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선권악(懲善勸惡), 믿음의 역류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2020, 안토니오 캠포스

by 제트별
아주 가끔은 말도 안되는 걸 알면서도 바라고 또 바랄 때가 있다

믿음의 끝이 가혹하다. 누군가를 믿은 이는 전부를 잃었고, 누군가를 믿은 이는 배신을 당했고, 누군가를 믿은 이는 실의에 빠졌고, 누군가를 믿은 이는 죽음을 맞이했고, 누군가를 믿은 이는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믿음의 대상인 그 누군가는 저마다 다르겠으나, 세 개의 선(線)이 엮여 들어간 믿음의 굴레를 어쩔 수 없었다는 매듭으로 마무리 짓는 모습을 보니 이 또한 운명이라는 손쉬운 명사로 치부하는 건 아닐까, 다리를 걸고 싶었다.



배트맨이어서 다행이야

역류의 역겨움을 바로 잡아가는 행보는 순간순간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지만, 왜 항상 먼저 두드려 맞는 건 선(善)인지 눈을 질끈 감게 하는 답답함을 고래고래 아우성치게끔 만든다.


믿음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약자를 탄생시킨다는 데 있다.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 도움을 원해서, 무엇보다도 간절해서 붙잡는 손이 이죽거리며 팔을 타고 스르륵 넘어와 목을 조여 온다. 약점을 내어주고 획득하는 믿음에서 안정감을 끌어안는 이 아이러니한 세상에서, 희생양의 무게는 터무니없이 가볍다.



걱정도 사라지지 않는다

믿는 이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나아가기 전에 밟히는 돌부리가 너무 많다. 그건 순수 악일 수도, 무지의 악일 수도, 권력의 악일 수도, 유희의 악일 수도, 위선의 악일 수도 있다.


하나하나 걷어내긴 했지만 애석하게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그가 다행이라고 한 말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다행이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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