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의 역습

영화 <사바하>로 외모 꼬집기

by 제트별
천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절대적인 존재, 신이라 부르는 존재의 모습을 ‘인간’의 모습으로 대입시켜 표현하곤 한다. 조물주가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 하기도 하고, 인간으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기도 하니 충분히 타당한 설득력이 있다.


헌데 ‘천사’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한다. 우리는 흔히 천사를 인간의 형태에 깃털이 빛나는 날개를 등 뒤에 달고 머리 위에 링이 떠 있는 존재로 상상하지만, 성경에 묘사된 대로라면, 천사는 한가운데에 머리가 있고, 그 머리를 기점으로 상하좌우 날개가 여럿 달린 다소 기괴한 모습이다.


천사가 인간 앞에 등장할 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처음엔 그 말을 절대적이고 신성한 존재를 향해 인간이 느낄 두려움을 안심시키는 경외감의 의미인 줄만 알았으나, 묘사된 천사의 모습을 상상하니, 그 말은 우리가 상상한 모습과의 괴리가 자아내는, 표면적으로도 느낄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천사뿐만 아니라 다른 절대적인 존재들도 사실은 인간의 모습이 아닌 괴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네 탓이 아니야

절대적인 존재는 괴기스러운 모습을 하고도 선한 존재일 수 있고, 인간의 모습을 하고도 악한 존재일 수 있다. 영화에서 금화와 함께 태어난 쌍둥이 ‘울고 있는 자’는 괴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모두 그녀를 괴물이라고, 악한 존재로 여겼다.


태어나기도 전에 그녀는 뱃속에서 금화의 다리를 뜯어먹었고, 태어나고 며칠 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는 목을 매 자살한다. 금화네는 자주 이사를 다닌다. 이사를 온 후 한 동네에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그건 정말 '울고 있는 자'의 존재가 뿜어내는 저주 때문일까? 처음부터 정말 악한 존재였을까? 사실 어머니는 산후조리 중 사망했을 수도 있고, 아버지는 자신의 딸 중 하나가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태어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을 수도 있다. 소들은 그저 구제역으로 인해 죽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이 그녀가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녀로 인해 금화는 다리를 절뚝거리고, 계속해서 이사를 다녀야 하는 얄궂은 역마살이 붙어버렸음은 자명하다. 그럼 그녀는, 이 ‘울고 있는 자’는 왜 태어난 것인가?


다 이유가 있지

그녀는 다른 이들과 함께 울기 위해 태어났고, 운명의 굴레에 묶여 태어났다. 그리고 조금 더 목적에 집중하여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금화를 지키기 위해’ 태어났다.


그녀의 존재로 인해 금화네는 계속 떠돌아다님으로써 ‘사슴동산’의 ‘뱀 사냥’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었고, 광목이 금화를 죽이려 집에 들이닥쳤을 때도 그녀는 새를 보내 금화를 보호한다. 이후 금화가 잡혀서 죽음을 앞두기 전, 금화는 그녀의 존재를 광목에게 말하여 죽음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역시 영원한 건 없나봐요

김풍사. 김제석. 그는 정말로 미륵이었다. 아니, 미륵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김제석은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시간에 굴복하지 않는 ‘불사’가 되었다. 허나 1985년, 그는 스스로 발을 묶어버린다.


티베트 대승 네충텐파를 만나 ‘자신을 해칠 천적이 출생 100년의 시간을 두고 같은 곳에서 태어난다’는 예언을 들은 뒤로 경전에 천적의 기록을 새겨 본격적인 ‘뱀 사냥’을 시작한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도 두려움이 있을까? 절대적이었던 그는 두려웠다. 절대적인 존재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듯 많은 아이들을 죽여갔다. 뱀을 두려워한 그가, 본인이 뱀이 되어버리는 걸 모른 채로. 예언대로 천적은 정말 태어났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태어나므로 저것이 태어나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이 말이 ‘김제석’과 ‘울고 있는 자’의 존재를 설명하는 운명일 테다. 그들은 운명의 굴레에 묶였고 마치 서로가 호크룩스인 것처럼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어야 할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김제석은 악이었고,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태어난 ‘울고 있는 자’는 선이었다. 물론 이런 선과 악의 구분은 딱히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김제석처럼, 본래 선이었던 자가 악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


영화는 많은 화두를 던지면서 절대적인 존재의 이 ‘양면성’도 제시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용이 뱀 됐네’.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에 각각 나온 이 말들이 그 특성에 방점을 찍는 화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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