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에서 진짜까지

<조커>의 탄생

by 제트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랬다

<살인마 잭의 집>을 만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관객들을 떠본다. 그는 ‘잭’의 첫 번째 살인 이야기를 전개하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살인의 정당화를 우리 앞에 가지런히 펼쳐놓는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일단 펼쳐놓기 이전에,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포크와 나이프를 먼저 들게끔 만든다.


이미 관객들 중 몇몇은 (나도 그랬고)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먹는 시늉부터 했거나 혹은 허공을 손질하며 아주 맛있게 먹어치웠을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관객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다’라는 말이 그래서 탁월한 설득력을 얻는다. “정당화는 나쁜 거지만, 그건 옳지 않지만, 그런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을, 그러니까 ‘그럴 만하다’라는 생각을 당신도 이미 하고 있진 않아?”



5fb5b20e46b84414979b0f023a694bd11568082159228.jpg 그도 그럴만한 걸까

<조커>의 토드 필립스 감독 역시 그렇다. 물론 이 작품은 범죄의 정당화에 대항하여 질병의 정당화라는 단계적 논제로 맞불을 놓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 우리는 ‘아서의 행위’에 통쾌함을 느낀 부분이 전혀 없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때문에 이 영화도 아주 교묘하게 관객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요리를 한다. 앞서 이야기한 ‘정당화’라는 두툼한 고깃덩어리를 차치해도, 나름 메인 요리가 또 존재한다. 바로 ‘망상’이다.


작품의 중반부가 넘어갈 즈음 ‘아빠와 아들’의 소재로 극을 한번 뒤집었던 영화는, 그게 사실은 엄마인 페니의 망상이었다는 카운터를 날리며 충격을 가하고, ‘입양’ 펀치까지 얹어 확인 사살한다. 그리고 그 망상의 바통은 아서가 이어받아, ‘재지’와의 러브라인도 사실은 아서의 망상이었다며 사실상 ‘모자(母子) 콤보’로 관객들을 배불리 먹인다.


이와 동시에 의문 하나가 문득 고개를 든다. 그렇다면, 그 망상의 전말이 밝혀지는 공교로운 시간대에 걸려온 머레이 쇼 출연 섭외 전화도 혹시 아서의 망상이 아닐까? 이미 영화 초반부 아서가 머레이 쇼에 출연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걸 관객들에게 애피타이저로 선사한 바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의문은 합리적 의심으로 진화한다.


이어 TV를 틀고 출연 연습을 하는 장면은, 진짜 사전 연습인지 망상이 바탕이 된 연기인지 오묘한 혼란을 가져온다. 물론 영화의 큰 줄기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랜들과 개리의 방문 때까지도 그 흐름은 지속된다.



c966b3c5f9204dc1bf04301a22b2bb971569843336731.jpg 이제 브레이크가 없다

망상인가 진짜인가? 영화는 망상이란 소재를 스크린 밖으로 떠넘기며 추측이라는 탈을 쓴 망상을 관객들이 자연스레, 가볍게라도 하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쇼 출연은 망상이 아니었고, ‘진짜’였다.


우리에게 망상을 떠넘긴 동안 예열을 마친 영화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액셀을 밟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좌석에 앉아 있던 쇼의 청중들은, 우스꽝스럽다고만 느낀 광대가 차차 고조시키는 분위기에 짓눌리며 이윽고 무대에서 탈출하려 아우성친다.


뒤따르던 우리는 그렇게 ‘아서’의 질주를 따라가다가, 차 위에서 일어나 탄생하는 ‘조커’를 목격하게 된다. 누군가에겐 악의 근원인, ‘망상’만도 못한 광대에 불과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자신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해주는 ‘진짜’ 히어로의 탄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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