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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트별 Dec 03. 2021

배우로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

영화 <홀리 모터스>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가면 읽기

가면 정보 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본심을 드러내는 때도 물론 많지만, 거의 대부분은 상황에 따라, 관계에 따라, 마음에 따라 적절하게 자신을 덧칠하여 주어진 현실 앞에 내보인다.


당연히 그게 그릇된 건 아니다. 우리 주위를 구성하는 틀 안에서 무탈히 살아가는 방법이자, 암묵적인 동의라고까지 뻗어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여 흘러온 ‘나’라는 매개체는, 다부짐과 위태로움의 시소에 앉아 이리저리 널을 뛰면서도, ‘진정한 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나름 묵직한 생각거리 안에 쑤욱 빠져 들어가기도 한다.



수고했어 오늘도

비틀어 보면 '진정한 나'를 꼭 거짓 하나 없이 솔직한, 투명한 날것의 나라고 정의할 수는 없어 보인다. 통상 비밀이 없는 온전한 내가 진정한 나라고들 하지만, 앞선 언급의 연장선상에서 수많은 상황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저마다의 본심을 지니고 감추고 변형하며 타인 앞에 서는 내가 사실은 오히려 더욱 진정한 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그러한 판 안에서 마음의 고삐는 마음대로만 부려지지 않는 법이기도 해서, 우리는 그렇게 구축된 말과 행동 때문에 종종 후회를 하기도 하고, 남에게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래서 비극의 선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 갈등을 꼭 좋고 나쁨의 잣대로만 가리킬 수 없는 이유는 살면서 봉합과 화합의 맛이 때때로 우리를 적시기 때문일 테다.


상황과 관계의 삶이라는 판, 갈대 이상의 흔들림을 보여주는 마음, 게다가 언제나 제멋대로인 기억까지 합세하는 이 기막힌 콤비네이션을 대하고 있노라면, 우리는 꽤 대단하고 기특한 선방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답다와 나답지 않다, 그럼 나다운 건 무엇일까

굳이 헤어나기 힘든 비극을 꼽자면, 더없이 가면에 매몰되어 중심을 잃어버리는 사태이지 않을까. 그래서 쉽지 않다. 정체성의 자각 여부를 떠나 모순이 힘껏 고개를 들이미는, '진정한'이라는 수식의 어폐와, 잃어버렸는지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그 간극의 차이를 깨닫는 것 등, 전부가 모호함의 바다와 다름없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힘 쫙 뺀 관조적인 상념이 어찌 보면 가장 마찰 없고 편안한 마음가짐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순간을 잊지 말아요

걸인, 연기자, 광인, 아버지, 노인 등으로 하루를 끝마치는 오스카를 보며 생각한다. 누군가의 엄마, 남편, 장모, 할머니, 친구, 그리고 배우로 살아가는 파비안느를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가면을 체화하여, 그러니까 각각의 꽤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는 옹골찬 배우일 수도 있다.


거기에 바로 머리를 이어 붙이고 오스카의 말에 토를 단다. 그래도 보는 사람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의 아름다운 역할은 계속될 것이라고. 끝맺음으로 마농의 말을 곱씹는다. 그러한 삶 안에서도, 그저 그 순간을 음미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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