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teel Rain2: Summit> 2019, 양우석
화두는 언제나 한반도 운전자론이었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좁게는 남북 관계에서, 넓게는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역할을 끌고 가는 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아울러 시대가 쌓이며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의 늪은, 사다리로 기능하는 외교력으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지리적 위치, 국가가 가진 힘, 내적 합치, 간단해 보이지만 자그마치 3개의 콤비네이션으로 돌아가는 외교는 특히 우리에게 최악의 난도를 선사한다.
이른바 운빨ㅈ망겜과 다름없는 지리적 위치에서 이미 패배한 우리는 출발선부터 가시밭길이다. 동서남북 어딜 봐도 ‘보통’의 나라 하나 없다. 역사적으로 호시탐탐 노려져 온 꿀단지답게, 현대에 들어서도 우리는 직간접적인 압박을 당하고 있으며 그럴 때마다 순간순간의 자생책을 모색해왔다.
더불어 어느덧 지긋한 두께의 페이지가 쌓인 ‘분단국가’의 결말은 이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다. 그 물결을 우리의 발로 헤쳐나가야 하는 운명 역시 의무나 숙제 같은 단어로 애써 감싸지 말고, 주도적으로 붓을 들어 그림을 완성하려는 목표로까지 진도를 빼야 할 시기가 왔다.
영화는 현 국제 정세를 나름 충실히 반영하면서 꽤나 희망적인 방향으로 차를 몬다. 세 정상의 잠수함 납치 소재는 엥 소리가 머릿속을 울릴 정도로 선 넘는 판타지 장르에 꼽힐 만하나, 2년 전 ‘4.27 판문점 선언’ 또한 이루어지기 전까진 그 누구도 섣불리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있을 수 없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보다 깐깐한 현실에서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자명해졌으므로 그러한 소재를 두고 딴죽을 걸 힘은 미약하다.
누구보다도 신중하고 양보와 타협이 몸에 밴 정상, 무례하고 자유분방하며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정상, 자존심을 필두로 부단하게 잡고 있던 것을 쉬이 놓기 어려운 정상, 이 셋이 강제적으로 골방에 처박혔을 때는 당연히 답 없는 상황이 방 안의 공기를 가득 채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상황에 직면해서야 서로의 이야기를 더욱 귀 기울여 듣게 되고, 조심스레 해결 챕터에까지 손을 뻗는 그림이 그려진다.
우리는 영화라는 탈을 쓴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영양가 있는 미래의 방향등을 인지할 수 있다. 70여 년 세월의 밀도는 웬만해선 결코 쉽게 깨지지 않는다는 점,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영토가 다른 누군가에겐 그 명칭의 인식조차 정확하지 않은 땅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점, 각국의 이해관계는 앞에 놓인 무언가에 따라 단순해지기도 복잡해지기도 한다는 점, 전례에 따라 움직이는 특정 국가의 의도는 투명하다는 점, 그리고 이 분단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
영화에서 갇힘의 문제를 푸는 이는 제4자다. 세 정상만이 아닌 제4자도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으며, 그 당사자는 단순히 국적을 떠나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고, 곧 영화 끝의 끝이 말하는 부분과 맞닿아 있다.
물론 저마다의 가치관, 이해관계, 정치색에 따라 의견 차이 발생은 당연하다. 한 발 나아갔다 해도 방법론의 차이에 적지 않은 제동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허나 이렇게 고민과 고뇌에 머무르고 시간이 겹겹이 쌓일수록, 점점 가중되는 현실의 무게 앞에, 이 문제를 논할 때마다 거론되는 ‘부가가치’에 언젠가 우리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가 오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