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진짜 상징적이다"

영화 <기생충> 기우가 말했던 상징 3가지

by 제트별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포진해있는 <기생충>은 그것들을 그냥 지나쳐도, 하나하나 눈여겨봐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거 진짜 상징적이다.” 기우는 특정 대상들을 마주하면서 영화 초중반부까지 이 대사를 내뱉는다. 그의 입을 빌려 그 상징들을 파고들어보자.



친구 민혁이 집으로 찾아와 자신의 할아버지께서 갖다 드리라 하셨다며 산수경석에 대해 설명할 때, 기우는 민혁의 이야기를 끊고 손에 든 그 돌을 응시하면서 ‘상징적이다’라는 말을 한다. 사실 돌은 영화의 후반부까진 특별하게 활용되지는 않으나, 기우의 집이 물에 잠기고 그 돌이 둥둥 떠올라 기우의 손에 잡히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속내를 드러낸다.


돌은 꿈, 소망 혹은 기회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봐도 부유해 보이는 친구 민혁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모으신 돌이 집 위층, 아래층, 서재까지 꽉꽉 들어찼다고 말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꿈과 기회가 많은 상류층이 돈, 권력, 명예 등을 쉽게 쌓아 올릴 수 있다는 의미로 보였다. 박사장의 집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점 역시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2f3d89f0217e2daba38d448d0b11227c3d1bffc6.jpg 껌딱지 그자체

기우네 가족이 물에 잠긴 집에서 대피하여 체육관에 자리를 펴고 잠을 청할 때, 기우는 그 돌을 왜 껴안고 있냐는 아버지 기택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이 돌이 자신에게 자꾸 달라붙는다고. 그건 기우가 자신의 꿈을, 기회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상류층과 어울리고 싶은, 그렇게 되고 싶은, 동화되고 싶은 꿈.


해서 그는 돌을 들고 장애물인 문광 부부를 제거하려 지하실로 내려간다. 하지만 도리어 그 돌로 인해 죽음의 경계까지 다다른다. 가까스로 살아난 기우는 그 돌을 계곡에 가져다 놓으며, 근본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아버지 기택에게 편지를 쓴다. 이는 기우가 자신의 꿈과 기회를 내려놓았음을 시사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기우의 집이 물에 잠겼을 때 그 돌이 물에 둥둥 떴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결국 친구 민혁이 준(상류층이 하류층에게 주는) 그 돌(꿈과 기회)은 가짜(헛된 희망)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듯싶다. 한편 그 돌이 가짜였기 때문에, 머리에 두 번이나 맞은 기우가 죽지 않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보면 꽤나 흥미롭다.




자화상

기우는 다송이 그린 그림을 보고 ‘상징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침팬지를 그린 거냐며 묻는데, 연교는 자화상이라 답한다. 그러니까 기우도 그 그림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지 않고, ‘진짜 세다’라는 말까지 이어가면서 적당히 연교의 관심에 추임새를 덧붙이는 것으로 보인다. 허나 ‘어른의 시선으로는 알 수가 없는 거지’라는 대사만큼은 이 그림의 상징을 꼬집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다송은 1학년 때 자신의 생일날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부엌에서 문광의 남편을 목격한 사건인데, 이는 그에게 지독한 트라우마를 안겼다. 다송이 그린 그림을 보면 자화상이 아니라, 그때 자신이 목격한 문광의 남편을 그린 게 자명하다. 그림의 넓게 까진 이마와 다소 큰 두 눈은 그때 봤던 문광의 남편과 똑닮았다. 기정이 주목했던 그림 오른쪽 아래 검은 부분은 다송이 손으로 퍼먹던 생일 케이크의 흰 생크림과 묘하게 대비되기도 한다.


df73efdaf7f0455eb78a15a7308aa6621555467858135.jpg 두 번씩이나...

어쩌면 다송이 문광의 남편을 마주친 사건도 순서가 뒤집힌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다송은 인디언에 심취해있고, 미국에서 직구한 인디언 활과 화살을 쓰며 미제 인디언 텐트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이는 다송이 본래 집(아메리카 대륙)에서 살았던 사람(원주민=인디언)인 문광과 친하다는 사실과 연계되는 지점이다. 그는 박사장네 가족이지만 때묻지 않은 순수한 존재이기에, 원주민들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연장선에서 다송이 마주한 두 번의 충격적인 상황은, 어린 그에겐 너무나도 잔인한 결말이다.




기정

기우는 기사식당에서 기정에게 벌써 작업에 들어간 거냐며 놀란다. 이어 ‘상징적이다’라는 말이 뒤따라 나온다. 기우는 무엇이 상징적이라 생각했던 걸까? 가족 4명 중 둘(기우, 기정)이 박사장의 집에 들어갔고, 나머지 둘(기택, 충숙)이 곧 침투할 이 상황이? 아니면 자연스럽게 윤기사의 바닥에 구멍을 뚫어 놓은 기정의 지략이? 그것들과 맞물리면서 조금은 비틀리듯 ‘기정’ 그 자체가 상징적으로 느껴졌다.


기정은 꽤나 이질적인 인물이다. 영화 초반 피자 사장은 기우네 가족이 접은 피자 상자들을 가리키며 ‘넷 중 하나가 불량 꼴’이라고 말한다. 기우 가족과 묘하게 겹쳐 보이는 말이기도 한데, ‘불량’을 ‘다름’으로 바꿔 이 가족을 관찰해보면 흥미롭다. 일단 기정은 박사장네 집에 누군가를 대신하여 들어간 인물이 아니다.


c1e3a4d53ec347bc95574d8faf5cd85e1556587453190.jpg 너무 고급지자너

기우는 민혁을, 기택은 윤기사를, 충숙은 문광의 자리를 대체했지만, 기정은 본래 없던 자리를 만들어서 침투했다. 여기서 그녀와 그녀 가족의 차이가 나타난다. 박사장네 거실에서 함께 술판을 벌이던 날 밤, 기우는 가족들에게 기정이 욕조에서 목욕하던 순간을 언급하며 그녀가 이 부유함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그는 기정에게 이 집 방 중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드냐고 묻기까지 한다.


기정은 그녀의 가족 중 유일하게 대체자 없이 박사장의 집으로 들어왔고, 유일하게 부유함과 어울리며, 유일하게 담배를 피우고, 유일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기정은 ‘원래 없던 자리’에 들어온 것이므로, 어쩌면 ‘원래 없던 자리니까 존재가 없어져도 자연스러운’ 그 결말 역시 이미 정해져 있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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