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세우지 않는 계획을 세우자

영화 <기생충> 놓치기 아까운 7가지

by 제트별
창문

<기생충>의 대칭적인 요소들을 살펴보는 건 무척이나 흥미롭다. 하나의 대상을 가운데 두고 상류층과 하류층을 나누는데, 창문은 특히 극한의 대조를 이루는 대표적인 대칭적 요소다.


기우네 집 창문 밖 풍경은 바람 잘 날 없다. 사람들이 다니는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가 귀를 때리고, 취객들의 구토와 노상방뇨까지 바라봐야 하는 끔찍함의 향연이 펼쳐진다. 비라도 내리면 집주인들의 마음도 모른 채 꿀꺽꿀꺽 빗물을 삼켜 온 집안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반면 박사장네 집 창문 밖엔 그 자체로 운치가 있는 싱그러운 정원이 누워있다.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고, 그저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소리만 평화롭게 귀를 간지럽힐 뿐이다. 햇빛이 닿든 비가 내리든 눈이 오든 상관없이, 예술적 터치가 가미된 풍경만이 오롯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

창문이 좌우로 상류층과 하류층을 나눴다면, 계단은 상하로, 좀 더 직설적으로 나누어 버리는 요소다. 이 계단을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주체는 기우네 가족이다. 처음 박사장네 집에 갈 때 기우는 언덕을 오르고, 현관을 통과해서도 계단을 오른다. 자신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다혜의 방에 갈 때도 계단을 오른다. 이 장면에서 연교가 앞서 올라가고 기우가 뒤를 따르는데, 곧이어 식탁으로 문광이 다가가자 강아지 쭈니가 뒤를 따른다. 마치 연교(상류층) 뒤의 기우(하류층)를 문광(사람) 뒤의 쭈니(동물)로 대비시키듯이.


박사장네 가족들이 아래로 향하는 모습은 잘 나오지 않는다. 나온다 해도 집의 계단을 가벼이 왔다 갔다 할 뿐이며, 특히나 박사장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조명(문광의 남편 근세가 누르는)과 함께 결합해 상승의 상징만이 부각된다. 반면 기우네 가족과 문광네는 아예 지하까지 내려간다. 근세는 지하실에서 살고 있고, 기우네 가족 역시 박사장네 집에서 빠져나와 자신들의 집으로 가는 길 내내 계단을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간다. 그들의 귀갓길은 상승과 하강, 상류층과 하류층의 격차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는 잔인한 장면이다.



비(물)

비(물)는 시련 혹은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비극은 비 내리던 날 시작되었다. 박사장네 집 거실에서 술판을 벌이던 그날, 문광이 초인종을 누른다. 곧이어 이야기는 긴장의 끈을 비틀며 지독하게 하강한다.


박사장네 집 창문 밖으로 보이던, 비가 정원을 적시는 운치 있던 풍경은 기우네 집의 답 없는 침수와 대비된다. 물이 새지 않는 텐트에서 곤히 잠든 다송은 온 집안이 물바다가 돼 체육관에서 잠을 청하는 기우네와 대비된다. 밤새 내린 비로 미세먼지가 씻겨 나갔다며 다송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연교의 미소는 겨우 옷을 갖춰 입고 운전대를 잡은 기택의 경직된 얼굴과 대비된다. 같은 비를 맞고도 누군가는 캠핑을 취소하는 단순한 결정을 내리는 데 짜증을 내지만, 다른 누군가는 가진 모든 것을 잃는 생존의 위협 앞에서 허망함을 표정에 담는다.


영화 초반부, 기정을 설득하려고 윤기사가 내뱉었던 ‘비도 올 것 같은데...’라는 대사 역시, 윤기사 자신은 자리를 빼앗기고, 뒷자리에 타고 있던 기정과 그녀의 가족은 시련을 마주하며, 나아가 기정은 죽음을 맞이한 것을 생각하면 비(물)가 가지는 상징은 꽤나 오싹하게 다가온다.



욕조와 미트볼

영화의 후반부 다송의 생일 파티 날, 기정은 충숙에게 지하에 가봤냐고 물으며 자신이 내려가 보겠다고 말한다. 이때 충숙이 그들에게 가져다주라면서 거대한 데미글라스 미트볼이 담긴 접시를 건네는데, 기정은 다른 미트볼 하나를 더 집어 접시 위에 올린다. 그렇게 올려진 두 개의 큼지막한 미트볼. 허나 연교의 등장으로 기정은 결국 지하로 내려가 보지 못하고 정원으로 향한다. 기정이 문광네에게 전해주려 했던 붉은 빛깔의 큰 미트볼 두 개는 마치 두 개의 심장처럼 보인다.


