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Water Lilies> 2007, 셀린 시아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똑같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자 행복이다. ‘누가 더’에 대한 정도의 차이가 당연히 있을 테지만 그건 그다음 단계 문제고, 쌍방향으로 다진 토대는 더욱 풍족한 감정을 가득 쌓을 수 있도록 해준다.
허나 모든 사람이 상대방과 항상 그러한 기틀을 마련하진 못하는 법이며, 적지 않은 이들이 허공을 향해 끊임없이 허우적거리면서 손바닥 소리를 내기 위해 애를 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의 시작은 제각각이다. 자신이 바라고 되고 싶은 모습에 반할 수도 있고, 우월하고 멋진 모습에 빠져버릴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하여 그 출발선을 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나아가게 된 발걸음을 어떠한 방식으로 끌고 갈 것인가 또한 만만치 않은 숙제다. 노빠꾸 전법으로 무작정 들이대거나, 조금씩 시야에 드는 전략으로 다가가거나, 그저 외로이 지켜보거나.
접촉이 일어난 이후 상대방도 마음을 포갠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의 이야기는 다소 가혹한 흐름을 탄다.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 상대방에게 매달리는 손길은 안쓰럽기 그지없고, 서서히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믿은 자신의 끝엔 가중된 부재가 있다.
보이는 면과 달리 보이지 않는 면에서 생각 이상으로 훨씬 간절하게 발버둥 치고 있음을 과연 상대가 알고 있을지도 미지수다.
베어 문 사과의 맛이 씁쓸한 이유는 버려진 사과를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유되지 못한 내가 먹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나를 바라봐 주지 않을 거 같았어’와 ‘이렇게 하면 네가 나를 바라봐 줄 거 같았어’, 그 어떤 말도 변명의 문턱조차 넘지 못해 아리다.
같은 물에 발을 담갔다 여긴 믿음마저 착각이었으므로, 연사한 감정의 탄알은 당연히 오발이자 불발이다. 지금도 춤을 추고 있는 너에게, 나는 단지 천장을 응시하며 표류하는 뗏목 정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