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덩어리들

애비게일과 타노스, 그 치명적임

by 제트별


인간 역사는 욕망을 양분 삼아 발전해왔다. 원초적인 생존의 욕구를 넘어, 하고 싶고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그러한 묵직한 구(球)들이 모여 원대한 스노우볼을 만들어냈다. 물론 욕망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생명체의 패시브 스킬 같은 본능이겠지만, 이 스킬을 능동적으로 가장 잘 부리는 맹랑한 유저는 아마 인간일 테다.


아울러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뿐만 아니라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또한 욕망의 한 결로 생각하는 개똥철학자로서, 인간은 그 작위와 부작위를 넘나들 줄 아는 지독한 생명체라 믿는다. 때문에 욕망의 밭에 일궈진 이 생태계에서 탄생한 영화들도, 가슴속에 욕망 하나쯤은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 특징을 몸소 잘 보여주는, 지난해 욕망 어워드 수상자를 (내 맘대로) 뽑아보았다.


넘모 도도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애비게일’은 아주 모범적인 인간 욕망 표본이다. 칼같이 나눠진 계급 사회에서 생존 유무가 달린 신분 상승의 욕구는 자연스레 그를 채찍질하고, 영리하다 못해 영악한 머리를 기반으로 한층 한층 올라선다. 어쩌면 그는 최하층의 상황을 벗어나는 목적만이 간절하고 유일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뛰면 걷고 싶고, 걸으면 서고 싶고,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욕망의 도미노 기질과, 때마침 찾아온 레벨업 기회가 맞물리자 그 달콤함에 스스로를 파묻는다. 또한 자신의 손을 잡아 올려줬던 이의 발판을 빼버림과 동시에, 흘러넘치는 욕망 앞에 브레이크를 부수고 독기를 상대의 가슴팍에 찔러 넣는 대범함을 선보인다.

위의 위에겐 어쩔 수 없지

드디어 우리는 마치 며칠 동안 찻잔 속에서 빼지 않아 찌들어버린 티백과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소유의 승리자가 된 그를 목격할 수 있다. 원래부터 그랬는지, 상승하면서 완성이 됐는지 알 수 없는 그의 본성은 제법 추악해 보인다. 그렇게 위에 올라선 그의 결말도 공허하다. ‘위’도, 결국 ‘위의 위’ 앞에선 무릎을 꿇는다.



욕심쟁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의 ‘타노스’는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그래서 그런지) 블록버스터급 욕망을 지니고 있다. 이 못 말리는 보라색 절반필연충 돌 수집가의 꿈은 무려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없애는 원대한 판타지로, 짙고 짙은 사명과 이 거사를 오직 본인만이 할 수 있다는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마인드로 무장하고 있다.


자신의 고향 행성이 맞이한 비극 때문에 촉발된 이 욕망은 본래부터 압도적이던 그의 힘에 날개를 달아주고,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다른 행성들을 파괴하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고속도로를 깐다.


ㅋㅋ임마 이거 쫄았네

비록 오딘과 헬라가 있을 때는 나서지 않았던 쫄보 이력이 머쓱한 헛기침을 하게 하지만, 그런 강력한 억제제를 혹여 끼워 넣는다 하더라도 그의 추진력은 놀랄 만큼 매섭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의 두 타노스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다.


전자는 특유의 여유와 견고한 힘을 바탕으로 본인의 철학을 나름대로 설파하며 하나하나 찍어누른다면, 후자는 중간에 본인의 미래를 미리 알게 돼서 그런지 운명 운운하며 교만하고 날카롭고 냉혹한 그림을 그린다. 아울러 욕망 실현의 성공(인피니티 워)과 실패(엔드게임)의 결과물은 색만 다른 해탈의 열매라는 사실을 묵직하게 얹어준다.



그래도 너희를 좋아해

애비게일과 타노스, 이 둘의 욕망 그릇은 가히 치명적이다. 날을 세워 위를 찢고 올라가는 애비게일의 행보에 덜컥 겁이 나면서도, 충실히 선사하는 대리 만족은 부정할 수가 없다. 타노스 역시 절반 가루화로 마음고생시킨 행태는 아주 괘씸하지만, 자기 자신을 ‘필연적인 존재’로 되뇌는 그에게서 자존감 포인트를 얻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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