얼마 후 거짓말 같이 이 두 개의 미트볼은 심장을 겨눈 두 번의 빨간 피로 치환된다. 근세의 칼이 박힌 기정의 왼쪽 가슴, 기택의 칼이 박힌 박사장의 왼쪽 가슴.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기정과 박사장 이 둘은 욕조 물에 몸을 담가 목욕을 했던 이들이다. 물이 가진 시련 혹은 죽음의 상징은 여기까지 연장되어 마침표를 찍는다.



문광과 다송

문광과 다송은 아주 각별한 사이 같다. 겉으로나 속으로나 온 신경을 다송에게 쏟아내는 연교는 정작 다송과의 스킨십이 없다. 기정이 처음 방문했을 당시 다송이 방 안에서 화살을 엉덩이에 끼우고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도 연교는 어쩔 줄 몰라한다.


짜파구리를 먹으라 외치는 연교의 목소리에 다송은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집 안에 꽂힌 다송의 화살을 치우고 그를 껴안아 부비는 건, 문광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연교와 기우 뒤로 문광과 다송은 진짜 가족인 것처럼 사이좋게 꺄륵거린다.


연교가 문광을 해고하는 순간, 다송은 창문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곧 멀찌감치 떨어져서 비치는 다송의 뒷모습에 쓸쓸함이 묻어난다. 캠핑을 떠나기 전 연교가 충숙에게 강아지 줄을 길게 하여 산책해 달라며 마지막 말을 건넬 때, 다송은 머리를 빼꼼 내밀고 충숙에게 메롱을 한다.


문광은 쫓겨나고도 다송과 문자를 나누고, 덕분에 자신의 남편과 재회할 수 있었다. 다송이 비가 내리는 캠핑장에서 집에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한 건, 집에 몰래 들어갔을 문광을 생각해 시간을 끈 것이겠다. 또 문광은 어린 다송이 자신의 남편 근세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던 점을 불쌍히 여겨, 더욱 그에게 신경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소통

연교와 다송의 스킨십이 전무하고 이들의 대화가 일방적인 방향성을 띠고 있는 것처럼, 박사장 역시 다송과 온전한 소통을 하고 있다고 보긴 힘들다. 박사장과 다송은 직접적인 대화보다 무전기로 하는 대화가 훨씬 많다.


다혜도 마찬가지다. 다송에게 온 신경을 쏟는 연교의 마음이 다혜에겐 다소 부실한 모양새다. 다혜가 연교에게 따졌던 것처럼 연교의 우 쥬 라잌 짜파구리 이동 코스는 다송 - 박사장 - 자신 순이었으며, 다혜에겐 묻지도 않았다. 이어 연교가 다혜에게 먼저 말을 거는 장면도 없고, 그나마 있다고 여길 만한 사례도 캠핑 출발 전 꾸중뿐이다. 박사장도 캠핑 관련 장면을 빼면 휴대폰 그만하고 올라가 자라는 핀잔만이 남는다.


반면 기우네 가족은 거리와 상관없이 소통이 이루어진다. 이들의 대화는 티키타카로 모자라 제한선도 지워버린다. 박사장네가 캠핑을 떠나고, 소파에서 자다 일어난 충숙은 창문 밖 정원에 누워 다혜 일기를 읽고 있는 기우에게 안 덥냐고 묻는다. 큰 목소리가 아니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거리인데, 이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받는다.


기우가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기정에게 물을 가져다줄 때도, 기정은 텔레파시를 언급한다. 딱히 말을 하지 않아도 이어져 있는 듯한 이 가족은 생각 이상으로 끈끈한 게 아닐까.



계획

계획이라는 말은 기우네 가족을 관통하는 특징인 동시에 관객들의 관념을 부수는 장치로까지 활용된다. <기생충>은 앞으로 펼쳐질 내용에 대하여 관객들이 스스로 머릿속에 그렸을 계획(예상)을 꽤나 뒤집어 버린다.


박사장네 침투한 기우네 가족에게 위기가 닥칠 줄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런 위기일 줄은 몰랐으며, 정체를 들키는 대상도 박사장네 가족이 아닌 문광네였다. 머리에 돌을 2번이나 맞아 당연히 죽을 줄 알았던 기우는 살고, 가슴에 칼을 맞고도 눌러서 더 아픈 것 같다며 웃던, 죽지 않을 듯하던 기정은 죽는다. 그 집을 사서 어머니와 정원에서 기다릴 테니 아버지는 그저 계단만 올라오시라는 기우의 편지, 그래서 다시 가족이 재회하는 그런 비현실적인 소망 역시 상상에 지나지 않았다.


무계획. 기택의 말처럼 계획이 없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 애초에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니 잘 못될 일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계획을 세우지 않는 계획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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