영어단어 Specification의 준말이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 등 서류상의 기록 중 업적에 해당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스펙은 취업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대학생들에게 하나의 부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악화되어만 갔던 나의 삶에 대해 힘들기만 하였고 탓하기만 하였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탓했고 이것까지도 이기지 못하는 나를 탓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사람들로부터 받은 비난, 비판 그리고 내버려진 이 상황까지가 어찌 보면 진정한 사명자로 완성되기 위한 경험임을 믿는다.

나는 전문가로서, 좀 더 멋진 기능을 선사하기 위하여 스펙을 만들어갔고 지금도 그러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업자와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서 나만의 스토리가 완성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픔을 알아야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알 수 있으며, 고난과 어려움을 경험해봤어야 좀 더 힘든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단단해 짐으로써 나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 모든 고통스러운 삶들이 참 소중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데 필요한 충분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저 잘 나가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삶이었다면 많은 이들에게 공감되지 않을뿐더러 희망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어려움이 없었던 나로서는 힘들게 사는 이들조차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 살아가면서 마음으로는 조롱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다.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면서 겉으로만 공감하고자 노력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전과 같은 고통과 고난을 경험하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그 일들이 나에게 있어서는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고 만들지 못했던 스토리를 만나고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남들은 높은 스펙을 가진 사람을 향하여 환호성을 내지만 속으로는 잘난 척한다면서 비웃겠지만 나는 그들을 감동받을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스토리를 통해 나와 같이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저 지금의 상황을 탓하기만 하는 것보다 지금의 고난과 고통스러운 상황을 잘 정리를 해 볼 생각이다. 또한 작은 실천 등을 통해 더욱 감동적인 스토리를 하나하나씩 만들어볼 생각이다.

만들어진 스토리는 남들을 인해 이끌려 당했다고 말하기보다, 나만의 스토리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길 소망해본다.


퇴사 후 나를 찾는 시간
나를찾는시간.png

계속적으로 밀려오는 두려움과 막막함은 바닥까지 치닫고 말았다.

정말 힘들게 올라갔었는데 내려오는 것은 순간이었다. 등산을 할 때면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수월하게 느껴지지만 순식간에 내려가는 바람에 위험도 함께 뒤따르는 것처럼 나의 인생도 갑자기 내려오는 바람에 처음 경험해보는 위험과 아픔이 분명 있었다.

온몸이 평소와 다르게 경직된 것을 보게 되었다. 때론 내 마음까지 경직되어 있어서 제법 날카롭게 말하고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경직된 나의 모든 것을 풀어가야만 했다. 평소 나의 모습과 다른 경직된 모습이 도리어 나를 더욱 힘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작고 초라한 나와 직면하게 되었다!’

어려움만 생각하고 더 깊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저 버리려고 노력하였다. 억울한 생각 그리고 분노의 생각들이 가득 찼지만 그래도 버리려고 했다.

내 마음에 가득 찬 복잡한 생각들을 하나하나씩 버리고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만큼은 새로운 방에 새로운 것들로 채울 생각이다.

평소 그렇게 살지를 않아서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편안한 마음 가운데 하나하나씩 채워나가고자 했다. 나와의 대화를 좀 더 편하게 하면서 말이다.

‘나는 누구일까?’, ‘무엇을 좋아하지?’

‘지금까지 일한 일들이 정말 사명이었니?’

사실 나는 포장하면서 살았었다. 상처도 가득하고 아픔도 많았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당당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나도 남들에게 상처 받았고 힘들었을 텐데 도리어 그런 모습조차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도리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에서야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듯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많은 경고의 메시지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몸으로 신호가 오는데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호를 받았는데도 나는 그저 지나칠 뿐이었다.

그때 잠시 쉴걸? 다시 돌이킬 걸?이라는 후회감이 밀려온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사실 그런 고난과 아픔을 건너야 좀 더 나은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꼭 나만이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말이다.

‘수고 많았어!’ ‘그래서 너 때문에 나아질 수 있었어!’

‘고마워 진심으로!’ ‘너의 고생과 희생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지!’

이렇게 대하지 못했고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저 주저앉으거나 포기하려고 하면 도리어 채찍질을 해가면서 나를 그저 일으키기만 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나름 나를 위로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모습이 항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솔직해지면서 애쓰고 고생하는 나의 마음을 한 번 더 위로하기를 바란다.

정말 어느 날 버티다 못해 정말 주저앉을 날이 있다. 나는 실업자를 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될 때부터 나의 삶이 정말 주저앉는 듯했다. 나를 도리어 위로하기는커녕 도리어 죽기만을 바랬었다. 정말 바보처럼 말이다.

