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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트별 Oct 29. 2021

다음번이 아닌 이번에 간직하는, 우리의 안녕

영화 <쁘띠 마망>, 셀린 시아마의 마법

효의 표본

오도독거리는 소리에 이어 고사리 같은 손이 앞을 향한다. 과자로 한 번, 과자로 두 번, 과자로 세 번. 목이 탈 수도 있으니 음료로 네 번. 목을 감싸는 두 손으로, 다섯 번.


지그시 퍼지는 미소가 그 순간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대체한다. 더불어 그 순간 자체가 둘을 집약하는 핵심이지 않을까. 단 몇 번의 오감으로, 시선의 교차 없이도, 주고받음의 의미를 무한하게 녹여내는 그런 관계.


'사랑스럽다' 계열의 최상급 표현을 찾지 못한 게 한이다. 초반부의 이 간식타임 씬부터 모든 객관적인 사고를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거기서 바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어도, 극한의 몽글몽글한 만족감을 느끼며 상영관을 빠져나왔을 거라는 생각도 진지하게 덧붙였다.



킬링포인트를 셀 수가 없다

어기적어기적 혹은 뒤뚱거리는 듯한 걸음걸이, 타노스가 헐크를 뚜드릴 때보다 더 호쾌한 타격감을 보여주는 패들볼, 질레트를 위협하는 잘생긴 면도,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시간 이동, 맨손-끈-나뭇가지로 점점 진화하는 재료들, 오두막 완성 후 양손을 주머니에 넣는 다부진 포즈, 이후 둘을 포개는 뒷모습... 얼굴 가득 미소를 짓도록 만드는 수많은 부분들로 금자탑을 쌓았다.


그 무엇보다도 특별한 이 만남의 농도는, 섭리라는 틀에 묶인 보통의 우리네 삶을 과감히 풀어버리는 일종의 마법으로 인도한다. 순행과 역순행이 동시에 진행되는, 그 몽글몽글한 엔트로피의 흐름이 가득하다.



우리집이야

이를테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 오두막과 크레이프를 재료 삼아 추억을 만든다는 것. 때로는 정해진 역할에서 벗어난다는 것. 뒤로 난 길을 따라왔다는 것, 이미 마음에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서로가 서로의 품 안에 있다는 것.


이번에도 역시나 여지없는 셀린 시아마는 단 72분만으로도 마법을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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