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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트별 Aug 12. 2020

명분과 피붙이의 유한동력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영화 <DELIVER US FROM EVIL> 2020, 홍원찬

오랜만이야 부라더

복수의 끝은 씁쓸하다. 시작점 부근에서는 분노가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하지만, 과정과 결과의 단계로 흐를수록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섞이며 파이를 뒤흔들고, 완료 후 배어 나오는 카타르시스의 한 편엔 공허함을 쥔 씁쓸함이 묻어있다. 반대편에서 새로운 복수가 생성될 가능성은 덤이다.


그걸 지켜보는 제3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장르적 쾌감이 덮쳐오기도 하나, 비극이 물어오는 비극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과연 무엇이 그를 움직이는가

란과 거래를 하는 레이를 떠올려보자. 이유를 묻는 란에게 레이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이유의 중요성을 파기한다. 물론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발현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간 쌓아온 직업적 익숙함이 언제나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이유와 동기는 그저 경기 시작 휘슬에 불과할 뿐 별다른 쓸모는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다.


레이의 시작점엔 분명 분노가 존재했겠으나, 두어 번의 투닥거림을 보면서 그 분노에 이질감이 느껴지며, 결국 그가 왜 그렇게까지 인남을 쫓는가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받는다. 명분이 부족하다. 다시 말하면 레이는 그냥 그렇게 행동하는 거고, 란에게 언급한 점으로 봤을 때 꽤나 솔직한 편이겠다.


이해는 되지만..

이제 인남을 생각해보자. 레이에게 직접적인 시작점을 제공한 그는 방어자의 역할을 입고, 동시에 영주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시작하며 공격의 역할을 끌고 나간다.


8년 전의 회상 씬을 통해 인남과 유민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으며, 구조의 손길을 뻗는 과정에서 생존 가능성을 획득하여 전개에 가속도가 붙는다.


허나 영주의 죽음을 유민의 생존에 이어 붙이고 타넘은 후에 마주하는 명분 싸움은 께름칙한 구석이 있다.


짧은 시간에 갑작스럽게 끌어올리는 부성애의 면모는 상당히 어색할 수밖에 없고, 표면상 그 부성애를 위협하는 모양새를 띠는 레이의 침범이 섞여 들어가 인위적인 선악구도가 그려진다.


메마른 둘의 투박한 결투는 시청각적 쾌감을 제외하면 상당히 힘 빠지는 결말로 닿을 운명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데, 그러한 영양가 없는 치킨게임을 가로막는 이가 바로 유이다.



둘은 계속 그러고 있어 우리는 파나마로 갈 거야

이미 맥없는 명분 베팅이 둘이나 있었으므로, 유이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어드밴티지를 얻어 명분과 피붙이가 결합된 휴대폰 사진 하나를 제시하고 무사히 참전한다.


덕분에 영화는 인남과 레이, 둘 중 누가 살아남아도 이상해지는 결말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둘 다 소거시킨 뒤, 적당히 당위성을 부여받은 유이로 하여금 유민의 손을 잡게 함으로써 미래의 미래를 새로운 배경에 세워 안전하게 마무리한다.


자칫 무한할 수도 있었던 복수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끝에 묻은 씁쓸함을 슬며시 잘라내는 유이와 유민의 당도는 녹녹한 매듭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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