남들이 나를 칭찬하고 위로하는 것보다 도리어 내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잘 들어보기를 바란다.

지금도 힘들다고, 어렵다고 울부짖는 당신의 진심 어린 목소리 말이다. 그것이 혹여나 잠시 쉬라는 신포일 수도 있고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는 신호일 수도 있으니 잠시 내려놓고 그것을 찾아 귀 기울여보기 바란다. 그것이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신호일 수도 있다.


새롭게 발견한 것들
인트로.jpg

실업자의 생활이 일상화되어다 보니 누구보다 시간이 넉넉했다. 문 뜻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다르게 좀 더 넉넉히 주어진 이 시간을 잘 사용하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사실 넉넉한 시간 내내 무료하게만 보내게 된다면 더더욱 바닥으로 치달을 것 같은 무서움도 있었다. 무엇인가 해야만 했다. 돈이 들지 않는 것 중에 즐겨할 수 있는 것들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실업자 생활 내내 독서와 글쓰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정말 돈 안 드는 것 중에 최고인 듯하다. 하루에 1권 이상의 책을 읽고 약 100권 이상의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책 읽는 것에만 그쳤다면 감동받은 것들, 생각을 하게 만든 것들을 메모하기 시작하였다. 메모장에 적기도 했지만 잘 운영하지 않았던 블로그에 독서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을 들리곤 하였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직접 도서관을 방문할 수 없을 때에는 온라인으로 책을 예약 신청하여 책을 수령받기도 하였다.

실업자의 생활인지라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심리적인 내용이 가득한 책 중심으로 책을 읽어가지 시작하였다. 점차 깊어져 가는 나의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다시 일어서고 싶은 생각 그리고 위로해주고 싶은 생각이 많아서 심리학 관련 책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어느 때는 온라인 서평단 모집 공고를 확인하고 서평단 신청을 하기도 하였다. 서평단으로 선정이 되면 시일 내에 책을 읽고 서평을 써야 하는 장점 아닌 장점이 있어서 읽기 싫어도 억지로 책을 읽거나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서평을 쓰게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지난 6월에 단행본 책을 하나 발간하였다.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우연하게 책을 발간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번 책을 써보니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발행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사실 2번째 책을 발행하고 싶었는데 시간과 여유가 없어서 책을 못 내고 있었고 글조차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실업자의 생활을 하게 됨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글 쓰는 것은 새벽 5시부터 시작되었다. 분명 나는 실업자인데도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게 규칙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밤낮을 가릴 것 없이, 평일과 주말도 상관없이 좀 더 몰입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우리 아들은 아빠가 쉬고 있어서 함께 놀 수 있다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예전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일(?)을 하고 있어서 굉장히 속상해했을 것이다.

글을 써봐야 글솜씨가 느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저 일기 쓰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예전 어렵게 만든 책을 다시 보게 되면 참 어설프게 작성되었다. 그래서 너무 창피한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매일 1개 이상의 글을 작성하다 보니 글 솜씨가 제법 많이 느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나의 생각을 글로 담기 정말 어려웠다. 어렵게 작성한 글을 보게 되면 생각과 다르게 글로 표현한 것들이 제법 많이 보게 된다. 나의 진심 어린 표현보다는 어설픈 구성과 글을 대부분이었다.

우연하게 아내가 브런치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브런치? 아침 점심 중간에 먹는 그런 브런치?’

계속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남편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나 나름 찾았나 보다. 아내의 권유로 시작한 브런치 생활은 나의 삶이 조금이나마 바뀌었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의 첫 시작은 브런치를 통해 시작한다. 하루하루 작성한 글들을 그저 블로그에 올리는 수준이었다면 브런치를 통해 많이 이들에게 공유를 하고 있다.

브런치 작가 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사실 꼭 수능점수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브런치 작가 선정 결과’를 기다렸다. 제법 많이 이들이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지만 몇 번의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브런치 작가 선정 결과가 떨리기만 했다.

과거 책을 썼다는 점과 정기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참작되었는지 처음 시도해본 브런치 작가 신청이 한 번에 합격되었다. 한 번에 합격한 나로서는 기쁜 것보다 제법 당황스러웠었다.

그러한 일들이 있고 나서는 이제 평소와는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사회복지사라는 직함이 있었다면 온라인상이기는 하지만 “김 작가”의 직함을 받게 되었다.

지금도 하루하루 1개 이상의 글을 작성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하여 또 다른 서적들을 보기 시작하였다. 예전에는 그저 독서에만 끝났다면 좀 더 풍성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책을 보기 시작하였다.

