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랑종> 2021, 반종 피산다나쿤
조그마한 균열 하나에 믿음은 종말을 고한다. 진심으로 틀이 잡힌 굳건한 신념도 너무나 애석하게 바스러진다. 균열로 고개를 들이미는 의심은 거대한 스노우볼을 굴리기도, 끝없이 뻗어나가는 가지를 치기도, 판을 뒤집는 전복의 가능성을 키우기도 하면서, 그럴듯한 운명의 색채를 슬며시 집어넣고 이후를 관망한다.
애초에 슈퍼내추럴에게 대항하고 이기려 드는 게 가당키나 할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버겁다. 때문에 슈퍼내추럴에겐 또 다른 슈퍼내추럴로 맞불을 놓자는 꽤나 정직한 명제를 끌어와, 나름 새로이 판을 짠다. 하지만 정작 짜이는 건 새로운 판이 아니라 우리의 멘탈이다. 이입하기 끔찍한 상황들의 나열은, 신의 존재에 관한 의문을 오히려 삭제하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선(善)신과 악(惡)신은 과연 따로 있는가에 대한 생각 고리를 경유하며, 지독한 현실의 살얼음판을 되새긴다. 믿음을 양분 삼는 신에게, 배신과 불신은 가혹하다면 가혹할 철퇴 행보로의 명분이 된다.
물론 그 철퇴는 그동안 온 정성을 다하여 자신을 섬겼던 이에게는 편안히 자비롭게 내리기도 하지만, 자신을 거부했던 이들에게는 무자비함의 끝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니 적어도 신을 선악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잣대는 존재하기 힘들고, 굳이 있다고 한다면, 온갖 상황들 그리고 끈처럼 이어지는 피의 굴레의 조합이라는, 이른바 운명이 그 역할을 할 테다.
그래서 불쾌하다. 나열되는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나로 끊어내지 않고 끝끝내 뒤로 이어 목숨을 매듭짓는 그 뚝심이 불쾌하다. 사필귀정으로 돌아가는 죄와 벌의 작동은 동의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정의가 꽤나 불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