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Peninsula> 2020, 연상호
본격 K-좀비의 서막을 알렸던 <부산행>이 각광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공간이 지닌 매력 때문이었다. 열차 안이라는 좁은 장소를 활용하여 출구의 존재를 삭제시키고, 밖을 나가더라도 열차에 중심을 두고 결코 ‘활보하지 않는’ 고집을 부려 꽉 막힌 사방으로 막대한 긴장의 응축을 빚어냈다.
더불어 통상의 좀비보다 더 빠르고, 날래고, 아크로바틱한 한국형 좀비의 활약까지 결합해 영화는 지고지순히 목적지를 향해 달려나갔다.
이후 4년이 흘렀다. 공간도 넓어졌다. 공간이 넓어진 만큼 그리고 지나온 시간만큼 변화는 곳곳에 주입되었고, 결국 판 자체가 달라졌다. 눈을 질끈 감고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폐허와 절망은 적응이 집어삼켰고, 나아가 일종의 응용이 새로운 장까지 열어젖혔다.
최우선 순위에 있던 좀비로부터의 생존은 부차적인 일상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인간은 이제 앞으로의 삶에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집중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좀비의 존재는 배경으로 전락했다. 피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구성되었던 파이는 사냥과 놀이 도구 같은 대상이 추가되어 고르게 비중을 차지해 다채로운 맛이 되었다.
또한 아무리 좀비가 어마무시한들 그 공포의 유효기간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적응하고야 마는 인간은 그 공포의 유효기간 딱지 값을 지불하고 나면 응용의 칼을 뽑아들고 단순한 장애물 혹은 유희 거리로 치환시킨다.
결국 최후의 빌런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공식이 승리의 깃발을 꽂는다. 영화는 그렇게 달라진 판에 맞게 각종 인간사를 구구절절 펼쳐내며 나름 대차게 러닝타임을 끌고 나간다.
카 체이싱으로 화려한 선물을 주기도 하고 몇몇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흥분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기도 하지만, 가장 진득하게 눈을 붙잡는 건 역시 지독한 명분 쌓기다.
초장부터 가족의 상실이란 요소를 꾸역꾸역 집어넣어 단단히 준비를 마친 뒤, 중간중간 그 요소를 인질 삼아 재생속도까지 조절하여 감정마저 통제하려는 방식은 적당히 찰랑거리듯 적셨던 이해의 선을 계속해서 침범한다.
특히 ‘그간 구하지 못했다’는 명분의 탈을 쓴 고통을 충실히 부여한 힘으로 추진력을 폭발시켜 결승선을 끊어버리고 ‘마침내 구했다’는 과제이자 목적을 달성하는 뚝심은 머쓱했던 제인 복선까지 가볍게 묻어버린다.
전작과 달리 인간사에 각별히 초점을 맞추는 시도는 분명 필요한 부분이었으나, 적지 않은 이들이 그 달라진 판에 올려진 토핑을 마주하고 왜 무거운 피로감을 느끼는지에 관한 고민 또한 여실히 필요한 부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