아직은 나를 구독하는 사람들이 그저 120여 명 가량이지만 그래도 많이 이들이 나의 글을 읽고 진심으로 공감해준다. 그리고 나의 글을 통해 소소한 소통도 함께 해준다. 나는 이러한 삶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사회복지를 하는 사회복지사일 뿐이라고만 생각하였지 또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그런 사람이 될 줄 몰랐다.

나는 어쩌다 실업자의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그들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경험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적지 않은 아픔을 경험해 본 사람이다. 그런데 이러한 아픔 경험을 많이 이들에게 글로 전할 수 있어서 너무 좋고 행복하다. 더더욱 나의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희망을 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


끝(End) 그리고 시작(Start)
끝그리고시작.jpg

언제 그랬나 싶지만 이제는 다시 일할 수 있는 것이 일상이 되고 말았다. 오늘 아침도 첫째 아들이 출근하는 나한테 인사를 건넨다.

“아빠 사랑해~!”

출근하는 길 가운데 지난 일들이 물밀듯 밀려온다. 승진이 될 줄 알았는데 직장 내에서 밀리는 상황에 놓이게 되어 결국 승진도 못하게 되었고, 최선을 다하며 살고자 노력했던 나에게 도리어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명이라고 생각하여 밤 낮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했었는데 그것조차 나의 욕심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출발로 지난 일들을 잊으며 살고자 했는데 의도치 않는 괴롭힘으로 나의 삶 전체가 무너지고 말았었다.

나한테 그렇게 잘해주던 모든 사람도 다 나를 떠났고, 도리어 나한테 화살을 겨누던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해쳐나가고자 노력을 했지만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어 결국 죽음을 선택하고자 등산길을 걸었던 어리석었던 그 날들....

바닥까지 무너져가 보니 도리어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너무 외로웠고 너무 두려워서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만 하였다.

이러다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 새벽에 교회에 가서 펑펑 울면서 기도했던 그날이 생각이 난다.

‘왜 나한테 이런 고난이 있는 것일까?’

벌써 4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시간보다는 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나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들이었다.

그분이 나에게 이런 시간들을 허락하신 것도 나를 정말 사랑하셨기 때문이었다.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외된 그들을 돕고자 원하시는 그분의 귀한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나를 다듬으셨다. 비록 고통스러운 상황일지라도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나를 다듬고 또 다듬으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솔히 생각하거나 남들을 더욱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지난 나의 삶에 대해 깊이 반성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 되었었다.

꽁꽁 숨겨 놓았던 나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에 직면하게 되었고 진심으로 반성하게 되는 시간들이 되었다.

나는 늘 분노의 마음과 억울한 감정으로 살아왔었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참 민감한 사람으로 여겨지곤 하였는데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 것은 나의 열등감이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한 체 혹여나 나의 치부를 보여줄까 싶어 의도치 않는 모습으로 나는 평생 살아왔었다. 그런 나를 이번 시간을 통해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치부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고자 노력했던 나를 이해하고 좀 더 위로해주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으로 남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 나를 위해서 살고자 했던 일, 내 주변의 사람을 돌아보지 못했던 일, 나를 높이기 위해 겸손히 아니하고 자랑하기만 했던 그 일들 모두 지난 시간들을 통해 깊이 깨닫고 반성하며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수 천 번 다짐도 해보았다.

지금까지 나는 이 세상의 피해자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더더욱 억울해하면서 힘들게만 살아왔던 것 같다. 이렇게 실업자가 된 것도 그들 때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언제 가는 도리어 내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피해자가 막상 되어보니 그 피해는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들도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 이상으로 용서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피해자로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좀 더 조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더더욱 많은 사람들을 단지 경계하고 민감하게 대하는 것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고, 나보다 그들을 낫게 여기는 마음 곧 진심으로 존중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나는 비록 지난 일들이 힘든 여정이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을 돕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회복지사가 내가 평생 가야 할 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소외된 그들을 만나면서 행복을 느끼고, 소외된 그들이 조금이나마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분명한 일이기에 좀 더 겸손하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자랑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높여줄 수 있는 그런 삶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비록 멀게만 느껴졌던 외로운 시간들이었지만 나는 지난 그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 그때 느꼈던 그 모든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아니하고 예전처럼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또한 부족한 자에게 사명을 주신 이에게 항상 감사하며, 하루하루 주어진 일들과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게 여기며 살고자 한다.

실업자 생활이 정말 끝이 났다. 지긋지긋한 그런 삶이 이제야 끝이 났다. 어쩌다 실업자가 되었는데 어쩌다 실업자 생활이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힘든 시기에 느꼈던 그것들을 잘 기억하며 이제는 예전과 다른 삶으로 다시 새 출발을 하고자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3장 슬기로운 실업자의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